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챕터: 정령의 눈물
'게다가 아예 주인이 될 수 없었다 고 생각하던 때면 모를까, 주인이 정해지면 그 물건이 탐이 나기 마 련이거든.'
견물생심이라고. 테오도르라는 존 재가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얼마 나 무궁무진한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거기다 목줄까지 달려있다? 온갖 길드에서 침 바르고 싶어서 안달이 날걸.'
그렇게 된다면 테오도르의 처지도 훨씬 편안하게 시작된다.
'윈-윈 작전. 나는 그의 안전을 증 명하고, 난 테오도르를 이용해 정부 와의 정보전에서 우위를 점한다.'
그가 내게 속살거려 줄 여러 정보 들을 슬쩍 맛보기만 해도, 정부는 테오도르를 갖고 싶어 안달이 날 거다.
'그 이후는 뭐, 일사천리지. 약간의 안정성 검증만 도와주면 돼.'
그렇게 되면 테오도르가 누릴 권 력은 어느 정도 내게도 분산될 것 이다.
'지금은 일개 역천의 길드원이지 만. 그렇게 되면 훨씬 중요한 감투 를 쓰게 되지.'
테오도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 는 열쇠 역할 말이다.
나는 놀란 눈으로 기절한 테오도 르를 바라보는 이들을 가볍게 훑었 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래서."
혜원 언니가 뚱한 표정을 했다.
"이 녀석도 데리고 있어야 한다 고?"
"네에……. 일단은 파이로처럼 제 게 속하게 된 거라서요."
- 삐이!
파이로가 옆에서 삐이, 울었다.
"아무래도 실례니까, 당분간 나가 있으려고 해요."
"아니. 서하, 네가 나갈 필요는 없 지."
혜원 언니의 등 뒤로 표연원도 어 색하게 웃었다.
"너만 나가면 되겠네!"
"응? 나 말이냐?"
"그래! 너!"
테오도르가 감자칩에 코를 박을 기세로 주워 먹다가 뒤늦게 물었다. 입가가 온통 감자칩 부스러기로 엉 망이었다.
"네가 무슨 염치로 서하 옆에 들 러붙어?"
"나도 들러붙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만. 이 목걸이 탓에 어쩔 수 없이...
"예에, 뭐. 일단 법적인 보호자는 저인 것 같아서요. 당장 지구의 신 분도 없고, 구속 수사를 받다가 막 풀려났는데 갈 곳도 없고요……
일이 이렇게 되니 나도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좀 더 철저하게 수사할 줄 알았지!'
근데 조사를 해보더니 테오도르가 이간질을 할 정도의 인물도 못 되 고, 정치적인 다툼으로 억울하게 좌 천되어 톨룩에도 좋은 감정이 없단 걸 알아낸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협력자가 됐잖아.'
테오도르가 협조적으로 나오고, 발 견된 톨룩의 문헌들과 비교했을 때 거짓을 고한 게 없어 금방 풀려난 듯했다. 당장 톨룩에 대한 정보가 절실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회의에 몇 번 참여하 여 협상을 한 뒤에, 테오도르의 보 호 역할은 임시로 내게 할당되었다.
'그야 법적으로는 그게 맞긴 한 데……
소환사 역시 해당 소환수의 주거 및 법적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니까. 일단 목걸이를 이용해 잡아들인 셈 이니 법적으로는 그가 내 소환수였 다.
"지구인들은 이상한 데서 열을 올 리는구나."
"넌 입 좀 다물어……
자꾸만 불을 지피는 소리를 하길 래 테오도르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 다.
"신분증이 없어도 근처 숙박업소 에서 재울 수도 있잖아."
"그게…… 일단 책임자도 저라서, 제가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거든 요..
"네가 왜! 정부는 뭐하고!"
"담당자가 조만간 할당되긴 할 건 데, 일단은 제가 보호자라……
갈수록 말끝을 흐리게 됐다.
그 역할을 맡은 데는 내가 열심히 짜둔 그럴듯한 스토리 덕분이니까.
지금 테오도르는 '정치적으로 열세 에 몰려 충성심을 의심당해 억울하고 힘들던 와중에, 차라리 싸우다 죽겠노라 하며 게이트에 참전한 인 물'이니까.
'그 게이트에서 새로운 주인…… 그러니까 나를 만났다는 이야기로 꾸며뒀으니. 꽤나 극적이지.'
나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도 그 만 남으로 인해 구원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해명해뒀다.
"담당자는 누가 될 줄 알고 아직 까지 기다려?"
"그……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헌 터 관리국에서 사람이 나올 거고. 그 이후엔 차준의 공방으로 거처를
이동할 것 같아요."
"연금술사의 공방으로?"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인지 혜원 언니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 왜'?''
"그야, 내가 둘도 없는 천재 연금 술사이기 때문……으틉!"
"넌 입 다물고 있으라니까."
"너무하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마음 기댈 곳은 너뿐인데 이리 나를 박대하니, 참으로 서글프 기 그지없구나!"
아니. 그야 지구에 아는 사람이 나
뿐이긴 하지만…….
'너도 원했잖아!'
차마 보는 눈들이 있는데 그렇게 대꾸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물 뿐이 었다.
"……연원아. 넌 괜찮겠어?"
"응? 나야, 뭐. 아카데미 때문에 집에 안 들어오는 날도 많아서. 조 만간 기숙사도 들어갈 거고."
"흐음.…
혜원 언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 내 긍정의 뜻을 표했다.
"어쩔 수 없네. 담당자가 나올 때
까지만이야."
"고마워요, 언니. 고마워. 연원아."
"휴……. 이 녀석은 영 마음에 안 들지만."
언니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서 테오도르를 노려봤다. 그가 사람들 을 위협하던 모습을 봤던지라 아직 '적'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았다.
'헌터에게 한번 적으로 인식되면 그 낙인을 지우기 쉽지 않지.'
그래서 많이 걱정했던 거다. 다정 언니 때와는 다른 경우니까.
"성격이 좀 푼수인 게 아주 나쁜
놈은 아닌 것 같고, 덕분에 서하도 많이 밝아졌으니……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며 슬쩍 웃음 짓는다. 말은 안 했지만, 언니도 걱정이 많 았던 것 같다.
'……그래. 마냥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한 걸음씩 나아 가고 있는데.
아직 뭐가 부족한 걸까?
'노이트.'
회색빛으로 변한 노이트는 내 부 름에 대답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젠 나도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 다.
'뭐가 문제지?'
이전에 내 의지가 꺾였던 것은 분 명하다. 뭐든 좋으니, 더 이상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도 뭔가 부족한 걸까? 무엇이 필요한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 ♦ ♦
"그래서 찾아왔어."
" 으음......
다정 언니는 방금까지 풀무질을 하고 있던 탓에 온통 땀투성이였다. 불쑥 찾아온 불청객을 내쫓지 않고 맞이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어디 한번 볼까. 이리 줘봐."
노이트를 남에게 넘기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다정 언니는 노이트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더니, 이런저런 도구들을 가져와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의지 에 반응하는 총이라 그랬지?"
"응. 그래서 일반 총과는 작동 원 리가 좀 다를 거야."
"어렵네……
다정 언니는 잠시 노이트를 응시 하다가 갑자기 경고의 말을 던졌다.
"조금 보기 징그러울 수도 있어."
" 뭐가?"
의문은 금방 사라졌다.
"키클롭스의 눈, 이야."
언니가 작게 스킬명을 중얼거리자, 화악! 바람이 불었다. 잠시 눈을 감 았다 뜨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저게, 키클롭스의 눈?'
허공에 커다란 눈알이 등등 떠 있 었다.
다정 언니가 두 눈을 감고 가만히 노이트를 쥐고 있으니, 눈알이 스스 로 움직이며 노이트를 여기저기 홅 었다.
'대장장이 관련 스킬인가. 칭호와
연계 스킬로 얻었나 보네.'
이렇게 칭호와 연관된 스킬일 경 우 그 효능은 배가 되기 마련이다.
'정말로…… 하나뿐인 대장장이가 되어가고 있잖아.'
스르륵.
감탄하는 사이 관찰이 끝났는지 눈동자가 스르르 사라졌다.
다정 언니가 한쪽 눈을 뜨고는, 살 짝 비틀거린다.
" 괜찮아?"
"으응, 마력을 좀 많이 써서 그 래."
다정 언니는 노이트를 다시 내게 돌려주며 말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그런데, 총의 핵심적인 부품이 크게 손상됐어."
"손상됐다고?"
"응. 이렇게까지 상할 수 있나 싶 을 정도인데…… 아마 원래는 교체 해서 쓰는 부품이 아닐 거야. 뭔가 무리해서 사용한 적이 있어?"
"아.."
그야 있었다. 무리하게 총알을 끌 어다 쓴 적이.
"짐작 가는 게 있지? 아마 그것
때문에 마력을 웅축하는 부분이 상 한 모양이야."
"수리할 수 있겠어?"
"으음……. 워낙 희귀한 부품이라 내가 갖고 있는 건 없는데."
하지만 '희귀'하다는 건, 구하기 어려울 뿐 구할 수 없는 건 아니었 다.
"뭘 구해오면 돼? 재료는 뭐든 내 가 찾아올게."
"필요한 게 한두 개가 아니야. 그 래도 나머지는 돈만 쓰면 헌터 마 켓에서 못 구할 건 없어. 그런데 딱 한 가지."
다정 언니가 검지를 펼쳐 숫자 1 을 만들며 말했다.
"'정령의 눈물'이 필요해."
"정령의 눈물……? 처음 듣는데."
"나도 사실 다뤄본 적은 없어. 스 승님께 말로만 들어봤는데…… 네 가 재료를 갖고 온다 해도 내가 잘 가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
난생처음 듣는 아이템이었다. 그런 게 있다고? 어디서 구해야 할지 감 도 오질 않았다.
'정령. 정령이라. 내가 아는 정령은 얼음고성 던전에서 나왔던 타락한얼음 정령하고……
마지막으로 딱 한 곳 더. 행방이 짐작 가는 곳이 있긴 했다.
'표연원.'
그가 계약한 존재의 휘하에 여러 정령들이 존재하지 않던가.
'연원이가 계약한 게 전설로만 내 려오던 정령왕이 아닌가, 하는 얘기 가 암암리에 돌았는데.'
그 진상을 밝힐 수 없어 그저 쉬 쉬하고 넘어간 일이었다.
'정령왕에 비유될 정도로 대단한 존재라면 정령의 눈물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까?'
일반적인 정령은 인간처럼 생리현 상을 일으키지 못했다. 말 그대로, 정령은 생명체가 아니니까.
'그런데 정령의 눈물이라……
적어도 일반 정령들에게서 찾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언니는 최대한 연습하 고 있어줘. 일정은 괜찮아?"
"웅, 최근엔 일을 좀 가려 받고 있 어서 괜찮긴 한데."
"이 일만 끝나면 원하는 재료 뭐 든 구해다줄게. 부탁해."
" 정말?"
다정 언니의 낯빛이 단번에 밝아 졌다.
'귀한 재료의 수급은 대장장이에게 도 중요한 일이니까.'
고급 재료는 시장에 쉽게 나오지 않는 법이다. 다정 언니도 나를 통 해 역천 사람들에게서 재료를 구매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느 껴졌을 거다.
'그래서 일류 대장장이들은 재료 헌터들에게 직접 의뢰를 넣는 거 지.'
다정 언니가 자신만 믿으라며, 꼭 해내겠다면서 의지를 다졌다.
"재료 구하는 대로 올게. 그동안 언니는 연습하면서 일정대로 일하 고 있어줘."
"알겠어! 뭔가 차도가 있으면 연락 줘!"
곧장 나는 집으로 향했다.
"이제 왔느냐?"
거실에서 TV에 빠져들 것처럼 얼 굴을 들이대고 있는 테오도르를 모 르는 척 지나쳤다.
" 연원아."
" 누나?"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뭔데 그래요?"
내 다급한 어조에 표연원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연두색 문양이 새겨진 손등을 꼭 부여잡으며 부탁했다.
"너와 계약한 그분께 여쭤볼 게 있어. 말을 전해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