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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20화 (120/361)

120화

챕터: 헤파이토스의 재림

캉! 캉!

고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날카로운 고음이 귀청을 찢었 다.

캉!

"다정 언니!"

캉!

"다정 언니!"

"......웅?"

한참을 소리치고 난 다음에야, 다 정 언니가 고개를 돌렸다. 땀에 홈 뻑 젖은 머리와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눈빛이 내게 향한다.

"어……. 서하구나?"

날 인식하자 뒤늦게 환한 미소를 짓는다.

"노이트 수리는 아직인데."

"알아. 좀 더 연습해봐야 한다며."

"으웅. 그렇게 고위급 재료를 다루 는 건 처음이라……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SSS 급 재료템을 다뤄본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누구에게 가져가도 비 슷할 거다.

"언니의 스승님을 뵙고 싶어."

대뜸 용건을 꺼내자, 다정 언니가 멍한 표정을 했다.

"어……. 뭐라고?"

"언니의 스승님을 뵙고 싶다고."

"그분을? 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전쟁의 기본은, '보급'이다.

이 보급은 식량부터 시작해 아주 다양한 분야에 이르는데, 전쟁 중에 '무기'의 보급 역시 아주 중요한 축 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필요해. 헤파이토스의 재 림이라고 불렸던 그 전설의 대장장 이가.'

다정 언니는 곤란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게, 서하 네가 소개해준 분이니 알고 있겠지만…… 스승님은 이미 속세와 인연을 끊으셨어."

"알고 있어."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것조차 꺼리시 는 분이야. 그런 분께 무슨 얘길 하려고?"

그 지적은 상냥하되 단호했다.

괜한 이야기를 꺼내서, 속세와 연 을 끊은 그분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라는 경고였다.

"언니도 그분께 한 번은 찾아가려 했잖아."

"그야…… 고급 재료를 사용한 경 험은 스승님이 더 많으실 테니까.

한번 조언을 얻으려고 갈 생각이긴 했지."

역시.

다정 언니가 미처 다뤄보지 못한 재료이긴 하나, 1세대 헌터들의 무 기 보급을 책임졌던 그녀의 스승이 라면 좀 다를 것이다.

'온갖 귀한 재료를 다 다뤄봤다고 보는 게 맞겠지.'

당시엔 무기 재료 말고 다른 가공 법은 잘 몰랐으니까 말이다.

그 귀한 마력석도 재료의 무기로 갈려나가던 시대 아닌가.

"나도 그때 함께 가도 될까?"

"같이 가는 거야 그럴 수 있지만. 그분을 설득할 생각이면 시간 낭비 일 거야. 이미 그분을 설득하려고 1세대 헌터였던 분들도 많이 왔다 갔지만, 고집을 꺾을 순 없었는걸."

쉽지 않은 일이란 건 안다. 회귀 전에도, 전쟁으로 그 난리가 났었지 만 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가서 한 번이라도 더 부탁 드릴 수밖에.'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곤 하지만, 전쟁터에 나가는 대부분의 헌터들은 장인급에 미치지 못한다.

그 말인즉슨, 대부분의 군졸들은 무기의 수준에 영향을 받는단 얘기 다.

'질 좋은 무기의 보급은 포기할 수 없는 메리트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음을 돌려야 하는데.'

과거 정부도 수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한 일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그냥 포 기할 순 없는 법이다.

밤중에 짐을 싸서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혜원 언니는 게이트 정찰을 하러 가서 오늘 들어올 일이 없으니, 조 용히 나갈 생각이었다.

"언제 돌아와요?"

표연원이 조용히 물었다.

그가 뒤따라오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나는 뒤돌아 그를 응시했다.

"언제 돌아올지 몰라."

그 사람을 설득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으니까.

"어디로 가요?"

"그것도…… 잘 모르겠어."

난 그냥 다정 언니를 따라가는 거 니까. 어디 시골 산속 골짜기일 듯 한데, 정확히 어디인진 모르겠다.

"왜 가는 건데요?"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뭘 부탁하게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전쟁을 대비해 무기를 보급해달라 부탁하러 간다고 말할 순 없잖아.'

아직까지 전쟁에 대한 내용은 극

비사항이었다. 헌터의 핵심 관계자 들은 알음알음 알아도, 민간인들은 모르는 일이었다.

"말하기 어렵나요?"

"웅. 좀 그렇네."

"누나는 항상 비밀이 많네요."

체념 어린 어조였다. 내가 뭘 잘못 했는진 모르겠지만 어쩐지 죄책감 을 불러일으키는 말투였다.

"너도 곧 기숙사에 들어가잖아. 되 도록 그 전에 돌아올게. 혜원 언니 도 혼자 있으면 외로울 수도 있으 니까."

주절주절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놓 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팔찌를 풀었다.

"이거. 조금 이르지만, 네가 헌터 가 되면 유용하게 쓰일 거야."

〈뇌신의 팔찌〉였다. 전격을 이용 한 공격이 부가 스킬로 붙어있으니, 표연원에게 유용할 것이다.

"넌 근접전에 강한 편은 아니니까. 만약 상대가 정령이 통하지 않으면 이걸로 공격하고 도망쳐."

표연원은 주춤하는 손길로 팔찌를

받았다.

'부디 네가 헌터가 되어 활동할 때 에는, 전쟁이 끝나있어야 할 텐데.'

이번 생에서도 네 인생이 전쟁으 로 얼룩지면 너무 슬프지 않겠는가.

혜원 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이는 건 저번 생으로 족하다.

'이번만큼은, 너만큼은. 전쟁의 그 림자가 드리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번 여정이 중요했다.

"……고마워요. 부가 스킬까지 달

려있는데, 제가 받아도 되는 건가 요?"

"받아. 어차피 마력 소모가 커서 내가 쓰기엔 비효율적이라 생각했 어. 마법사나 너 같은 정령술사가 사용하는 게 나아."

누구에게 전해줄지 고민하던 것이 길어져 내가 갖고 있었을 뿐이다.

내심 표연원에게 줄 생각이 있었 다.

"다녀올게."

손을 내저으며 인사했다. 표연원은 마지못해 웃어주었다.

♦ ♦ ♦

구불구불 산길이 이어지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 만 귓가를 울렸다.

"길이 많이 험하지?"

"아냐. 괜찮아."

게이트에서도 길이 트여있지 않은 열대우림을 헤치며 걸을 때가 있었 다. 이 정도면 걸을 만했다.

'진짜 산골짜기에 살긴 하네.'

얼마나 올라온 걸까? 각성자가 아 닌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시간이었다.

'슬슬 날이 저무는데.'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 다. 산둥성이에 걸린 노을이 아름답 게 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여기부터는 함정이 설치돼 있거 든. 그래서 이렇게…… 읏차!"

웬 돌덩이 하나를 뒤집어엎자 열 쇠가 나왔다. 그리고 바닥을 잔뜩 헤집자 흙더미 사이로 미세한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철문?'

달칵.

열쇠를 돌린 다음, 다정 언니는 근 처에 있던 나무 기둥 하나를 끌어 안았다.

"언니? 갑자기 그건 왜……

우드드득!

나무 기둥이, 꺾였다!

대장장이답게 가공할 만한 팔 힘 으로 나무를 어렵지 않게 꺾어내고 는, 휘익 휘둘러 철문에 가져다댄 다.

"여기가 문이 잘 안 열리거든. 지

렛대의 원리를 이용하면 그나마 좀 열려!"

"어, 그래……?"

지렛대를 보통 나무 기둥을 꺾어 서 만드나? 철문 끝에 진짜 나무 기둥을 넣을 만한 홈이 파여 있긴 했다.

그 홈에 나무 기둥을 집어넣고, 반 대쪽에 서서 끌어당기면!

우드드득……!

쿠우우우웅!

" 열렸다!"

탁탁. 다정 언니는 흙더미를 털어

내고는 어서 들어가자며 태연하게 말했다.

"이 앞은 함정이 많아서, 이렇게 지하도로 가는 게 더 편해! 스승님 은 수련할 때 꼼수 부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걸 여는 것 자체도 수련이라고 할 법하지 않나, 싶었지만 입을 다 물었다.

'훈련이 스파르타라더니. 이 정도 는 일도 아니다 이거야?'

과연 무서운 곳이었다.

지하도를 걷는 동안 기나긴 복도 에 좌우로 늘어진 무기들도 심상치않았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전쟁의 함성이 깃든 갑옷〉

등급: A

설명: 전쟁터를 누비던 기억을 가 진 철을 녹여 만들어낸 갑옷입니다. 언제라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준 비를 하고 있습니다.

부가 스킬: 피를 먹는 무쇠(패시브 / 적의 피를 먹을수록 단단해집니 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잠들어있는 에고 소드〉

등급: s(잠금)

설명: 에고가 잠들어 있는 롱소드 입니다. 기나긴 잠에서 자신을 깨운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깨어난다면 드래곤을 베어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것입니다.

'하나하나 대단한 무기들이야.'

그런데 이런 지하도에 방치되어 있다니? 다른 헌터들이 봤으면 피 눈물을 흘렸을 거다.

'여기 있는 무기를 사겠다고 전 재 산을 털어 넣을 헌터들이 밖에 줄 을 설 텐데!'

이 아까운 무기들이 여기 잠들어 있다니. 그야말로 통탄스러운 일이 었다.

"이제 끝이 보인다!"

"저기로 나가면 되는 거야?"

"웅. 근데 좀 조심해야 해."

덜컥.

어두운 지하도 위를 더듬어 출구 를 찾아낸다.

끼이이이익.

요란한 마찰음이 울린 다음에는.

콰과과곽!

"조심."

칼들이 날아와 하마터면 다정 언 니의 손목을 찌를 뻔했다.

그러나 언니는 능숙하게 손을 빼 내고 도리어 내게 조심하라고 이른 다.

"뭐……야?"

"스승님의 취미 생활이야. 걱정하 지 마! 내 뒤만 잘 따라오면 돼!"

이렇게 살벌한 취미생활도 있단 말인가.

덜커덕.

다정 언니는 다시 문을 열고 슬며 시 고개를 뺀 다음 주변을 휘휘 둘 러봤다.

"올라와도 되겠다."

그 말에 조심스레 나도 고개를 뺐 다. 주변은 평범한 산골짜기처럼 보 였다.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스승 님이 계시는 집이……!"

후두둑!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마자, 뭔

가가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 다.

"어……?"

사사사사삭!

탁!

"허억…… 허억……!"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렀다. 하마터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

바닥이 쑥 꺼지고 그대로 다정 언 니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간신히 손을 붙잡아서 다행이 지……

만약 못 잡았다면…… 상상만 해

도 끔찍하다. 깊은 구덩이 안쪽으로 반짝, 하고 빛나는 쇠붙이가 얼핏 보였기 때문이다.

"아차……. 좀 방심했네."

"손 잡고 올라올 수 있겠어?"

"웅. 좀만 잡아줘."

다행히 우리 둘 다 일반인을 상회 하는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다 정 언니를 끌어올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타벅, 터벅.

"간만에 멧돼지가 잡혔나 했더니. 미운 오리 새끼가 찾아왔구나."

뒤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혀를 찼다. 다정 언니의 얼 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스승님!"

고개를 돌리자 누구인지 또렷하게 보였다. 회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머 리를 반묶음으로 길게 늘어뜨리고, 생활 한복을 편하게 차려입은 사내 였다.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경지에 이른 헌터는 노화가 느려 진다는 것이 정설.

그의 나이가 분명 백 살에 가까워

지는 시점일 텐데, 아직 정정해 보 이는 것이 그 증거다.

"누가 네 스승이냐? 네 수준으로 어디 가서 내가 스승이라고 말하지 도 말거라."

까탈스럽게 툭 내뱉는 이 남자가 바로, '헤파이토스의 재림'이라 불 리는 전설적인 대장장이.

'손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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