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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96화 (207/361)

196화

기묘한 긴장감이 여관 안에 흘렀 다.

용병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분노 대신 탐욕으로 가득 찼다.

지금 저 귀족과 싸우는 것보다, 우 릴 잡아 팔아넘기는 편이 백배는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잡아!"

그때 귀족 사내가 발작적으로 소 리 쳤다.

"당장 저 엘프를 잡아 오란 말이 다!"

나는 에녹과 눈빛을 교환했다.

'어차피 기사들 실력은 우리보다 한참 아래야. 탈출하려고 마음먹으 면 얼마든지 가능한 수준이니까.'

그렇다면야, 애써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순순히 잡히는 게 좋을 거다."

기사가 칼날을 우리 목덜미에 가

깝게 들이밀었다.

어쭙잖은 협박이었지만, 효과가 있 는 척 입을 다물었다.

"이대로 보낼 거야?"

"그럼 어떡하게. 덤벼서 이길 수나 있겠어?"

"그래도 저것들을 내다 팔면 얼만 데! 암만 요즘 값이 떨어졌다 해도 엘프 노예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아쉬움이 진하게 밴 어투로 누군 가 속삭였다. 용병들도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흐흐흐흐. 이게 웬 횡재냐. 엘프

노예를 구하러 왔다가 노예 낙인도 찍히지 않은 싱싱한 엘프를 구하게 되다니!"

기사들이 우릴 포박하는 걸 바라 보며, 귀족 사내가 흐뭇하게 웃었 다.

소름끼치는 미소였다.

입 안에 천 조각이 구겨 넣어졌다. 불쾌한 감각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제복을 입은 이들이 소란스 러운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기사와 용병의 싸움을 누군가 신고한 모양 이었다.

"테슬롯 후작가의 차남, 프레드 테 슬롯 님이시다."

"테슬롯 가의 영식이시군요. 그런 데 이쪽은……

근위병들이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누가 봐도 불법적으로 엘프를 잡 아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늘 내가 주웠다네."

프레드가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시군요."

그 말에 순순히 동의하는 모습도 우습다.

근위병과 짧게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아주 무심한 눈빛을 하고 있 었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엘프는 제국 민도 아니지 않나."

"물론입니다."

그러시겠다? 이종족은 국민이 아 니니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말이 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아무리 종족이 다르다곤 해도, 엘 프 또한 인간과 다를 것 없는 이성 을 지닌 생명체인데. 이렇게 함부로다루다니.

"내가 잘 곳이 필요해 여길 쓰려 고 하는데, 이런저런 잡음이 심해서 말이야. 자네가 좀 해결해 줄 수 있나?"

뒤이어 근위병 옆에 서 있던 기사 하나가 그에게 두둑한 주머니를 하 나 건넨다.

근위병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흔 쾌히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용병들은 욕지거릴 내뱉으며 밖으 로 나갔다. 이제 이 여관은 프레드 의 손아귀 아래 놓인 것이다.

프레드는 기분 좋게 웃었다.

"이리 끌고 오거라!"

그 말에 기사가 우릴 꽁꽁 동여맨 포박끈을 잡아당겼다.

우리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강 제로 무릎 꿇린 우릴 내려다보며 프레드가 씨익 웃는다.

"약에 중독되지 않은 엘프를 구하 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난 정말 운이 좋아. 이런 촌구석에 와

서도 엘프를 발견하니 말이야!"

그는 황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제까지 내가 구한 엘프들은 죄 다 약에 절어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뭐, 엘프들은 그 절개가 대단해 자 칫하면 혀를 깨물고 죽는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고고한 맛이 좀 떨어지지 않나."

역겨운 소리였다. 그래서 우릴 붙 잡자마자 천 조각부터 입에 구겨 넣은 건가.

"혀 깨물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너희가 죽으면, 이따 노예 경매 때 구할 다른 엘프는 너희의 죗값까지

물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겪 을 테니까. 그 안타까운 아이를 위 해서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어?"

저열한 협박이었다. 내가 엘프인 것도 아닌데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 다.

그는 두어 번 더 확인을 거친 다 음에 우리 입 안에 쑤셔 넣었던 천 조각을 빼냈다.

"좋아. 이제 얘길 좀 해보자고."

이런 꼴인데 가증스럽게 굴었다. 그는 '대화'를 운운하며 입을 열었 다.

"난 엘프를 좋아하거든."

되지도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는 진심으로, 자신이 엘프를 좋아한 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왜 웃지? 난 아주 관대한 주인이 야. 내 자택 안에 있는 엘프 노예 들은 편하게 먹고 자고 입지. 게다 가 사교 모임에 뽐내기 위해 데리 고 다니는 걸 제외하면 할 일도 없 다고."

"아주 대단하시군."

나도 모르게 비꼬는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우린 우리의 숲 안에서 잘 지내 고 있었는데, 멋대로 납치해서 노예

로 팔아놓고는 잘 대해준다고 '좋 은 주인'이라."

"드디어 입을 열었어! 뭐, 다른 엘 프 노예들의 꼴을 네가 모르니 그 런 말이 나오는 걸 테지."

그는 기쁘게 대답했다. 엘프 애호 가를 자칭하는 모습이 우습지도 않 았다.

"숲의 가호를 벗어나 여기까지 내 려온 이유가 뭐지? 엘프들은 자신 이 태어난 숲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고 알고 있는데."

그야 난 엘프가 아니니까.

하지만 겉보기엔 누가 봐도 엘프

라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였다. 내 가 입을 다물자 에녹이 대답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으니 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 라봤다.

"숲은 엘프들의 신앙 그 자체 아 니던가? 신을 등질 정도로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야?"

"가끔은. 모든 걸 버려야 할 필요 가 있는 법이지."

에녹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잘 모 르겠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은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묵직한 대답에 프레드도 잠시 생 각에 잠겼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궁금증이 생 기는군. 대체 뭘 위해 나왔나? 잘 얘기하는 게 좋을 거야."

그가 오만하게 말을 이었다.

"내 심금을 울리면 너횔 풀어줄지 도 모르니까."

그가 스스로 말했던 대로, 어쩌면 그는 엘프에게 호의를 품고 있을지 도 몰랐다.

그게 사람 대 사람의 방식이 아닌 이상, 면죄부가 될 순 없겠지만 말이다.

" 나는......

에녹이 뒷말을 흐렸다.

연기는 이쯤이면 됐다. 더 이상 어 울려줄 필요는 없겠지.

주변에 깔린 기사가 꽤 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나타롯샤 신학교 게이트 때 겪은 바 있지 않나.

'수적으로 열세일 때는, 우두머리 를 먼저 잡는다.'

철컥.

눈을 한번 깜빡이는, 그 찰나의 순

간.

속눈썹이 너울거린 다음엔 위치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칼 버려."

순식간에 소환된 노이트를 프레드 의 뒤통수에 겨눈다.

기사들이 검을 채 뽑기도 전에 이 미 그의 목숨은 내 손아귀 안에 있 었다.

에녹의 옆에 날 포박했던 끈이 바 닥을 나뒹굴었다.

으하하..

프레드가 헛웃음 소리를 냈다.

"도련님!"

"됐어. 검 내리게."

그 말에 기사들이 주춤하다가 검 을 버렸다.

"이런 수를 숨기고 있었군. 일부러 잡힌 건가?"

프레드는 침착하게 물었다. 겉보기 엔 침착했지만, 그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노예 경매는 언제 열리지?"

"그게 목적이었나. 보란 듯이 당해 버렸어."

프레드가 허탈하게 웃는다. 나는

프레드의 허리춤에 놓인 칼을 뽑아 발로 툭 차서 에녹에게 보냈다.

화려한 장식용 검이지만 날이 조 금은 들겠지.

"알아서 풀어."

내 말에 에녹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는, 언제 열리지?"

"오늘 새벽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번엔 내가 제안하도록 할까."

아까 프레드가 했던 제안이 꽤나 거슬렸거든.

"얌전히 우리가 노예 경매장 안으 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 내 심금 을 울리면 널 살려줄지도 모르잖 아?"

그 말에 프레드도 픽 웃었다.

"협력할게. 목숨만은…… 살려줘. 제발."

그 나름대로 자존심을 굽힌 표현 이었을 거다.

그다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 지만, 그런 일로 말씨름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포박끈을 풀고 일어선 에녹

에게 프레드를 넘겼다.

호위기사들로부터 옷가지를 넘겨 받았다. 그들이 미약하게 항변했지 만 다 묵살했다.

"확인되셨습니다. 안에선 가면을 착용하시고, 철저한 회원제로 비밀 리에 운영되는 만큼 서로 신분을 묻는 일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가 건네주는 가면을 건네받는다.

"자네들도 쓰게."

프레드는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우 리에게도 가면을 권했다.

호위기사의 옷을 입고 검을 찬 나 와 에녹은 위에 둘러 쓴 로브만 아 니면 평범한 호위기사처럼 보였다.

조금 괴상한 차림새인데도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손님에 대해 서 입에 담는 걸 아예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허튼 생각 하지 마. 내가 순식간 에 널 죽일 수 있단 걸 잊지 말라

고."

작게 속삭이자 프레드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가 건네주는 가면을 받아 얼굴 에 착용했다.

이상한 고양이 가면이었다. 에녹은 토끼 가면을 착용했다.

"엘프는 어디서 거래되지?"

"그건 경매 제일 마지막에나 나올 거야. 하이라이트 상품이니까."

아주 물건 취급이다. 내 눈초리가 싸늘해진 걸 알았는지 프레드는 저 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큼큼. 제일 값진 것이란 소리지."

뒤이어 변명처럼 말을 덧붙였지만 더 나아진 건 없었다.

경매장 안에 들어서니 기묘한 열 기가 공기 중에 도사리고 있었다.

"5천 나왔습니다."

"5천5백! 더 부르실 분 없습니 까?"

사회자도 괴이쩍은 가면을 쓰고서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관중석에 앉은 이들이 무어라 속 삭이면 옆에 서 있던 이들이 푯말 을들었다.

"5, 4, 3, 2, 1! 네, 그럼 5천5백으 로 확정하겠습니다!"

땅땅땅.

나무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 게 울려 퍼졌다.

단상 위에 올려져 있던 어린 소년 이 목줄을 찬 채로 어디론가 질질 끌려갔다.

저 소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 르겠으나, 적어도 희망찬 미래가 기 다리고 있진 않으리라.

찝찝한 기분과 함께 묵묵히 시간 이 되길 기다렸다. 단상 위에는 다양한 이들이 올라섰다 내려갔다.

젊은 남녀, 어린아이들, 독특한 외 모를 가진 이들 그리고 이따금 이 종족들까지.

그리고 인간을 사고파는 모습에 속이 역해질 무렵, 드디어 사회자가 마지막을 고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많은 분 들이 저희에게 따로 팔 순 없냐며 여러 번 문의를 주셨는데요. 어느 물건이든 모든 분들께 동등하게 구 매의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저희 영업 방침상 특별히 공개 경매에 부치기로 하였습니다!"

얼핏 들으면 공정 거래를 홍보하 는 상인인 줄 알 것이다. 인신매매 를 하는 주제에 영업 방침을 운운 하다니.

사회자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 이, 단상 위에 무언가 들어섰다.

덜컹.

짙은 자주색 천으로 감싸인 네모 난 철제 우리 밑에 바퀴가 달려 돌 돌 굴러들어왔다.

하얀 피부의 발등이 스치듯이 보 였다.

"드디어 공개합니다. 오늘의 기대

상품! 무려 어제! 엘프 숲에서 공 수해 온 신상품!"

촤악!

천이 거둬지면서 그 안에 있던 이 가 모습을 드러냈다.

뾰족한 귀에 잔뜩 울어 퉁퉁 부은 눈가. 그러나 숨길 수 없는 아름다 움이 넘쳐흘렀다.

자결을 막기 위해 천을 칭칭 감아 재갈을 물려뒀다. 벌어진 입 사이로 더 이상 비명도 새어 나오지 않았 다.

처참한 몰골의 엘프 소년이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정신적으로 개조되지 않은 엘프 입니다! 가격은 5만부터 시작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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