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16화 (116/361)

116화

탁!

"잡았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혜원 언니."

"저 녀석이 그놈인가 보네. 군사인 가 뭔가 하는."

공간 간섭이 있으니 홀로 떨어져 도 다치진 않았겠지만, 공중 부양 스킬을 쓰는 언니가 잡아주니 훨씬 안정감 있긴 했다.

-목숨이 질기구나. 흐흐…….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모습이 딱 악당 같다.

"언니. 놔줘요."

"혼자 가게? 곧 지원군이 올 거야. 아직은 정찰병이 대부분이니까 좀 지켜보는 게..!"

"해볼 만해요. 제가 가볼게요."

지원군이 오기 전에 끝내야 했다.

내가 이운우와 전청운의 눈까지 동 시에 피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 다.

'그 둘이 오면 좀 곤란하지. 도착 전에 연극은 끝나야 해.'

마법사가 개입하면 상황이 복잡해 지니까.

휘이이익!

혜원 언니가 날 놓자, 바람소리가 울렸다.

'하나, 둘, 셋, 넷……

가만히 초를 세기 시작했다. 차준 도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겠지.

'아주 우연한 일인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시간이 생명이지.'

다섯, 여섯, 일곱, 여덟.

' 지금!'

공간 간섭!

쿠구구구궁!

동시에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뿌연 안개가 흩뿌려졌다. 사람들의 시야를 현혹하는 용도였다.

"뭐, 뭐야!"

한순간 시야가 가려져 혼란이 일 었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무대 장치를 완벽하게 설치하기 위해선이 틈을 유용하게 써야 한다.

-크크크크큭……! 두려워하라!

테오도르가 음향 효과를 좀 깔아 주면.

'여기 버튼, 저기 스위치. 그리고 여기 음향 한 번 더 체크.'

쿠웅!

콰과과곽!

팟!

내가 무대장치를 조작해 나머지를 완성 짓는다. 안개가 걷힌 다음에 드러나는 모습은, 과연 기술력이 놀 라울 따름이었다.

"뭐지? 공간 굴절 스킬?"

"쳇, 결계인가!"

반투명한 유리막 같은 것이 사방 에 돋아나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단절시키고 특히나 테오도르와 다른 헌터들이 섣불리 접촉하지 못하게 한다.

'나 역시 유리막 틈에 갇힌 것처럼 연기를 해줘야지.'

탕, 탕!

16번을 들고 유리막에 연사해보지 만 소용없었다. 하늘 높이 떠올라 있다가 갇힌 탓에 여긴 나 혼자였다.

-너흰 모두 죽은 목숨이다!

3류 악당 같은 대사를 내뱉으면, 차준이 적당한 이펙트를 뿌려준다.

"하늘이!"

"하늘에 이상한 게 생기고 있잖 아!"

하늘에 불덩이 같은 것이 모이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짜는 아 니다.

'환상일 뿐이지.'

연금술로 만드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만, 연금술은 후방 보조에 가깝지 이렇게 실전에서 막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크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테오도르가 가장 고전했던 연기 장면이었다. 숨넘어갈 것처럼 마구 웃기.

'잘하고 있어!'

그리고 저 가짜 메테오는 실현할 수 없으니, 메테오가 막 떨어질 것 처럼 일렁거릴 때.

타앙!

-으웅? 가소로운 반항을 하는구 나.

공간 간섭으로 그 뒤로 이동한 다 음 16번을 갈겼다. 제대로 닿기 전 에 테오도르가 손짓하니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음. 자연스러웠어.'

16번에 딸린 '마탄의 사수'. 그걸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만 든 것이었다.

'그 대신 메테오는 주춤하게 됐 지.'

연출이 지만.

-그렇다면 네놈부터 없애주마!

화르륵! 진짜 같은 불덩이가 날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열기가……

느껴지진 않는다. 그래도 느껴지는 척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한서하!"

조연호의 외침이 크게 울리고, 불 덩이가 정말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삐이 이 이!

화아악!

파이로가 나타나 제 날개로 나를 감싸 안았다. 차준의 공방에 자주 드나들었더니 크기가 어느새 꽤나 커져 있었다.

'애초에 공방의 주인이니까. 남의 공방이긴 해도 그곳이 회복에 도움 이 되나 보지.'

화르륵. 거대한 불장막에 날아오던 불덩이가 힘을 잃고 흡수됐다.

"파이로!"

-삐이이!

"저 위까지 가게 해줘!"

공간 간섭은 어디까지나 날 허공 에 내던질 뿐이다. 발판이 없는 터 라 도착하자마자 하강한다.

'파이로가 있으면 기동성이 한층 좋아지지.'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은 제 계약 자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크으으으!

"끼어들지 말아요『

경고를 내뱉고 나는 파이로와 함 께 저 멀리 하늘 위로 날았다. 일 단 명분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고.

'진짜 이유는 그럴 듯한 마술은 거 리를 두고 봐야 하기 때문이지.'

콰과광!

화르륵! 쿠구구구궁!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안개들 사 이로 나와 파이로가 보였다가, 다시 테오도르가 보였다가 했다.

'테오도르는 순전히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떠 있는 거지만.'

테오도르가 작은 모습이면 몰라도 큰 모습으로 허공을 날 재주는 없 었다.

'여기서 한 바퀴 돌고, 그 다음 뒤 돌면 곧바로……

펑, 하고 폭발음이 나야 하는데.

' 조용하다.'

테오도르는 날 때리는 시늉을 하

고 있었는데 나야 하는 폭발음이 들리지 않자 잔뜩 굳어 멈췄다.

'……방송사고!'

이런. 염려했던 일이 터졌다!

탕, 탕!

빈 사운드를 빠르게 총성으로 채 운 다음 멀찍이 떨어졌다. 곧바로 무전기에 대고 속삭였다.

"차준! 어떻게 된 거야!"

-죄, 죄송해요! 잠깐 기기의 결함 때문에……!

"다음 액션은 진행할 수 있겠어? 그게 하이라이트잖아!"

-지금 당장은 어려워요! 잠, 잠깐 만 시간을 벌어주세요!

'말이 쉽지……!'

저 밑에서 보는 눈이 몇 갠데. 어 설프게 애드리브를 했다가 어색한 게 들통 나면 끝장이다!

'그때는 내통자 의심에서 끝나지 않을 거야!'

이런 수고를 들여가면서 테오도르 를 반짝 데뷔시키려는 이유가 뭔데, 그럴 순 없지.

'테오도르와 내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단 걸 알리지 않으면서도, 후에

군사회의 때 일개 헌터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연극이었는데!'

짜고 치는 고스톱인데 들키면 단 순히 내통자로 의심받는 게 아니라 완전히 피의자가 될 거다. 공식적으 로!

'이거 완전히…… 궁지에 몰렸는 데.'

테오도르에게 애드리브까지 기대 할 순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도 겨우 특훈해 서 가능한 일이었어.'

아니나 다를까, 예상된 시나리오에

서 빗겨나가자 테오도르가 뻣뻣하 게 굳었다. 눌러쓴 모자 아래로 내 비치는 눈빛이 간절하다.

'어떻게든 해달라 이거지.'

일단 시야를 가리는 것부터.

"파이로!"

- 삐 이 이 이 이!

내가 파이로 위에서 점프하며 뛰 어내리자 파이로가 거세게 불길을 뿜으면서 시야를 어지럽혔다.

'공간 간섭!'

추락하려는 몸을 테오도르 근처로 이동시켰다. 테오도르가 날 붙잡고,그가 살짝 묻는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느냐?"

"나 한 대 쳐봐."

"무슨 소리냐?"

"나 한 대 치라고!"

어리둥절해할 시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테오도르의 주먹을 쥐고 직접 내 어깨를 가격했다.

퍼억

"으으옥!"

타격을 받은 것처럼 아래로 떨어 지면.

"허억!"

"떨어진다!"

불꽃이 가시자 테오도르에게 얻어 맞고 떨어지는 내 모습이 바로 보 였을 거다.

놀란 음색이 가득한 그때.

-삐이 이 이!

파이로가 날 잡아챈다.

안도 섞인 한숨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아직 유리벽이 깨질 기미는 안 보 이고.'

아래로 갈수록 강도에 신경 썼으 니 아직 깨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끄, 끄, 끝났어요! 준비됐어요!

좋아. 나이스 타이밍이다. 나는 마 침 파이로 위에 있었기 때문에 방 향을 돌려 테오도르의 머리 위로 향했다.

-어, 어리석은 녀석!

테오도르가 눈치채고 마지막 대사 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약간 어설펐지만 이 정도면 눈감

아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하나, 둘.'

파바바바방!

폭탄이 터지고.

'다시 우측으로 돌아서 한 번.'

테오도르와 탁, 탁, 합을 두 번 주 고받는다.

'여기서 총알을 한 방 탕, 쏘면.'

탕!

-크어어어어!

테오도르가 화가 난 것처럼 모션 을 취하자, 바람이 휙휙 불기 시작했다. 차준의 작품이다.

탕, 탕!

'화력이 좀 부족해.'

노이트였더라면 더 타격감이 좋았 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잠시 스쳤 다.

쿠구구구구구궁!

상부만 남아있던 탑이 마저 무너 지기 시작한다. 덕분에 잔재가 아래 로 튀면서 밑에도 소란스러워졌다.

"피해! 한 번 더 무너진다!"

"유리벽이 막아줄 거야!"

그럼. 이 연극은 사상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안전장치도 섬세하게 고 려 했다고.

'어디까지나 시야 가리기용이니까.'

그리고 몇 차례 더 소란스러운 폭 격음이 들린 다음. 한참 정신을 쏙 빼놓은 다음 그들이 마주하는 장면 은 이렇다.

-크으으으..J

잔뜩 상처투성이가 된 테오도르와.

"허억……. 허억……!"

똑같이 엉망진창인 채 간신히 파 이로 위에 서 있는 나.

그리고 드디어 피날레다.

-아니. 잠깐. 안 돼!

내가 반질반질한 철제로 이루어진 목걸이를 꺼내들자 테오도르가 기 겁을 하며 놀라기 시작한다.

-제발! 내 긍지를 짓밟지 마라!

"저게 대체 뭐길래 그러지……?"

"잘 안 보이는데."

그렇게 궁금증을 한껏 일으키고, 테오도르가 마지막 발버둥을 치면 서 거대한 마법을 끌어올리는 시늉 을 한다.

우우우웅!

에너지가 머리 위로 모이면서 거

센 바람을 일으켰다. 에너지의 흐름 탓으로 보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차 준의 장치 덕분이다.

"하압!"

-아, 아안 돼애애애애!

진부한 엔딩이지만 클래식은 영원 한 법.

결국 테오도르는 나와 파이로의 합작에 목을 내주고 만다.

철컥.

목걸이가 걸리자마자 테오도르는 힘을 봉인당한 것처럼 아래로 추락 한다.

쨍그랑!

"깨졌다!"

밑에 있던 유리벽들도 동시에 산 산조각 나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허 공에 모이던 에너지는 허무하게 사 라져 버렸다.

탁!

떨어지려는 그의 목덜미를 붙잡자, 테오도르는 기절한 것처럼 축 늘어 졌다.

탁!

몰래 한 번 더 뒷목을 때려 진짜 기절시켰다. 이 녀석의 기절 시늉은좀 조잡하니까.

-삐이이!

"웅. 내려줘."

-자, 잘 끝났나요?

"그래 너도 고생했어."

이걸로 끝이 났다.

파이로의 등에 업혀 바닥에 내려 가자, 혜원 언니가 곧장 달려왔다. 설명이 많이 필요하다는 얼굴이었 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그 목걸이는 뭐고?"

"특수 아이템이에요."

"무슨 아이템인데?"

그래. 이렇게까지 개고생을 하면 서, 낯이 부끄러워지려는 걸 참으면 서 연기를 한 데는 전부 이유가 있 는 법이다.

"종속의 목걸이....... 전에 게이트 를 클리어하고 받은 보상 아이템인 데,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네요."

"종속의…… 목걸이?"

그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기색이 나는지, 혜원 언니가 작게 움찔했 다. 주변에서도 아닌 척 귀를 기울 이고 있었다.

"네. 그러니까, 이제 이 녀석 도…… 제게 종속된 거죠. 파이로처 럼."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 않은 지구 는 외부인을 의심하기 쉽다.

이전처럼 궁지에 몰린 형편이 아 니니, 테오도르를 받아들이기까진 한참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난 그걸 기다릴 여유가 없어.'

그러니 안전하다는 증명을 해줄 수밖에.

'내가 테오도르의 주인이 되는 걸 로 그의 안정성을 증명하고, 그 직

위를 이용해 일개 헌터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얻는다.'

그리고 안전함이 증명된 테오도르 는 고문을 비롯한 일체 강압적인 수단으로 협박당하지 않게 보호받 는다.

'내가 테오도르의 후견인이 되는 거지.'

그게 테오도르와 내가 맺은 일종 의 평화 조약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