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챕터: 책임의 형태
"헛소리하지 말고. 방금 뭐였는 데?"
내가 매섭게 몰아붙이자 표연원이 바등댔다.
제 멱살을 잡은 내 손을 부여잡고 는 뜨문뜨문 말을 잇는다.
"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요! 긴……장했더니 땀이 나, 서! 커흡, 소, 손이 미끄러…… 지…… 는 바람에!"
탁.
나는 손을 떼고 그를 내려놨다. 표 연원이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정말 실수였어?"
실수였다고 한들, 실수가 아니었다 고 한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돌이 킬 수 없었다.
그래도, 이건 확인해야 했다.
"실수였어요."
표연원의 대답에 나는 깊은 한숨 을 내뱉었다.
'그래. 첫 출전이니까. 실수할 수도 있어.'
사람 형태의 몬스터를 대상으로 얼마나 긴장했겠는가.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정말 실수일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정말이에요."
내 시선을 느꼈는지 표연원이 한 번 더 항변했다.
"연원아. 방금 네 실수 때문에 앞
으로 얼마나 더 많은 헌터들이 죽 어나갈지 가늠이 가?"
" 그건......
"실수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건 아니야."
적어도 그 실수로 인해 목숨을 잃 을 사람들이 있다면 말이다.
" 죄송해요."
표연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가 냘픈 음성이었다.
"제가 너무 부족해서, 그래서.....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나 봐요나는 복잡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 다.
'첫 출전이니 누구든 실수할 수 있 어. 하지만 방금은 신입인 것과 별 개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실수 야.'
그 양가감정에 나도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히끅!"
딸꾹질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표 연원이 눈을 크게 뜬 채로 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읍!"
그런데도 딸꾹질이 멈추질 않는지 한 번 더 크게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에게 화를 내야 겠다던 생각마저 사라졌다.
"일단은…… 돌아가자."
말투에 스며드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치료도 받아야지."
"네……
그대로 우린 말없이 걸어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팀이 우릴
발견했고, 게이트 클리어에 감사하 다며 인사를 건넸다.
"목숨 걸고 싸워주셔서 늘 감사하 게 생각해요."
국가 소속 힐러가 우릴 보며 웃었 다.
"아, 네."
나는 복잡한 심경을 애써 감추며 그렇게 답했다. 표연원은 말이 없었 다.
5차 게이트에 투입됐던 헌터들 중 생존자는 모두 돌아왔다.
"현황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이운우가 서두를 열었다.
아직 윤강백이 영향력을 전부 갖 고 오진 못해서 이운우가 회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총 16개의 5차게이트 중 클리어 성공한 곳이 총 13곳. 그리고 실패 한 3곳이 바로……
뒤편으로 지도가 떠올랐다.
가장 크게 위치한 검은 화산 게이 트를 제외하고도 3군데가 더 표시되어 있었다.
"5-6, 5-7 그리고 5-16 게이트입 니다."
"투입된 헌터들은 어떻게 되지?"
"담당 길드에서 최소 30명, 최대 150명까지 투입했지만 공략에 실패 했습니다. 5-6, 5-7게이트는 모두 전멸. 5-16 게이트는 10여 명의 생존자만 겨우 돌아왔습니다."
윤강백의 질문에 이운우가 착실히 답했다.
'16개 중 3개. 그래도 나쁘지 않은 비율이야.'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 하지 않는지 침울한 기색이었다.
'그동안 검은 화산 게이트를 제외 하면 실패가 없었으니까. 그리 57 . . . ... '
무엇보다, 슬슬 국민들 눈치가 보 이기 시작할 거다.
'갑자기 16개 게이트가 동시에 터 져서 여론이 뒤숭숭하거든.'
게이트가 생겨난 이래로 처음 있 는 사태였다. 16개나 되는 게이트 가 동시에 나타난 건.
16개 게이트가 생겨난 지역 주민
들이 대피하면서 대피소가 가득 차 서 잠깐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으니,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도 불가능 한 수준이다.
"최우선 목표는 이 3개의 게이트 를 다시 탈환하는 것, 검은 화산 게이트에 재도전하는 것 그리 고…… 전쟁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 다."
" 결국.
"하지만 혼란이 극심할 겁니다!"
"아직 다른 나라들과 협상이 진행 중이지 않았나요?"
술렁술렁 여러 의견들이 튀어나왔
다. 하지만 회의에 참여해있는 정부 측 인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이운우가 그를 대신해 다시 입을 열었다.
"5차 게이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 계 각국의 의견이 한데 모였습니 다."
이렇게 빨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타국에도 게이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나, 더 이상 숨기는 게 불가능하다 고 판단한 겁니다."
세계연합기구의 주도 아래, 지구는 결국 톨룩에 대한 전쟁을 대대적으로 선포하겠지.
'회귀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지금은 다급하게 하지 않 고 어느 정도 협의를 거칠 정도의 시간은 있어서 다행이다. 체면치레 는 좀 하겠어.
"5-6 게이트는 규모가 크지 않으 니 중소 길드에 나눠주고, 대형 길 드를 검은 화산 게이트 쪽으로 움 직이는 게……
"검은 화산 게이트는 대형 길드뿐 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시도해야 성공할까 말까 합니다. 차라리 클리 어 일정을 다르게 짜는 게 안정성측면에서……
우리는 전쟁 선포가 가져올 파급 을 예측하다가 이내 게이트 클리어 쪽으로 이야기가 빠졌다.
결국 책임지는 것은 정부가 할 일 이고, 헌터의 의무는 게이트를 클리 어하는 게 전부니까.
'그리고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 지……
나는 전서호 대신 혜원 언니를 따 라온 표연원을 힐끗 바라봤다.
회의를 집중해서 듣다가 내 시선 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린다.
휙!
그리고 황급히 다시 정면을 바라 본다.
이 기묘한 대치가 며칠째 이어지 고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래. 표연 원이 실수할 것 같았으면 나도 안 전장치로 같이 총이라도 쏴야 했는 데 그러지 않았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지 않은 나 의 몫도 있었고.
'게다가 표연원이 아니었으면 이그 니스를 잡을 수도 없었을 거야. 결
국 드라이어드가 잡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
애초에 죽을 뻔한 나를 살려준 사 람이 드라이어드인 것도 있었고.
'냉정하게 따져보면, 애초에 다 죽 고 이그니스만 살아 돌아갈 것을 표연원이 기지를 발휘해 모두 다 살아 돌아온 셈이기도 해.'
이그니스를 잡는 데 아무런 공헌 도 하지 않은 내가 표연원을 탓하 는 것도 우습다.
그런데도 당시엔 많이 화가 났다.
'실망……했었지.'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는 표연원이 한 명의 어엿한 헌터로 성장한 줄 알았던 거다.
고작해야 이번에 처음 출전하는 초보임에도 불구하고.
'질책할 만한 실수인 건 맞아. 큰 실책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시에 내가 잠시나마 훙 분했던 건 역시, 오히려 표연원을 너무 믿고 있었던 탓이다.
'잘 해낼 거라고.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 믿음이 도리어 눈을 가렸어.'
이럴 때 필요한 건 질책이 아니었 을 텐데.
표연원은 그날 이후로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었다. 이따금 들리는 울음소리를 모르는 바가 아 니었다.
'이따 돌아가면 다시 얘기해봐야겠 어.'
표연원이 요 며칠 나와의 대화를 피한 탓에 제대로 오해를 풀지도 못했다.
* * *
"언니. 연원이는요?"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가던 데'?"
혜원 언니가 태연하게 커피를 타 며 답했다. 한발 늦었나.
"너희 아직도 데면데면해?"
"걔가 절 피해요."
마치 사춘기 온 자식을 질책하는 것 같은 말투라 나도 모르게 변명 을 내뱉었다.
내뱉고 나니 더 사춘기 소녀 같아 서 후회가 막심했다.
"너무 뭐라 하진 마."
홀짝, 커피를 한 모금 머금더니 말 을 잇는다.
"걔가 내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냉정하게, 현 시점에서 연 원이 정도 실력의 헌터 한 명 한 명이 귀해."
세계적인 전쟁이 선포되기 직전인 때였다. 헌터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시점.
실력 있는 헌터 한 명이 천금보다 귀하니, 혜원 언니의 말이 전략적으 로 옳았다.
"게다가 첫 출전이었잖아. 사람 형 태를 한 몬스터를 죽이는 데 망설 임이 있던 것도 이해가 가고."
그러면서도 싸늘하게 뒷말을 덧붙 인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에게 실수 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한순간의 판단이 목숨을 가르는 실전에서, 그런 실수는 치명적이다.
"어쨌든 너희 둘 다 살아 돌아왔 으니, 그 실수로 인한 피해는 더 없던 거잖아. 그렇지?"
"아직은 없는 거죠."
그 살아남은 마왕이 다른 헌터를 죽이는 순간. 그날의 일은 뼈아픈 실책으로 돌아오리라.
"아무튼 너무 다그쳐서 좋을 거 없단 얘기지. 어쨌거나 전시인 지 금, 연원이는 전쟁에 참여해야 하 고."
이제 와서 표연원을 후방으로 배 치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는 아카데미 졸업생들 가운데 가장 주가 되는 전력이었다.
"한 번의 실수로 위축되면 더 실 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워지잖아."
"언니 말이 맞아요."
그 말까지 들으니 더욱 확실해졌 다.
"제가 직접 얘기를 해볼게요."
내 말에 혜원 언니가 흐뭇하게 웃 었다.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는 듯한 미소라 절로 멋쩍어졌다.
"그럼 나는 간단한 안줏거리를 준 비해야겠다."
언니가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꺼내 며 말했다.
"고마워요. 부탁할게요."
나는 곧장 표연원의 방으로 향했
다.
똑똑.
"연원아. 안에 있어?"
잠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안에서 울리더니 끼익, 문이 작게 열렸다.
표연원은 약간 흐트러진 채로 날 내려다봤다. 눈가가 살짝 발갛게 달 아올라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목소리도 좀 잠겨있었고.
"잠깐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요?"
"너도 알잖아. 내가 무슨 얘길 할 지."
내 말에 표연원이 고개를 푹 숙였 다.
"..전, 더 이상 그 얘긴 하고 싶 지 않아요."
"언제까지 피할 순 없잖아. 나랑 평생 얘기 안 하고 살 거야?"
"그건 아니에요……
나는 결국 표연원의 방 안에 들어 가 의자에 앉았다. 표연원은 도축장 에 끌려온 소처럼 침울하게 침대에 기댔다.
"우선은 너한테 사과할게."
" 네?"
내 서두가 예상 외였는지 그가 화 들짝 놀랐다.
"네가 첫 출전이고, 실수할 수 있 다는 걸 알면서도 플랜B를 세우지 않았으니 나도 안일했지. 너만 탓할 게 아니었는데."
"아,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걸요.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제가 전 부 망쳤어요."
자책감 어린 목소리로 그가 대답 했다.
"역시 전 헌터가 될 자격이 없나 봐요. 저처럼 나약한 사람은, 누나 처럼 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누나는 그 상황에서도 잘 헤쳐나 갔는데.
-왜 저는 누나처럼 강하지 못한 걸까요.
표연원이 한국대학교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직후 내게 했던 말과 겹 치는 부분이 있었다.
"연원아. 그때도 말했잖아. 난 좀 특이한 케이스라고."
"뭐가 다른데요? 누나도 저도 게 이트에 휘말렸다가 헌터가 됐고, 수 석으로 입학했는데. 저는 왜…… 저 는 왜 이렇게 나약해요?"
난 회귀했으니까!
그 말을 버럭 내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아냈다.
"게다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실
수까지 저질렀는걸요……
표연원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절 망감이 그에게 서렸다.
"연원아. 날 봐."
내가 그 손을 강제로 내리고 고갤 들어 내 눈을 마주하게 했다. 그리 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네 실수를 책임지고 싶지?"
"그게 가능하면요."
"잘 들어. 헌터도 사람이라 실수를 해.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은 없으니 까. 그런데 실수할 때마다 이렇게 엎어져서 나약하게 질질 짤 거야?"
표연원이 어버버하며 '아니요' 하 고 답했다.
"헌터로서 실수를 했으면, 헌터답 게 만회를 해야지."
"만회요……?"
"그래. 네가 놓친 적이 누군지 똑 똑히 기억하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면 됐다.
"나한테 약속해. 언제가 될지 몰라 도 그 자식은, 네 손으로 끝장내겠 다고."
표연원이 흘린 듯이 날 바라봤다.
"그게 헌터가 책임지는 방법이니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