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화
부대에 들어오기 전에 거치는 건 강 검진 중 일부라고 속여 데려온 정신병원에서, 나는 예상한 선고를 들었다.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의사는 안경을 쓸어 올리며 몇 가 지 말들을 덧붙였다.
원래 성인이 된 류라임의 검사 결 과를 제3자인 내가 듣는 게 정상적 인 일은 아니다.
'이운우의 추천을 듣고 찾아온 병 원이라 다행이네.'
그가 어떤 이유로 이런 정신병원 과 연이 닿아있는진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이 정도 수치는…… 희대의 연쇄 살인마들과 유사한 정도입니다. 타 인의 아픔에 거의 반응이 없었어 요."
나중에 정말로 희대의 연쇄살인마 가 될 예정이니까.
"이런 경우 사회 적웅에 어느 정 도 문제가 있는데…… 다행히 기본 적인 사회화 작업은 되어 있습니 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을 인식 하고 있긴 하단 의미였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학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 양육자 쪽의 노 력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 양육자의 노력 덕에 성인이 될 때까지 큰 문제없이 자란 거겠지.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는 분들은 뇌의 일부 기능이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태거든요. 이건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개선의 여지가 없나?
"꾸준한 관리만이 유일한 해결책 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높나 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의사는 뇌의 기능적인 문제라 어 쩔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규범을 제대로 지키고 살아온 것을 보면, 앞으로 문제를 일으킬 확률은 적어 보입니
다."
의사가 내 예상과 정반대의 결론 을 내렸다.
"물론 사회 규범을 머리로 이해할 뿐이니 다른 사람들보다 어기기 쉽 긴 하지만. 모든 사이코패스, 소시 오패스 환자분들이 반사회적으로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만약, 전쟁터에 나간다면요?"
"글쎄요……
의사는 별 소릴 다 듣는다는 표정 을 했으나 이내 갈무리했다. 그래, 사이코패스가 전쟁터에 가면 어떻 겠냐는 말은 처음 듣겠지.
"흔히들 사이코패스는 최고의 병 사,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들 하니 나쁜 선택은 아닐지도 모르겠 네요."
의사는 내 말을 농담이라 생각했 는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난 진지했는데 말이다.
"감사합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올게 요.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게 해주시 고요."
나는 류라임을 데리고 병원을 나 왔다.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저, 합격
인가요?"
류라임이 웃으며 물었다 최고의 병사, 최고의 리더.
반사회적인 일이 판을 치는 전쟁 터에서 사이코패스는 오히려 하나 의 스펙이 될 수도 있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계 속 찜찜한 마음이 드는 건.'
나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 걸까.
잠시 고민하다, 결국 승낙의 말을 내뱉었다.
"축하해요. 견습 요원이 된 걸."
"감사합니다! 와아!"
지금 의사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문제를 일으킬 확률은 적으니, 병원 에 입원시킬 필요도 없다고 하겠지.
'그렇지만 그냥 사회에 내보내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커.'
그러니 일단은 옆에서 지켜보면서 견습생에서 내칠지 정식 요원으로 입단시킬지 결정하기로 했다.
'능력을 계속 흡수해도 내가 상대 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하려면 시 간이 한참 걸릴 테니까.'
그 사이에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병원에 보내면 되는 거다.
'그래. 일단은 지켜보자.'
불안한 마음과 함께, 류라임과 정 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하늘이 붉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붉은색이었다. 노을이 지는 것처럼 노란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져 일렁 이고 있었다.
그 사이로 까마귀들이 날아다녔다.
까악, 까악.
불길한 소음이 울린 다음에는, 낄 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뒤따라 붙었 다.
"이상한 곳이야."
"기이한 느낌이 드는데……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런 배경은 사람들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 니까. 그게 녀석들의 목적이다.
-까악, 까악!
-키키키킥…… 낄낄낄낄…… 하하 하하하...
기괴한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회귀 전에도 2번째 전쟁 게이트에 는 마녀가 출현했었지.'
첫 번째 전쟁 게이트에서 큰 패배 를 겪은 지구는 인간에 대한 대응 책을 철저히 준비했는데.
그 외통수로 마녀를 데리고 나왔 으니 또다시 농락당할 수밖에 없었 다.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말 해두긴 했는데……
나는 까만 집 게이트에서 마녀, 레 태흐태드를 마주한 적이 있었으니 까 말이다.
그때 얘기를 겸하면서 이번 게이 트에 마녀들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해뒀었다.
"진짜 마녀네요."
마치 내 예상이 우연히 들어맞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내 말이 끝나자 마자 혜원 언니가 물었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데. 어떻게 알아?"
"보이는 게 없다뇨?"
아차.
나는 마녀를 알고 있기에 자연스 럽게 떠오른 것이, 이들에겐 당연하지 못했다.
"저 까마귀들…… 눈이 붉죠?"
"그런데?"
"마녀의 사역마란 소리예요."
저 까마귀가 곧 마녀들의 눈이었 다.
-까아악!
붉은 눈을 한 까마귀가 거칠게 울 었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꺄하하하하하!"
"냐하하하하하!"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인간들이 자안뜩 모여있어!"
"징그러워, 징그러워!"
쌍둥이 자매인지, 닮은 얼굴을 한 둘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왔다.
"이해할 수 없다니까? 왜 스스로 죽지 않는 거지?"
" 정말로!"
고작해야 열댓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저 나이의 어린애들이……
인간을 증오하는 사념체와 계약할 일이 뭐가 있는 걸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부!"
"청소해버릴 거야!"
둘이 손을 맞잡고, 하늘을 향해 손 짓한다.
"위, 위에!"
"저게 뭐야……!"
인간을 향한 증오가 강할수록 사 념체는 거대한 힘을 빌려준다.
그러니까 저건, 저들의 분노라고 봐야 옳겠지.
어울리지 않게 알록달록한 풍선들 이 허공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은 풍선, 큰 풍선. 크기와 색깔 이 다양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놓인 것은…….
'……열기구?'
열기구라고 착각할 정도로 거대했 다. 답지 않게 깜찍한 곰인형 모양 을 하고 있었지만.
"이 풍선, 닿으면 크게 아플걸?"
"풍선 피하기 놀이야!"
역시나 그냥 풍선이 아니었다.
"마법사들! 방어막!"
"예!"
우웅-
콰광! 쾅!
방어막을 펼치자마자, 풍선과 맞닿 은 곳에서부터 충격이 울려왔다.
풍선이 허공을 두둥실 떠다니다가 방어막에 살짝, 닿으면.
콰콰콰콰콰쾅!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클수록 폭발력이 훨씬 커. 그럼 저 열기구가 터지면……
얼마나 큰 폭발이 일어날지. 섬뜩 한 일이다.
쿠구구구궁!
"으윽……! 쿱, 커 억……!"
"우측! 우측 뚫렸습니다!"
연속적인 폭발에 견디지 못하고 마법이 깨져버렸다. 마법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다시 전개합니다!"
뒤이어 다른 마법사들이 구멍을 채웠지만 그 틈새로 풍선들이 몇 개 들어온 뒤였다.
탕, 탕!
쿠웅! 콰아아앙!
다행히 사람을 인식해서 터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총으로 맞히자 큰 인명피해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뭐야, 뭐야〜. 재미없게."
"그 안에 꽁꽁 숨어있으려고?"
앳된 얼굴과 투덜거리는 내용의 괴리감이 기괴하다.
"이번엔 내 차례! 솟아올라라, 얍!"
다른 한 명이 손짓하자 바닥이 꾸 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 하는 사이. 흙으로 빚어진
녀석들이 사람의 형상을 갖춘다.
'골렘!'
마녀의 창조물. 골렘이었다. 골렘 이 느릿느릿 일어나 방어막을 두드 리기 시작했다.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직접 상대하면 끝이 없을 겁니 다!"
"일단 버틴다! 방어막 안에서 버텨 라!"
자. 나머지 사람들은 꼼짝없이 이 안에 갇히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나설 차례
다.
"13부대. 대기."
"옙!"
"네에!"
정로운과 류라임이 뒤따라 답했다.
류라임은 아직 현장에 나설 실력 이 아니니, 정로운만 데려갈 것이 다.
"정로운 씨.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의 목에서 아른거리는 것이 다 정 언니가 애써 잠금을 풀어준 그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겨울 바람의 펜던트(귀속)〉
등급: S
설명: 겨울을 다스리는 여신의 손 길이 닿은 펜던트입니다. 소유자의 영혼에 귀속되며 주인과 함께 성장 합니다.
부여 스킬:
1. 부유하는 힘(액티브/공중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컨트롤에 주의하십시오.)
2. 얼어붙어라!(액티브/원하는 장
소에 원하는 만큼 얼음을 생성합니 다. 숙련도의 영향을 받습니다.)
단순히 이 아이템뿐이라면, 정로운 이 나중에 그렇게까지 각광받지 못 했을 거다.
'여기다, 정로운의 고유 스킬이 첨 가되면 그야말로 날개 돋친 격이 지.'
정로운의 고유 스킬.
' 액셀'
자동차의 가속 장치에 비유되는 이 능력은…… 말 그대로. 능력을' 가속'한다.
그 절묘한 조화가 이루어지면..... 이런 게 가능해지는 거다.
쿠구구구구궁!
"우왓! 이게 뭐야!"
"깜짝 놀랐잖아!"
순식간에 바닥에서 솟아오른 얼음 벽이 마녀들을 위협했다. 퍼뜩 놀라 위로 솟구치지 않았다면, 이미 게이 트가 끝났을 것이다.
"전 먼저 가 있을 테니 따라와요. 류라임 씨는 좀 더 대기해주고요."
"옙!"
"네에!"
'공간 간섭'
눈을 감았다 뜨니, 코앞에 마녀들 이 있었다.
"뭐야, 이제 좀 재밌어지려나?"
"우리랑 놀아주러 온 거야?"
눈꼬리를 휘며 웃는 이들에게 총 구를 겨눈다.
철컥.
탕!
"너무 뻔-하지!"
총알이 빗겨나간다. 쌍둥이들이 좌
우로 몸을 숙이면서 생긴 틈새로 총알이 지나갔다.
" 얍!"
그리고 그 사이로 풍선이 생겨나 나를 덮쳤다.
'공간 간섭'
스킬을 이용해 다시 거리를 벌렸 다. 사방이 풍선 모양 폭탄이었다.
'조심.'
가만히 있기 어려웠다. 닿으면 폭 발하는 풍선들을 피해 이리저리 움 직여야만 했다.
후욱!
바람 소리가 울리고 정로운이 다 가오는 게 보였다.
"플랜 A!"
"옙!"
준비한 신호들 중 하나를 외치자 답이 따라붙었다.
'아직 정로운은 경험이 부족해서 직접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으니까. 내가 명령하는 걸로 커버해야지.'
정로운이 손을 펜던트 위에 겹치 고 눈을 감았다.
탕, 탕!
스킬을 발동하면서 풍선까지 피하
긴 어려워 보여 주변을 엄호했다.
"하압……
시리도록 찬 냉기가 뺨을 스쳤다. 펜던트의 스킬이다.
거기다 '액셀'이 더해지자 거대한 눈폭풍이 생겨났다.
콰광! 쿠구구궁!
눈보라에 닿자 주변에 있던 풍선 들이 허무하게 터져나갔다.
"하아아아압!"
휘이이이익!
후우욱!
정로운의 손짓을 따라 눈보라가 쌍둥이 마녀들을 덮쳤다.
"끄앙!"
"언니!"
쌍둥이들 중 한쪽이 폭풍에 휘말 려 허공에서 비틀거렸다.
홀로 남은 마녀는 안절부절못하다 가 이내 타깃을 변경한다.
"너……!"
나는 정로운을 슬쩍 뒤로 밀어내 고 앞에 섰다.
"저 마녀 빠져나오지 못하게 롤러 코스터나 태우고 있어요."
"넵!"
저 표독스러운 눈빛의 마녀는 내 가 상대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