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99화 (210/361)

199화

- 키에에에엑!

'시작은 나인가!'

놈이 나를 노려보며 거칠게 울부 짖었다. 빠르게 공간 간섭을 발휘해 자리를 벗어났다.

촤악!

산성액이 바닥에 흩뿌려진다.

그 사이, 에녹의 창이 놈의 하복부 를 강타했다.

울컥! 체액이 샘솟아 바닥을 적셨 다.

_캬아아악!

그러자 놈은 이제 에녹을 노린다.

어그로에서 풀려난 내가 이번엔 공격할 타이밍이다.

'슬슬 시간이 됐겠는데.'

철컥.

노이트를 장전하고 속으로 관통하 는 철화를 불렀다.

우우웅!

총구 앞에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 한다.

"에녹! 버텨!"

내 쪽으로 어그로가 튀지 않게 주 의하란 소리였다. 내 말을 들었는지 에녹도 고개를 끄덕인다.

덜덜 떨리는 팔을 무시하고 에너 지를 웅축한다.

우우우웅!

총구를 주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공간 간섭!'

뒤통수에 대고 쏘면 빗맞을 일은 없으니까.

타앙!

촤아아악!

놈의 머리가 터져나가면서 체액이 사방에 튀었다. 뺨에 들러붙은 놈의 외피를 대충 소매로 닦아냈다.

"샤노테. 이제 나와도……

-키에엑……!

뒤돌아 가려는데 불길한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반 토막 난 붉은점지렁이가 나머 지 반신을 꿈틀대고 있었다.

철컥.

황급히 다시 총을 장전하고 경계 태세로 돌아섰다.

-키게겍…… 케에에에!

움찔움찔하더니, 터져나간 단면이 순식간에 회복되고 그 위로 새로운 머리가 솟아난다.

'회복력이 상식 밖이야. 언데드 계 열 몬스터도 아닌데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지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저 몬스터가 진짜 지렁이라는 의미 는 아니었다.

몬스터들은 대체로 머리가 터지면 그대로 죽는단 말이다.

"어떡하지?"

결국 우리는 다시 한번 등을 맞댔 다.

머리를 갈라내도 되살아나는 적이 라.

완전히 곤죽이 될 때까지 갈아버 려야 한다는 말인데. 놈이 너무 컸 다.

케에에에엑!

놈은 정신을 차리자 대뜸 고개를 숙여 나무뿌리를 갉아 먹었다.

콰득!

"안 돼애애애!"

샤노테가 울부짖었다.

소중한 숲의 어머니가 웬 마물에 게 잡아먹히고 있으니 속이 뒤집히 는 모양이었다.

나무뿌리의 단면에서 하얀 빛깔의 액체가 주르륵 흘렀다. 놈이 그 액 체를 받아 마시자, 외피에 나 있던 생채기가 단번에 사라졌다.

"저게 생명력의 근원 같은데. 나무 에서 떨어뜨려 놔야 해."

"어떻게 유인하지?"

그러게. 에녹의 질문에 나도 잠시 말문이 막혔다.

"유인하지 말고, 쫓아내야지."

그런 온건한 방법은 나하고 좀 안 맞거든.

"마을 반대편으로 몰아붙일 거야. 적당히 거리가 멀어지면, 내가 광역 기로 한 번에 죽일 거고."

" 알겠다."

에녹은 경매장에서 내 쏟아지는 불꽃을 본 적 있었기 때문에 얌전 히 수긍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놈을 몰아내는

것뿐이다!

탕, 탕탕!

- 키이이에에엑!

총을 마구잡이로 놈에게 난사하자, 나무를 씹어 먹던 것을 그만두고 살짝 움츠러든다.

외피가 아직은 단단하지만 여러 번 맞으면 놈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후우웅, 콰드득!

에녹이 던진 창이 놈의 앞에 살벌 하게 꽂히자, 결국 꼬리를 말고 도 망치기 시작한다.

"쫓아!"

탕탕, 탕!

총알이 계속해서 놈에게 날아들었 다.

그러나 숲속으로 파고들자 울창한 나무에 시야가 가려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휘익!

가볍게 도약하자 단번에 나뭇가지 위까지 날아든다. 엘프의 기동력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샤샥, 사사사삭!

귓가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빠 르게 울려 퍼졌다.

놈이 꽤 빨라서 그냥 달려서는 따 라잡기가 어려워 보였다.

'이 정도면 꽤 멀어진 것 같으니 까.'

나는 눈을 감고, 좌표를 설정했다.

공간 간섭!

눈을 떴을 때는 놈이 숲을 헤집으 며 다가오는 게 보이는 선두에 서 있었다.

탕!

경고의 의미로 놈에게 총알을 하 나 선사하자 화들짝 놀라 멈춘다.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려 한다.

" 에녹!"

내 외침에 그가 답 없이 응수했다.

우거진 수풀로 하늘이 제대로 보 이지 않았지만, 아득히 멀리 그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몇 번 본 적이 있다. 엘프의 가공 할 만한 점프력과 창이 가진 관통 력을 이용한 기술.

후우우욱!

에녹의 몸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듯 이 추락했다.

중력과 무게를 합친 그 힘이, 창끝

으로 모인다.

콰아아아앙!

창이 놈을 꿰뚫고 바닥에 박혔다.

박제된 곤충처럼, 놈■이 바닥에서 바스락거렸다.

"비켜.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까."

놈이 워낙 거대했던지라 창의 길 이보다 놈의 세로 단면이 더 길었 다.

때문에 놈■의 살덩이가 파묻히듯이 했던 에녹이 내 말을 듣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창은 여전히 바닥에 꽂힌 채였다.

케에에에엑!

놈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철컥.

나는 또다시 총알을 장전했다.

'쏟아지는 불꽃.'

콰과과과곽!

총알비가 놈에게 쏟아졌다.

키에에에엑!

고통스러운 신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끊겼다.

혹시나 해서 놈의 시신까지 확인 했다. 확실한 죽음이었다.

"끝났어."

"돌아가지."

그래. 샤노테가 우릴 기다리고 있 을 거다.

"재스퍼! 콰르텟!"

샤노테가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꼭 껴안았다.

"다행이야. 혹시나 너희가 돌아오 지 않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 데....

나는 울먹이는 그를 달랬다. 엘렌 이 자주 울먹거리던 게 누굴 닮았 나 했더니, 제 형을 꼭 빼닮았다.

"샤노테. 진정했어?"

" 으응."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치자 떨어뜨 려놓고 진지하게 이야길 꺼냈다.

"숲의 가호가 예전 같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알겠지?"

"그래. 땅속에 저런 게 도사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오염에 물 든 마물 같은데, 끔찍한 일이지."

샤노테가 진저리를 치며 답했다.

"이제 놈을 처치했으니까 숲의 가 호도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돌아 올 거야."

"그럴까?"

그는 움푹 파인 바닥과 드러난 나 무뿌리들 그리고 갉아 먹힌 자국이 선명한 것을 바라보며 걱정어린 눈빛을 했다.

그때, 전투가 일면서 사방으로 도 망쳤던 반딧불이들이 나뭇가지 사 이에서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별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아 름다운 광경이었다.

"당장은 어려울지 몰라도, 엘프들 이 정성껏 보살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 그래......

샤노테가 홀린 듯이 눈앞의 광경 을 바라봤다.

마치 나무가 우리에게 대답하는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이게 그 감응이란 건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귓가에서 누군가 속삭이 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자연이 속삭이는 목소 리를 듣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래. 그럼 숲의 가호도 예전처럼

돌아올 거야. 인간 마을을 습격할 게 아니라, 숲의 어머니부터 돌봐야 했는데."

그는 자신이 숲의 어머니께서 남 기신 말씀을 따르지 않고 멋대로 해석했다며 자책했다.

"고마워, 재스퍼."

샤노테가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 했다.

"증오에 눈이 멀어 큰 실수를 할 뻔했어. 네 말이 맞아. 인간을 습격 하면 잠깐은 화풀이가 될지 몰라도, 청년들 없이 홀로 남은 어린아이들 과 노인들은 더 비참하게 살아갈

텐데. 내가 그걸 잊고 있었어."

그가 내게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 다.

"고마워.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 해줘서."

그와 동시에 알림이 울렸다.

[알림: 게이트의 목적이 길을 잃었 습니다. 사건이 무효화됩니다.]

[알림: 판정에 오류가 발생했습니 다.]

[알림: 게이트의 목적을 재탐색합 니다.]

그래. 이걸 원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에녹을 바라봤 다.

보란 듯이 성공해냈으니 이 정도 생색은 부릴 수 있었다.

"샤노테. 엘렌이 다시 깨어날지도 모르니까 먼저 들어가. 우린 좀 더 있다가 들어갈게."

내 말에 샤노테는 알겠다며 먼저 마을로 돌아갔다. 너무 늦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다시 알림이 울릴 때까지 잠시 시

간이 남았다.

"네 말이 맞았군."

에녹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틈새에 숨겨진 감탄 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했잖아. 난 제3의 선택지를 찾 아낸다고."

"신기한 일이야."

황제의 충견다운 말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수동적인 면이 있 다. 이 게이트에 와서 특히나 실감 한 부분이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알려

주지 않아도 묵묵히 따라왔지.'

그는 전체적인 틀을 보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은 눈앞의 일만 해결하면 되는 듯이.

'마치 군인처럼.'

오랜 시간 명령받는 것에 길들여 진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직접 엘프가 되어보니 의문이 절로 들었다.

'대체 왜 엘프 숲을 떠나 인간 사 회에서 살아가는 거지?'

엘프들에게 엘프 숲이 어떤 의미 인지 이제는 안다. 마음의 평화를가져다주고 몸과 정신을 맑게 해주 는 곳.

'에녹은 엘프의 신앙을 믿지 않는 것 같았고.'

살생을 금기시하는 그 신앙을 믿 었더라면 이렇게 전쟁터를 나서는 군인이 되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싸우는 방식만큼은 그 자신보다 내가 더 잘 알 텐데. 그 외엔 아는 게 없네.'

적군이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내가 널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 면."

에녹이 지나가는 어조로 툭 내뱉 었다.

"아니, 내가 너와 같았더라면."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는 눈 빛이었다. 아득히 먼 무언가를.

"그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진득한 후회가 어조에서 묻어나왔 다.

나는 문득 직감했다.

이제 더 이상, 그와 내가 이전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공격을 주고받는사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엔 나도 그를, 그도 나를 너 무 많이 알아버렸다.

비록 이 순간 이후로 우린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갈 테니 영원히 티 내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속내에서만큼은 달라졌 다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사이가 나 았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 르게 그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지 않은가.

왜 황제에게 충성하게 됐는지. 어 쩌다 엘프 숲을 나와 인간 사회에 스며들었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난……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무어라 말하려 생각하고 그런 게 아니었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새로운 알림이 입을 막았다.

[알림: 게이트가 목적을 잃었습니 다.]

[알림: 엘프 진영과 인간 진영 사

이의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습니다. 각 진영의 승리와 패배가 판정되지 않습니다.]

과연. 그럼 목적을 잃은 게이트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여기부터는 나도 도박에 가까웠다.

새로운 임무를 줄지도 모르고, 어 쩌면…….

[알림: 게이트를 일시 중지하고 현 시점까지의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됐다!

[알림: 게이트의 목적이 소멸되었 으므로 게이트의 가동이 중지됩니 다.]

[알림: 플레이어 분들은 잠시 기다 려주시기 바랍니다.]

사르륵, 솜사탕이 녹아내리는 것처 럼 사방이 사라졌다. 흰색 배경으로 가득하게 바뀐다.

그리고 동시에, 에녹도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나는 잠시 그곳으로 손을 뻗었다 가 거두었다. 그에게 동정심을 느껴 선 안 될 일이었다.

[알림: 게이트가 클리어되었습니 다.]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기여도가 92,105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기여도 1순위를 달 성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아이템이 배분됩니 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