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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85화 (196/361)

185화

"내가 말실수를 했어."

이운우의 말은 여러모로 중의적이 었다.

안유라에게 하는 말이면 쌍둥이라 고 착각한 것에 대한 시인이고, 나 에게 하는 말이면 쌍둥이라는 말을 내뱉은 것에 대한 사과였다.

"너무하네, 이운우. 길드원한테 관 심 좀 가져줘."

"앞으론 주의할게."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이운우와 내가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안유라는 여전히 생긋 웃은 채였 다.

나는 안유라의 눈길을 피해 이운 우를 질책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 자 이운우도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축 내려 보였다.

'넘어갔나?'

그렇게 안심하려는 찰나, 안유라가 폭탄을 던졌다.

"대충 알아요. 둘이 나한테 숨기는 게 있다는 거."

마치 '이제 용건 끝났으면 저랑 놀 러 가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태연 한 목소리였다.

"무슨 소리야, 유라야. 우리가 널 속이다니……

"언니는 거짓말 진짜 못하는데! 주 변에서 얘기 안 해줘?"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뭐야. 설마 내가 진짜 모를 줄 알 았어? 너무하다내 눈치를 뭘로 보고!"

이운우와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갑작스레 약점을 찔린 것처럼, 안 유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 운 비수처럼 날 찔렀다.

"이상하게 생각했어. 갑자기 여행 을 다녀오라고 권하질 않나. 다녀오 니까 나에 대한 인터뷰나 잡지들이 싹 정리되어 있질 않나."

안유수의 흔적을 거둬내기 위한 시간들이 필요했거든.

"유라야, 그건……

"그땐 그냥 뭔가 이상하다〜, 정도 만 생각했거든? 근데 최근에 이상 한 걸 발견했어."

안유라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내 방 구석에서, 인터뷰 잡지를."

인터뷰 잡지라고?

그렇다면, 거기엔 분명…….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내 쌍둥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긴, 작 년 날짜의 인터뷰를 말이야."

안유수다. 그건 안유수일 것이다.

나는 힐끗 안유라의 안색을 살폈 다.

'혹시라도, 안유수를 떠올렸을까?'

그건 내 얄팍한 기대감이었다.

안유수의 존재가 안유라에게서 완 전히 잊히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유라는 지극히 태연한 표정이었고, 안유수를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 정도로 지칭할 뿐이었 다.

"그 사람이 내 쌍둥이야?"

안유라가 날 붙들고 물었다.

"안유수, 그 사람이?"

기어코 그 이름이 입에 담겼을 때.

나는 그것에 환희를 느껴야 할지 절망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잊힌 반쪽의 이름을 담는다고 하 기엔 너무도 무미건조한 어조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됐구나.'

나는 안유라의 병실 앞에서, 이운 우에게 이렇게 이른 적이 있었다.

-난, 안유라가, 안유수의 사망 소 식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할게 두려워.

그리고 그게 현실이 됐다.

"안유라 헌터. 사실 이 일은 철저 히 비밀에 부치려 했지만, 당신이 알아버린 이상 더 숨겨봐야 의미가 없겠어."

이제 와서 안유라에게 아무 일도 없었으니 그저 잊으라 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사실을 밝힐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맞아. 유라야. 사실 너한텐 쌍둥

이가 있어. 안유수라고, 네가 잡지 에서 본 그 애가 맞을 거야."

이 이름을 너무 오랜만에 꺼내본 다.

너무도 서글픈 이름이라, 가슴 한 편에 그저 묻어만 두고 있던 것을 이제야 들여다본다.

"네가 사이비에게 잡혀갔을 때, 안 유수는 그날 그곳에서…… 죽었어."

"그럴 거 같았어."

역시 눈치가 빠른 탓에 그것까지 도 대충 예상을 하고 있던 모양이 다.

"그 충격인지 너는 기억을 잃었고, 우린 네가 그대로 안유수를 잊었으 면 했거든."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이유가 어 쨌거나 우리가 멋대로 안유라에게 서 안유수를 지우려 한 점은 잘못 이었다.

"그대로 잊는 게, 너에게 더 나은 길이라 생각했어."

왜냐면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 무 큰 비극이었으니까.

"널 속였다고 느꼈다면 미안해."

내 말에 안유라가 끔뻑 눈을 감았

다 떴다.

"미안해할 거 없어. 대충 무슨 상 황인지 이해도 되고."

나는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것 같 았다.

차라리 안유라가 우릴 비난하고, 우리에게 분노를 토해냈으면 이러 지 않았을 거다.

"사실 좀 이상하긴 하네. 얼굴을 봐도 아무런 느낌도 없고, 난생처음 보는 사람인데 사실 내 쌍둥이라 니..

담담한 어조에 슬쩍 미소까지 짓 는 여유. 그 모습은 너무도 명백한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라도 말해줬으니까 됐어. 내 쌍둥이라고 얘길 들어봤 자, 그냥 그렇구나, 하는 생각뿐이 고."

안유수는 안유라의 삶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깨끗이 도려내졌다.

다름 아닌 나에 의해.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해야 했다. 아릿한 통증이 심장께에서 느껴졌다.

"뭐, 이런 얘긴 이제 그만할래. 오

랜만에 언니랑 만났는데 즐거운 얘 기만 나누고 싶은걸!"

"그래. 이제 볼일도 끝났으니까, 같이 점심이라도 먹자."

"아싸〜! 언니 내가 이 근처 수제 버거 맛집 알아!"

금방 신나서 방방 뛰는 안유라를 보며 애써 웃었다.

방문을 나가면서 힐끗 뒤를 바라 보자, 이운우도 무슨 표정인지 모를 얼굴을 하고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우리 둘 사이에 휘몰아쳤다.

"거기 웨이팅 있는 데라 얼른 가 야 해! 딸리, 빨리!"

"알겠어. 금방 갈게."

독촉하는 안유라를 보니 이제야 생각이 났다.

'연원이에게 뭐라 할 게 아니었 네.'

나도 한동안 안유라에 대한 것을 외면하고 살지 않았던가.

내게도 아픈 기억이라고 애써 변 명하면서, 안유라와 마주할 때마다 안유수가 떠올라서.

그저 피하기만 했다.

'헌터가 아니라 한서하로서. 이것 역시 내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었 는데.'

한 사람의 존재를 도려냈으면 응 당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거늘.

"언니 빨리이이이!"

한서하로서 안유라를 책임지는 법 은 간단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안유수에 대한 죄책감은 잠시 내려놓고, '안 유수가 없는 안유라'의 삶을 인정 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앞으론 종종 찾아올게."

"응? 어쩐 일이야?"

즐겁게 웃는 안유라를 보며 나도 씨익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냥.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거 같아서."

"갑자기 왜 그래? 뭐, 이제라도 알 았으니까 됐어!"

안유라가 소개해준 수제버거 집은 30분을 기다린 다음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가 호언장담했던 대로, 버거는 정말 맛있었다.

* * *

전쟁이 선포됐다.

국제 연합을 필두로, '단순 자연재 해인 줄 알았던 게이트가 다른 세 력의 고의성 다분한 침략이란 걸 최근 알아냈다'고 발표한 것이다.

엄숙한 표정으로 단어를 고르고 골라 전쟁 선언문을 읽었고, 각국에 협조를 구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과 다름없는 상 황이었지만 일반 국민들에겐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전쟁의 여파가 이런저런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말들이 오가는 사이.

그런 것은 정부 정책에 맡겨두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준비됐지?"

"준아〜."

"네! 준비 끝났어요!"

테오도르가 익숙하게 차준을 부려 먹었다.

"개인 연구는 어떻게 되고 있어?"

내 물음에 테오도르가 갑자기 머 리를 이리저리 헤집었다.

" 그게

그게 참, 어려운 일이

라……

"천하의 테오도르도 어쩔 수 없다 이거지?"

내 말에 테오도르가 발끈하는 표 정을 지었다가 이내 수그러들었다.

"화나지만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요즘 내 무능함을 실감하고 있으니 굳이 말을 더 얹지 않아도 충분하 다."

답지 않게. 슬럼프라도 온 건가?

침울하게 바닥을 기어 다니는 테 오도르를 보다가 차준에게 고개를돌렸다.

차준은 익숙한지 테오도르에게 담 요를 둘러주며,

"바닥이 차요."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쟤가 한 술 더 뜬다.

"요즘 자주 저래?"

차준에게 작게 속삭였다.

"네. 연구가 좀 잘 안 되시나 봐 요. 괜찮아요. 금방 괜찮아지세요."

좀 떨떠름하지만 차준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테오도르를 보살피는 데 아주 이골이 난 인재니까.

"준비는 끝났는데 언제 가실 거예 요?"

"지금 가려고."

내 말에 차준이 곧장 준비를 시작 했다. 나는 아무리 봐도 구시대적 유물처럼 보이는 수화기를 들었다.

"어느 쪽으로 가시게요?"

"일단은 이사벨라에게."

"알겠어요."

달칵. 수화기를 들자, 절로 눈꺼풀 이 감겨왔다.

* * *

어두운 방 안, 등잔불 하나만 켜 두고서 이사벨라는 책을 읽고 있었 다.

귀족 부인 특유의 고즈넉한 멋이 느껴졌다.

"왔군."

내가 온 것을 확인하자 책을 옆으 로 치운다.

"제가 보낸 마법사는 잘 받았나 요?"

나는 셀을 떠올렸다. 길게 내린 앞

머리 때문에 눈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던, 앳된 외향의 천재 마법사를.

"잘 받았고말고. 어디서 그런 귀한 걸 구했는지 몰라."

이사벨라는 '나보다 더 톨룩에 대 해 잘 아는 것 같단 말이야' 하며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적 어도 어떤 부분에 한해서는 그녀보 다 내가 더 잘 알 테니.

"안 그래도 지구랑 전쟁하느라 황 궁을 지키는 이도 별로 없다고 하 던데. 조금만 더 키우면 금방 혁명 을 시작해도 될 수도……

"아니요. 기다려야 해요."

내 말에 이사벨라가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본다.

"황제의 '가호'를 모르는 건 아니 겠죠."

이사벨라는 조금 놀란 눈을 했다.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반쯤은요."

절반 정도는 진실이란 소리니, 좋 은 소식은 아니었다.

"'황제는 신께서 선택한 인물이라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썼지만 인 간이 아니다. 그래서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없다'……. 그게 반쯤은 사 실이라고?"

혼한 일이다. 황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스스로 신에게 선택받은 인간 임을 자처하는 것은.

'지구의 역사에서도 유구한 전통이 지.'

그래야 통치를 정당화하고 아둔한 백성들의 경외를 받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곳, 마법과 신비의 땅 톨룩에서만큼은…… 반쯤 진실이거 드 ,톨룩의 황제는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없다.

"신의 가호를 받아서 그런 건 아 니지만요."

"그럼?"

"정확히 말하면, '땅의 가호'라고 할 수 있겠죠."

봉건제 사회에서 흔히들 '영토'는 곧 영주의 힘이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니 정확히 말 하자면 '말 그대로', 영토의 귀속은 한 인간의 영혼을 수호하는 데 일 조한다.

'그 규모가 단순히 논밭이나 한 지 역을 벗어나 이 대륙의 전체가 된

다면?'

톨룩. 단일 대륙으로, 이제는 이름 조차 사라져 '제국'으로 통일된 곳.

온 세상을 제 소유로 둔 황제는 과연…… 얼마나 거대한 '땅의 가 호'를 받게 되는 것일까.

내 간단한 설명을 듣자 이사벨라 는 고개를 끄덕였다.

"땅의 가호……. 과연, 그래서

황제를 죽이려 해도 죽지 않는다 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정도로 거대한 땅의

가호를 받는 인간은 사실상 무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 공격력은 몰라도 방어력만큼은 최강이지.'

이사벨라는 심각한 낯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다시 내게 물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혁명을 일으킬 수 있지? 황제가 죽지 않는데."

자고로 혁명이라 함은 통치자의 목을 자르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마 련이다.

반대로 말하면, 신분제의 상징인 황제가 살아있는 한 온전한 혁명이 이뤄질 수 없단 뜻이기도 했다.

'갑자기 평등 사회가 됐다고 해서 황제한테 대뜸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

그 불편함이 곧 신분제의 잔재이 니 좋지 못한 신호다.

"간단해요.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 다리면 됩니다. 황제는 저절로 약해 질 테니까요."

"대체 어떻게? 황제는 땅의 가호 를……. 아!"

그래. 이사벨라도 눈치챘겠지.

톨룩이 왜 지구를 침범하고 있겠 는가.

그들의 땅을 침범한 '오염' 때문이 다.

"오염!"

"맞아요. 오염이 땅을 황폐화시키 고 있죠."

간단한 얘기다.

"시간은 우리의 편입니다."

좀 더 오래 고개를 숙이고, 긴 시 간 인내할수록 우리의 승률이 올라 간단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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