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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30화 (130/361)

130화

하얀 원피스에 얇은 카디건. 짧은 머리를 낮게 양옆으로 땋아 내렸다. 작은 가방을 크로스로 매어 귀여운 느낌을 더욱 가미했다.

"처, 처, 처음 뵙겠습니다! 류, 류, 류라임입니다!"

직각으로 꺾은 허리는 정중하고 덜덜 떨리는 손끝은 긴장감을 드러낸다.

'몇 살이지? 많이 어려 보이는데.'

사진보다도 훨씬 어려 보여서 당 황스러울 정도였다.

'키도 작고……. 저 손으로 무기를 들 순 있는 건가?'

헌터라기보단 일반인에 가까워 보 였다.

"반가워요. 한서하라고 합니다."

"사, 사랑합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아니, 아니!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 고마워요."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으면 좀 멋 쩍은 법이다.

나는 웃으며 너무 긴장하지 말라 고 덧붙였다.

"간단한 면접이니까요."

"넵!"

"일단…… 주 포지션은 어떻게 되 죠?"

이력서에 적혀 있는 사항이지만 확인차 다시 물었다.

"근접 딜러 쪽에 가깝지만……

" 지만?"

"사실…… 딜러라고 해도 될 지……. 대미지가 잘 나오는 편은 아니라서요……

흐음. 대미지 딜러라고 하기에 민 망한 수준이라 이거군.

"자주 사용하는 무기가 '낫'이라고 되어 있는데, 무슨 의미죠?"

"아! 말 그대로예요!"

그럼 정말로 '낫'을 사용한다는 건 가?

'뭐 하러 그런 비효율적인 선택 을?'

그야 잘 다루면 어떤 무기라도 장 점이 있겠지만.

낫은 아이템으로 나오는 숫자도 적고 지극히 마이너인 무기였다.

"부끄럽지만…… 어쩐지 손맛이 좋아서."

이해할 수 없는 감상이었지만 일 단 수긍하고 넘어갔다.

그래. 낫이 손맛이 좋을 수도 있 지.

"저희 부대는 공지한 것처럼 '공 중'에서 싸우는 걸 주로 하는 특수 부대인데…… 고유 스킬란이 공란

이네요?"

"아! 네……! 그게……

우물쭈물하더니 갑자기 내 손을 꼭 붙잡고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 했다.

"그게, 최근에 발현한 고유 스킬인 데 아직 신고 접수 중이라 제대로 적진 못했어요. 염동력이에요."

"아하……. 최근에 발현하셨다고 요. 보여주실 수 있나요?"

"아직은 어렵지만! 조만간…… 가 능하게 될 것 같아요!"

어째 말이 좀 이상하다.

'하필, 우연히 최근에 발현한 고유 스킬이 염동력이고…… 지금은 못 하지만 나중에 할 수 있을 거라 고?'

마치 이 부대에 들어오기 위해 억 지로 짜 맞춘 것 같은 설정이다.

'실제로 보니까 더 감이 안 온단 말이야……. 이 사람을 어디서 봤었 는지.'

낯이 익은 걸 보면 분명 회귀 전 에도 한자리하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냥 일반 사병을 내가 이때까지 기억할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도통 어느 길드의 누구였 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다.

당장 무소속이라 힌트도 없고.

"저……. 그래서…… 어떻게, 안 될까요? 일주일! 한 일주일만 더 주시면 가능할 것 같은데!"

대체 일주일 안에 뭐가 달라진다 고 저리 절박하게 말하는 거람?

" 제발요……

날 뚫어져라 웅시하는 노오란 눈 동자를 보고 있자니, 뭔가 어렴풋이 떠오를 것도 같았다.

'저 눈…….'

샛노란 눈동자. 아주 인상 깊게 봤 던.

아. 기억났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날 꼭 부여잡 은 류라임의 손을 탁 쳐내고 말았 다.

"어……'?"

당황스러워하며 날 올려다보는 얼 굴은 여지없이 순수하고 해맑아 보 였다.

"왜, 왜 그러세요?"

순박해 보이기까지 한 인상. 토끼 를 닮아 초식동물을 연상시키는 외모. 하지만 그 속내에 숨겨진 모습 을, 나는 본 적이 있었다.

'류라임. 그래. 이름이 류라임이었 지.'

이제야 떠오른 게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왜…… 이 사람이, 지금, 여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전대미문의 살인 헌터…… 류라 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순진무구 한 낯을 한 이 여자아이는.

후에 끔찍한 연쇄 살인마가 되어

매스컴을 뜨겁게 달군다.

'그것도 헌터만 골라 죽이는…… 악질 살인마로.'

"저, 저기……. 서하 님?"

류라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다.

'고유 스킬이 밝혀지고 나서 파문 이 꽤 컸지.'

공식적으로 등록하지 않았으나 나 중에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류라임 의 고유 스킬은…….

'식인.'

인간을 잡아먹는 것.

'정말로 사람을 먹는 건 아니었지 만.'

정확히 말하자면, 죽인 사람의 능 력치를 흡수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밑바닥 헌터 생활을 하 던 류라임은 무명 시기가 길어지자 결국 금기에 손을 대고 만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다른 헌터 들의 능력치를 갈취한 것이다.

살인을 통해!

'그것 때문에 나중엔 류라임을 잡 기 위해 큰 포상금까지 걸었지.'

결국 다른 헌터들의 협공으로 류

라임은 잡혔지만, 이런 비인간적인 스킬도 고유 스킬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큰 충격을 일으켰다.

'고유 스킬 등록 검사가 훨씬 깐깐 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 살인마가 지금, 날 존경한다면 서 지원서를 낸 거다.

'왜 나한테 접근한 거지?'

회귀 전 류라임도 날 존경했었나? 그런 얘기 없던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내쫓아야 하나? 아니면 신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살인을 이미

저질렀을까? 아직 아무런 중거도 없는데,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잠깐. 인간……. 인간이라.'

인간이 지구에만 있는 건 아니었 다.

'톨룩의 주민들도, 일단은 인간이 잖아.'

그럼 그들의 능력도 흡수할 수 있 을까?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

'톨룩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다 면……

그야말로 사기적인 스킬이다. 아 니, 지구에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지구의 헌터들을 잡아먹고 괴물처 럼 강해쳤었으니까.'

이걸 잘 활용하면...... 충분히 좋 은 전력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 른다.

'물론 완전히 흡수하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정량이 있을 테지만, 충 분히 사기적인 스킬이야.'

다만 걱정되는 건 역시…….

'정신적인 측면.'

아무리 강하고 효율적인 병사라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면 큰 변수에 불과하다.

'그런 위험요소를 끌어안고 가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고.'

류라임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살인을 저질렀는지 잘 기억나진 않 는다.

이렇게 이르진 않았던 것 같은 데…….

-아직은 어렵지만! 조만간…… 가 능하게 될 것 같아요!

-저…… 그래서…… 어떻게, 안 될까요? 일주일! 한 일주일만 더 주시면 가능할 것 같은데!

이제야 그 말뜻이 좀 이해되기 시 작했다.

일주일만 더 달라고? 그럼 염동력 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염동력을 가진 사람을 죽이고, 그 능력을 빼앗으려고 계획하고 있 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겠지.'

아직 본격적으로 살인에 들어가진 않은 모양이다.

내가 트리거가 되어,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살인까지 계획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잠시 현기증이 나서요. 지금은 괜찮아요."

"몸이 안 좋으신가요?"

"그런 건 아니에요."

겨우 수습하고 이야기를 마저 이 어가기 시작했다.

"어, 저희가 그 공중 부대이긴 한 데 꼭 공중을 날아야만 하는 건 아 니고……. 지금 견습 요원도 뽑고 있으니까, 혹시 이쪽으로 지원하시 는 건 어떤가요."

"네! 감사합니다! 꼭 일주일 안에 염동력도 배워 올게요!"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황급히 류라임을 말렸다. 그런 소 름 돋는 얘길 해맑게 하지 말았으 면 좋겠다.

"네? 왜죠? 그래도 염동력이 있으 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 견습이어도 전쟁에 참전 하기 때문에, 실전에서 배우다 보 면…… 염동력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최대한 빙빙 돌려 말했다. 내가 류 라임의 고유 스킬을 알고 있다는 티를 내면 안 되니까.

'지구 사람 말고 톨룩의 적군을 죽 이고 그 능력을 빼앗으면 되잖아!'

직접 말할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 이었다.

"그치만 역시 공중 부대인데 염동 력이 있는 게……

"그. 사실 이건 대외비긴 한데, 슬 쩍 알려드리는 겁니다."

어쩔 수 없군.

"견습 요원들의 실력 증진을 위해 서 저희가 많이 도와드릴 거고요. 특히나 다음 전쟁에 나올 몬스터아직 공식적인 얘기를 꺼내진 않 았지만. 조만간 슬쩍 말을 흘릴 생 각이었으니까.

'어차피 우리 부대 소속이 되면 관 계자이기도 하니.'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 을 이었다.

"마녀로 예상됩니다."

"마녀……요? 마법사 같은 건가 요?"

"비슷하지만 다르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비슷할지 언정 작동 원리는 뼈저리게 달랐다.

"마법사는 마력을 깎아 원하는 모 습으로 만들어내는 장인에 가깝지 만, 마녀는……

속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회귀한 다음 처음으로 마주했던 마 녀.

"마녀는…… '인간을 향한 악의'. 그 사념체와 계약한 이들이에요. 그 사념체에게서 힘을 얻어 인간을 학 살하는 데 쓰죠."

"사념 체……

아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일 거 다.

오랜 시간 동안 케케묵은 인간을 향한 적의. 악의. 분노. 그런 것들 이 뭉쳐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 이 바로 사념체였다.

"그래도 본신은 사람이라 쉽게 다 치고 죽죠."

이들은 정돈되지 못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족속들이다.

'혼돈', 그 자체가 훨씬 잘 어울리 니까.

"그리고. 공중을 납니다."

내 말에 류라임이 눈을 번쩍 떴다. 그래. 이제 눈치 좀 채라.

"아시겠죠? 마녀는 공중을 날고, 저희는 견습 요원들이 경험을 쌓게 도와드릴 거예요."

네가 마녀 모가지 자를 수 있게 해줄게! 그럼 요령껏 공중 나는 스 킬 정도는 빼내올 수 있잖아!

'제발 애먼 헌터 하나 죽이지 말 고!'

내 애타는 외침을 알아듣긴 한 걸 까. 류라임은 방긋 웃으면서 감사하 다고 전했다.

류라임이 나간 뒤에도 나는 한참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류라임을 내 부대에 데려오기로 한 게, 잘한 일일까.

'분명 정신적인 결함이 있어. 잘 활용하면 큰 이득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양날의 검이야.'

자칫 잘못해 아군이라도 해치면 어떡한단 말인가. 위험 부담이 큰 도박은 잘 하지 않는 게 원래 내 성미에 가깝지만…….

'아니. 오히려 전쟁에는 저런 인재 가 필요할지도 몰라.'

인간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에선,

윤리적인 개념이 있는 쪽만 괴로울 뿐이니까.

'전문가의 상담을 받게 해봐야겠 어.'

일단 류라임의 존재를 인식한 이 상 이대로 사회에 방류할 순 없었 다. 내가 모른 척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테니까.

'전문가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하면 그때 좀 더 고민을 해보고, 없다고 하면……

옆에 두고 감시하거나 정신병원에 그대로 입원시키는 방법도 고민해 야겠다.

'방법이 없다면, 어떤 방식이든 간 에 류라임은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선 살아갈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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