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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74화 (174/361)

174화

챕터: 준비운동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답답함에 고갤 들어 주변을 살피 자 팔뚝에 꽂힌 주사바늘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배]이, 삐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 계 소리가 시끄럽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윤강 백의 병실에서 일어나야 하는 데……?'

뭔가 일이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반쯤 상체를 일으키자 막 들어오 던 간호사가 날 발견하더니 서둘러 다시 날 눕혔다.

"마음대로 일어나시면 안 돼요, 환 자분.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세 요?"

"제가 왜 여기 누워있는 거죠?"

"병원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셨 어요."

내가? 아니. 잠깐만.

'그럴 수가. 분명 그렇게 오랜 시 간 잠들 만한 양이 아니었는데?'

고작해야 몇 시간 정도 단잠을 자 는 수준의 약이었다.

애초에 나나 전청운 같은 헌터들 이 그리 쉽게 약에 취할 리가…….

' 전청운!'

그래! 윤강백의 꿈에서도 보지 못 했던 그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됐단 말인가.

"전청운 씨는 어떻게 됐죠?"

"같은 곳에서 발견돼서 다른 곳에 입원해 있어요. 우선 절대안정이 필 요하니까 누워계시다가 다시 전반 적인 검사를 진행한 뒤에……

"아뇨. 지금 퇴원할게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간호사가 기겁을 했다.

"환자분! 갑자기 그렇게 일어나시 면……!"

발을 바닥에 딛는 감각이 어색했 다.

휘청, 나는 크게 넘어질 뻔했지만

금방 중심을 잡았다.

"오늘이 며칠이죠?"

"4, 4월 16일이요."

두 달 정도 누워 있었던 건가.

"전청운 씨 병실로 안내해주세요."

드르륵, 수액걸이를 끌고 밖으로 나서려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밖이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예, 깨어나셨습니다. 지금 당장 검사를 진행……

"앞문 막아요! 얘기가 새어 나가면 골치 아파지니까."

"일시적으로 병동 일부를 폐쇄하

겠습니다! 잠시만……

이게 무슨 소란이지?

내 뒤에 있던 간호사도 어리둥절 해하고 있었다.

"예! 깨어났다니까요!"

데스크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크게 외쳤다.

"그 사람이 일어났다고요!"

그 말과 동시에, '어어, 안 됩니 다!' 하는 외침이 복도 한쪽 구석에 서 들렸다.

"괜찮네.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

"하지만 오랜 시간 누워 계셨으니

재활이……

"몇 개월 쉬었다고 기감이 다 죽 으면 헌터라고 할 수 있겠어?"

그을린 피부, 화려한 금발.

환자복을 입었지만 숨길 수 없는 강자의 내음을 풍기는 사내가 그곳 에 서 있었다.

윤강백이었다.

"아, 마침 저기 있군."

그가 날 발견하고 성큼성큼 다가 왔다.

꿈속에서 봤던 것과 다르게 한층 성숙해진 얼굴의 남자가 내 앞에섰다.

"그대의 환대를 잊지 않겠어. 멀리 까지 마중 나오느라 고생이 많았 군."

"아닙니다. 그보다 전청운 씨가 어 떻게 된……

"깨어났습니다!"

누군가가 소리 높여 외쳤다.

"전청운 헌터도 깨어났습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아니. 나와 같은 수면 유도제를 사 용했으니 비슷한 시기에 깨는 게 맞나.

"……그 애도 함께 있었나?"

"들어가는 건요. 그런데 꿈 안에서 보이질 않길래 아예 잠에 들지 못 했거나, 뭔가 일이 생겼을 거라 생 각했습니다."

내 말을 듣자 윤강백의 얼굴이 심 각해졌다.

"추측하기로는 아마…… 자신의 꿈에 갇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잠에 들었지만 윤강백의 꿈에선 보지 못했으니, 가능성은 그것뿐이 었다.

"전청운의 병실로 안내해주게."

"예? 하지만 아직 두 분 다 절대 안정이……

" 안내해주게."

살짝 웃으며 말하지만 강한 압박 이 내포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는 병실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하얀 병실 안에 전청운이 앉아있 었다. 환자복을 입은 채로.

"길드장님."

그가 우릴 보더니 놀란 눈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윤강백이 제지해 도로 앉았다.

"깨어나신 줄 몰랐습니다."

"나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됐거든. 그나저나, 왜 그런 선택을 했지?"

윤강백의 추궁에 전청운이 하얗게 질렸다.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정신적으 로 취약한 구석이 있는 사람은, 정 신계 공격에 쉽게 당한다고. 그래서 마녀를 만나거나, 정신계 공격을 쓰 는 적을 마주치면 도망부터 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는데."

윤강백이 서슬 퍼런 눈빛을 했다.

"이렇게 직접 사지에 뛰어들 줄이

야."

"하지만, 저도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었습니다! 길드장님께서 그렇게 침상 위에서 말라가는 모습을……

전청운이 항변했으나 씨알도 먹히 지 않았다. 윤강백이 분노하는 이유 는 간단하다.

'전청운은 트라우마가 짙지. 전서 호에 대한.'

그런 그가 정신세계로 직접 발을 들이면 어떻게 됐을까. 그가 꾼 꿈 의 내용은 무엇으로 점철되어 있었 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윤강백이 화를

내는 이유가 대강 짐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는 까만 집 게이 트에 들어가는 것도 전청운이었지.'

그가 자신의 이야길 무용담처럼 떠들어대는 타입은 아니라 자세한 얘기는 모르지만.

'그때 전청운도 클리어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 게이트의 난도 문제 도 있었겠지만, 전청운에겐 더욱 치 명적이었을 거야.'

보라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절로 머릿속을 스쳤다.

레태흐태드. 그 여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났겠지.

하지만 끝내 그는 까만 집 게이트 를 클리어해냈으니.

그때 일을 계기로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번엔 까만 집 게이트도 내가 클리어했으니 그럴 기회가 없 었겠지. 그래서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는 건가.'

그런 추측까지 주르륵 이어졌다.

'지금의 전청운도 알고 있었을 거 야. 자신이 정신세계에서 쉽게 길을 잃을 수 있단 걸.'

하지만 윤강백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감수하고 뛰어 들었을 것이다.

'윤강백이 원하는 선택지는 아니었 던 모양이지만.'

전청운은 더 이상 항변하지 않고 윤강백의 꾸중을 가만히 듣고 있었 다.

하지만 되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 을 하겠다는 마음만큼은 꺾이지 않 은 듯 보였다.

'그야 나 같아도 혜원 언니한테 비 슷한 일이 생기면 내 목숨을 걸어 서라도 구하고 싶을 테니까.'

그게 혜원 언니가 바라는 길이 아

니라 하더라도.

'그보다 나랑 전청운이 잠든 지 얼 마나 지난 거지? 왜 이렇게 깊이 잠들었던 거냐고.'

그 의문은 이내 풀렸다.

"2달 동안 잠들어 있었습니다. 원 인은 아마…… 당시 쓰러져있던 곳 에서 발견된 이것 같아 보입니다."

의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수 면 꽃가루를 정제한 디퓨저였다.

"이건 평범한 수면 유도제 아닌가 요?"

"그렇긴 한데 안에서 발견된 물질

에 이상한 게 섞여 있었어요. 불법 약물이요."

이런. 거기까지 들켰나.

'꼭두각시 인형의 슬픔', 과다 복 용할 경우 몸은 영원히 잠든 채 정 신만 깨어있는 끔찍한 부작용을 야 기하기 때문에 금지된 약물이었다.

'육신을 정신과 영혼의 감옥으로 만들어버리는 약이지.'

자신의 몸 안에 갇혀서 평생토록 살아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거다.

"그 약물과, 수면꽃가루를 디퓨저 로 정제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화학물질이 서로 반응해 그 효과가 더 욱 극대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 한 것은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하겠 지만……

그렇게 된 일이었군.

내 실수나 다름없었으니 누굴 탓 할 수도 없었다.

불법약물 유통으로 처벌받을 것까 지 감수했지만 의사는 헌터들이 정 신적으로 몰렸을 때 이런 약물을 찾는단 걸 안다며, 이번만 눈감아주 기로 했다.

'홍염의 유망주인 전청운이 얽혀있 어서 더 그렇기도 하겠지.'

차마 윤강백 앞에서 전청운도 처 벌해야 한다고 말할 순 없었을 거 다.

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밟고 밖으 로 나오자,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어.'

잠깐의 실수로 깊은 잠에 빠져버 렸다. 이 귀한 시기에.

'2개월. 2개월이면 지금쯤……

다른 게이트가 열렸을 텐데.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 학생들이 졸업하고 헌터가 되는 시기도 아마 지금쯤일 텐데……?'

그들은 곧장 현장에 투입될 수 있 도록 훈련소 생활도 마쳤으니, 이미 길드에 들어가 있을 거다.

'표연원은 역천에 들어갔겠지.'

그 실력이면 어느 길드라도 들어 갈 수 있었을 거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내 퇴원 소식을 못 들은 걸까?'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 윤강백 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그들이 모를 까.

'못 올 만큼 바쁘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단 얘기겠지.'

가뜩이나 황제가 연이은 패배로 강력한 패를 꺼내들 타이밍이었다.

옆에 있던 윤강백도 비슷한 생각 을 하는지 얼굴이 살짝 굳어 있었 다.

"제가 먼저 가 있겠습니다. 나중에 뒤따라오세요."

윤강백이나 전청운과 함께 이동하 진 못해도, 내 한 몸 움직이는 것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었다.

이유 모를 불안감에 서둘러 움직 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하게. 홍염도 마중 나오는 이가 없는 걸 보니 주요 인력은 전 부 회의 중인가 본데……. 얼마나 급한 회의일지 모르겠군."

제발 별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아카데미 졸업, 2개월의 공백, 거 기다 게이트의 간극……. 모든 게 타이밍이 딱 맞잖아.'

제발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사태 가 벌어지지 않아야 할 텐데.

불길한 예감은 빗겨나가지 않기 때문에 나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공간 간섭'

여러 번 스킬을 반복한 끝에 곧장 회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탁!

가볍게 신발 밑창이 바닥에 닿았 다.

문이 아니라 허공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순식간에 내 목에 검이 들 이밀어 졌다.

"……한서하?"

이운우가 멍하니 내 이름을 불렀 다.

"어떻게 여기에……. 아니, 깨어났 다는 얘긴 전해들었지만 바로 퇴원 한 거야?"

당연한 말을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상황을 대충 전달했다.

"방금 퇴원했어. 나뿐만 아니라 전 청운 헌터랑 윤강백 길드장님도. 내 가 먼저 도착했을 뿐, 둘도 바로 이쪽으로 오고 있을 거야."

"그 둘도?"

이운우가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 었다.

그동안 전청운이 윤강백을 간호하 느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걸 이용해서 청사가 여러 권력을 다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강백이 돌아오면 이 흐름이 또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 다.

이들이 이렇게 한데 모여 회의하 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야 했다.

"갑자기 난입해서 죄송합니다. 현

재 진행 중인 회의 내용을 간략하

게 듣……

잠시 주변인들의 양해를 구하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다시 한번 주변 을 살폈다. 이상하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지 금...

"……혜원 언니는 어디 갔어?"

역천의 길드장으로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소름끼치도 록 차가워졌다.

고개를 돌려 이운우를 바라봤다. 심장이 두근두근 소리를 냈다.

"혜원 언니가…… 왜 없어?"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런 거 아니야."

이운우가 간신히 먼저 입을 열었 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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