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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97화 (208/361)

197화

"네, 6만 나왔습니다!"

"6만 5천!"

"7만!"

엘프를 보고 탐욕에 눈이 먼 인간 들이 판돈을 올렸다.

엘프 사내아이는 두려움에 가득 차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빤히 응시하며 숫자를 올 리는 데 열을 내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진 않았으리라.

슬슬 이 지저분한 꼴을 그만 보고 싶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프레드를 툭, 쳤다. 그가 허겁지겁 일어나 밖 으로 달려 나간다.

"거기, 고양이 가면을 쓰신 분! 얼 마를 제시할 겁니까?"

그때 사회자가 날 불렀다. 프레드 의 명령을 받고 가격을 올리기 위 해 일어선 줄 안 모양이었다.

내가 자신들의 상품을 노린다고 여겼는지 돈을 높여 부르던 이들이 따가운 눈초리로 날 바라봤다.

"지금 얼마입니까?"

"9만 3천 골드까지 올랐습니다."

사회자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 다.

"그 정도면 저 엘프의 목숨 값으 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사회자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이봐! 그래서 얼마를 낼 건데?"

성질 급한 누군가는 내가 질질 시 간을 끄는 게 짜증이 난 모양이었 다.

9만 3천 골드.

그 정확한 값어치를 난 모르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그 정도 값이면 엘프를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똑같이 대응해 줄 수밖에.'

나는 좌중을 훑어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여기 있는 이들의 목숨 값을 모두 합쳐도 저 엘프 하

나만 못할 것 같은데."

" 뭐야?"

"저게 대체 무슨 헛소릴……!"

"누구의 기사죠? 당장 내쫓아요!"

내 말에 모욕감을 느낀 이들이 소 란스럽게 떠들었다. 그럴 필요도 없 었다.

나는 천장을 향해 손을 들었다.

'노이트!'

익숙한 감각이 손아귀에 들어찼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탄환은, 딱 하나.

"뭐, 뭐야. 갑자기 왜 손을……

누군가가 불길함을 느끼고 작게 중얼거렸다.

[알림: 특수탄환 '쏟아지는 불꽃' 이 오랜만에 나선다며 기뻐합니다.]

'쏟아지는 불꽃!'

하나의 총알이 천장을 향해 날았 고, 돌아올 때는 총알비가 되어 쏟 아졌다.

촤좌좌좍!

"커헉......!"

"으급!"

털썩.

순식간에 경매장 안에 있던 이들 이 총알에 맞아 쓰러졌다. 대부분이 곧바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 다.

'기사들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 었으니까.'

모르긴 해도 사병을 키우는 데는 제한이 있을 거다.

살아남은 건 알아서 몸을 피한 에 녹과 철창 안에 몸을 숨긴 엘프 소년뿐이었다.

"에녹. 문을 지켜줘. 소란이 일었 으니 다른 녀석들도 곧 몰려오겠 지."

" 알겠다."

나는 단상으로 가서 철창문을 열 었다. 엘프 소년에게 손을 뻗자 아 이가 크게 놀라 움찔했다.

"입마개를 빼줄게요."

내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말을 건네자 그제야 손이 닿는 걸 허락 한다.

입을 막고 있던 천 조각을 풀어냈

다.

"다친 덴 없어 보이는데. 이름이 뭐죠?"

"에…… 엘렌이요."

엘렌. 아마도 이 애가 샤노테의 남 동생이겠지.

손이 덜덜 떨려왔다. 아직 상황 파 악이 어려운 듯, 우릴 보며 경계하 는 표정을 지었다.

'아차.'

로브를 안 벗었네. 나는 로브를 젖 혀 얼굴을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귀를.

"재스퍼 누나?"

아무래도 우리가 구면이었던 모양 이다. 내 역할이 샤노테와 아는 사 이로 보였으니, 그 남동생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

"누나가 왜 여기에……. 날 구하려 고 여기까지 온 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친분 때문은 아니지만 일단 엘렌 을 구하러 온 건 맞았으니까.

"왜 그랬어! 누나까지 위험해졌잖 아! 게다가, 게다가 살인이라니엘렌의 푸른색 눈동자에 눈물이 서렸다.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난다.

"숲의 어머니께서 노하실 거 야……

"상관없어. 널 구해야 했으니까."

난 그 숲의 어머닌지 뭔지 하는 걸 믿지도 않고.

그 종교가 엘프들에겐 각별해서 살생을 꺼릴지 몰라도, 난 그놈의 숲의 어머니가 뭔지도 모르는걸.

"누나.…"

엘렌은 그 뒷사정을 모르니 퍽 감 동한 눈치였다.

"잠시 비켜봐. 이 철창부터 끊어낼 게."

탕! 탕!

총을 쏴 철창을 끊어내자 엘렌이 다시 한번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건 인간들의 무기 아니야? 언 제 그런 걸 다룰 수 있게 된 건 데?"

아차. 재스퍼는 궁수라는 설정이었 지.

맨 처음 게이트에 진입했을 땐 등 에 활을 매고 있었는데, 불편해서 그냥 숙소에 두고온 것이 이제야떠올랐다.

"……좀 연습했어. 그보다 서둘러. 얼른 도망가야지."

대충 얼버무리며 주제를 돌리자, 엘렌도 도망치는 게 급선무라 느꼈 는지 비틀비틀 걸어 나왔다.

"걸을 수 있겠어?"

"응. 괜찮아."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름대로 씩씩하게 대꾸 한다.

"침입자다! 침입자다아아아!"

퍽!

촤악!

슬슬 경매장 안에서 무슨 일이 벌 어진 걸 눈치챈 모양이다. 안에 있 던 이들이 한 번에 죽어서 바깥까 지 소식이 전해지는 게 좀 느렸나.

에녹이 순식간에 입구를 향해 달 려드는 이들을 베었다.

그때마다 엘렌이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이런 광경이 무척 낯선 것 같았다.

"도망치자. 최대한 빨리."

"응!"

엘렌이 내 손을 맞잡았다.

나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는 엘렌에게 내가 뒤집어쓰고 있던 로 브를 건넸다.

모자까지 제대로 눌러쓰게 한 다 음, 아예 엘렌을 들쳐 업었다.

"어? 누나?"

"신발이 없잖아."

노예에게 신발은 필요치 않다 생 각했는지 엘렌은 하얀 발을 드러내 고 있었다.

숲에서 맨발로 뛰어다녀도 다치지 않는 엘프지만, 인간들의 마을에선 어떨지 모른다.

'괜히 다쳐서 달리는 게 느려지면 골치 아프니까.'

그런 단순한 생각에서 벌인 일인 데 엘렌은 무척 감격스러운 얼굴을 했다.

"고마워. 누나가 내 생명의 은인이 야."

그렇긴 했다. 거의 울 것처럼 울먹 이는 엘렌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 에녹에게 말을 건넸다.

"보조할 수 있지? 탈출해서 곧장 숲으로 간다."

에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놈들이 숲까지 따라 들어 오면 그대로……

나는 뒷말을 흐렸다. 엘렌이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녹은 그 뒤에 무슨 말이 이어질지 충분히 알고 있을 거다.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까딱했다.

"그럼, 바로 움직여!"

콰앙!

에녹이 한쪽 벽을 박살냈다. 복도 에 늘어서 있던 이들이 화들짝 늘 라 검을 들이밀려 했다.

"으아아악!"

"커헙!"

그들보다 에녹이 훨씬 빨랐지만.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와 비명에 엘렌이 하얗게 질렸다. 나는 로브를 더 단단히 여며줬다.

"모르는 척해."

나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이들이 픽픽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작게 속삭였다.

"넌 아무것도 못 본 거고, 이건 그 냥 악몽일 뿐이야."

어차피 이 모든 것은 과거에 있던 일의 재구성일 뿐이니. 내가 엘렌을구하는 것도 결국 허상에 불과하겠 지만, 이 안에서만이라도 네가 구원 받아야 세상이 좀 공평하지 않겠는 가.

'원래는 이대로 인간들에게 팔려가 갖은 고행을 겪어야 했을 텐데.'

이곳에서만큼은 너도 좀 편해야지.

내 속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렌 은 대답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얼마나 그렇게 내달렸을까. 시체가 수십 번도 더 뒹굴었고, 따라붙던 이들의 인기척이 줄어들었다.

바스락.

숲의 한구석에 발을 들이밀자, 나 는 '숲의 가호'니 뭐니 했던 게 무 슨 뜻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몸이 가벼워.'

숲에서 인간 세계로 나설 때는 잘 몰랐는데.

몸이 조금 지친 상태로 숲에 들어 오니 그 차이가 확연했다.

숨을 쉴 때마다 청량한 공기가 날 가득 채운다.

언제 피곤했냐는 듯 몸이 산뜻하 고, 컨디션이 회복된다.

'엘프 숲에서 엘프를 잡아 오기 까

다롭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레인저인 엘프에게 이런 환경적 요인까지 더해지면, 정말 잡기 쉽지 않을 거다.

"누나, 나 이제 걸을 수 있어."

그 말에 엘렌을 내려놓았다. 수풀 에 베일 법도 하건만. 엘렌은 평지 를 걷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우리를 환영하는 것처럼 사르륵 바람결에 따라 움직였다.

"돌아가자."

엘렌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품으로."

그래. 그 전까진 몰랐지만.

엘프들 사이에서 숲에 대한 신앙 이 왜 이토록 굳건한지 알았다. 이 렇게 포근한 느낌을 주는데 어떻게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천천히 숲길을 따라 걸었 다.

엘프 마을이 나올 때까지.

* * *

샤노테는 황망한 얼굴을 했다.

새벽 늦은 시간인데도 그의 집엔 불빛이 환했고 안에는 젊은 엘프들 두엇이 함께 있었다.

탁상에 펼쳐진 지도엔 인간 마을 에 대한 간단한 도식이 그려져 있 었다.

인간 마을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이다.

" 엘렌……

"형!"

와락, 엘렌이 달려가 샤노테에게 폭 안겼다. 아직 어린 엘렌은 샤노테가 한쪽 팔로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냘팠다.

"엘렌!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재스퍼 누나랑 콰르텟 형이 도와 줬어!"

엘렌이 우릴 가리켰다. 에녹의 엘 프 이름이 콰르텟이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정말, 정말 다행이야!"

샤노테가 감격 어린 눈물을 흘렸 다.

엘렌도 처음엔 왜 그러냐면서 달 래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막, 막 나한테 이상한 옷 입히고,

입에도 이상한 거 넣고 그랬어."

겨우 집으로 돌아온 어린아이가 투정을 늘어놓았다.

"안 울려고 했는데, 형 얼굴 보니 까, 형이 우니까, 나도, 나도 눈물 이나서……!"

"괜찮아. 괜찮아, 이제 돌아왔잖 아."

둘의 감동 어린 재회에 주변 이들 도 눈물을 훌쩍였다.

엘렌은 한참을 울다 잠이 들었다. 잔뜩 긴장했던 터라 많이 피곤했을 거다.

샤노테는 엘렌을 방에 데려다 놓 은 다음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건 넸다.

"고마워. 둘 다."

한참 울어 눈이 벌게진 채였다.

"사실, 재스퍼 너도 오늘 회의에 부르려고 찾아갔었는데 집에 없길 래…… 좀 서운한 마음이 있었거 .드 "

샤노테가 뒷이야기를 털어놓기 시 작했다.

"너라면 내가 부르기 전에 먼저 와줄 줄 알았어. 인간들을 대하는

태도가 무르다고 핀잔을 준 건 늘 너 였잖아."

재스퍼는 그랬던 모양이다. 나는 원래 그녀가 어땠는지 모르기 때문 에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가서 엘렌을 구해올 줄이야. 네가 무모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건 몰랐어."

씨익 웃으며 타박하지만 장난스러 운 기색이 역력했다.

"샤노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슬그머니 본론을 꺼냈다.

내가 굳이 인간 마을까지 내려가

엘렌을 구하는 일을 한 건, 어디까 지나 이걸 위해서였으니까.

"인간 마을을 침입하려던 네 계획, 아직 그대로야?"

내 물음에 샤노테가 딱딱하게 굳 은 얼굴을 했다.

"무슨 뜻이야?"

"난 네가 그 계획을 철회했으면 해."

샤노테는 내 눈을 빤히 들여다봤 다. 내 의중이 뭔지 살피는 것 같 았다.

"엘렌도 무사히 돌아왔잖아."

"네가 구해서 그런 거였지. 엘렌은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도 많다는 거 너도 알잖아."

"샤노테. 이 계획은 너무 무모해."

엘프와 인간 사이의 갈등은 근본 적으로 인간의 욕심에 있으니. 그건 나조차도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 게이트에서 제3의 선택 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인간의 욕심을 거세하는 게 아니다.

'결국 모든 사건의 시작은 엘프들 이 인간 마을을 습격하는 것이니 까.'

그 사건이 없어진다면.

에녹이 말해준 참사는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인간이 승리할 일도, 엘프가 승리 할 일도 없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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