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파지직! 검은 마나가 거세게 튀었 지만 지금 내겐 통하지 않는다.
"이거 놔!"
권성민이 거세게 반항하지만 검은 마나가 통하지 않는 내게서 체술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탁, 퍽!
휘두르는 주먹 안으로 파고들어 아래서 턱뼈를 강하게 쳐올렸다.
쾅! 두개골이 거세게 흔들렸을 거 다.
그리고 동시에, 폭탄이 터졌다.
콰아아아아앙!
쿠우웅! 쿵!
사방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나는 바등거리는 권성민을 부여잡고 그 가 탈출하지 못하게 막았다.
"한서하아아아!"
그는 분노 어린 외침을 내뱉었지 만, 나는 묵묵히 손아귀에 강하게힘을 줬다.
파스스…….
폭발이 모두 끝났을 때 권성민은 엉망진창인 채로 바닥을 굴렀다.
재를 뒤집어쓴 나는 스윽 팔로 얼 굴을 대충 닦아냈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 어!"
"네 패배야. 권성민."
하지만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베아트리스 님! 베아트리스 님! 제게, 제게 조금만 더 힘을……!"
그가 급기야 하늘에 대고 누군가 에게 힘을 빌었다.
베아트리스. 그게 주인의 이름인 모양이지.
하지만 하늘은 잠잠했다.
"내가 조금만 더 힘이 있었으면 너희를 다 죽이는 건 문제도 아니 었을 텐데!"
그가 아직 다 자라나지 못한 뿔을 매만졌다.
아직은 머리카락 사이에 묻힐 정 도로 작지만, 저게 다 자라나면 인 간보단 마족에 가까운 힘을 갖게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내 물음에 그가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우리에게 족쇄를 건 이유 부터가 그가 직접 상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을 거다.
'처음부터 4대1로 이길 자신은 없 었던 거야.'
우리가 그 안에 갇혀 있으면, 어떻 게 해도 톨룩 전원을 죽이는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
'이 혹마법을 푸는 방법을 우린 몰 라도 권성민은 알겠지.'
이 혹마법은 시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마법이니 권성민을 죽여도 큰 의미는 없을 거다.
'이 혹마법을 풀어주기만 하면, 곧 장..
나도 모르게 노이트를 꽉 쥐었다.
후환을 남기는 건 별로 현명한 일 은 아니거든.
"잠, 잠깐만. 어차피 이걸 풀어주 면 날 죽일 거잖아. 안 그래?"
"그런데?"
"그럼 내가 풀어줄 이유도 없지. 잠깐 협상을 하자고. 내가 이 흑마
법을 풀면, 너희도 날 조용히 보내 주기로. 어때?"
썩 내키는 조건은 아니었다.
차라리, 네가 그냥 죽고 싶다고 생 각하게 될 만큼 고문하는 게 더 나 을 것 같다고 말하려는 순간.
머릿속에 낯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도와줘.
귓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웅웅 울리는 느낌. 전에도 느낀 적이 있 다.
-도와줘! 인간이, 인간이 위험해!
무슨 인간? 나도 모르게 설핏 인
상을 찌푸렸다.
이 느낌.
이건 분명…… 정령의 눈물을 구 하려고 표연원에게 부탁했을 때 경 험했던…….
-표연원이 위험해!
정령의 목소리였다.
후욱, 현실로 돌아오는 감각과 함 께 나는 외마디 말을 내뱉었다.
" 아."
갑자기 멍하게 서 있는 날 주변에 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걸 알았지만,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표연원이 위험하다고? 연원이는 지금쯤 게이트에서……
게이트. 그래, 그곳에서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나는 힐끗 권성민을 바라봤다.
"우리 대화로 풀어보자고."
구질구질하게 구는 모습에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권성민을 죽여 후환을 없애는 것 과 표연원을 구하러 가는 것.'
내게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두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총구를 내렸다.
"알겠으니까 이것부터 풀어."
"한서하!"
" 대장!"
신도아와 정로운이 거세게 반발했 다.
미안하지만, 이번 선택에 다른 이 들의 의견은 필요하지 않았다.
"저, 정말이지?"
"당장 풀지 않으면 협상은 없던 걸로 하겠어."
철컥, 노이트를 장전하자 권성민이 알겠다며 바들바들 떨었다.
검은 마나가 마법진 안에 스며들 더니 파스스, 족쇄가 부서져 가루로 변했다.
화아악!
족쇄가 사라지자마자 권성민의 밑 에서 새로운 마법진이 빛나더니 어 디론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돌아 부 대원들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이지? 방금은 놈을 죽 이는 게 맞는 선택이었을 텐데."
신도아가 먼저 따져 물었다. 그래. 그게 맞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서요."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대 체 어디 있……!"
"제 동생이 위험해요."
내 말에 정로운이 움찔했다. 몸이 약한 동생을 둔 그라면 이게 어떤 심정인지 알겠지.
"더 자세히 설명하지 못해서 죄송 하지만, 시간이 없어요. 나머지 톨 룩군 정리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먼 저 가봐야겠어요."
어차피 내가 빠지면 이들끼리 권 성민을 잡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다.
권성민이 후퇴했으니, 이들만 두고 떠나도 문제가 없겠지.
"뒷정리를 부탁할게요."
"잠깐, 한서하!"
"서하 님! 금방 마무리하고 따라갈 게요!''
신도아와 류라임의 외침이 겹쳐 울렸다.
갑작스레 임무를 떠맡게 된 이들 에겐 미안하지만, 정말로 한시가 급 했다.
'공간 간섭!'
빠르게 공간을 접어 달렸다. 표연
원이 출전하는 게이트가 어디인진 이미 알고 있었다.
'제발. 제발.'
내가 바라는 건 이제 딱 하나였다.
'제발 내가 너무 늦지 않길!'
♦ * *
허억. 허억.
표연원은 문득, 자신의 숨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린다는 것을 자각 했다.
귀가 먹먹했다. 한쪽 고막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흐음이 정도인가?"
주변은 온통 초토화 상태였다.
표연원에게 조금이나마 유리했던 환경인 숲이 송두리째 불타올라 무 용지물이 됐다.
"시시한데."
이그니스가 표연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온몸에 화상과 타박상이 가득한 그에게 잔인하게 묻는다.
"뭐 더 없어?"
퉤, 표연원은 바닥에 피를 뱉어냈 다. 입 안에 고인 핏물에 숨이 막 혔다.
"지구의 인간들도 별로 다를 건 없구나실망이야."
표연원이 한 번 더 손을 까딱, 움 직여 본다.
촤아아악!
콰득!
"재미없다니까."
솟아오른 나무줄기는 금방 이그니 스의 손 안에 잡혀서, 까만 재로 변했다.
"그래도 눈빛은 살아있네. 이래서 뭔가 신념을 가진 것들이 더 갖고 놀기 좋아."
콱!
이그니스가 표연원의 목덜미를 잡 아끌었다.
"으으으윽!"
치이 익-
이그니스의 손을 따라 살이 익는 소리가 울렸다. 그 고통에 표연원이 목 끓는 소리를 냈다.
"더 갖고 놀면 망가지겠네."
탁!
그는 무심한 손길로 표연원을 바 닥에 내버렸다.
"자. 다음."
그리고 시선은 그 뒤편으로 향한 다.
"날 재밌게 해줄 사람. 다음은 없 어?"
주춤주춤, 헌터들이 뒷걸음질 쳤 다.
저건 도무지 인간이 상대할 수 있 는 재앙이 아니었다.
헌터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았으면 모를까, 고작해야 베테랑 헌터 몇에오늘이 첫 출전인 아카데미 출신 헌터들에게 어울리는 상대는 아니 었던 것이다.
"사, 살려줘……
누군가가 애원을 내뱉었을 때, 이 그니스가 눈을 치켜떴다.
" 뭐라고?"
그 살벌한 기색에 다들 입을 다물 었다.
화르륵! 화염이 그의 분노에 반응 하여 매섭게 타올랐다.
"누구야? 방금 나한테 목숨 구걸 한 인간이?"
"허억……
제일 앞에 서 있던 헌터는 그 열 기가 자신에게 닿는 것에 놀라 숨 을 들이켰다.
지옥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이랬을 까. 그 위압감에 바들바들 떨었다.
"난 말이야. 그걸 제일 싫어해! 비 겁하게 승부를 피하면서 살아남길 원하고, 당당하게 싸워 쟁취할 생각 도 없이 제 목숨마저 강자의 선택 에 맡기는 그런 추잡한 짓거리 말 이야!''
생글생글 웃고 있던 이그니스가 거칠게 포효했다.
"너흰 더 볼 것도 없겠어. 살아있 는 게 죄악일 정도로 약하고 비겁 해."
"안 돼……
화르륵!
이그니스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타고 화염이 거세게 솟았다.
"전부 여기서 죽어줘야겠어."
"제발……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모를 애원 이 경진아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대로 죽어야 할까?
'대항한다 하더라도, 무슨 수로?'
표연원도 저렇게 처참하게 졌는데. 이 소년에게 대체 어떻게 대항할 수 있겠는가.
'내가 다루는 물로는 저 불을 제압 할 수 없어.'
경진아의 마음 한편에서 체념이 자라났다.
'그래. 죽음이란 늘 헌터의 옆에 있는 것이라고, 훈련소에서 그랬었 지.'
이그니스의 손길을 따라 다가오는 화염을 보면서, 경진아는 질끈 눈을감았다.
저 불길 속에서 고통스럽게 타 죽 을 마지막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타닥, 타닥.
'......어라?'
하지만 기다려도 불길은 그녀를 덮쳐오지 않았다. 불씨가 튀어 뺨을 두드리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대체 무슨……
그녀가 겨우 눈을 떠 앞을 바라봤 을 때,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크게 벌렸다.
"……새? 아니, 불사조?"
-삐이이!
가히 전설 속의 불사조에 비견될 만했다!
깃털은 타오르는 불꽃으로 이루어 져 있고, 몸집은 거의 2층짜리 집 한 채만 했다.
날개를 양옆으로 좍 펼치자 그 품 안에 헌터들을 감쌀 정도로 거대했 다.
-삐이이!
"다들 무사합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위에서 울렸다. 경진아는 왈칵 눈물이 날 뻔한 걸겨우 참아냈다.
'살았어.'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그것 을 증명했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불씨가 아른거리며 마치 그녀를 위 한 배경처럼 반짝였다.
"역천의 한서하입니다. 급하게 저 혼자 왔습니다."
"한서하 헌터!"
"13부대의 그……
술렁술렁, 다들 유명한 최상위급 헌터의 등장에 한두 마디씩 얹었다.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서둘러 이 게이트에서 빠져나가세요."
"한서하 헌터! 저 괴물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여기서 다 같이 죽을 셈입니까? 물러나세요."
그 단호한 대답에 누구도 대답하 지 못했다.
"……후퇴합니다."
지금까지 지휘를 맡았던 적멸의 헌터가 선언했다.
"하지만!"
"우린 방해만 될 뿐이야."
경진아는 한서하가 불사조의 목덜 미에 올라타 그들을 내려다보는 걸 빤히 바라봤다.
"……우리랑은 비교도 안 되네."
원우태가 같은 심경을 느꼈는지, 경진아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게. 따라잡을 수 있을 줄 알 았는데."
"까마득하군."
후퇴 준비를 하면서 뭔지 모를 허 탈함이 경진아를 감쌌다.
원우태도 마찬가지로 어딘가 생각 에 잠긴 모습이었다.
'연원이의 친한 누나. 그 정도로 생각했어. 대련하면서도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생각했고.'
원우태는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알아버렸다.
'주무기도 쓰지 않고, 아이템의 능 력도 모두 제하고 싸운 걸 가지고 실력을 재단하다니.'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 였다.
"연원이는 어떡하지."
경진아가 걱정 어린 말을 내뱉었 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약하기 때 문에, 저 앞을 가로질러 표연원을 구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 다.
"저분께 맡기는 수밖에."
그들이 후퇴하는 것을 잠시 보고 는 이제 이그니스를 마주 보고 선 이.
한서하의 뒷모습을 보며 원우태는 나지막이 기도했다.
"부디 함께, 살아서 돌아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