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챕터: 기이한 악몽
후학을 양성하는 건 앞서 길을 걸 어간 자들의 숙명이다.
나 역시 헌터로서 그 의무에서 자 유로울 수 없었다.
'회귀 전에는 역천에 들어온 신입 헌터들을 주로 가르쳤지만……
국립 훈련소가 세워진 마당에 누 가 어디 길드에 들어갈지는 중요하 지 않았다.
"다시!"
"넵!"
내 말이 끝나자 원우태가 벌떡 일 어나 다시 달려든다. 연습용 단검을 손에 쥐고서.
후욱!
움직임은 나쁘지 않지만, 경험치가 부족한 탓일까. 패턴이 너무 단순하 다.
탁, 퍼억!
"o 으 I"
단검을 피해내고 팔꿈치 부근을 옆으로 쳐내면서 안으로 파고들었 다.
빠르게 명치 부근을 가격하자, 단 숨에 몸이 휘청거렸다.
"커헉!"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며 뒷걸음 질 친다. 이것도 좋은 습관은 아니 다.
"한 대 맞으면 무조건 뒤로 물러 설 게 아니라 반격을 생각해야죠. 그대로 뒤로 물러서면 본인만 다친
채로 끝나잖아요."
"시정하겠습니다!"
내가 지적하자 원우태가 큰 목소 리로 외친다.
그 얼굴에 땀이 비 오듯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슬슬 체력의 한 계인가.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더 할 수 있습니다!"
"무리했다가 몸이라도 상하면 그 게 더 큰일이에요. 헌터한텐 몸이 재산이니까."
"옙! 명심하겠습니다!"
뭐, 이 정도면 됐지.
경기장 아래로 내려오자 밑에서 구경 중이던 표연원이 물병을 건넨 다.
"고마워."
나도 몸을 움직여서 열감이 느껴 지던 참이었다. 뚜껑을 열고 벌컥벌 컥 마셨다.
"우태 형, 형도 여기."
" 고맙다."
"수건도 있어!"
경진아가 원우태에게 수건도 건넨 다. 땀에 푹 젖은 머리카락을 탈탈털어낸다.
"다음은 저도 봐주세요!"
"마법사는 마법 연습장을 이용하 는 게 좋을 텐데."
"마법 말고 체술이요!"
경진아는 급박할 때 목숨을 보전 하기 위해 체술을 단련하고 있다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 정도라면 내가 아니어도……
"그럼 저랑 대련해줄래요?"
표연원이 끼어들었다.
"맞다, 프로시니까!"
"연원이 얘가 훈련소에서 맞는 사 람이 없어서 일대일 대련을 못하고 있거든요."
경진아와 원우태가 한마디씩 거든 다.
"그런 건 아니고…… 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표연원이 담담하게 눈을 마주해왔 다.
손등을 뒤덮은 계약의 표식이 이 제는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 스럽다.
"……올라와."
내 허락에 얼굴이 확 밝아진다.
" 진짜요?"
"그래. 체술은?"
"아직 부족한 편이에요..
"그럼 둘 다 능력을 사용하는 걸 로 하고, 승부는 둘 중 하나가 실 전이었으면 죽었겠다 싶을 때 내기 로 하자."
대련이라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게 디메리트가 깔려있다. 내 주무기 가 '총'이기 때문이다.
'고무탄을 넣은 연습용 총을 사용 할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 익숙
하지 않아서 다루기 어렵기도 하고, 학생들을 상대로 그럴 필요까진 없 겠지.'
결국 나는 다시 연습용 단검을 집 어 들었다.
회귀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총이라면 죄다 실탄이나 마력탄만 다뤄봤기 때문에 연습용 총은 낯설 었다.
"심판은 따로 없이 각자 판단하는 걸로. 어때?"
"좋아요."
결연한 어투였다. 표연원과 검을 맞부딪치는 날이 올 줄이야. 새삼감회가 새롭다.
우리는 경기장 위에 다시 올라가 마주 섰다.
'표연원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땅에 서 식물들이 자라나게 하는 거였 지.'
그렇다면 나는 표연원의 카운터나 마찬가지다. 식물에 붙잡혀도 공간 간섭으로 벗어나면 그만이니까.
'이 상성의 차이를 어떻게 해결하 려나?'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피면 표 연원의 전투 센스를 알 수 있겠지.
"준비하시고!"
경진아의 경쾌한 목소리가 상념을 깨워냈다. 표연원은 눈을 감고 가만 히 서 있었다.
"시작!"
훅, 촤악!
순식간에 1합이 지나갔다. 공간 간 섭으로 표연원에게 달려든 나를 어 느새 솟아난 식물의 줄기가 붙잡아 냈다.
"누나의 능력은 이미 알고 있어 요."
그렇겠지.
나는 퍼뜩 뒤로 이동하며 단검을 빼냈다.
"그 능력 덕분에 하늘을 자유롭게 비상하겠지만……
딱!
표연원이 손가락을 부딪치며 소리 를 내자 바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 다.
"땅이 있으면 여긴 제 구역이에 요."
촤아악!
쿠구구구구!
바닥이 쩌적 갈라지면서 사방에서
식물 줄기가 솟아났다. 나는 허공으 로 도망쳐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럼 공평하죠?"
징그럽게도 바닥은 온통 식물 넝 쿨로 뒤덮였다. 미쳤군.
'좁지 않은 범위인데. 이걸 전부?'
만약 내가 땅을 딛고 싸우는 전사 였으면 끔찍한 상대였을 거다.
"대단해. 내 능력이 아니었으면 바 로 붙잡혔겠어."
"그렇죠?"
뿌듯해하는 표연원에겐 미안하지 만 이건 칭찬이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 정도 잔재주는 실력만 좀 쌓이면 누구나 피할 수 있어!"
공간 간섭.
싸움은 결국 스스로 하기 마련이 지. 놀란 눈을 한 표연원과 잠시 시선을 마주한 뒤, 곧장 식물들이 앞을 가려온다.
'평소라면 그냥 총으로 뚫었겠지 만.'
내 손에 들린 건 무딘 대련용 단 검이다.
'한 번 더, 공간 간섭!'
식물들이 이 앞을 막을 때 비어있 는 뒤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생각보 다 대웅이 빠르다.
터억!
단검은 식물 줄기에 가로막혔다. 단단한 줄기에 흠집을 내는 게 고 작이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보세요!"
후욱!
식물 줄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날 노린다. 능력으로 자리를 피하자, 피한 곳 근처에 있던 줄기가 휘적 휘적 공격한다.
휘익! 쿵, 투두둑!
대련용 단검도 잘 사용하면 상대 를 베어낼 수 있었다.
나를 노리는 식물들을 끊임없이 피하고, 공격한다.
'이대로는 끝이 없어.'
영원히 공격과 수비를 반복할 뿐 이다. 이 고리를 끊어내려면 역시 시전자인 표연원을 공격하는 게 빠 르겠지만…….
'시전자를 지키는 식물들은 더 단 단해. 이 무딘 단검으로 베어낼 수 가 없겠는데.'
이거,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지만 헌터는 아이템을 가린다는 말이 괜 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봐야겠네.'
나는 식물들을 쳐내다가 공중으로 이동했다. 천장에 가까울 정도로 높 이.
그리고 단검을 쥐고, 아래로 하강 한다!
표연원의 머리 위로!
"윽!"
그런 날 보고는 황급히 자신의 주 변에 식물로 만들어진 벽을 세운다.
하지만 중력에 가속도까지 붙은 이상 내 존재 자체가 폭탄이나 마 찬가지 다.
소용없다.
콰아앙!
식물 벽에 부딪히고 얼얼한 통증 이 손목을 강타했다.
파직…….
그리고 벽에도, 금이 갔다.
파스스스 _
벽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면서 표 연원이 보였다. 체술은 내가 훨씬 우위다.
'이대로 단검을 들이대면……
그때, 표연원이 살짝 웃는다.
입꼬리를 비트는 모습에 등골이 오싹했다.
'뭐지. 블러핑? 그것도 아니면
내 시선이 또르륵 굴러 아래로 향 했다.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팔찌.
〈뇌신의 팔찌〉!
내가 그에게 건네줬던 아이템이었 다!
'피해야 하나?'
아니. 다른 방법이 있었다.
'노이트!'
내 손 안에 노이트가 착 감겼다. 익숙한 감각과 함께, 결정은 빨랐 다.
표연원이 스킬을 발동하기 직전, 나 역시 총구를 겨눴다.
철컥.
나 자신에게.
'아늑한 바람.'
탕!
파지지지직!
총성이 울린 것과 전격이 내리꽂 힌 건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 다.
하지만 단기간 무적 상태인 내게 닿진 않았다.
노이트의 소환을 해제하고 단검을 표연원의 목 밑에 들이밀었다.
"끝이야."
내 승리였다. 그런데, 표연원의 얼 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방금…… 뭐였어요?"
" 뭐가?"
"방금, 총으로, 머리를……
충격받은 것처럼 목소리가 덜덜 떨려왔다. 경기장 밖에 있던 경진아 와 원우태도 크게 놀란 낯이었다.
' 아차.'
아직 학생들에게 보여주기엔 좀 과격했나.
"특수 탄환이라고, 총에 맞은 사람 은 일시적으로 대미지를 받지 않는 스킬이……
"그게 뭐예요."
내 말을 표연원이 끊어냈다. 흔하 지 않은 일이었다.
"그게 뭐냐고요."
"음……. 너희가 보기에 좀 유해한 장면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방 금 들었어. 노이트 소환한 게 좀 치사했나? 그래도 그게 제일 적당 한 파훼법 같아서 그랬던 건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뭐가 문젠데.
"……연원아, 그만해. 그게 스킬 발동 방법인데 어떡해."
과열된 분위기에 원우태가 올라와 중재를 했다. 하지만 표연원은 좀처럼 진정하질 못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뱉고서 표연원도 입을 다물었다. 원망스러운 눈빛이다.
"……나도 알아요. 어쩔 수 없는 거."
그래. 스킬 발동이 그 모양인 걸 어떡하란 말인가.
"그런데, 그냥…… 그냥, 제가 아 직 어려서 그런가 봐요. 이걸 이해 못 하는 걸 보면."
마지막에 읊조리는 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나는 아직까지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 죄송해요."
"아냐. 노이트 소환 여부도 조건에 걸었어야 했는데. 내가 좀 안일했 네."
반칙으로 이긴 것 같아서 좀 찝찝 하기도 했다.
내가 말을 내뱉자 뒤에 서 있던 원우태가 경악 어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표연원은 차게 웃었다.
"그렇겠죠."
그러더니 성큼성큼 나가버린다. 도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연원아! 잠깐만, 연원아!"
원우태가 따라 나가고, 빈 경기장 에 나와 경진아만 남았다.
"언니, 방금 그 말 진심이에요?"
" 뭐가'?"
"와. 미쳤다. 걔가 그럴 만했네요."
경진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내 머리를 쏜 것 때문에 저 러는 거 아냐?"
"맞아요! 이상하다, 이렇게 말하면
또 아는 것도 같은데. 일부러 모르 는 척하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래."
표연원도 스스로 많은 각오를 하 고 헌터의 길에 뛰어든 것처럼, 나 역시 많은 것을 감수했다는 걸 알 텐데.
"진짜 다치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도, 쟤는 자기 가족 끔찍이 아끼잖아요. 그래서 충 격받은 거 아닐까요?"
"직접 다친 것도 아니고 시늉일 뿐이었는데."
나로서는 좀 억울하다. 정말 피가 튀어서 정신적인 피해를 입힐 장면 이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거겠죠!"
경진아가 명쾌하게 답을 내렸다.
"요즘 악몽을 꿔서 더 예민한 걸 수도 있어요."
" 악몽?"
"네. 뭐였더라, 자기가 가장 두려 워하는 걸 보여주는 몬스터에 대비 하는 실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악몽을 꾼다고 하더라 고요."
이건 또 새로운 정보였다.
"무슨 악몽이길래?"
내 물음에 경진아가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폈다.
"그게.…"
대체 뭐길래 이렇게 뜸을 들인단 말인가.
"아니에요. 제가 말하기보단, 직접 들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러더니 자신도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야겠다며 후다닥 나가버린다.
'……나중에 물어봐야겠어.'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