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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61화 (161/361)

161 화

한밤중에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푸른빛이 아른거리다 거두어졌다.

'류라임이 잡혔어.'

공간 간섭으로 엿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가서 류라임을 구해야

할까?'

하지만 어차피 공간 간섭의 능력 이 있는 이상 류라임은 언제든지 구출하러 갈 수 있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정말로 신도아 와 정로운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게 더 낭패다.

'일단은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봐 야 해.'

마침 그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벌컥!

"한서하."

에녹 클라우드. 할 말이 있는 기색

이 역력했다.

"류라임을 지하감옥에 가뒀다."

"그래서?"

"동료를 지키고 싶으면 순순히 우 리에게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더 이상 회유나 권유가 아니 었다.

협박이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네 말대로, 그동안 전쟁 포로치곤 극진히 대접하지 않았나."

그래. 이제야 올바른 길에 들어선 걸지도 모르겠다.

같잖게 앞에서만 하하호호하는 것 도 웃긴 일이지.

"선택해라. 네 고향인지, 네 동료 인지."

극단적인 양자택일이다.

여기서 현명한 선택은 차라리 톨 룩에 협조할 테니 류라임을 살려달 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그러다 기회를 봐서 도망치면 되 는 노릇 아닌가.

'5황자에게 했던 거랑 비슷한 거 야. 그래. 조금 돕는 척하다가 정로 운이랑 신도아의 행방만 밝혀지면바로……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리 합리화를 해도, 아무리 이 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해도.

'도무지…… 입 밖으로 나오질 않 아.'

톨룩을 돕겠다. 너희와 협력하겠 다.

그 단순한 말 한마디가 목에 턱하 니 걸렸다.

'하필 상대가 에녹 클라우드라 ...

그 얼굴만 아니었어도 눈 딱 감고

내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 순간 나와 맞부딪쳤던 상대,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합을 주고받던 이를 앞에 두고 그 말을 내뱉자니.

'내 안의 뭔가가 꺾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내가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이 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 같아서 입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았다.

"대답해. 네 고향인가? 아니면, 네 동료?"

"난……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동료를 살려달라고, 류라임을 살려달라고. 그 한마디만 하면 되는 데.

입 안이 바짝 말라왔다.

"난……!"

콰아아아아앙!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바로 옆에서 울렸다. 폭발의 여파로 나와 에녹 둘 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윽! 손이'

낙법을 취하려 했지만 팔이 구속 된 상태라 두어 번 더 구른 뒤에야멈출 수 있었다.

'뭐지? 바로 옆에 있던 창문이 깨 졌어!'

자욱한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찼다. 팔을 들어올려 입가를 가리고 몸을 숙였다.

'대체 무슨 일이지?'

에녹도 함께 날아간 걸 보면 그와 합의된 사안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안에, 에녹과 척질 만한 이들 이……

나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내가 알기로 그럴 만한 인물은 몇없다.

저벅, 저벅.

워커가 바닥을 두드렸다. 익숙한 소음이다.

구둣발이 내 앞에 와 섰다. 연기 탓에 신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걸로도 충분했다.

탁!

구둣발의 주인에게 손을 뻗자 곧 장 내 손을 잡아채고 달려 나간다.

철그럭!

"윽, 거기 서!"

에녹이 한발 늦게 우릴 잡으려 했

지만 우리 쪽이 더 빨랐다.

냉기가 얼핏 코끝을 스쳤다고 느 꼈다.

촤좌좌좌좍!

바닥을 타고 얼음이 솟아났다.

날카로운 끝이 에녹의 목덜미에서 멈춰 선다.

바람이 불고, 연기가 가셨다.

"정로운 씨."

순박한 눈매에 단정한 외형의 사 내가 그곳에 서 있었다.

펜던트를 한 손으로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붙잡은 채로.

"대장. 그 수갑 아직도 달고 있었 어요?"

그가 날 보며 빙긋 웃는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곳곳에 고생 한 흔적이 보였다. 살이 좀 빠지면 서 마냥 소년 같던 얼굴이 성숙하 게 변했다.

'역시. 이 안에 갇혀있는 게 아니 었어.'

정로운과 신도아. 그 둘은 탈출했 던 거다. 우릴 뒤따라오는 마차 안 에서!

"행방이 묘연해서 한창 찾고 있었

는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파악!

에녹이 자신의 목을 겨눈 얼음 조 각을 한 손으로 박살냈다.

콰드득.

얼음 조각이 손아귀 안에서 박살 나 바닥에 떨어졌다.

"덕분에 고생 좀 했죠. 따라붙는 사람들 피해서 도망치느라."

"다른 한 명은 어디 갔지?"

정로운이 고생한 이유도 에녹이었 던 모양이지.

"신도아 씨라면 아마도 밖에서 한

창 날뛰고 있을걸요."

과연. 이렇게 큰 폭발이 일어났는 데도 병사가 몰려오지 않아 이상하 다 생각하고 있었다.

'신도아가 병사들을 상대하고 정로 운만 내 쪽으로 잠입한 거구나.'

차라리 잘됐다. 나는 이 둘의 안위 를 걱정하며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 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얌전히 있을 필요는 없지.'

철커덕, 탁!

가볍게 공간 간섭을 사용하자 수

갑만 바닥에 떨어졌다.

'노이트!'

허공에 손을 휘젓자 노이트가 내 부름에 답했다.

손아귀에 착 달라붙는 이 그립감 이 그리웠다.

"정로운 씨. 상대하지 말고 도망쳐 서 신도아 씨 쪽에 합류해요."

나는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정로 운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나는 공간 간섭을 발동하며 뒷말을 이었 다.

"저는 류라임 씨를 구하러 지하로

가있을게요."

"알겠어요!"

팟!

눈을 감았다 떴다.

지하의 차갑고 습한 공기가 감돌 았다.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 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잖아.'

천장이 돌덩어리였다. 벽도 건축물 들이 덧대어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돌이다.

"서하 님! 여기예요!"

저 안쪽 지하감옥에서 류라임이

목소리를 냈다.

"구하러 오실 줄 알았어요! 우와, 살았다! 여기 너무 더럽고 축축했 거든요."

류라임은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꽤 튼튼하다.

"뒤로 물러서요."

"네? 아, 네!"

내 말에 류라임이 반갑다며 철창 에 바짝 붙었다가 뒤로 물러섰다.

'관통하는 철화'

우우우웅!

탕!

두꺼운 벽이 아니기에 에너지를 잠깐 모았다가 뚫어냈다.

철문의 이음새를 파괴하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만세!"

"밖에 정로운 씨랑 신도아 씨가 있을 겁니다. 일단 그쪽으로 합류한 다음 핵을 찾는 게……

"아, 핵!"

류라임이 퍼뜩 생각난 것처럼 외 쳤다.

"저 들었어요. 핵이 어디 있는지!"

그런 중요한 정보를 들었다고?

"어떻게 들었습니까?"

"에녹 씨랑 그 로브를 쓴 분이랑 집무실에서 얘기하는 걸 몰래 훔쳐 듣다가 들켰거든요."

함정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 지만 이내 떨쳐냈다.

'함정이라도 일단은 가볼 수밖에 없어.'

류라임에게 어디냐고 캐묻자, 간단 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하에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여 기, 지반이 약해서 금방 무너질 수 도 있다 하더라고요."

역시나. 불안하던 참이었다.

'지하에 동굴이 있는데 그 위에 이 런 거대한 건축물을 지었다고?'

아무리 마법으로 강화를 했다 해 도, 땅에 가해지는 부담이 꽤 클 거다.

지하에 텅텅 빈 공간이 있다면 더 더욱 버티기 어렵겠지.

"알겠어요. 잠시만요."

눈을 감고 공간 간섭을 더 멀리 펼쳐봤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저 밑 까지 내려다보니, 정말로 거대한 빈 공간이 있었다.

'이 형태…… 게이트의 핵이다!'

심장 형태에 두근두근 뛰는 박동. 누가 봐도 게이트의 핵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엄청 몰려있어. 핵도 보호막으로 여러 겹 싸여있는 거 같고.'

그렇다면 굳이 정면승부 하러 들 어갈 필요는 없겠지.

'지반이 약하다는 정보를 들은 순 간부터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지.'

그런 유용한 정보를 활용하지 않 으면 아깝지 않은가.

나는 공간 간섭으로 류라임의 무 기와 스틸레토를 챙긴 뒤, 밖으로 향했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폭발이 일어났다.

'테오도르 특제 폭탄. 소규모 화력 버전도 여유 있게 챙겨둬서 다행이 야.'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것 같았다.

"류라임 씨. 말한 대로 부탁할게 요."

"넵!"

류라임이 낫을 타고 하늘 높이 올

라갔다. 그 사이 나도 해야 할 일 이 있었다.

'공간 간섭!'

팟!

촤아악!

눈을 채 뜨기도 전에 노이트와 스 틸레토를 겹쳐 올렸다. 창날이 코앞 에서 매섭게 빛났다.

" 대장!"

"다시 돌아왔나."

역시나.

정로운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에녹과 맞부딪치고 있었다.

'부상은? 정로운이 더 심각해.'

아직 그가 상대하기엔 이르다. 에 녹은 나와 맞붙어도 승부가 제대로 나지 않는 상대였지 않나.

"죄송해요! 도망치려고 했는데 실 패해서……!"

"괜찮으니까 지금이라도 가요."

"하지만!"

탕!

탄환이 에녹의 뺨을 스쳤다. 그가 낮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날 응시했 다.

"괜찮으니까, 어서요!"

내 재촉에 정로운이 마지못해 자 리를 떴다.

휘이이잉-

바람이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갔 다.

한쪽 벽이 완전히 뚫린 채로 몇 층인지 모를 높이에서 결전이라.

꽤 낭만적인걸.

탓!

우리는 동시에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났다.

"안타까운 인재야."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판단력도 뛰어나고 냉철한 타입 같은데. 뜻을 같이하지 못해 아쉽 군."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얼굴은 덤 덤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네 뜻이 그런 이상. 우린 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웃기는 일이다.

"내겐 처음부터 적이었는데."

그런 가당치도 않은 기대를 했다 니.

'공간 간섭!'

순식간에 에녹의 뒤를 점했다.

철컥.

총구를 그의 둥에 겨눴는데.

푸욱!

탕!

" 윽……

창이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내 어 깨를 가격했다. 덕분에 탄환은 빗나 가서 에녹의 옆구리를 스쳤다.

황급히 다시 거리를 벌렸다. 욱신 거리는 어깨를 다른 팔로 부여잡았 다.

"네 움직임은 전에 본 적이 있지."

부정할 수 없게도, 그가 날 꿰뚫어 봤다. 고작해야 몇 번 합을 주고받 은 게 전부인데.

하지만 에녹도 멀쩡하진 않았다.

옆구리 쪽 제복이 붉게 물드는 게 보였다. 그 역시 부상이 작지 않았 다.

"하, 그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내 가 그를 너무 얕봤다.

"이래야, 에녹 클라우드지."

내가 한없이 몰아붙여도 늘 파훼

법을 준비해오던 사내 아닌가.

톨룩의 연합군에서 골머리를 썩일 때, 유일하게 내 발목을 잡아끌 수 있었던 적장.

"내가 당신을 너무 오래 잊고 있 었나 봐."

나지막이 내뱉은 말을 그는 아마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성수는 없고, 특수 탄환은 아까 하나 써서 남은 건 5발. 거기다 한 쪽 어깨는 부상.'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못 싸울 것 도 없었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은 여기서 시간만 좀 끌어주면 되는거였다.

후욱!

이번엔 에녹이 먼저 창을 휘둘렀 고, 바람 소리가 머리 위를 갈랐다.

자연스럽게 허리를 뒤로 젖혀 피 해내면서 노이트를 겨눴다.

철컥.

휙!

그러나 빙글 한 바퀴 빠르게 돈 창의 꽁무니가 손등을 노리고 날아 왔다. 빠르게 노이트를 허공에 던졌 다.

탁!

창이 지나간 다음, 총이 하강하며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대로, 탕, 탕!

지이잉!

창이 빙글빙글 돌며 탄환을 맞받 아쳤다. 툭, 투둑.

펄럭!

바람이 불어와 바깥의 깃발이 혼 들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나는 총을 그에게 겨눈 채로, 에녹 은 창을 손에 든 채로.

우리는 서로를 맹렬하게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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