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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87화 (198/361)

187화

"원래부터 별난 녀석이었지. 스스 로도 황위를 잇기보단 연구자가 되 고 싶다고 하지 않았더냐."

빈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이 상한 녀석이었다. 4황자는.

"그렇다 해도 모든 걸 버리고 지 구로 가버릴 줄이야……

테오도르가 지구에 미쳐서 연구에 미쳐 살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고, 카를로스는 그렇게 회상했다.

황족이라 하면 무릇 문무 중 한 가지 분야를 잡아 제 두각을 나타 내는 게 의무라지만, 테오도르는 유 독 연구 분야에 특출했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이만 받는다는 그 오로굴드의 탑에 수석 연구원으로 들어갔으니. 더 말할 것 도 없었다.

'역시 그것 때문인가.'

카를로스는 딱 한 번, 오로굴드의 탑에서 난리가 났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죽은 차석 연구원이 테오도 르랑 막역한 사이였다지.'

카를로스 입장에선 너무도 하찮아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배신자의 이름을 곱씹 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카를로스는 적포도주를 한 모금 머금으며 테오도르에 대한 생각을 떨쳐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5황자 그 녀석이 보여준 모습 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고 싶구나."

그동안 보여준 머저리 같은 모습

이 진짜였다면 잠깐이나마 보여준 총기는 우연이었을 것이고.

만약 반대라면 지금까지 모두를 속인 영특한 녀석이 될 것이다.

"제 둔한 머리로는 가늠하기 어렵 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빈센트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공개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어떻 습니까? 때론 집단 지성이 필요한 법이죠."

"공개적으로 말이냐."

"네. 5황자의 진가를 평가해 볼 방 법이 뭐가 있을지, 즉석에서 의견을

묻는 겁니다. 가장 뛰어난 방안을 낸 이에게 상을 내려주시지요."

카를로스는 빈센트를 바라보며 살 짝 미소 지었다.

"좋은 생각이구나."

그러면서 뒷말을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다.

"무릇 군주는 가장 무예가 뛰어나 거나, 가장 지혜로운 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을 다스리는 자를 이르는 말이지."

그 안에 내포된 칭찬에 빈센트도 빙그레 웃었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시종을 불러 작게 귓속말을 했다.

곧바로 연회장 안을 가득 채우던 연주가 멈췄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자, 빈센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내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고 맙다는 말을 전하겠소."

젊은 유망주의 등장에 모두가 기 쁜 마음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 소리가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빈센트는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불편하 기 그지없군. 내 소중한 동생, 5황

자가 전쟁에서 패해 그 잘못으로 궁에 갇혀있기 때문이야."

5황자를 입에 담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가 그동안 저 지른 패악의 결과물이었다.

그 모습에 빈센트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나는 5황자가 찬란한 가능성을 그 안에 숨겨두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네. 아직 제대로 된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빈센트는 싸늘한 대중들의 반응을 보며, 5황자가 정말 멍청이든 천재 든 간에 이미 승기는 자신의 편에기울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대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군. 내 동생의 재능을 빛내기 위해선 어떤 방법을 쓰는 게 좋겠는가?"

빈센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저마다 힐끗거리며 눈치를 보기 시 작했다.

빈센트가 비꼬기 위해서 한 말인 지 진심인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가 앞 으로 나섰다.

"3황자 저하. 한 말씀 올려도 되겠 습니까."

북부를 다스리는 프로스트 공작이 었다. 빈센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가 말을 이었다.

"최근 북부에 오염이 극심해지면 서 마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 다. 주요 전력이 이계로 차출되면서 기본적인 방비에 어려움이 생겼습 니다. 그러니 5황자 저하를 북부로 모시면 실력도 발휘할 수 있고, 병 사들의 사기도 높일 수 있을 것입 니다."

5황자를 핑계로 삼았지만 사실은 북부가 힘드니 지원 병력을 보내달 라는 것일 거다.

'정식으로 건의하면 황제 폐하께서 면박을 주니 넙죽 기회를 받아먹었 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빈센트는 이 렇게 머리 굴리는 족속들이 싫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들은 분명 어딘가에 쓸모가 있기 마련이니까.

"3황자 저하. 저도 한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3황자 저하. 저도……

이것이 비공식적인 건의를 올리기

딱 좋은 타이밍이란 걸 눈치챘는지 하나둘 앞으로 나섰다.

"3황자 저하."

그때, 빈센트의 뒤에서도 목소리가 들렸다.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장미꽃잎처럼 탐스러운 붉은 머리 카락의 기사. 실력만으로 황제의 호 위 기사가 된 이.

"다니엘 경."

모두가 탐내는 충직한 기사, 다니 엘이 었다.

"얼마든지. 말해보게."

빈센트는 내심 군침을 삼켰다.

이 명예로운 기사를 자신의 편으 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 을까.

"5황자 저하께서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신 데 는 계기가 있으실 겁니다."

당돌한 발언이었다.

'5황자 그 머저리를 다시 본 데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이였다면 기분 나빴을 법한 발언인데도, 충직한 기사로 유명한다니엘이 하니 충언으로 들렸다.

"저는 어리석어 그 계기가 무엇인 지 알지 못하나, 그와 비슷한 환경 이 주어진다면 분명 그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비슷한 환경.

그러니까 한국에 출전시켜서 성과 를 거두면 진짜일 것이고, 또 참패 하면 잘못 본 것이리라는. 간단한 정리 였다.

"좋은 의견이구나."

빈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카를로스 쪽을 바라봤자.

그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순한 의견이지만 다들 섣불리 황족 최전방에 보내라고 말할 수 없어 망설이던 것이었다.

카를로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니엘."

"예, 폐하."

그 부름에 다니엘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답했다.

"원하는 것이 있느냐."

그 말에 다들 소리 없이 숨을 들 이 켰다.

"저는 폐하의 곁에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대답 역시 훌륭했다.

제 평생을 카를로스에게 바칠 것 을 맹세한 명예로운 기사. 다니엘.

그는 평민 출신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빛났다. 그의 가문을 이용해 권력 이해관계를 만들어낼 수 없으 니까.

짊어진 것이 없기에 기꺼이 그 한 몸을 제 주인에게 내던질 수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다니엘을 원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그 충직 한 기사를.

"이런 기특한 이를 오늘 고생시킬 순 없지. 딱 하룻밤, 오늘 네게 자 유를 선사하노라."

"허나, 폐하. 오늘 폐하의 호위

"로드릭 경이 해줄 것이니 걱정 말거라."

졸지에 야간 당직을 서게 된 로드 릭이 움찔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않 았다.

"오늘 하루는 내가 아니라 경을 위해 쓰도록."

온전히 다니엘을 소유했기에, 카를 로스는 마음껏 여유를 부릴 수 있 었다.

다니엘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 였다.

"다니엘 경이 오늘 누구와 함께할 까요?"

"소문 속 그녀?"

"아니면, 재미없게 훈련장으로 가 려나?"

누군가가 내뱉은 말에 까르르 웃 음이 터졌다.

"다니엘 경이라면 그럴지도 모르 겠어요."

"정말 황제 폐하 말곤 아무것도 모르는 사내라니까요."

저마다 오늘 생겨난 화젯거리를 씹고 뜯고 맛보느라 바빴다. 사교계 에서 다니엘은 그 신비주의만큼 관 심의 대상이었다.

정작 다니엘은 벽 쪽에 서서 와인 만 홀짝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다니엘 경. 저와 춤을 한 곡 추시 겠어요?"

장미꽃잎처럼 아름다운 다니엘의 머리카락과 달리, 타오르는 불꽃처 럼 강렬한 빛깔을 품은 여인이었다.

이사벨라 멜몬드.

사교계의 꽃, 마찬가지로 화제의 중심인 그녀가 다니엘에게 다가가 자 쑥덕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세상에. 멜몬드 백작 부인이에 요."

"오늘도 그녀는 정말 아름답군요. 저 과감한 붉은 드레스를 보세요!

어느 의상실에서 산 걸까요?"

"멜몬드 백작님께서 고인이 되신 지 오래니 슬슬 눈치 보지도 않는 군."

다니엘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귀족이라 생각하지 만 다른 이들은 평민이라 생각하곤 했으니.

그 간극에 진저리치면서 다른 귀 족들을 피한 탓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춤에 서투릅니 다, 부인. 웃음거리가 되실지도 모 릅니다."

"상관없어요. 전 어차피 늘 웃음거 리니까."

가시가 섞여 있는 말이었다. 이사 벨라가 강경하게 나오자 다니엘도 마지못해 그 손을 맞잡았다.

카를로스가 그 모습을 보고 시종 에게 작게 속삭이자, 경쾌한 음악이 느릿하고 서정적인 곡으로 바뀌었 다.

그에 맞춰 서로 끌어안고 천천히 스텝을 밟던 중이었다.

"오늘 밤 자유를 얻으셨는데. 뭔가 계획이 있으신가요?"

"딱히 없습니다."

"그래요?"

그때 이사벨라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밤 작은 요정과 밀회를 즐 기시는 건 아니고요?"

무슨 뜻일까. 다니엘은 잠시 이사 벨라를 살폈다.

'무슨 의중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거 지?'

작은 요정이라. '다니엘의 그녀' 같은 시답잖은 소문을 말하는 걸 까? 아니면…….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다니엘은 기감을 날카롭게 세웠다.

'이사벨라. 백작이 죽고 홀로 멜몬 드 가를 꾸려가고 있고……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주르 륵 되새겨봤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특이사항은 사치가 심하다는 소문 이 있다는 것 정도.

"말이 없으시네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 르겠습니다."

"그래요? 생각보다 거짓말도 잘하

시는군요."

이사벨라가 눈매를 휘며 웃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아름다운 눈웃음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둘이 꼭 원래부터 한 쌍인 것처 럼 잘 어울리는군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둘 이 각자 제 짝을 찾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점점 거세지 고 있었다.

"저도, 밤마다 요정과 몰래 만남을 갖는답니다."

다니엘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여긴 보는 눈이 많군요. 오늘 밤 10시, 몰래 멜몬드 백작가로 찾아 오세요. 창문을 살짝 열어놓을게 요."

타이밍 좋게도 한 곡이 그대로 끝 이 났다.

이사벨라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 럼 태연하게 인사를 마치고는, 다른 이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신기루처럼 향수 냄새가 남았다.

"다니엘 경. 혹시 저와도 춤 한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 려고 합니다."

"네? 갑자기 무슨……

"죄송합니다."

뒤이어 오는 춤 신청을 냉담하게 거절하고, 다니엘은 무도회장 밖으 로 향했다.

'대체 뭐였지, 방금?'

다니엘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사벨라가 이렇게 다가온 적이 없 었다.

'내 뭘 보고……. 아.'

그래. 오늘 다니엘이 공개적으로 말한 일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5황자에 대한 얘기.'

지구의 협력자, 한서하와 나눈 거 래 때문에 적당한 타이밍에 제안한 그 내용이 힌트가 됐던 거다!

'이사벨라도…… 톨룩을 배신한 건 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내용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체 왜?'

그 남부러울 것 없는 귀족가의 여 식이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런 의문이 치솟았다.

'자세한 얘긴, 이따 밤이 되면 알 수 있겠지.'

밤 10시, 멜몬드 백작가.

다니엘은 그때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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