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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72화 (172/361)

172화

쪼르륵, 빨대가 요란한 소리를 냈 다.

다 먹은 음료를 빨대로 휘휘 젓더 니, 혜원 언니가 뚱한 표정으로 물 었다.

"그래서."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어이없

음'이었다.

"둘이 갑자기 체력단련실에서 맞 붙어서 사방을 엉망으로 만든 이유 가…… 고작 그것 때문이라고?"

"하지만……

"됐어!"

변명하려 했지만 묵살당했다. 혜원 언니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우선 전서호!"

첫 번째 타깃으로 지목당한 전서 호가 움찔 몸을 떨었다. 꼴이 엉망 이었다.

나한테 흠씬 두들겨 맞아 한쪽 눈

이 푸르스름하다.

"넌 왜 자꾸 서하한테 시비야? 처 음 봤을 때부터 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냐고!"

"난 그냥 얘가 자꾸 우리 근처에 서 얼쩡거리니까……

그가 미약하게 변명의 말을 내뱉 는다. 나도 할 말이 많아 불쑥 끼 어들어 말을 얹었다.

"체력단련실에 전세라도 냈어요? 누구나 쓸 수 있는 곳인데."

"그래서 우리가 다섯 번 가면 다 섯 번 다 마주치냐? 이 스토커야!"

"스토커라뇨, 우연의 일치인데. 말 이 너무 심하시네요."

내가 지지 않고 맞받아치자 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우리 둘은 서로 를 째려보며 한참 눈싸움을 했다.

"하아......

그러다 혜원 언니의 한숨에 퍼뜩 정면을 바라봤다.

심상치 않은 기색의 혜원 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 어! 내 동생도 너희보단 어른스럽 겠다!"

나는 슬쩍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표연원은 지금쯤 고작해야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일 텐 데…….

"너무 그러지 마."

"너도 그래! 윤강백, 넌 왜 같이 있었으면서 중재를 안 해?"

윤강백이 웃으며 끼어들었다가 본 전도 못 찾았다. 도리어 우리와 함 께 혼이 난다.

"그치만, 내가 무슨 수로 둘을 말 리겠어. 각각 연수원 최고의 마법사 에 백발백중의 총잡이인데."

원거리 타입인 우리를 어떻게 막 겠냐는 듯이, 윤강백은 제 허리춤에 있는 칼집을 툭 건드렸다.

"나한테 그런 뻔한 소리가 통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역시 그런가?"

혜원 언니의 타박에 윤강백이 씨 익 웃었다.

제아무리 근거리 검사라곤 하지만, 윤강백의 실력이 우리보다 뒤떨어 지는 건 아니다.

말리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 을 거다.

"휴……. 서하야."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나도 모 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너는 왜 자꾸 따라다닌 건데?"

"그냥 우연……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그런 변명이 통할 리가 없겠지. 나 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윤강백이 현실의 윤강백인지, 기 억 속 윤강백인지 알아보려고 그랬 다곤 말 못 하지.'

내가 침묵하자 혜원 언니의 한숨 이 더욱 깊어졌다.

' 죄송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내면 이상한 애로 취급받을 게 뻔한걸!

"또 이런 일 없게 하자……. 알겠 지?"

"알겠어."

"네."

" 하하."

혜원 언니가 목소리를 낮게 내리 깔았다. 우리의 대답을 듣고는 한층 부드러워진 얼굴을 했다.

"그런데 곧 검사 수업이라 가봐야 할 거 같은데."

"아! 맞다. 늦을 뻔했네!"

윤강백이 시계를 가리키자, 혜원 언니가 서둘러 일어났다.

"너희들 또 싸우지 말고 있어! 한 번만 더 싸우면 그땐 나한테 맞을 줄 알아!''

"이따 보자."

둘이 수업을 들으러 나가면서 마 지막까지 우리에게 당부를 한다.

웃으며 알겠다고 답하다가, 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즈음에 얼굴 이 확 굳었다.

"가식 떠는 거 봐."

전서호가 먼저 비꼬는 말을 내뱉 었다.

"너야말로."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정확히 2주 다. 물론 꿈속의 시간이니 현실의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오래 잠들 정도로 수면향 을 많이 쓰진 않았거든.'

어찌 됐든 이 꿈속에서 연수원을 다니면서 이들과 함께 붙어 다닌 지 어언 2주가 지났다.

나는 여전히 윤강백을 관찰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전서호와 갈등이극심했다.

"아직 물을 덜 먹었나 봐?"

전서호의 손끝에서 물방울이 방울 방울 솟아났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저번에 싸웠을 때 내게 타박상은 하나도 없었지만, 저 물방울이 내 숨통을 틀어막았던 감각만은 선명 하게 남았다.

"그러는 넌 덜 맞아서 그런가?"

내가 단검과 총집에 손을 대자 전 서호도 맞은 곳이 아픈지 살짝 눈 살을 찌푸린다.

'노이트까진 이 안에 들고 오지 못 했지만, 그래도 꽤 쓸 만한 총이거 드 '

가장 유용한 건 실탄 대신 고무탄 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진짜 전서호를 죽일 순 없으니까. 고무탄에 맞으면 최소 타박상, 최대 골절이라 살벌하지.'

고무탄이 낯설던 것도 잠시. 전서 호와 치고받고 싸우다 보니 금세 적웅했다.

"네가 무슨 목적으로 우리 주변을 빙빙 도는진 모르겠지만."

전서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을 했다.

"뭐든 네 생각대로 되진 않을 거 야."

그대로 휙 뒤돌아 나간다.

윤강백의 기억 속 전서호는 늘 이 랬다. 내가 아는 것과 다르게, 다소 즉흥적이고 다혈질이다.

'푸른 뱀보다는 불꽃이 더 잘 어울 릴 정도로.'

그 모습이 다소 낯설었다. 원래 성 격이 저런데 참고 살았나 싶기도 하다.

'저 성질머리를 어떻게 감추고 다 녔나 몰라.'

그러고 보니 감쪽같이 숨은 인물 이 하나 더 있다.

' 전청운..

대체 그는 어디에 있는 건지!

'들어오긴 한 거야?'

뭔가 착오가 있어서 윤강백의 꿈 에 들어오지 못한 건 아닐까 걱정 스러웠다.

'어찌 됐든 나 혼자 해내야 하는 건 똑같네.'

하아. 윤강백을 졸졸 쫓아다닌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전혀 가늠이 안 됐다.

'윤강백은 내 기억 속 그 어른스러 운 남자랑 똑 닮았거든.'

나이만 줄인 채로 갖다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래서 더 그 속내를 알 수가 없 었다.

'단순히 어린 시절부터 어른스러웠 던 건지, 속 알맹이는 산전수전 다 겪은 그 윤강백이라 그게 배어 나 오는 건지……,'

이 꿈에서 내가 깨어나기 전에 뭐 라도 알아내야 할 텐데.

'이게 꿈이란 걸 자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뭔가 비현실적인 걸 보여주고 싶은데.'

번번이 전서호가 방해를 해오니. 골치가 아프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 서 일어났다. 나도 수업에 가야 할 때였다.

그날도 평소와 같았다. 나는 자연 스럽게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너는 친구도 없어? 왜 자꾸 우리 한테 껴서 먹는 거야."

"응. 나 친구 없는데."

전서호가 쏘아붙이는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혜원 언니는 웃으며 반겼 고, 윤강백은 가만히 침묵한다.

식사가 끝날 무렵, 그다지 늦은 시 간도 아닌데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다들 어디 갔지?"

혜원 언니도 그게 이상한지 의문 을 제기했다. 그러자 전서호가 태연 하게 답한다.

"오늘 그날이잖아."

"무슨 날?"

"청사 설명회."

청사. 그 이름이 전서호의 입에서 나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 라봤다.

"그럼 네 누나도 오셨겠네."

"아마도 그러겠지. 부길드장이 온 다고 했으니까."

전서호의 누나?

'전서호한테 누나도 있었나? 그보 다 부길드장? 청사에 그런 직책이 있다고?'

난생처음 듣는데. 반면 다들 익숙 한 듯이 굴었다.

"보러 가지 않아도 되겠어?"

조심스러운 어조였다. 전서호는 내 리꽂히는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됐 다며 손사래를 쳤다.

"됐어. 나 없어도 알아서 잘 할 텐 데, 뭐."

말투는 퉁명스러워도 믿음이 잔뜩 밴 어투였다.

"그리고 나 지금 묵언 투쟁 중이 야."

"아직도?"

"뭐가 아직도야! 난 인정 못 한다 니까!"

전서호가 다 먹은 그릇을 들고 일 어섰다. 우리도 그를 따라나섰다.

"왜? 난 저번에 멀리서 본 게 다 긴 하지만 서로 잘 어울리던데."

"그랬지. 남편 되실 분이 일반인이 긴 해도 어차피 데릴사위니 큰 문 제도 없고."

"남편 되실 분? 내 눈에 흙이 들 어가도 절대……!"

조잘조잘 떠들던 수다가 뚝 끊겼 다. 식당에서 나오는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짙은 푸른색 머리카락이 바람을 따라 흩날렸다.

창백한 피부, 한쪽 귀에 달린 푸른 보석은 전서호와 똑 닮았다.

마치 한 쌍인 것처럼.

"……서호야."

전서호의 얼굴에서 성별만 바꾼 듯 쏙 빼닮은 여자가 그를 불렀다.

"누나."

둘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보자마자 알 수 있을 거다. 그녀가 전서호의 친누나라는 걸.

'청사의 부길드장에 전서호의 누나 라……. 둘 다 너무 낯선데.'

내 기억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 말 인즉슨, 이 사람은 미래에 없는 이 란 뜻이다.

'미래에는 고인이 될 사람.'

윤강백의 기억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잠깐 시간 괜찮아?"

"응? 어, 으옹……

묵언 투쟁 중이라고 선언했던 것 이 무색하게도 전서호는 그녀와 대 화를 나누고 있었다. 좀 어설프긴해도.

"그럼 어디 카페라도 가서……

"아니. 그럴 기분 아니야."

전서호는 정신을 차린 듯 톡 쏘아 붙이는 어조로 답했다.

"여기서 얘기해. 시간을 많이 낼 순 없어서. 누나도 설명회 도중에 나온 거라 곧 가봐야 하잖아."

"알겠어. 그럼 듣고 화내지 마."

나는 잠시 기시감을 느꼈다. 내가 아는 전서호의 분위기는, 이 사람을 더 닮아 있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으

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한 마 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시선이……

윤강백의 시선이 전서호의 누나에 게 꽂혀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그런 눈빛을 처음 봤다.

'윤강백하고는 무슨 사이지?'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 다. 하지만 그녀는 윤강백 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하다 툭 내뱉 었다.

"나 결혼할 거야. 그 사람이랑."

" 뭐?"

소름끼칠 정도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나 결혼할 거라고."

하지만 그녀도 결연하게 답했다. 이미 뜻을 굳힌 듯이.

"네 의견은 필요 없어. 그러기로 했고, 아버지도 허락하셨어."

나는 전서호의 등밖에 볼 수 없었 지만 분명히 느꼈다. 그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보다 그 사람을 택하겠단 거지.

결국."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조건도 적당하고 성격도 괜찮아. 나쁘지 않은 상대야. 그쪽도 동의했 고."

사랑하는 사람을 수식하기엔 다소 냉담한 단어들이었다.

"그 정도면 됐지. 연애결혼 같은 거,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

눈을 휘며 웃는다. 전서호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식은 안 올리고 가까운 친인척들

끼리 식사만 하기로 했어. 아마 네 가 연수원에 있을 때 진행될 거야."

그건 말 그대로 통보였다.

"너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전서호가 고개를 푹 숙이고 겨우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끝에 가선 거의 울먹임이 반쯤 섞여들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빌어도?"

그렇게 간절한 모습은 처음 봤다.

"그 결혼 진행하면, 두 번 다시 날 못 볼 거라고 해도?"

그건 전서호가 내세울 수 있는 마

지막 보루였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차게 웃었다.

"말했다시피, 네 허락은 필요 없 어."

얼음처럼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녀 는 제 동생의 애원을 매몰차게 끊 어 냈다.

"서호야. 날 보기 싫다면 그렇게 해. 그것도 내 허락은 필요 없는 일이니까."

그녀는 그대로 뒤돌았다.

전서호는 손을 뻗었지만 결국 닿 진 않았다. 어설프게 허공을 그러쥔다.

그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 로 멀어지자 전서호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호야!"

"무릎 상하겠어."

혜원 언니와 윤강백이 달려가 그 를 부축했다. 하지만 전서호는 넋이 나가 그마저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안 돼……. 그 자식은 안 된단 말 이야……

들어주는 이 없는 넋두리였다.

"내가 분명 봤어. 봤다고……

끔찍한 불행을 암시하는 것처럼, 그 서글픈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 다.

"내가 이 두 눈으로 봤단 말이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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