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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71화 (171/361)

1 기화

챕터: 삼총사의 꿈

탁. 창틀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정상적으로 들어오는 법이 없군."

전청운이 작게 타박했다.

나는 야밤이라 면회 시간이 지나 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삑, 삑.

기계음이 주기적으로 울려 퍼졌다. 침대에 누워 있는 이는 여전하다.

"상태는요?"

"똑같다."

여전히 원인불명이란 소리였다. 이 렇게까지 오래 누워있을 줄은 몰랐 는데.

'얼마나 달콤한 꿈을 꾸길래, 아직 까지 못 일어나는 겁니까.'

나는 눈을 감고 있는 윤강백을 바 라봤다. 운동량이 부족해서 그런지 한층 핼쑥해져 있었다.

"뇌파 검사를 한다고 했던 건 어

떻게 됐어요?"

"그것도 똑같지."

전청운의 목소리에 얕은 절망이 배어있었다.

'여전히 수면 상태……

이렇게 되면 레태흐태드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윤강백이 깨 어나지 않길 선택한 거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 로 아늑한가?'

당신이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라 곤 생각 안 하는데.

"며칠째 혼자서 여길 지킨 거예

요?"

하루 이틀 여기서 지낸 몰골이 아 닌데.

"3 일."

이건 이거대로 전력의 낭비다. 윤 강백뿐만 아니라 홍염의 전력도 줄 줄 새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혼 자 있어요. 저번엔 사람이 더 많았 던 거 같은데."

지금은 이 병실에 전청운 혼자였 다.

"내가 보냈다."

왜 그랬냐고 묻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가 마지못해 대답을 잇 는다.

"고생하는 건 나 혼자면 족하니까. 내가 체력이 가장 좋으니, 제일 오 래 버틸 수 있다."

그것 참. 전청운답다고 해야 하나.

'제일 상사면서 자기가 제일 효율 적이라고 남는다니……

이거, 좋은 상사라고 해야 할지 말 아야 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상처는 좀 어때요."

내 말에 전청운이 자신도 모르게

어깨 부근을 어루만졌다.

저기서부터 시작해 몸을 대각선으 로 가로지르는 상처가 저 옷 안에 숨겨져 있겠지.

"……덕분에, 흉터를 제외하면 후 유증 없이 치료했다."

"잘됐네요."

부상 입은 당시 출혈이 심해 보였 는데, 다행히도 잘 치료한 모양이 다.

나는 전청운의 피로감 짙은 얼굴 을 보며, 슬슬 뭐라도 조치를 취해 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방법은 되도록 쓰고 싶지 않았 는데.'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강백의 입원이 이렇게 길 어진 이상 어쩔 수 없다.

"전청운 씨. 윤강백 씨를 깨우고 싶죠?"

"그렇다만."

"뇌파 검사에서 나온 것처럼 이분 은 깊은 꿈에 빠져있는 거겠죠. 그 러니까 꿈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을 현실로 끌어올리려면……

내 말에 전청운이 귀를 기울였다.

"직접 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 죠."

바다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하려 면 우선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니까.

"무슨 소리지?"

"꿈속에 들어간다고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 었다."

생소한 개념일 수 있지. 회귀 전, 레태흐태드에게 당한 피해가 심각 할 때 이 방법이 개발됐다.

'그 위험성 때문에 다시 금지됐지

만.'

그래도 암암리에 정말 중요한 전 력이 꿈에 빠지면 이 방법을 쓰곤 했다.

"간단해요. 몇 가지 준비물만 있으 면 되니까요."

그리고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 어있는 사람 한둘이면 충분하다.

"일명, '드림 워킹'이라고 하죠."

드림 워킹. 내 꿈에서 다른 이의 꿈으로 넘어가는 것을 이르는 말이 다.

이 개념은 게이트가 생겨나기 전

에도 있었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적었 다.

'하지만 우린 게이트 사회에서 살 고 있지.'

드림 워킹을 실현하게 해 줄 부가 적인 재료들은 충분하다.

"준비물로는 첫째, '텔레파시 깃털' 이에요. 짝이 맞는 한 쌍을 각자 소유하고 있으면 정신력을 이용해 텔레파시를 보내게 해주는 아이템 이죠."

하지만 여기선 그 쓸모가 다르다.

"이게 둘 사이에 정신적인 통로를

만들어 줄 거예요."

전청운은 홀린 듯이 내 얘길 듣고 있었다.

"두 번째는 '수면 꽃가루'를 희석 한 디퓨저. 시중에서도 혼히 구할 수 있죠. 수면 유도제의 일종이니까 요."

하지만 그대로 사용하면 푹 잠들 어 버린다.

"이 디퓨저에 첨가해야 하는 게 있는데, 바로 이거예요."

주머니에서 유리병에 담긴 투명한 액체를 꺼냈다.

"그게 뭐지?"

"'꼭두각시 인형의 슬픔'이요."

내 말이 끝나자 전청운이 눈을 크 게 떴다.

"그건…… 금지된 아이템일 텐데."

그래. 꼭두각시 인형의 슬픔, 이 아이템은 아주 강력한 각성제다.

'일반적인 각성제와 다르지.'

이 아이템을 복용한 이들은 모두 같은 부작용을 호소했는데, 바로 잠 에 들어도 정신은 깨어있는 수면장 애였다.

'우리에게 딱 필요한 아이템이고

말이야.'

금지된 아이템이지만 약간의 불법 적인 경로를 통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마약 종류도 아니고, 부작용은 만 성 피로 하나뿐이니까.

다만 과하게 사용할 경우 부작용 이 만성 피로에 그치지 않고 다른 후유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금지 된 것이다.

또옥.

한 방울, 희석된 수면 꽃가루 디퓨 저에 원액을 섞는다.

"이거면 완성이죠. 잠들고, 정신을 유지해서, 연결된 통로를 이용해 상 대방의 꿈속으로 넘어간다. 간단하 죠?"

"원리를 따지자면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작동할지는 미지수군."

"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 죠."

내 말을 부정할 순 없는지 전청운 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 어떻게 알았지?"

"최근에 고대 문헌에서 찾았어요. 위험성 때문에 잊힌 방법인 것 같

지만요."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제법 천 연덕스러웠는지 전청운은 단번에 수긍했다.

"하지만…… 만약 너와 나 둘 다 잠에 빠져들었을 때 외부 침입이라 도 생기면 곤란하다."

"걱정 말아요. 어디까지나 가수면 상태라 누가 침입하면 금방 깨어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정 불안하 다면 저 혼자 다녀와도 되고요."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전청운도 혹하는 기색이 있었다.

"저 혼자 갈까요?"

"아니."

전청운이 저도 모르게 날 만류했 다.

"나도…… 나도 가겠다."

결심을 다진 목소리였다.

'그야 나보다는 전청운이 더 간절 하겠지.'

대체 몇 개월째 윤강백의 병실을 지키고 있는 건지.

"자, 그럼. 찾아가 볼까요."

이 잠꾸러기 길드장님께서 얼마나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지.

그 산통을 확 깨줘야겠다.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라고 알려 드려야죠."

나는 준비해 온 깃털 2쌍 중 하나 를 그에게 건넸다.

전청운은 주저하다가 깃털을 받았 다.

꿈나라로 여행을 갈 시간이었다.

눈을 뜨자 익숙한 광경이 들어왔

다.

하얀 건물에 고작해야 20대 초중 반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저마다 검 이며 활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입고 있는 훈련복이 낯익다.

'여기…… 헌터 연수원이잖아.'

나와 이운우도 갔던 곳. 게이트 출 입 자격시험을 따고 나면 기초적인 교육을 받는 곳이다.

내가 연수를 받았던 때보다 건물 이 묘하게 더 깔끔해 보이긴 했다.

'나도 훈련복을 입고 있네.'

게다가 명찰엔 선명하게 '한서하'

라고 적혀있었다. 무의식이 벌인 일 이었다.

'그보다, 전청운은?'

사방을 둘러봤지만 보이질 않았다.

'혹시 실패했나? 아니면, 다른 곳 에 있으려나.'

나는 꿈속에서까지 손에 꽉 쥐고 있는 깃털을 내려다봤다.

깃털이 만들어주는 통로가 꼭 같 은 장소에 생기지 않을 수도 있으 니. 일단은 상황을 좀 지켜봐야겠 지.

그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또 쟤네야?"

"엄청 시끄럽네……. 저 모습도 다 평가에 들어갈 텐데."

모두의 시선이 내 등 뒤쪽을 향했 다. 나는 그들을 따라서 천천히 뒤 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촤악!

"헉, 야! 미쳤어!"

위에서부터 물줄기가 흩뿌려졌다.

공격의 의도도 없고, 순수한 물이 라 맞아도 상관없긴 한데…….

'당신이 왜 여기에?'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멍하 니 앞을 바라봤다. 물에 젖은 것보 다 이게 더 충격적이었다.

"내가 그러게 사람들 많은 곳에선 마법 쓰지 말라고 했잖아!"

"괜찮나? 이거 미안하게 됐군. 우 리 쪽 머저리가 그만 실수를 한 모 양이야."

"야……!"

아마도 마법사로 보이는 푸른 머 리카락의 사내와 그에게 윽박지르 는 모래빛 머리의 여자.

내게 다가와 손수건을 건네는 금

발의 남자까지.

모를 수가 없었다.

'전서호, 혜원 언니, 거기다…… 윤 강백?'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이란 말인가.

'아니. 셋이 연관이 있다는 건 알 았는데……

연수원 동기였어? 그것도 이렇게 같이 붙어 다닐 정도로 친한?

너무 예상 밖의 상황이 펼쳐지자 나도 모르게 멍해졌다.

"얼른 사과해, 멍청아!"

«으

혜원 언니의 재촉에 앳된 얼굴의 전서호가 내 앞에 섰다.

"미안하다. 그, 일부러 그런 건 아 니었고. 저 자식을 맞히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아, 아뇨. 괜찮아요."

전서호의 사과를 받자 혜원 언니 가 끼어들었다.

"옷이 다 젖었네. 여벌은 있어? 없 으면 내가 빌려줄게."

"여벌이요? 그것까진 잘……

아니, 여긴 윤강백의 꿈이라 내 마 음대로 조종할 수도 없다고. 자각몽이긴 하지만 이래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야, 전서호. 너 물만 날려버리는 거 못해?"

"못해. 그건 선생님도 못할걸."

"그것도 못하고. 그러면서 마법사 라 할 수 있냐.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네가 해보든가."

혜원 언니와 전서호가 티격태격한 다. 그 모습이 낯설고 새로웠다.

'현실의 전서호는 훨씬 성숙한 느 낌인데.'

윤강백의 꿈속에서 재현된 전서호 는 그 나이 때 학생 같았다.

"전공이 어떻게 되지? 다음 수업 이 없다면 일단 옷이라도 빌려주고 싶은데."

뒤에서 둘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윤강백이 능숙하게 수습한다.

'학생 때가 많이 행복했던 모양이 지.'

이 웃기지도 않는 연극 속에서 웃 고 있는 걸 보면.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자 윤강백이 고개를 갸웃했 다.

"원거리 딜러예요. 수업은……

나는 아마도 이 안에서도 원거리 딜러 포지션일 거라 생각하며 답했 다. 수업은 잘 몰라서 대답을 머뭇 거리는데,

"어! 그럼 다음 수업 없겠다."

혜원 언니가 구세주처럼 내 대신 대답했다.

"네, 네. 수업은 없어요."

황급히 받아먹었다.

"그럼 잘됐군. 혜원아, 네 훈련복 여유가 있으면 좀 가져와줘. 나나 서호 건 많이 클 거 같으니까."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줘!"

혜원 언니는 저 멀리 사라진다. 축 축하게 젖은 훈련복이 찝찝하긴 하 지만 못 견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윤강백을 옆에서 관찰하는 게 좋으니. 일단은 입 다물고 있어 야지.'

꿈속의 윤강백이 정말 과거 윤강 백의 정신인지, 아니면 현실을 자각 했는데 깨지 않고 있는 건지.

그런 것들도 살펴야 했다.

'겉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 이는데.'

경지에 이른 각성자들은 노화가 느리기 때문에, 윤강백의 얼굴은 내 가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서호랑 다르게 분위기도 현실하 고 비슷하고.'

이거 좀 헷갈린다.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전서호가 픽 웃었다.

"아뭐야."

불쾌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 거야?"

생긋 웃으며 날 바라보는데, 그 웃 음이 아주 낯익다.

'이운우!'

이운우가 자주 짓던 짜증 나는 미 소의 원조가 여기 있었다.

"응? 무슨 소리냐?"

"아니. 별거 아냐."

그러면서 힐끗 날 쳐다본다. 착각 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런다고 오해가 풀릴 것 같진 않았다.

'이렇게 시비 거는 건 그냥 무시하 는 게 편하지.'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자 전서호가 더 기가 차서 하, 하고 헛웃음을 짓는다.

그 사이에서 윤강백이 뭐가 문제 인지 모른 채로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윤강백을 옆에서 지켜보려는 나와, 그런 날 떨어뜨려 놓으려는 전서호 의 기묘한 기 싸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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