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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91화 (202/361)

191 화

챕터: 충돌하는 욕망들

드르륵, 캐리어 바퀴가 돌아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환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오신 헌터분들이죠?"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악수를 하며 인사했다.

"국제 연합, 헌터관리부 소속 리처 드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영어 억양이 뒤섞인 한국어였다.

잘은 몰라도 동양적인 생김새가 뒤섞인 것을 보아 혼혈이 아닐까 싶었다.

"한서하입니다."

"파견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 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죠.

아무리 우리나라가 방어를 잘해도, 외국이 죄다 게이트에 잠식되면 의 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 준비해둔 호텔로 안내해드 리겠습니다."

리처드의 뒤를 따라 이동하기 시 작했다. 가는 길마다 이국적인 분위 기가 물씬 풍겼다.

"다른 헌터들은 도착해 있나요?"

"예. 대부분 도착해 계십니다."

"조만간 대책 회의가 열리겠군요."

얼마나 엉망일지. 생각만 해도 아

찔 하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 처드는 웃으며 그럴 거라고 답했다.

"다양한 국가에서 오신 것을 감안 해, 회의실 내부에는 '바벨의 귀마 개' 아이템을 제공해드릴 예정입니 다."

〈바벨의 귀마개〉라면 꽤 괜찮은 번역 아이템이다.

'첫 파견 업무라 그런가.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썼네.'

그래 봐야 이 파견이 엉망이 되리 란 건 바뀌지 않지만 말이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호텔에 체크인하고 방 안으로 들 어서자 리처드가 상투적인 인사를 건넸다.

'1인 1실. 극진한 대접이군.'

뭐, 헌터들의 몸값은 천문학적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대접이기도 했다.

'그럼 회의를 기다려볼까.'

나는 부대원들에게도 편하게 쉬라 고 전해두고 방 안에서 짐을 풀었 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모처럼 휴가를 왔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바벨의 귀마개가 시끄럽게 웅웅거 렸다.

"당연히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준 의 레인저를 배출한 저희가 레인저 들의 총지휘권을 갖는 게……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저희도 최고 수준의……

음. 역시.

엉망진창이군.

"엄청 시끄럽네요."

정로운도 질린 기색으로 중얼거렸 다.

"남의 말을 들어보려 하지 않고, 다들 자기 말만 하기 바쁘군."

신도아가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줬 다. 그래. 그게 문제다.

'나라별로 게이트 클리어 방식도, 헌터 운용도 조금씩 달라.'

같은 아시아라 해도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서 선호하는 전략법이 모두 다를 정도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미리 정찰

팀을 파견하는 등 최대한 안정적인 클리어를 추구하는 반면, 중국은 그 것보다 훨씬 공격적인 클리어를 선 호한다.

그런데 각국의 헌터들이 섞여 있 으니, 어느 방식을 사용할지 의견이 갈리는 게 당연하다.

"서하 님! 저희가 다 쓸어버릴까 요? 자기들끼리 떠드는 게, 서하 님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짜증나네 요!"

"진정해요. 류라임 씨."

내가 그녀를 말렸다.

"어차피 여기서 목소리를 내봤자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왜요?"

"주변을 둘러보세요. 익숙한 얼굴 들이 꽤 많지 않습니까?"

내 말에 다들 주변을 살폈다. TV 뉴스에서 종종 봤던, 세계 각국의 헌터들이 주변에 즐비해 있었다.

"이번이 첫 공식 파견 요청이라, 다른 나라들도 제법 신경 써서 사 람을 보낸 거죠."

"와, 정말이네요! 저기 저 사람, 살아있는 화타라고 불리는 중국의 힐러 아니에요?"

정로운이 호들갑을 떨었다. 잘은 몰라도 다른 헌터들도 비슷한 수준 의 최상위권일 거다.

"이렇게 되면 몇 가지 문제가 생 기죠. 이런 최상위급 헌터들은 기본 적으로…… 협력을 못 합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홍염과 청 사를 생각해보면 될 거다.

그 둘은 우리나라의 양대 산맥으 로 꼽히는 길드인 만큼, 자기들 내 부적으로 훌륭한 인재풀이 형성되 어 있다.

'외부인과 협력할 일이 거의 없단 얘기지.'

이운우와 전청운 같은 이들이 같 은 전쟁터에서, 서로 등을 맞대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국제 연합에서 이 정도도 예 상 못 하진 않았겠지.'

아니나 다를까, 국제 연합 소속으 로 보이는 헌터들이 검푸른색 재킷 을 단체로 갖춰 입고 등장했다.

"아아. 여러분. 주목해주십쇼."

제일 선두에 서 있던 여자 헌터가 단상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는다.

"거기 싸우고 계신 분들. 벌써부터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 이상 소

란을 피우면 회의장에서 퇴장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아직까지 설전을 벌이는 이들에게 그녀가 경 고의 말을 던졌다.

드디어 좀 조용해졌다.

"자. 각국에서 오신 헌터 여러분, 우선 저희의 파견 요청에 응해주셔 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지겨운 감사 인사가 울렸 다.

"저희는 여러분들의 능력을 어떻 게 하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쓸 수 있을지 오랜 고민을 했습니

다."

그래. 국제 연합의 첫 동맹.

그때도 이 획기적인 시스템이 도 입 됐었다.

"협력! 동맹! 우정! 그런 건 저희 도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께 어울 리는 건 오로지 경쟁! 치열한 싸 움! 그런 것들이니까요."

그녀의 말에 몇몇 헌터들이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앞으로 3일 뒤에 열리는 게이트 는 매우 거대한 규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는 것 이 급선무죠."

그녀는 좌중을 한번 훑어보고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러므로 도입한 제도입니다. 일 명, '치킨런 레이스'!"

그래. 이걸 기다렸다.

그 명칭에 다들 무슨 내용인지 눈 치챘는지 씨익 웃었다.

"이건 더 이상 '연합'이 아닙니다. 각개전투죠! 각 팀은 제각기 게이 트 클리어를 시도하고 그중 기여도 1위를 달성한 헌터가 속한 팀이 우 승하게 됩니다."

"당연히 상금도 있겠죠?"

"물론입니다."

상금으로 뭘 걸까?

각국이 모였으니 그 경쟁심도 물 론 대단하겠지만, 결국 실질적인 이 득이 없으면 절실해지지 않기 마련 이다.

"다들 SSS급 성물〈비르디아〉에 대해선 들어본 바가 있으시겠죠."

당연하지. 예언을 짜는 방적기.

허공을 재료 삼아 예언의 실을 짓 는 영국의 국보. 그 존재를 모르는 이가 있을 리가.

"영국에서, 자국의 게이트가 시급

해 헌터를 보내지 못하는 대신 '비 르디아'를 1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저마다 흥분 어린 기색으로 수군거렸다.

'비르디아라니!'

나 역시 놀란 얼굴을 감출 수 없 었다. 이건 천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기회였다!

'제법 머리를 썼는데. 경쟁 심리도 자극하고, 실질적인 상품도 내놓았 으니 꽤나 치열해지겠어.'

이렇게 되면 아까와 상황이 아예 다르다. 의미 없는 탁상공론은 더이상 없다.

'단독으로. 또는 자기들끼리 협력 을 해서. 어떻게든 이 게이트를 클 리어하기 위해 노력하겠지.'

약간 세가 밀린다고 생각되는 이 들은 벌써부터 자신과 마음이 같은 헌터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흥. 이런 건 따 놓은 당상이지."

반면에 기세등등하게 자신들의 우 승을 확신하는 헌터들도 있었고 말 이다.

"우리도 1등을 목표로 합니다."

내 말에 부대원들이 눈을 부릅떴 다. 당연한 말인데, 왜 그렇게 놀랄 까.

"하지만…… 다른 헌터들이 너무 강해 보이는데. 가능할까요?"

정로운이 걱정 어린 눈빛을 했다.

"당연하죠. 비르디아는 쉽게 볼 수 있는 성물이 아닙니다."

〈성배〉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어설프게 2, 3등을 할 거 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죠."

게이트에서 주는 아이템도 있다곤

하지만, 비르디아에 비하면 아무것 도 아닌 것을.

어차피 우리나라도 아닌데 적당히 몸 사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목표는 1둥입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정로운은 잔뜩 긴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소릴 하는군."

신도아는 여유롭게 웃었다.

"서하 님의 명성을 널리 알릴 기 회네요!"

류라임은 좀 핀트가 엇나간 얘길 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3일.

저마다 게이트 클리어를 위한 준 비가 한창이었다.

* * *

스윽.

호텔 방문 아래 틈으로 종이쪽지 가 불쑥 들어왔다.

"또 왔어요!"

마침 내 방에서 전략을 짜던 중이 었다. 류라임이 먼저 달려들어 종이를 펼친다.

"어디 보자……. 으. 영어잖아요."

류라임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신도아가 건네받아 마저 읽었다.

" '■소규모 연합 모집 중. 게이트 클리어까지 협력하며, 비르디아 교 섭권은 내부 경매를 통해 가장 높 은 가격을 제시한 이에게 제공될 것. 클리어 후 아이템은 공정히 분 배할 것. 자세한 이야기를 원한다면 1206호로.j ……라고 쓰여 있군."

"머저리들이네요."

정로운이 짧게 일축했다. 뭐, 비교 적 약소한 이들끼리 저런 연합을구성할 거란 생각은 이미 했다.

다만 자존심이 좀 상할 뿐이지.

"우리들끼리 못 할 거라 생각하는 걸까요?"

"우리나라도 헌터로는 강대국인데. 왜 그럴까요?"

류라임과 정로운의 물음에 간단히 대답했다.

"숫자가 적으니까요."

"하긴. 다른 팀은 열 명 정도 되던 데. 많으면 스무 명까지도 되는 거 같았어요."

우리가 소수 정예긴 하지.

공중 부대라는 특수성에 부합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시해요. 밤마다 저런 쪽지들이 들어오거든요."

"우와. 물밑 작업이 한창이네요."

다른 이들에겐 이 정도로 넘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틀 내내 밤마다 복 도를 돌아다니는 인기척 때문에 잠 을 설쳤다.

모르긴 해도 저마다 살길을 찾느 라 바쁜 것 같았다.

"우리하곤 상관없는 일이죠."

내가 단정적인 어조로 말하자 다 들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욕심이 많아서, 비르디아 교 섭권을 남하고 나눠 쓸 생각이 없 거든요."

씨익 웃으며 말하자, 빙그레 마주 웃는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일순 긴 장감이 서렸다.

나는 그들에게 쉿, 손으로 제스처 를 취했다. 능력을 펼쳐보니, 문 너머로 서 있는 3명이 느껴졌다.

"누구시죠?"

영어로 묻자 다시 똑똑, 노크가 울 렸다.

"잠깐 얘기 좀 합시다."

문을 열까, 말까. 인기척이 익숙한 걸로 봐선 최근 이 주변을 쏘다니 며 협력 제안 쪽지를 뿌리던 사내 같았다.

'늘 쪽지를 건네기만 했는데. 직접 찾아온 이유가 뭐지?'

순진하게 생각하면 한 번 더 협력 을 제안하기 위함이고. 거칠게 생각해보면, 답이 뻔하다.

'이 경쟁에서 다른 나라의 헌터를 해치면 탈락, 이라는 조항은 없었으 니까.'

협력자가 아닌 헌터들은 미리 손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 다는 뜻이다.

'물론 외교적인 문제가 있으니 섣 불리 그러진 않겠지만……

게이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 무도 모르지 않나.

여기서부터 사이가 틀어지면 게이 트 안에서 안전을 장담할 수 없어 진다.

고민하다가, 결국 문을 열었다.

끼익.

"무슨 일이죠?"

레게 머리를 한 남자가 과장된 몸 짓으로 반가움을 표한다.

"세상에! 이제야 얼굴을 다 보는 군!"

"누구시죠?"

"오, 우린 팀 칠링이라 해. 난 칠 링의 팀장, 필립이고. 저기 1206호 에 머물고 있어."

1206호라면, 쪽지에 적혀있던 호 수였다.

'이들이 소규모 연합을 모은 주도 자들인가.'

그들을 올려다보자, 날 보며 생긋 웃는다.

"잠깐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시간 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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