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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38화 (138/361)

138화

신분제나 귀족 같은 것에 치를 떠 는 대다수의 민주주의 국가 입장에 서, 그의 귀족주의는 끔찍한 일이었 다.

어찌 됐든 지금 난 선전을 위한 인물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지구를 위해 톨룩의 정보를 빼내줄 스파이 를 고르는 중이니 그건 고려사항이아니다.

"난 다니엘이 우릴 도울 거라고 확신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테오도르에게 이 정도로밖에 말할 수 없어 슬플 뿐이다.

"네가 그렇다면야……

테오도르도 언제나처럼, 이 정도밖 에 날 말리지 못했고 말이다.

전화기를 집어 들고 좌표를 설정 했다.

목표는 딱 한 곳, 다니엘 블랙의 침실이다.

막 눈을 떴을 때, 내 목에는 이미 칼이 들이밀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흉흉한 안광이 날 노 려보고 있었다. 다니엘 블랙. 그 남 자였다.

"요정? 아닌데. 마족들 중 하나인 가?"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고문하면 뭐라도 내뱉겠지."

"잠깐. 전 당신을 암살하러 온 게 아닌데요."

검사다 보니 내가 나타나자마자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았다. 덕분에 이야기가 좀 살벌하게 돌아간다.

'대꾸도 안 하네.'

다니엘은 나와 말을 섞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모양이다. 까다롭기도 하지.

"전 협력 제안을 하러 온 겁니다. 다니엘 블랙."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그는 내가 탈출하지 못하게 구속하는 데 집중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내 얘길 듣게 하려면 좀 주의를 끌 필요가 있으니까.

"황제를 죽이고 싶지 않습니까?"

그 말에 다니엘이 멈칫했다. 그러 나 그는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 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기고는 씨익 웃었다.

"뭔가 잊은 모양인데, 저는 황제 폐하의 직속 호위 기사입니다. 사람 을 잘못 찾아왔어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제가 황제 폐하를 해치길 원했으

면 평소에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건 생각 못 합니까?"

그래.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황제를 죽일 자신이 없지 않습니 까."

그의 말대로, 평소에 더 많은 기회 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 부였겠지.

"황제는 신의 가호를 받고 있으니 까요."

이번엔 다니엘이 침묵했다. 그 말 대로다.

'황실 대대로 내려오는 가호. 황실

혈통의 근간이며, 신에게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증거가 되어주는 확실 한 징표.'

그 때문에 황실이 지금까지 그 굳 건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일 수 없는 절대 권력!

'그것만큼 끔찍한 게 어디 있을 까.'

그러나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 다니엘이 서늘하게 웃으며, 다시 목 에 칼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3황자 쪽에서 보낸 모양이죠? 그 쪽도 참 쓸데없는 짓을 한다니까."

"잠……

서걱.

변명의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섬 뜩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허억.…"!"

다음 순간 나는 공방에 돌아와 있 었다. 손을 올려 목덜미를 더듬었 다.

"응? 일찍 돌아왔구나."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웅 웅 울렸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 니, 아주 명확했다.

'내 목을 잘랐어.'

정확히 말하면 투사체의 목을 말 이다. 투사체는 어디까지나 분신이 라 본체엔 아무런 영향도 오지 않 는다.

'소름끼치는 감각이야……

아무 영향이 없다고 해서, 그 느낌 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분명 나는 내 목이 떨어지는 소리 를 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게냐?"

"허, 헌터님! 여기 물 좀 드세요!"

차준이 가져다주는 물을 한 모금

마시니 좀 진정이 됐다.

'후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되겠는데.'

다니엘과 대화하기가 쉽지 않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순 없 지.'

이사벨라는 사교계의 일원일 뿐, 군사 정보에는 직접 접근하지 못한 다.

'효율적으로 정보를 빼먹으려면 다 니엘의 도움이 꼭 필요해.'

황제의 호위 기사이니 군사 회의

에도 함께 참석할 때가 있지 않겠 는가.

"다시 갔다 올게."

"조금 더 쉬다 가지 않고?"

"응. 다시 가봐야지."

조금이라도 미루면 그사이 다니엘 이 수상한 침입자에 대한 얘길 위 에 보고할 지도 모른다. 지금 다시 만나러 가야 했다.

내 단호한 대꾸에 다른 이들도 토 를 달지 않았다. 말없이 바닥을 나 뒹굴던 전화기를 다시 손에 쥐여 준다.

삐빅, 삑.

좌표를 입력하고 눈을 감았다.

"어라?"

그가 검에 달라붙은 핏물을 닦다 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내 목이 잘렸던 곳에.

"시체가 사라져서 무슨 일인가 했 는데…… 다시 나타나기까지? 이거 참. 제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

닌가 싶을 정도네요."

놀랍다는 어조면서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다.

자신이 정신계 공격을 당하고 있 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전 지금 투사체 상태거든요. 지금 죽여봤자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 다."

"투사체라……. 연구소 쪽에서 보 낸 거였나요? 아닌데, 그쪽은 국립 인데……. 애초에 연구소도 배신자 때문에 쑥대밭이 됐고……

저기서 말하는 '배신자'는 아마도, 테오도르를 가리키는 거겠지.

'역시 연구소 자체에 타격이 간 건 가.'

이미 게이트 생성은 거의 인공 지 능이 담당하니 연구원들 여럿 숙청 한다고 한들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었을 거다.

"연구소도 아닙니다. 전 아예 다른 곳에서 왔거든요."

"대체 어디에서 왔다는 겁니까?"

"지구. 저는 이계에서 왔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한동안 침묵이 내 려앉았다. 다니엘은 내 말이 헛소리 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꾹 참는듯했다.

'그야 이 현상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테니까.'

이 '투사체' 기술은 연구소의 것이 다.

그런데 최근 연구소는 대규모 숙 청이 일어나 대부분 불구가 되거나 감옥에 갇혔겠지.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다시 기술을 복구해낼 상황은 아닐 거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투사체라. 그 기술력이 누구에게 있겠어?'

딱한명.

도망친 배신자.

테오도르, 오직 그뿐이다!

그자가 지구로 도망쳤다는 걸 황 제의 최측근인 다니엘이 모를 리 없겠지.

"전 지구 대표로, 당신에게 협력을 제안하러 온 겁니다."

이제부터 이야기가 흥미로워질 거 다.

"황제를 죽이기 위한 협력 말입니 다."

당신도 분명 황제를 죽이고 싶을 테니까. 왜 그렇게 확신하냐고? 그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이 사람, 다니엘 블랙 경에게도 숨 겨진 이름이 있다.

"다니엘 로스. 우리와 함께하시겠 습니까?"

반역을 꾀했다는 누명을 쓰고 멸 문당한 비극의 가문. 로스 공작가. 그 로스 가의 하나뿐인 생존자.

다니엘 로스. 이 남자였다.

"하……. 대체 어떻게 안 거지?"

그가 얼굴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당연히 극비였겠지. 반역자의 후손 이 황제의 호위 기사라니.

"다 아는 수가 있죠. 지금은 없어 진 방법이니 안심하시고요."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낸 데에는 그의 시신의 공로가 컸다.

'로스 가문의 상징은 뼈에 새겨져 있으니까.'

로스 가문 사람들은 특정한 문양 을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데, 다니엘 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그 문양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톨룩의 고대 문헌들을 수 집한 다음에야, 로스 가문이란 걸 알아냈고.'

그런 다음에 로스 가문이 반역을 꾀하다 멸문했다는 건 그다지 비밀 도 아니었다.

'지금 즉위하고 있는 황제가 황위 다툼을 할 때, 이 로스 가문을 잡 아낸 공로로 황태자 자리에 올랐으 니까.'

즉. 이 다니엘 로스의 가문을 직접 멸살한 것이 바로…… 지금의 황제 였다.

'그러니 황제를 증오할 수밖에.'

그야말로 가문의 원수다.

그 분노를 삼키고 꾸역꾸역 이 자

리까지 오른 것이다. 가문의 원수를 옆에서 지켜가면서 기회를 노렸던 거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지구를 정벌 하지 않으면 저도 이 오염된 땅에 서 죽게 될 텐데요."

"본인이 죽더라도, 하다못해 제국 민 모두를 죽이더라도 황제만큼은 죽이고 싶었던 거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가 전쟁터에서 싸울 때 스파이 노릇을 했던 거 아닌가.

"제가요? 그 정도로 악에 받쳐 보 이나요?"

생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런 생각을 하긴 어렵지만…….

우린 분명 알았다. 이 남자가, 아 주 오랜 시간 공들여 복수를 준비 했다는 걸.

"하하……. 뭐, 됐어요. 지구라 ……. 그쪽을 염두에 두고 있긴 했 지만, 이렇게 바로 날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죠.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어차피 어떤 식으로 협력할지, 어 디까지 정보를 교류할지 등을 결정 하려면 우리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잘 생각해보시고, 현명한 판단 하

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남기고 나는 연결을 끊었 다.

'아마도 긍정의 대답을 내놓을 확 률이 크겠지.'

그가 황제의 '신의 가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말이다.

'황제를 죽이고 싶다고 결심했을 때, 나머지 제국민들은 포기할 마음 을 먹었을 테니까.'

더불어 다니엘이 아직 지구에 대 한 거부감이 적은 것도 한몫할 터 였다.

'제대로 된 사회체계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지.'

하긴. 이건 꽤 위험한 사상 아닌 가. 평등사상은 언제나 신분제 사회 의 지배계층을 위협해왔으니까.

'비욘드가 군침을 삼키고 있는 지 금, 지구의 평등 사회에 대한 정보 는 통제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야.'

적어도 지배계층들에겐 말이다.

* * *

한번 실패한 전쟁 게이트를 되찾

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톨룩 측에서 많은 병력을 투자해 자신들 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 다.

'이미 우리가 후퇴한 3-2 전쟁 게 이트……. 그러니까 검은 화산 게이 트는 톨룩의 적진이라고 봐도 무방 해.'

특히나 그 상대가 마족이라면? 아 주 끔찍한 일이다.

'마족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강한 종족이야. 상대하기 까다로울 거 야.'

그냥 인간들의 본진도 되찾기 어

려운 게 현실인데, 마족들의 본거지 라.

'거기다 벨제부브……

연화도 게이트 이후 잊고 살았던 그 자식까지 나타나다니.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단 하나라도 전쟁 게이트가 이 땅 에 남아있는 한, 톨룩의 침략은 멈 추지 않을 테니까.

2차 토벌에 대한 회의가 여러 번 이어지는 가운데.

"서하 언니! 오랜만이네."

회의실 복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애가 서 있었다.

"……유라야."

"잘 지냈어?"

웃는 얼굴이 예전과 똑같았다.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2차 토벌대에 너도 참가하는 거 야?"

"응! 와, 나 퇴원하고 운우 오빠 권유로 한동안 좀 여행 다녀왔거든. 근데 다녀오니까 완전 난리 나 있

더라!"

이운우도 안유라가 곧장 복귀하기 보단 좀 더 시간을 두고 돌아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운우의 판단은 정확했다.

왜냐하면 내가 크게 혼란스러운 상태가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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