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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47화 (147/361)

147화

챕터: 서고에 갇힌 메티스

"사서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덕목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 장 기초가 되는 건 하나죠."

여인은 자신을 '메티스'라고 소개 했다. 메티스는 지팡이와 등불을 들 고 날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메티스라.'

꽤나 절묘한 이름 아닌가. 지혜의 신이자, 제우스의 머릿속에 갇힌 여 신.

그 이름이 마치…… 서고에 갇힌 이 여인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등불이 스칠 때마다 책장이 나타 났다 사라졌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온통 캄캄한 곳이라 제대로 보이 는 게 없었다. 그저 끝없이, 메티스 의 등을 보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 었다.

"이리로 오세요."

메티스가 내게 손짓했다. 그녀의 옆에 가서 섰다.

쿵!

메티스가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쳤 다.

화아악!

그 지점부터 시작해서 바닥에 회 로 같은 것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 했다.

회로는 바닥을 타고 퍼져나갔고, 이윽고 벽을 따라 움직이며 사방을 밝혔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돔 형태의 천장 아래로 온갖 책들 이 벽에 진열되어 있었다.

"사서의 본분은 하나. 책을 찾으러 온 분께, 적합한 책을 찾아주는 것 이죠."

메티스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도서 관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들이 꽂힌 서고가 허공을 날아 다니고, 계단과 촛대가 스스로 움직 여 제자리를 찾아다녔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도서관이

요동친다.

-그 사서는 인간이 아니야. 망령 에 가깝지.

테오도르가 나지막이 남겼던 말이 이제야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제 이름은 메티스."

여인이 다시금 눈을 떴다. 두 눈에 담긴 것은, 어둠. 그리고 그 사이로 찬란하게 빛나는 빛무리였다.

"이 유일무이한 도서관의 사서이 자, 진실의 계약자죠."

그녀가 내게 손을 뻗었다.

"시험을 치르고 싶다면 손을 잡으 세요……. 도망치고 싶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랍니다."

살벌한 경고문이었다. 나는 고민하 다가, 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 다.

후우욱!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으으으윽!"

저절로 아드득 이가 갈렸다. 극심 한 두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파!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아!'

꾹 다문 입술 틈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아버 릴 것처럼 강력한 통증이었다.

'이 감각……! 느껴본 적 있어.'

여러 정보가 한 번에 들이닥쳐 뇌 에 새겨지는 느낌.

수없이 많은 정보들의 바다에서 한 줄기 길을 찾는 감각.

내겐 익숙하다.

'공간 간섭을 펼칠 때. 그 느낌이 야.'

내 휘하에 놓인 공간으로부터 무

한에 가까운 정보들이 흘러들어와 내 뇌 사이사이마다 틀어박히는 끔 찍한 통증 말이다!

'정보가 훨씬 방대하긴 하지만…… 알 수 있어.'

나는 이 정보의 바다에서 어떻게 헤엄쳐야 하는지 알고 있다.

정신을 집중했다.

'쓸모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아.'

내가 찾아야 하는 정보는 정해져 있으니까.

바로, '로스' 가문.

'로스 가문의 멸문에 대한 내

용……!'

명확하게 떠올리자 아수라장 틈새 로 한 줄기 작은 빛이 보였다.

'저곳을 따라가면 돼!'

미약하지만 분명 보였다. 빛줄기가 새어 나오는 곳으로 다가가, 정보를 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치워냈다.

'벨벳 가문, 동방의 향신료, 제국의 도량법……. 모두 중요하지 않은 내 용들이 야.'

적어도 내게는.

그것들을 치워내자 빛이 더 환하 게 들어왔다. 그때부터 좀 의미 있는 내용들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반역. 율리우스 3세……. 미뉴엣 로스.…

드디어 반역이라는 단어와 함께 구체적인 이름들이 나왔다.

'율리우스 3세가 전 황제고, 미뉴 엣 로스가 로스 가문의 마지막 공 작인 건가.'

익숙하면서도 신기한 감각이었다.

끝도 없는 정보의 파도 속에서 헤 엄치는 것은 늘 했던 일이지만. 그 안에서 찾는 게 적의 위치 좌표나 미세한 움직임이 아니라 어떤 사건 에 대한 내용이란 점에서 특히.

'당시 고위 황족이 독살 시도를 당 하고, 범인으로 색출된 하인이 고문 끝에 내뱉은 이름......

여기까지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로스 공작가가 황위 다툼 중 상황 이 불리하게 흘러가자 전세를 뒤집 기 위해 무리하게 수를 쓴 거다.

'그 다음이 이상해지네.'

조금 더 고개를 내밀자 슬슬 이상 한 내용이 얽히기 시작했다.

'신전의 개입, 1황자와 2황녀의 결 탁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있었다.

'스칼렛.'

그 가문의 이름이, 로스 공작가의 역사에 끼어 있었다.

-몰래 스칼렛 가문에 연락을 보 내. 네 가문이라면, 이곳에서 사람 하나 빼내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절망 어린 눈빛으로 날 보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나타롯샤 신학교 게이트에서 내가

맡았던 역할. 리트 스칼렛.

-여긴 미쳤어. 날 믿고 동쪽 끝으 로 가자.

달리아가 리트에게 구원받았고, 동 시에 리트가 달리아에게 구원받은 곳.

그 가문의 이름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잠시 그곳에 멈췄다. 그곳에 는 정확히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 다.

「스칼렛 가는 로스 가가 몰락할

때 침묵했다.」

별것 아닌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문구를 따라가면, 스칼렛 가문에 얽 힌 더 자세한 이야길 찾을 수 있겠 지.

'솔직한 마음으론 저쪽이 더 궁금 하긴 해.'

달리아와 리트 스칼렛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미치광이 스칼렛 가 이 야기를 빼놓을 수 없으니.

나는 슬며시 그곳으로 손을 뻗으 려다 멈췄다.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내 사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다 니엘과 거래를 하기로 했으니까.

고개를 돌려 다시 로스 가문의 비 밀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율리우스력 46년. 로스 가문의 몰 락.'

드디어 찾아냈다.

「사방이 화염에 휩싸였다. 어른은 모두 죽고 어린아이들은 신분을 박 탈당한 채 이곳저곳에 팔려갔다. 로 스 가문의 후계자였던 남매는 그 기록조차 말소되어 행방이 묘 연...j시선을 쭉 내렸다.

「그 뒤로 한동안 언급조차 금지 되었다. 율리우스 3세가 사망하기 직전, 공개되지 않은 유언을 남겼 다.」

아래에 적힌 유언은 대부분 쓸데 없는 내용이었다.

인생에 대한 후회,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그 사이 유난히 눈에 거슬 리는 문장이 있었으니.

1■미뉴엣의 끝을 보며 내 마지막 을 직감했도다.」

미뉴엣 로스. 그 공작의 끝을 보면 서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했다....... 꽤 의미심장한 말이다.

'사인은 지병 악화로 자연스러운 편인데.'

미심쩍은 부분은 젊었을 때 정정 하다가 30대 중반부터 갑자기 시름 시름 앓기 시작했다는 점 정도다.

'율리우스 3세는 로스 공작과 꽤나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지.'

그 둘은 비슷한 또래라 함께 아카 데미를 나오면서 친분을 쌓았다.

미뉴엣의 마지막을 보는 율리우스

3세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을 텐데.

'그렇지만 결정적인 단서라고 보긴 어려운……. 어?'

저 뒤편에 아스라이 사라질 것처 럼 희미한 빛이 보였다.

'저게 뭐지?'

손을 뻗어보지만 주변에 잡다한 정보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탁!

팔을 쭉 뻗자 겨우 손끝이 닿았다.

「너무 늦게 알았도다. 거짓된 증

거에 속아 친우를 저버린 내 잘못 이 몹시도 크다니잠깐. 거짓된 증거?

「그 간악한 술수에 넘어가다니. 후손들이여, 만일 그 녀석의 이름이 후대에 널리 칭송받거든 고개를 들 어 진실을 보라. 그 이름은……」

후우우욱!

뒷말은 이어서 볼 수 없었다.

"어……?"

어딘가로 빨려드는 느낌 직후, 나 는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 현실......

그래.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훌튱해요."

뿌듯하게 미소 짓는 메티스가 시 야에 가득 들어왔다.

"모처럼 괜찮은 응시자가 왔다니 기쁘네요. 진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서만큼 말도 안 되는 건 없으니 까요."

그 칭찬의 말들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정보의 바다 속에 빠져 허우적대 지 않는 것. 그게 사서의 기본인 건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몰라도, 그 안 에서 길을 찾는 건 내겐 익숙한 일 이었다.

"한 번만 더."

나는 메티스의 손을 붙잡았다.

"한 번만 더 들어가게 해주세요. 아직,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 요."

'그 이름'이 무엇인지. 스칼렛 가 문은 어떤 곳이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저런."

메티스가 작게 혀를 찼다.

"작은 지식을 탐하다니요. 사서가 되기엔, 너무 큰 결함이군요."

그녀가 담담히 날 꾸짖으며 말했 다.

"이 유서 깊은 도서관은 규모가 상상 이상이랍니다. 일반 사서는 도 저히 감당할 수 없죠."

메티스가 가볍게 손짓하자 책장들 이 일어나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빙그르르 돌았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은 총체. 살아있는 인류의 지식 그 자체."

내가 어쩌다 이런 곳에 발을 디딘

거지. 테오도르가 했던 경고가 뼈저 리게 실감났다.

"메티스.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오로지 메티스의 사명을 다하기 에…… 당신은 욕심이 너무 많군 요."

날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한다.

"돌아가세요."

갑작스러운 축객령이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도 그 재능 은 탁월해 보였는데. 치명적인 결함 이 있다니 아쉽네요."

이런. 그것까지 들켰나. 생각보다

많은 걸 보고 있는 모양이다. 두 눈을 감은 채로.

"당신이 왔다 간 사실만이 이 도 서관에 남을 겁니다."

그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저기요?"

등불이 멀어지면서 다시금 나는 어둠 속에 홀로 남았다. 내 손조차 보이지 않는, 끔찍한 곳에 말이다.

"잠시만요! 난……!"

내 목소리조차 어둠에 가려 들리 지 않는 듯했다.

소리가 먹혀들어, 입을 벌리고 뻐

끔거릴 뿐 어떤 소리도 귀에 울리 지 않았다.

지독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나는 한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가 만히 있노라니 내 존재조차 인식하 기 어려웠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감각도 흐려질 때.

아득한 소음이 들려왔다.

- ……하! 한…… 일어……

- 헌……님! ……터님! 일……세 요!

물속에 잠겨있다가 갑자기 지상으

로 뛰쳐나온 것처럼, 혹은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나는 강제로 끄집어내졌다.

"허억!"

모든 감각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 손끝 에 와 닿는 차가운 바닥. 거기다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까지.

"괜찮은 게냐? 갑자기 신호가 흐 려져서 서둘러 접속을 끊어냈다!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으냐?"

테오도르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냈다.

" 아."

그제야 현실이 파악됐다.

"나…… 도서관의 일부가 될 뻔했 어."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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