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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93화 (204/361)

193화

챕터: 구름 아래 숲

"촌장님! 촌장님!"

샤노테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어 디론가 뛰어갔다. 나도 그를 따라 촌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샤노테. 릴리는? 그 애는 찾았느 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우릴 반 겼다.

엘프의 노화가 인간보다 훨씬 느 린 것을 생각해보면, 이 노인의 나 이는 까마득히 많을 것이다.

"못 찾았어요. 보이질 않아요."

"그럴 수가……. 또다시……

촌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촌장님. 제가…… 제가 나가서, 릴리를 찾아올게요."

"안 돼!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 야."

"그럼 그 어린애가 그렇게, 인간들

사이에서 노예로 팔려나가는 걸 그 냥 두고 보란 말입니까!"

엘프, 어린아이, 노예. 상황이 대충 뻔했다.

'인신매매……. 신분제 사회에서 노예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라고 봐 야겠지.'

개중엔 이렇게 강제로 노예가 되 는 경우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렇게 나갔다가 돌아온 이들이 있더냐!"

촌장이 크게 호통을 쳤다.

"너처럼 머리가 뜨거워 앞뒤 분간

없이 밖으로 나간 이들이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돌아온 이 는 극소수에 불과했지."

그는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는 눈 빛을 했다. 그의 나이만큼 상실을 거듭했을 것이다.

"돌아온 이들도 멀쩡하지 않았어! 인간 사회에 들어가는 순간 수많은 엘프들이 그들의 유혹에 빠져 타락 하고, 숲의 어머니를 등지게 된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전 다릅니다! 제 믿음은 혼들리지 않는다고요!"

"다들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다르

다고. 난 허락할 수 없구나. 릴리의 일은 안타깝지만…… 그 아이 때문 에 다른 엘프를 잃을 순 없어!"

촌장의 말에 샤노테는 입술을 짓 씹었다.

"이익!"

그러더니 제 분에 못 이겨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는 것이다.

"샤노테!"

내가 그를 따라나서려 했지만, 촌 장이 날 막았다.

"잠시 혼자 있게 두거라……. 어리 석은 아이는 아니니."

그 말에 나도 멈춰 섰다.

"너도 고생이 많았구나. 재스퍼."

"아닙니다. 찾지 못했는걸요."

"가끔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지. 명심하거라."

그의 대답에 알겠다며 뒤돌아서려 다가 멈춰 섰다.

"촌장님."

"왜 그러느냐?"

나는 그의 손목을 가리키며 물었 다.

"그 시계."

모든 것이 자연 친화적인데 굉장 히 이질적인 물건이었다.

내 앞을 가로막을 때 슬쩍 보였다.

"그건…… 인간들의 물건 아닙니 까?"

나도 모르게 촌장을 빤히 들여다 봤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이 엘프 마을 촌장의 손목에 걸린 인간의 공예품이 라.

이건 좀 뒤가 구린 냄새가 났다.

"……넌 항상 인간 사회에 관심이 많았지."

당신이 아는 재스퍼는 그랬던 모

양이다.

"용케 알아봤구나. 다른 이들은 이 게 뭔지 몰라. 봐도 인간의 것인 줄 모르던데."

그래서 이렇게 대놓고 손목에 매 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야 내 겉모습은 엘프일지 몰라 도 속내는 인간이니, 시계를 알아보 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재스퍼. 그래. 네 의견을 듣고 싶 구나."

촌장이 비틀비틀 걸어 의자에 앉 았다. 목재로 만들어진 투박한 의자 였다.

"지금까지 우린 인간과 교류하는 걸 일절 거부하고 이 안에 틀어박 혀 살았지. 숲의 어머니께서 내리는 가호에 기대어 말이다."

난 모르는 이야기지만, 알고 있었 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숲의 어머니께서 예전 같지 않은 건 너도 알고 있겠지. 그러니 감히 인간들이 이 숲에 들 어와 우리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 아니겠느냐."

그랬단 말인가.

"숲의 어머니께서 더 이상 우릴 온전히 보호할 수 없게 되면. 그때

우린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인간들이 우릴 가만두지 않을 것 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으신 겁니 까?"

"그래. 정확하구나."

촌장의 목소리엔 수심이 가득했다.

'난 숲의 어머니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르지만, 촌장의 말이 사실이면 확실히 걱정할 만한 일이야.'

지금도 어린애들을 납치해가는 판 국인데 마지막 방어막까지 사라진 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다.

"난 그 전에 어떻게든 그들과 교

류하며, 그들의 기술력을 받아들여 야 한다고 생각하네."

굉장히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인간들에게 쫓기는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말 거 야."

"그건 너무 극단적인 얘기 아닙니 까?"

"모르는 소리."

약하게 반박해봤지만 촌장은 단호 했다.

"아직 네가 인간들의 기술력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몇백 년 전, 우리보다 약하기 만 했던 이들이 아니야!"

촌장은 반쯤 공포에 질린 것도 같 았다.

"인간들은 변했어. 우리도 그 시대 의 흐름에 순응해야 할 때일세."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지 금이 톨룩의 어느 시대인지는 몰라 도, 최소한 이들보단 인간들이 더 문명화되어 있을 것이다.

'오로굴드의 탑만 봐도…… 거긴 거의 지구와 비슷한 수준의 현대사 회처럼 보였으니까.'

최소한 톨룩의 인류가 그런 현대

사회로 발전해나가는 방향성이 명 확한 이상, 이 친자연주의인 엘프들 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 었다.

똑똑.

"촌장님.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외쳤다.

"들어오게."

촌장이 대답하자, 엘프 둘이 안으 로 들어왔다.

"오늘 정찰한 내용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앞서 온 엘프는 밝은 상아색 머리

카락에 유쾌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선 자는……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재스퍼. 이만 나가보거라."

촌장의 말에 무어라 대답하지도 못하고 그를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재스퍼?"

"예?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 오늘 들은 내용은…… 너도 잘 생각해 보거라."

그가 낮게 가라앉은 눈빛을 했다. 나는 정신없는 상태로 촌장의 집을빠져나왔다.

문을 닫고 나서 그대로 멈춰 섰다.

'그가 왜 여기에 있지?'

스테이지형 게이트에 입장한 것부 터 당황스러웠는데. 이건 전혀 예상 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하필이면..!'

엷은 레몬색 머리카락에 선명한 녹색 눈동자. 큰 키에 엘프답지 않 게 다부진 체격.

익숙하다면 익숙한 그 사내.

에녹 클라우드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도 조금 놀란 얼 굴을 했다. 확실하다. 내가 아는 그 에녹이 었다.

그리고 그 역시 알았겠지. 스테이 지형 게이트라곤 하나 겉모습은 크 게 바뀌지 않으니까.

지금 나도 원래 내 모습에서 엘프 귀를 달았을 뿐이니, 에녹도 단번에 날 알아봤을 것이다.

* * *

나는 그가 촌장의 집에서 나올 때 까지 기다렸다.

"..내일 정찰은 그럼..

에녹과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며 나오던 여성 엘프는 내 등장에 잠 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와 에녹을 번갈아 보더 니 풋, 하고 웃는다.

" 뭐야

그러더니 둘이 얘기 잘 나누라며 가버리는 것이다.

불쾌한 오해를 받은 것 같지만 거 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잠깐 얘기 좀 할까."

"좋은 생각이다."

그도 날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고 개를 끄덕였다.

인적이 드문 곳,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간 다음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용케 살아있었

네."

내가 먼저 그를 비꼬았다.

마지막으로 에녹을 봤을 때, 나는 그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 다.

'건물이 무너지고 그 난리가 났으 니까.'

미개봉 게이트였던 4차 전쟁 게이 트들 중 하나. 우린 그곳에서 만났 었지.

류라임의 작품으로 폭발이 난무하 고 난장판이 됐던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지옥 문턱까지 밟고 왔 지."

에녹은 태연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곳에서 틀림없이 죽을 줄 알았 는데. 그의 마지막인 줄 알고 시원 섭섭한 감정까지 느꼈던 것이 왠지 허탈해졌다.

'아니. 시원섭섭이라니. 말도 안 되 지. 그냥 이 자식이 살아 돌아와서 아쉬운 거야.'

괜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 다. 나는 애써 그것들을 무시했다.

"무슨 생각이야?"

"뭘 말하는 거지?"

내가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그가 태연하게 응수했다.

"이번 게이트. 스테이지형 게이트 잖아."

"우리도 그건 예상 밖이었다만."

그야 그랬겠지. 테오도르에게 들었 던 바에 의하면, 필드형 게이트를 만들려고 하다 보면 드문 확률로 스테이지형 게이트가 된다고 했으 니까.

"아예 모르진 않았을 거 아냐."

"그렇지."

테오도르가 '오로굴드의 탑' 게이 트 때 내게 미리 언질을 줬던 것처 럼.

이들도 분명 이번 게이트가 스테 이지형 게이트라는 걸 알았을 거다.

"그런데 왜 여길 들어온 거야? 어 차피 지구 쪽에서 이 게이트를 클 리어하러 들어오리란 걸 알았을 텐 데."

"난 그저 황제 폐하의 말씀을 따 랐을 뿐이다."

에녹이 모처럼 황제 직속 기사다 운 말을 했다.

"내 의지와 무관하지. 그분의 뜻이 니, 뭔가 의미가 있겠지만. 난 그분 의 뜻을 잘 헤아리는 편은 아니다."

그것 참. 지독한 황제 신봉자스러 운 말이었다.

'전부터 에녹과 황제의 관계는 좀 이상한 구석이 있긴 했지.'

인간을 적대시하는 엘프인 그가 황제의 직속 기사라는 점부터가 아 주 기이한 일이었다.

그동안은 적국의 일이니 신경 쓰 지 않았지만.

이번 스테이지는 엘프와 인간 사 이의 일을 다룬 것 같으니 그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었 다.

'황제의 뜻은 대충 짐작해보자 면…… 좌천의 의미로 에녹을 여기 에 보낸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들 입장에서도 이런 거대한 땅을 스테이지형으로 방치하는 게 손해 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

뭐가 됐든 그럴듯한 이유다. 전에 없이 거대한 규모로 준비했더니 스 테이지형이면, 톨룩 입장에서도 어 이가 없긴 하겠지.

"꽤 신기하군."

" 뭐가?"

"네가 동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에녹이 손을 올려 내 귓가로 뻗었 다.

탁!

"내 몸에 손대지 마."

적군에게 접근을 허용할 정도로 무르진 않았다. 내 싸늘한 반응에 에녹도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그럼 우리의 목적은 동일하 겠네. 이 스테이지형 게이트를 빠져 나가는 것. 맞지?"

으레 필드형 게이트에선 톨룩인들 이 보스몹을 담당했지만, 스테이지 형 게이트에서 톨룩인을 마주한 건처음이라 꽤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되겠군."

다행히 그들도 우리처럼 '플레이 어'의 입장인 것 같았다. 그럼 이야 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럼 '우리'의 승리를 위해 일단 협력하자고."

"그게 현명해 보이는군."

에녹과 내가 '우리'로 묶일 수 있 을 줄은 몰랐지만.

그와 협력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 이란 걸 알면서도 입 안이 쓰다.

"당신은 원래 엘프잖아. 지금 배경

이 되는 이 사건에 대해서 뭔가 아 는 바 없어?"

"엘프들은 동족이라도 같은 숲의 어머니 아래에 있는 게 아니면 그 다지 동료의식이 없다. 인간과 다른 점이지.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 지……

그가 뒷말을 흐렸다.

"여긴 내가 태어난 곳이군."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예전에 그가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황제 폐하의 신하, 구름 아

래 숲의 열두 번째 아들. 에녹 클 라우드다.

맨 처음 전쟁 게이트에서 마주했 을 때. 그가 자신을 소개하던 말에 분명 들어가 있었다.

'구름 아래 숲! 이번 스테이지의 배경이잖아!'

그렇다면 분명 그가 알고 있는 내 용들이 있을 거다.

"이번 스테이지의 목표가 뭔지 예 상이 가?"

" 대충은."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다. 적어도 이전 스테이지들처럼 맨땅에 헤딩 은 아니겠군.

"잘됐네. 무슨 내용……

" 쉿."

그가 작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 를 취했다.

"왜 그래?"

"주변에 인기척이 있어."

"나도 알아. 거리도 꽤 있고. 숲에 사람이 있는 게 뭐가…… 아!"

거기까지 내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여긴 일반 숲이 아니다. 엘프의 숲이다!

그 안을 어슬렁거리는 인간들이라 니. 그건 무척 수상한 일이었다.

"따라간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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