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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88화 (199/361)

188화

챕터: 고장 난 라디오

휘익, 탁!

다니엘은 가볍게 벽을 타고 올라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창살을 밟고 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왔네요."

" 백작부인."

"이사벨라라고 불러요."

남들이 보면 추문이 돌았을 것이 다.

남편 없는 여인과 미혼인 기사. 게 다가 하루뿐인 자유의 날에 그녀를 찾아가다니.

남들이 둘의 사이를 오해하기 딱 좋았다.

"그럴 순 없습니다."

"뭐, 그럼 마음대로 불러요. 아무 래도 상관없으니까."

그녀에 대한 소문은 다니엘도 익

히 들어왔다.

다른 귀족가 여식들과 다르게 당 돌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그 매 력에 다들 수군거리면서도 눈을 떼 지 못하곤 했다.

그야말로 가시 달린 장미 한 송이, 절벽 위의 꽃이었다.

"어쩌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 다 생각했는데. 궁금하긴 했나 보 죠?"

이사벨라가 생긋 웃었다.

"제게 하신 말씀. 무슨 뜻이었습니 까."

다니엘은 슬쩍 그녀를 떠봤다. 만 약 그의 예상대로, 이사벨라가 정 말…… 지구의 협력자들 중 하나라 면..

"한서하."

그 이름을 이사벨라가 입에 담았 다.

"아는 이름이죠?"

그걸로 모든 것이 설명됐다. 둘은 잠시 침묵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다니엘이었 다.

"어째섭니까?"

" 뭐가요?"

"왜 그녀의 손을 잡았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돌려 말하고 있지만 용건은 그거 였다.

'왜 톨룩을 배신했는가.'

이사벨라는 괴이한 것을 묻는다는 듯 그를 올려다봤다.

"그런 게 중요한가요?"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죠."

다니엘은 만약 이 여인이 단순한 반항심이나 흥미 때문에 움직인 것이라면, 그대로 뒤돌아 아무 일도 없던 셈 치려고 했다.

그런 가벼운 이유라면 언제든지 뒤돌아설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죠. 오늘 처 음 마주하는 남자에게 들려줄 만큼 달콤한 얘기는 아니니 생략할게요."

적어도 그녀가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 건 아니란 예감이 들 었다.

다니엘은 자신의 패도 꺼내놓을 자신이 없었기에 그 정도로 만족했 다.

둘이 드디어 만났다.

톨룩의 배신자.

각기 상이한 목적을 갖고 있으나, 그 끝이 같아 손을 잡은 이들.

"앞으로 잘 부탁해요. 특히 5황자 건에 대해서."

이사벨라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우리끼리도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죠. 안 그래요? 적어도 그 작고 앙증맞은 요정에게 속지 않으려면 요."

그 말에 다니엘도 이사벨라의 손 을 맞잡았다.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조심해둬 서 나쁠 건 없지.'

어차피 한배를 탔으니. 조금 더 가 깝게 지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자, 받아요."

이사벨라가 와인잔을 건네줬다.

"기념비적인 날인데, 축하주를 마 셔야죠."

"저는 황궁으로 돌아가야 해서 음 주는……

"짠만 해요, 그럼."

순전히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동시에, 어디서도 느낀 적 없는 독특한 매력이기도 했다.

이사벨라는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 으며 잔을 기울였다.

"톨룩의 멸망을 위해서!"

채앵, 가볍게 잔이 부딪혔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신도아에게 물었다.

"아직도요?"

"그렇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 란 말인가.

나는 좀 어안이 벙벙한 기색을 감 추지 못했다.

"그럼 한번 보긴 해야겠는데요."

나는 캘린더를 살폈다. 언제쯤 시 간이 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으으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적당한 때가 없었다.

'도대체 몇 개월째 기다리고 있는 거지?'

내가 전청운과 함께 잠에 빠져들 었다 깨어나면서 얘길 들었던 것 같은데.

-이 지원자는 아직 기다리고 있 다.

-당장 게이트 오픈이 코앞이라 신 입을 받을 여력이 없어요.

그렇게 5차 게이트에 들어갔지. 당 연히 그 지원자도 어딘가로 흘러갔 으리라 생각했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그 끈기는 정말 높게 살 만했다.

'언제까지고 기다리게 할 순 없는 노릇이고.'

일정을 좀 수정하더라도 한번 만 나보긴 해야 했다.

"다음 주 중에 한번 보자고 연락 넣어줘요."

" 알겠다."

* * *

멀끔한 인상의 사내가 웃으며 인

사를 건넸다.

얇은 테의 안경이 코끝에 걸려있 고, 엷은 금발의 머리카락이 살랑거 렸다.

지원자, 박노아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인사를 건네자 웃으며 화답한다.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 다. 저희 부대는 거의 항상 출전 준비 중이라 새로운 분을 맞이하기 빠듯한 상황이라서요."

"이해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 어 다행이죠."

성격은 무난한 것 같고. 나는 속으 로 그를 평가했다.

"이력서에 보니 고유 스킬은 공란 이고……

" 아뇨."

내 말을 박노아가 툭 잘라냈다.

"사실 제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13부대에 들어가고자 함이 아닙니 다."

아니라고?

지원자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은 탓에 나는 살짝 눈썹을 치켜 올렸 다.

"이러지 않으면 제가 한서하 씨를 일대일로 마주할 일이 없을 테니까 요."

"그 말은 꼭, 저를 보려고 여기 지 원했다는 얘기 같은데요."

"맞습니다."

뭐 그런 경우가 다 있담. 나는 황 당한 얼굴을 겨우 감췄다.

"왜 저를 보려고 했습니까?"

"얘기하자면 깁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좋을까요. 음, 사실 제겐 고유 스킬이라기엔 좀 애매한……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고유 스킬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 가 종종 있었다.

고유 스킬로 인정받기 위해선 스 킬감정평가를 거쳐야 하는데, 고유 스킬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 들은 원하는 때에 스킬을 발동하지 못해서 등록에 실패하곤 한다.

'그래도 등록 자체가 중요하다 보 니까 최근에는 어떻게든 능력 입증 만 할 수 있으면 기록해주는 편인 데.'

그것마저도 실패했다는 건, 정말 간헐적으로 발현되는 고유 스킬이 란 뜻이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이런 겁 니다."

그가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 키면 말했다.

"제 머릿속엔 고장 난 라디오가 하나 있는 거죠."

그거 정말 이상한 소리였다.

멀쩡하게 생겨서 헛소리를 잘한다.

"헛소리가 아닙니다."

"아뇨. 딱히 그렇게 생각한 건 ... 예?"

내가 방금 입 밖으로 냈던가?

그런 생각에 그를 바라보자, 그는 잠깐 한숨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이 고장 난 라디오는 대부분 주 파수가 맞지 않지만, 가끔 들어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고 장 난 라디오를 통해 그 주파수의 얘길 훔쳐들을 수 있는 거죠."

그는 그 주파수에서 들리는 목소 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며, 그때그때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그 목소리가 내뱉는 말들은 그때 그때 다릅니다. 내일 날씨를 말할 때도 있고, 게이트가 언제 열릴지 알려줄 때도 있죠."

"미래의 일을 말한단 말입니까?"

"네. 그리고 언제나 잘 들어맞았고 요."

예언?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예언가의 존재가 회귀 전에도 없 던 건 아니었지.'

하지만 SSS급 성물 비르디아의 예 언을 제외한 나머지 예언들은 그 적중률의 문제로 외면받았다.

'그런데 언제나 잘 들어맞았다니.'

그건 꽤나…… 들어볼 만한 이야 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이 목소 리가, 이상한 소릴 하기 시작했습니 다."

"그게 정확히 언제부터죠?"

내 말에 박노아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연화 도 게이트가 열린 후부터 그런 것 같습니다."

연화도 게이트!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회귀한 시점이야. 뭔가 연관

이 있을까?'

내가 어떤 이상한 소릴 들었냐고 캐묻자 그가 순순히 대답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 전에는 공평하게, 모든 것을 논하는 느낌이 었다면 연화도 게이트 이후로 많이 치우쳐진 얘길 합니다."

그가 똑바로 날 바라봤다.

"당신에 대한 얘기 말입니다."

나를?

"제가 말했죠. 이건, 계시 같은 게 아닙니다. 고장 난 라디오가 어쩌다 한 번씩 들어맞아서 얘길 훔쳐듣는

거라고요."

"그래서요?"

"그래서 그걸 들을 때면 한 번 씩…… 위험한 얘기들도 자주 들립 니다. 제가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얘기들이요."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자 들 특유의 말라버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고충보다는 그 가 들은 내용이 더 궁금했다.

"그 목소리들이 누구인 것 같습니 까?"

"저도 모릅니다. 저는 그냥…… 몰 래 훔쳐 들을 뿐이니까요."

"짐작 가는 바도 없나요?"

"네. 전혀요. 인간이 아니라고 추 측하고 있긴 합니다."

나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기어 코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들이…… 저에 대해 무슨 얘길 하던가요."

그는 안경을 스윽 치켜올렸다.

"당신을 이렇게 부르더군요. '재입 장한 플레이어'라고."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오랜만

에 알림을 들었다.

[알림: 잠■이 해제■니 ■.]

[칭호 '재■장한 플■■어'가 활성

화됩니다.]

처음 회귀했을 때 내가 가장 의문 을 느꼈던 칭호였다.

다른 칭호는 익숙해도 이것만큼은 뭔지 알 수 없었는데.

[칭호 '재입장한 플레이어'가 활성 화됩니다.]

드디어 그 잠금이 풀렸다. 박노아 의 얘길 들어서!

내가 멍한 표정을 짓자 박노아가 날 불렀다.

"무슨 일……. 아."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한 눈빛을 한다. 다시 그 '고장 난 라디오'가 주파수를 맞춘 것일까?

"기뻐하네요."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이 자신들의 존재를 눈치챈 걸, 기뻐하고 있어요."

대체 그들이 누구길래.

나는 절로 솟아나는 의문을 감추 질 못했다.

"대체 그들이 누구죠?"

"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그들이 뭘 하는 존재인지 아 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하늘의 별처럼 우릴 내려다보기에 임의로 그들을, '성좌'라고 부를 뿐입니다."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건물 천장밖에 보이질 않았지만, 저 너머에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 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우릴…… 내려다본다고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을 좀 더 주 의 깊게 살피는 편이죠."

박노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 했으나 나는 그것이 못내 신경 쓰 였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겁니다. 그 러기 위해,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헌 터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 니다."

그가 굳은살이 박인 자신의 손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군.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지.'

헌터에게 실력은 곧 경력이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게이트를 누비는 것이 곧 그 사람을 증명하니까.

'5차 게이트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보통은 다 른 길드에 들어가 경력을 조금이라 도 더 쌓는 게 이득이니까.'

그게 신인 헌터들의 기본적인 자 세다.

그가 우리를 이렇게까지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헌터가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 니었으니까.'

그는 헌터 지망생이 되어, 나를 보 고자 했던 거다.

'아카데미 조기 졸업 시스템이 아 니었으면 이것보다 훨씬 오래 걸렸 을 텐데.'

그런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그럼 절 찾아온 이유가 뭐죠?"

내 물음에, 박노아가 입꼬리를 말 아 올렸다.

"드디어 이 일방적인 의사소통이 끝이 나는군요. 나는 당신을 통해, 그들에게 말을 걸러 온 겁니다."

고장 난 라디오를 머리에 품은 사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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