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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46화 (146/361)

146화

그럴 수가.

"배신자……?"

"왜요. 없을 줄 알았어요? 이 제국 에도 배신자가 생기는데, 지구라고 한 명도 없겠어요."

그는 테이블에 놓여있던 와인을 한 잔 더 따랐다. 붉은 포도주가영롱하게 빛났다.

"이곳이나 그쪽이나, 크게 다르지 도 않은 모양이죠."

자조적인 말투였다.

내 머릿속은 한 가지 의문으로 가 득 찼다.

'대체 누가?'

촤르륵, 그럴듯한 인물들이 머릿속 을 스쳐지나갔다. 이윽고, 나와 친 분 있는 이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쳤 다.

'……그럴 리가.'

속으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

서도, 완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생각을 간파한 것처럼 다니엘 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내게 물 었다.

"당신의 세계를 배신한 그 사람. 누군지 궁금하죠?"

"이름을 아나요?"

"당연하죠. 이번에 연합군에서 꽤 나 높은 직위를 받았어요. 몇 번 능력을 시험해보고 쓸 만한 말인 것 같으면 그대로 등용하겠죠."

다니엘은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 다.

"그게 황제 폐하의 방식이니까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으니. 정말로 지구에서 배신자가 나왔다는 소리 인데…….

'대체 누가?'

현 시점에서 톨룩에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 나 된다고.

'설마 차준?'

그가 테오도르 몰래 이 기계에 손 댔을 확률도 있다.

"그냥 알려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 군요."

"당연하죠. 지금 지구에 배신자가 생겼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글쎄다. 어설픈 의심은 화만 부르 는 법인데.

"……원하는 게 뭐죠?"

"우리는 어차피 협상을 하러 이 자리에 있잖아요?"

"그런데요?"

다니엘이 잔을 하나 더 꺼내 와인 을 부었다. 내게 건네며 권하려다 가, 멋쩍게 그만둔다.

"내가 크기를 깜빡했군요. 지구에 선 당신처럼 작은 종족도 인간이라 부르나요?"

"투사체라 작은 겁니다. 원래는 당 신과 비슷한 크기고요."

나는 거의 내 키만큼 큰 와인잔 옆에 섰다. 일단 권유받았으니, 시 늉이라도 해야지.

"이런 얘긴 술을 마시면서 해야 하는데. 아쉽네요."

채앵.

와인잔이 가볍게 부딪히며 고운 소리가 났다.

나도 와인잔을 들진 못하지만, 손 잡이 부근을 잡으며 구색은 맞췄다.

"난 유용한 정보를 여럿 알고 있 어요. 군사 회의에도 자주 함께 참 석하니까요. 황제 폐하가 업무를 볼 때 뒤에서 내용을 슬쩍 훔쳐볼 수 도 있고요."

그가 자신의 유용성을 어필했다.

"당신은, 내게 뭘 제안할 수 있 죠?"

그다음에 내게 묻는다. 내가 뭘 줄 수 있느냐고.

'뭐라고 답해야 적당할까……

내가 다니엘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들. 군사력, 정보, 기술. 모두 괜 찮은 카드였다.

'기술력은 우선 빼둘까. 테오도르 에게 더 물어봐야 하는 내용이고.'

테오도르가 사용한 기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분 명 게이트를 벗어나 지구로 현신했 다.

'그 기술이, 다른 톨룩인들에게 적 용된다면?'

지구에서, 오염되지 않은 땅에서 노후를 보낼 것을 약속할 수 있다 면. 지구에 협력하려는 이들이 훨씬많아질 텐데.

'하지만 위험한 일이야. 검증되지 않은 이를 들였다간 내부에 적을 만드는 꼴이니까.'

게다가 아직은 내게 그 정도 힘이 없다.

이 협의는 어디까지나 나 개인이 주도하는 것이다.

'국가가 나섰다면 주민 등록까지 협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단계에서 논의될 사안 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꺼내들 수 있는 카

드는 2장.

"우선, 군사력을 제공할 수 있어 요."

"군사력이라 하면?"

"로스 공작가는 멸문당했죠. 남은 가솔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 만, 그나마도 뿔뿔이 흩어져있겠 죠."

로스 가문의 이름을 꺼내자 다니 엘이 눈썹을 크게 휘었다. 영 아니 꼽다는 눈치였다.

"그러니 당연히 따로 보유한 사병 은 없을 거고요. 그 부분을 채워줄 수 있죠. 수족처럼 움직이지는 못해

도, 의견이 맞으면 함께할 수 있으 니까요."

우리가 다니엘의 사병처럼 움직이 진 못하겠지. 우리도 지켜야 하는 대상이 따로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서로 필요한 때가 있을 거 야.'

우린 다니엘의 정보력이, 다니엘은 우리의 군사력이 필요한 순간 말이 다.

"그다음엔 우리도 정보를 줄 수 있죠."

"지구의 정보를요? 내게 필요한 건 아닌데요."

"필요할 겁니다."

다니엘도 지금 당장은 호위무사지 만 나중엔 참전하게 될 테니까.

"당신이 참전했을 때, 공로를 만들 어줄 수 있어요."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벌이자는 거다.

우리가 적당히 게이트를 내어주거 나 후퇴할 때, 다니엘이 그 공로를 집어먹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위험 부담이 큰 거래야.'

내가 이중스파이로 몰릴 위험도 커지니까.

'하지만 감수할 필요가 있다면 시 도해야겠지.'

다니엘에게 공로를 몰아줘서 그가 더 높은 위치에 서게 되면, 그 역 시 우리에게 이득이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이 더 높아질 테니까.

"일단은 보류하죠. 당장 필요한 사 안도 아니니까."

"좋아요. 그럼, 아까 얘기로 다시 넘어갈까요."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얘기 였으니까.

"지구의 배신자. 그 정보를 주는 대가로, 뭘 원합니까?"

나는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결국 다니엘과 나 사이의 협력은 이 정 도였다.

아직 서로 신뢰를 쌓지 못했으니, 하나하나 흥정을 할 수밖에.

다니엘이 눈을 휘며 웃었다. 기다 리고 있었다는 듯이.

"당신은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기술을 가졌죠."

"그렇다고 하면요?"

"나는 접근할 수 없는 곳. 그곳에

다녀와 줬으면 하는데요."

이건 서두부터 아주 불안했다. 황 제의 측근인 다니엘이 다녀오지 못 하는 곳이라.

"어딜 말하는 겁니까?"

다니엘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읊조렸다.

"황제의 서고."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으나, 끝내 흘러넘치고 만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곳에서, 로스 가문에 대한 기록 을 찾아주시죠."

노란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정확히 어떤 기록을 찾고 싶 은가요."

"멸문했을 당시의 이야기를 찾고 싶어서요. 뭐, 뻔한 얘기겠지만."

역시나.

다니엘 블랙. 아니, 다니엘 로스.

그는 자신의 가문이 몰살당하던 그때에 뭔가 의문을 품고 있는 것 이다.

'로스 가문이 정말로 반역을 꾸몄 는지, 그게 궁금하겠지.'

이거 일이 복잡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따지면 그는 우리 쪽

의 군사력을 요구한 것이다. 방향성 이 좀 다르긴 했지만.

'호위 기사로 묶여 있는 다니엘에 게 필요한 건 수족처럼 부릴 수 있 는 타인이지.'

이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군사력이라고 거창하게 칭하기엔 좀 우습지만, 결국 타인의 노동력을 원하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황제의 서고에서 해 당 정보를 얻게 되면 다시 찾아오 죠."

애먼 사람들을 의심하는 것보단, 좀 더 고생해서 확실한 정보를 얻는 게 낫겠지.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테오도르는 황망한 얼굴을 했다.

"네가 그곳은 어떻게 아느냐? 아, 아니지. 괜한 걸 물었다. 네가 이상 한 걸 알고 있는 게 한두 번도 아 닌데."

그래. 내 정보의 출처를 묻는 게 슬슬 헛된 일이란 걸 테오도르도 알아가고 있었다.

'일단 저쪽 세계에서 얻은 정보들 은 나만 알고 있는 게 낫겠어.'

지구에 배신자가 있단 걸 알아버 린 이상 더 조심해야 했다.

"황제의 서고라……. 그곳의 존재 를 아는 자들도 드물거늘."

"보통 모르는 일이야?"

"모르고말고. 황제와 그 일가 그리 고 그들의 최측근만 안다. 서고에는 황족들만 출입할 수 있고."

생각보다 비밀스러운 곳이었군. 그 런데, 황족들과 그 측근들만 안다더 니.

'테오도르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 지?'

나는 속으로 질문을 삼켰다.

'톨룩 시절의 일을 얘기하는 걸 좋 아하진 않으니까. 일단 모르는 척할 까.'

테오도르는 내 배려도 모른 채 주 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곳에는 잊힌 역사들이 많이 묻 혀있다고 하지. 세간엔 알려지지 않 은 '진실'들 말이다. 이따금 추악한 진실은 거짓으로 덮기도 하니……

한마디로 자신들의 치부를 담아놓

은 서재란 뜻이었다. 그 용도가 대 충 예상이 간다.

'자신들의 치부뿐만 아니라 남들의 치부도 다 그곳에 있겠지.'

아주 중요한 순간에 가끔 그 힘을 발휘하라고, 대대손손 내려오는 모 양이다.

"그래서, 그곳 좌표는 알아?"

내 물음에 테오도르는 잠시 멈칫 했다.

모른다고 하면 다시 좌표를 찾는 중노동을 오늘부터 시작해야 했다.

차준이 옆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테오도르를 바라봤다.

"……알고는 있다만."

"그럼 다행이네."

"그곳은 몰래 잠입할 수 있는 장 소가 아니다."

테오도르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충고했다.

"네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걸 봐왔지만, 이번에는 너도 조심하 는 게 좋을 거야. 그 도서관에는 사서가 있거든."

그런 비밀스러운 도서관에 사서가 있다니. 보통 사람은 아닐 텐데.

"사서가 뭐 대단한 무력이라도 갖 고 있나?"

"차라리 그러면 나았을텐데."

테오도르가 뭘 모른다는 듯, 작게 혀를 찼다.

"그 사서는 인간이 아니야. 망령에 가깝지."

불길한 소리였다.

도서관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한

번 더 눈을 깜빡였다. 아무것도 보 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말 그대로였다. 내 손바닥조차 제 대로 볼 수 없었으니까.

'내가 제대로 도착한 게 맞나?'

그런 의문이 절로 드는 때였다.

"당신은 자격이 없는 불청객이군 요."

등 뒤에, 누군가 등불을 들고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 초라 한 행색에, 앞이 보이지 않는지 두눈을 감고 있었다.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녀는 앞을 보지 못하니, 이 등불은 그녀를 위한 것 이 아니다.

'서고를 찾는 이들을 위한 거겠 지.'

아직 나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 는데, 내가 불청객임을 알아차리다 니. 나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 다.

"허락되지 않은 이에겐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습니다. 돌아가세요."

여인이 냉정하게 말하고는 뒤돌아

섰다.

"잠시만요."

"돌아가세요."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곤란하던 참입니 다."

내 태연한 거짓말에 그제야 여인 이 발을 멈췄다.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됩니다."

"왔던 길을 찾지 못해 이러는 겁 니다."

내가 자꾸만 어리광을 부리자, 결 국 여인은 뒤돌아 내게 다가왔다.

"내 앞에서 거짓을 고하지 마십시 오."

그녀가 감은 눈을 떴다.

"당신을 위한 충고입니다."

우주를 담아낸 것 같은 어둠이 그 안에 있었다. 텅 빈 눈구멍 속에서 빛나는 것들을 봤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눈앞의 이 무언가가, 사람이 아니 란 걸 절실히 깨달은 탓이었다.

"돌아가세요."

여인이 다시 한번 내게 경고했다. 하지만, 나도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저는 시험을 보러 왔습니다."

"시험이요?"

"예. 사서 시험 말입니다."

여인이 황급히 뒤돌았다.

탁!

지팡이가 바닥에 쓰러지고, 등불이 나뒹굴었다. 여인이 다급한 손짓으 로 날 붙잡았다.

"사…… 사서 시험을 보러 왔다고 요."

" 예."

"황제 폐하께서 보내셨나요."

"……아니요."

나는 한 번 더 거짓을 고할 수 없 어,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황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다른 분께서 보내서 왔습 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테오도르 에게서 얘길 듣고 온 거니까.

'이 사서 시험에 대한 얘기도 말이 야.'

어디까지나 괴담처럼 전해 내려오 는 얘기라고 했다.

-그 도서관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사서 시험'을 보러 왔다고 말하면 잠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들었지.

영 미심쩍은 것을 말하는 듯한 어 투였지만 내겐 그것 외에 다른 힌 트가 없었다.

"이게…… 얼마 만의 사서 지망생 인지 모르겠군요."

여인이 입이 찢어질 것처럼 웃었 다.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이미 말을

내뱉은 다음이라 돌이킬 순 없었다.

"이리로 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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