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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78화 (178/361)

178화

내 주변에 다른 이들도 많았지만 당장 우리는 서로밖에 없는 것처럼 굴었다.

권성민은 여전히 이글이글 타오르 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널 보면서 느꼈던 그 무력 감, 열등감들. 그걸 어떻게든 하고 싶었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내가

몸 쓰는 데는 재능이 영 없었잖아."

권성민은 한 분야에 특화된 재능 을 갖지 못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어설프게 잘할 순 있어도, 한 가지를 특출하게 할 순 없는 처지였다.

"내 나름대로 노력도 했어. 최우도 그 양반 아래서 뼈 빠지게 일했으 니까. 하지만 결국……

결국 나는 떠났다.

'그래서 그때 날 붙잡았던 건가.'

내가 인정해주길 바랐겠지.

당신도 이렇게 할 수 있을 줄 몰

랐다면서, 그의 노력을 치하해주기 를.

하지만 그의 소망과 다르게, 내게 그는 쓸모 있는 책략가 한 명 정도 일 뿐이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어. 내 개인이 가진 힘이 아니라 '단체'가 가진 힘 을 이용하기로 했지. 정계에 가기로 한 거야."

물론 그마저도 실패했다.

'다름 아닌 나 때문에.'

그는 의원의 밑에서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권력의 달콤함을 잠시나 마 맛봤지만, 그대로 허망하게 스러졌다.

"그런데 말이야. 참 웃기지 않아? 이찬송 걔는 이렇게 발버둥치지 않 아도 부모가 준 걸 이어받아 꼭대 기에 서는데. 나는 뭣도 없어서 그 것마저 못 하더라고."

그는 그렇게 밑바닥을 구르며 높 은 분들의 뒤처리를 떠안을 뿐이었 다.

"지긋지긋했지."

"그래서 지구를 배신했나?"

"그런 셈이지. 한밑천 없으면 아무 것도 못 해먹겠더라고. 그래서 차라 리,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톨룩으로

향하기로 한 거야."

권성민이 가볍게 손짓하자 족쇄가 휙 당겨졌다.

탁!

"으 "

발이 휙 당겨지면서 나도 무게 중 심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하하! 그리고 네 모습을 봐!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그가 푸하하 광소를 터뜨렸다.

"내가 흑마법사가 되지 않았으면 이렇게 널 내려다보는 일이 또 있 었을까? 그럴 리가."

그렇겠지. 혹마법사는 강자가 되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다.

권성민이 자신의 힘으로 저 경지 에 오르려 했다면 훨씬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겠지.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 었다.

"내가 당신을 만들었다고?"

"그래. 처음에 날 자극한 것도, 그 다음 권력에 취해있던 날 끌어내린 것도 너였잖아."

콱!

그가 내 손등을 짓밟았다. 벗어나

려고 해봤자 그가 다시 족쇄를 당 기면 그만이었다.

조용히 그를 올려다봤다.

"네가 아니었다면 그냥…… 그 의 원 밑에서 따까리 짓 하는 걸로 만 족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내가 당신을 만든 게 아니 지."

나는 힘껏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 렸다.

"당신의 선택이 지금의 권성민을 만든 거야."

"하, 넌 내 처지가 되어본 적이 없

으니 그딴 소리를 할 수 있는 거 지."

그는 여전히 코웃음 치며 말한다. 하지만, 글쎄.

"당신은 힘을 원한다고 하면서 늘 다른 이의 힘에 기생해서 살아가고 있잖아."

게이트에선 나였고, 밖에선 임천훈 의원이었고 이제 와서는 이름 모를 마족에게 빌붙어 있지 않은가.

"당신은 불합리함의 희생자가 아 니야. 그저 빠르고 편한 길만 찾다 가, 늘 자신의 것이 아닌 힘을 빌 려다 쓰며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는

멍청이에 불과하지."

"그 입, 다물어."

까드득, 손등을 짓밟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순 없었다. 권 성민이 동요하는 게 보였으니까.

"내 말이 틀렸나?"

"다른 사람들은 날 비난할 수 있 어도, 너만큼은 그래선 안 돼. 한서 하."

그가 아드득 이를 갈며 중얼거렸 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담긴 것은 질척한 감정이었다.

"너만큼 재능 넘치고, 뭐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나도 이러지 않았어."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항상, 내가 운이 좋다고 떠들었다.

그건 회귀 전이나 후나 그다지 바 뀌지 않는군. 다들 결과만 보고 부 러워할 뿐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는 도리어 담담하게 되물었다.

"내가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 그 저 편하게만 살아왔을 거 같냐고."

"그럼? 뭐가 다른가?"

"난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어. 가 진 거라곤 내 몸뚱어리 하나뿐이었 지."

누가 더 불행한가 따지려고 하면 끝도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리 밝은 환경에서 살아오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편하게 살고 싶었으 면 헌터가 되지 않았을 거야. 차라 리 건설업체에 취직해서 월급이나 받아먹으며 살았을걸."

"네 능력이 타고난 행운이란 건 부정할 수 없을 텐데."

그럴지도 모른다.

공간 간섭, 그 능력만으로도 내가 로또에 당첨된 격이라고 말하던 사 람들도 있었으니.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게 진정한 행운은 이런 능력을 갖는 게 아니야."

나는 깜빡,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헌터가 되면서 인생이 꼬인 사람 들.

더 나은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 한

쪽 눈을 희생한 다정 언니부터 제 쌍둥이를 잃은 안유라까지.

"진짜 행운은 이런 게이트도 뭣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이 게이트 사회에서 그만한 행운 이 또 있을까.

"헛소리. 그들이야말로 사회를 이 루는 가장 밑바닥이야."

권성민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 도 얻지 못할 텐데. 그건 네 기만 에 불과해, 한서하."

그와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이 뿌리부터 달랐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날이 올 까."

"아니. 절대."

권성민은 차갑게 날 비웃었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이 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게 마지막이었다. 난 고개를 들 어 그의 표정을 살피고 싶었지만, 권성민은 그대로 뒤돌았다.

"철저히 감시하도록."

"네!"

쿠구구궁!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창이 닫혔 다.

여긴 지하 감옥은 아니지만 우릴 가두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 같았다.

바닥에는 아까 봤던 마법진이 새 겨져 있었고, 발목에 달린 족쇄의 끝이 마법진 한가운데와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 대장. 저자는…… 그 사람 아 닌가요? 전에 어떤 사이비교로 난 리 났을 때 공개수배됐던……

정로운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맞아요. 그 사람."

"도중에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여 기 있었던 건가."

신도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 였다.

'아마 도망치는 과정 중에, 또는 도망치기 직전에 제안을 들었겠지.'

다니엘에게 들어서 그 존재를 알 고 있긴 했지만, 게이트 하나를 통 째로 맡을 정도로 신뢰받을 줄은 몰랐다.

"서하 님한테 말을 짜증 나게 해 요. 죽여버릴까요?"

살벌한 소릴 하는 류라임을 대충 말렸다.

"일단, 이 문제부터 해결하죠."

나는 발목에 달린 족쇄를 손가락 으로 가리켰다.

" 적은?"

"안 보입니다."

오늘도 정찰은 허탕을 쳤다. 표연 원은 또다시 야영 준비를 하는 이들을 바라봤다.

'아무런 흔적도 느껴지질 않네.'

이 안에 적이 있긴 한 건지 의심 스러울 정도였다.

'게이트가 유지되는 걸 보면 톨룩 의 사람이 있긴 할 텐데……

표연원은 옆에 있던 식물의 잎사 귀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쓰다듬었 다. 그리고 나무에 머리를 살짝 기 대며 눈을 감았다.

'너희의 도움이 필요해.'

-우릴 찾았어?

-무슨 도움? 뭐든 말해봐!

나무에 잠들어 있던 정령들이 표 연원에 부름에 하나둘 답하기 시작 했다.

-와! 네가 그 계약자구나! 우리의 왕께서 선택한!

-소문만 무성했는데 이렇게 만나 네!

그들이 달갑게 아는 체를 해왔다. 표연원은 반갑다고 인사하며 본론 을 꺼냈다.

'이 안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니?'

-그걸 알려면 네 마나를 꺼내다

써야 하는데. 괜찮겠어?

-많이 많이 써야 하는데!

'괜찮아. 내 마나를 빌려줄게.'

표연원은 나무 기둥에 손을 짚었 다. 계약의 문양이 옅게 빛나면서 통로가 열렸다.

슈욱,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게이트 전체를 뒤지는 데엔 어마 어마한 양의 마나가 필요하기 마련 이었으니까.

표연원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니야. 정신 차려!'

애써 흐려지는 시야를 부여잡고 섰다. 이 감각이 불쾌하고 끔찍해서 되도록 쓰고 싶지 않았던 건데.

'상황이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 이질 않아서 어쩔 수 없었어.'

표연원 그 자체로도 중요한 전력 이기 때문에 전투 불능 상태가 되 는 것도 치명적인 손해였고 말이다.

-찾았다, 찾았어!

_한 명 있어!

다행히 마나를 절반 정도 쏟고 나 자 정령들이 찾았다며 반응을 해왔다.

'한 명이라고?'

톨룩의 군대라고 하기엔 터무니없 는 숫자였다.

-응! 한 명이야!

-엄청 빨라! 바람 같아!

-이쪽으로 오고 있어!

때마침 두구두구두구, 땅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 뭐지?"

야영 준비를 하던 이들이 잠시 일 손을 멈추고 소리가 울리는 쪽을 응시한다.

표연원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상대는 한명……

게다가 정찰병들의 감각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리 있는데, 이렇게 소 리가 울릴 정도라니.

뭔가 이상하다.

-어라? 그런데,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그치? 나도 뭔가 낯이 익어.

-이상하다. 기운은 탁한데.

정령들이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두구두구, 땅이 울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다들 준비해! 뭔가 이상하다!"

결국 적멸의 헌터가 먼저 소리 질 렀다. 그 외침에 제각기 자신의 무 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적이 오고 있습니다!"

이윽고 정찰병이 알렸다.

"상대는, 한 명입니다!"

그 말에 다들 황당하다는 듯이 반 응했지만 표연원만큼은 조용히 입 을 다물고 있었다.

아득히 저 멀리를 바라봤다. 저곳 에서 다가올 적을 기다리며.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벌써 근

접했습니다!"

"진형을 갖춰라!"

"네에!"

적이 가까워진 탓에 바닥이 심하 게 울리고 있었다. 뿌옇게 흙먼지가 이는 게 보였다.

"마법사들!"

"네!"

경진아가 선두에 나서면서 능력을 가동했다.

쿠르릉, 쿵!

경진아의 능력, 비바라기. 순식간 에 하늘에 먹구름이 끼면서 비가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비가 흙먼지를 가라앉힌 다. 동시에 허공에 마법진이 수놓아 졌다.

"거리를 벌릴게요!"

촤아아아악!

거대한 파도가 비를 흡수하며 더 욱 커진다. 쩌억 그 입을 벌리고 기다리다가,

"하앗!"

경진아의 외침과 동시에 앞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쏴아아아아!

거센 파도가 상대를 덮친다. 촤악! 물결이 장애물을 만나며 크게 요동 쳤다.

"머,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속 달 려옵니다!"

정찰병이 당황 어린 목소리로 외 쳤다.

-아! 그렇지! 생각났어!

곰곰이 생각하던 정령이 뭔가 깨 달은 것처럼 말을 걸어왔다.

-맞아, 맞아. 이제야 알겠어!

- 그자야!

-그자인가 봐!

자기들끼리 호들갑을 떤다. 표연원 은 여전히 적이 다가오는 것을 웅 시하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그자가 누군데?'

동시에 한 번 더, 마법이 휘몰아쳤 다. 곧바로 화살도 날아들었다. 하 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 왔다.

무쇠처럼 단단한 피부였다.

-3마왕 중 하나. 일명, 투견 '이그 니스'!

상대는 그 모든 공격을 뚫고 태연 하게 적진 앞에서 멈춰 섰다.

-맞아, 맞아. 그자였어!

- 기억났다!

-그 미친 싸움꾼!

까만 피부에 황금색 눈동자. 흰자 위가 있어야 할 자리가 까만색이었 다.

앳된 소년의 외형에, 무슨 의미인 지 알 수 없는 문신이 전신을 뒤덮 고 있었다.

그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주변 을 훑으며 말을 걸었다.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 야?"

휘잉, 바람이 그들을 감싸 안는다.

표연원은 꿀꺽 침을 삼켰다.

3개의 왕좌 중 한 자리를 차지하 고 있는 강자.

투견 이그니스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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