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오오, 지구인아! 그동안 뭐 하고 지낸 거냐? 한동안 게이트도, 던전 도 돌아다니지 않고!"
테오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테오도 르가 황급히 날아왔다. 하마터면 공 격인 줄 알고 손으로 쳐낼 뻔했다.
"일이 좀 있었어."
자세한 얘길 하고 싶진 않았기 때 문에 대충 얼버무렸다.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테오도르. 기술은?"
"응?"
"지구로 넘어오는 기술 말이야."
"아아, 그거 말이냐?"
큰 기대는 없었다. 테오도르가 말 하지 않았던가. 얼마나 걸릴지 모른 다고.
회귀 전에도 그는 전쟁이 발발하 고 3년 뒤에야 지구로 넘어왔으니, 앞으로 한참 더 기다려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곧 완성될 것 같구나."
" 뭐?"
"응? 곧 완성될 것 같다니까."
" 벌써?"
"빨리 완성하라고 재촉할 땐 언제 고 이제 와 그런 말을 한단 말이 냐?"
테오도르가 억울하다는 듯이 인상 을 찌푸렸다. 아니, 그러긴 했지 만…….
기껏해야 1~2년 빨라질 줄 알았
단 말이야.
'언제 이렇게 일이 진행된 거야?'
내가 멈춰있던 시간 동안, 이들은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 새 삼 실감됐다.
"……정확히 얼마나 걸릴 것 같 아?"
"글쎄다. 앞으로 3개월?"
"지구로 완전히 넘어올 생각이, 확 실해?"
다시 한번 확인차 물었다.
이계의 배신자 테오도르가 답했다.
"확실하고말고."
"……좋아. 그거면 됐어."
그렇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수두룩했다.
'정부에 테오도르의 존재를 자연스 럽게 알려야 하는데……
몇 가지 방법은 있지만, 내가 개입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테오도르에게 불쑥 물었다.
"너, 연기는 좀 해?"
" 응?"
♦ * ♦
- 삐이 이 이!
파이로가 기분 좋게 울었다. 제 보 금자리를 찾은 것처럼 아늑해 보이 기까지 했다.
"헌터님의 아타노르께서 여기가 마음에 드나 봐요."
"그러게."
탁. 차준이 찻잔을 내 앞에 놓았 다.
- 아우우우!
"응? 으응. 잠깐만."
그 옆에서 차준의 아타노르가 작 게 투정을 부렸다. 그걸 듣더니 제 옆에 있던 약초를 한 주먹 아타노 르에게 뿌렸다.
화르륵!
-아우우!
약초 더미가 타오르면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
차준이 손가락을 탁, 튕기자 아타 노르의 불꽃이 스르륵 움직여 물병 을 갖고 오기까지 했다.
"연금술사의 태가 나네."
"네? 아……. 아직 한참 멀었죠."
그러면서도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웃는 게 뿌듯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정부에서 연 금술사 지망생을 모집하기 시작했 단 얘긴 들었는데."
"네에. 그렇게 됐죠. 국가에서 공 방을 크게 굴리려는 것 같더라고요. 당장은 아타노르와 계약한 연금술 사도 저뿐이니까요."
차준은 황금의 서에게 선택받은 다음, 국립 아카데미를 그만두고 곧 장 국가 직속으로 일하게 됐다.
'황금의 서가 선택한 주인으로, 지 망생들을 추려 후학을 양성하는 역
할을 맡게 됐지.'
아직 어린 나이인 차준에겐 부담 스러운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생각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차준은 아주 그럴듯한 연금술사처 럼 보였다. 제 공방에서 아타노르를 수족처럼 부리는 것만 봐도 그랬다.
'아타노르도 더 커진 것 같고.'
들개 정도 크기였던 아타노르가 이제는 제법 위협적인 덩치가 됐다.
"저……. 그런데 헌터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세요?"
차준이 본론을 물었다. 그래. 갑자 기 그의 안부가 궁금해져서 찾아온 건 아니었으니까.
"……네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네게도 나쁜 거래는 아닐 거야."
"네? 제가요?"
차준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뭐…… 말하자면, 천재 연금술사 의 제자가 될수 있는 기회라 고…… 할 수 있겠지."
"천재 연금술사요……?"
내가 생각해도 내 말투는 많이 의
심스러웠다. 그렇지만 그 녀석을 천 재 연금술사라고 부르는 건 영 내 키지 않아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연금술사는 저 혼자 뿐인데……
"천재 연금술사의 제자. 하고 싶지 않아?"
"……누구나 더 높은 경지를 바라 죠."
홀로 연금술사가 되어 마땅한 가 이드라인이 없는 지금. 차준에게 테 오도르의 존재는 동아줄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그럼 몇 가지 약속을 해야 해."
"어떤 거죠?"
"첫째, 당분간 그 존재에 대해 아 무에게도 알리지 말 것."
"네."
"둘째, 연출 공부를 좀 할 것.''
"네. ……네?"
차준이 완전히 괴상한 것 보는 눈 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래. 이상해 보이겠지.
"이상한 거 아니야."
"이상해 보이는데요……
"별거 아니라니까. 그냥, 네가
음…… 영화 CG 같은 효과를 줄 수 있으면 좋겠어. 가능해?"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긍정적 인 답을 내놓는다.
"예? 어……. 즉각적으로는 어려워 도, 어느 정도 정해진 게 있으 면…… 그에 맞춰서 효과를 넣는 것 정도는……
"그거면 됐어."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어. 할 일이 많아서."
"어……. 한동안 헌터 일은 쉬신다
고 했던 것 같은데……
"헌터 일 말고!"
그대로 차준의 공방을 뛰쳐나갔다. 둘러대는 게 아니라 진짜였다.
'테오도르 그 녀석이 연기는 꽝이 거든.'
지금부터 특훈을 해야 했다!
[알림: 보스 몬스터 '락스톤'이 죽 었습니다!]
[알림: 게이트가 클리어되었습니 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더니 개운했 다.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기여도가 82,445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기여도 1순위를 달 성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아이템이 배분됩니 다.]
후욱. 몸이 붕 뜨면서 현실로 돌아 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동안 헌터 일 안 한다더니?"
"그냥. 몸도 좀 풀 겸."
조연호의 말에 대충 대꾸하고 말 았다. 뭐, 순수한 의도는 아니긴 했 다.
"새로운 총을 쓰던데."
"아.…"
나는 총집에서 한 번도 나오지 못 한 노이트를 힐끗 바라봤다. 16번 으로도 충분했으니,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다정 언니가 만들어줬어. 당분간 새 무기를 길들이려고."
"기왕이면 실전에선 주 무기를 드 는 게 나을 거야. 네가 알아서 하 겠지만."
조연호가 지나가는 말투로 충고했 다.
나 역시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 무리 쉬운 전투라 해도 노이트를 썼을 거다.
"그런데…… 아이템 배분으로 이
상한 게 나왔는데?"
나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주의 하며 운을 띄웠다.
"이상한 거?"
"웅. 웬 돌덩이가 나왔는데."
슬쩍 준비해둔 것을 꺼내들었다. 석판에 톨룩의 글씨가 새겨진 판이 었다.
"그러게. 그게 뭐지?"
"게이트 클리어 보상으로 나온 거 보면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데……
"게이트 연구소 쪽에 맡겨봐."
"그래야겠어."
조연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얹 었다.
오케이. 이걸로 게이트 클리어 아 이템인 척 위장할 수 있게 됐다.
남은 건, 게이트 연구소 쪽. 그러 니까…… 백목련에게 연락하는 일 이었다.
뚜루루루…….
통화음이 울리고, 나는 내가 꽤 긴 장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 여보세요?
"백목련 씨. 오랜만이네요. 저 한
서하예요."
-한서하 씨?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새하나교에 들어가기 직전에 한 번, 직후에 한 번……. 그 이후론 연락할 일이 없었지.'
백목련과 날 연결하던 건 그 새하 나교 사건에 관한 것이었으니까.
-오랜만이네요. 어쩐 일로 연락했 어요?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부탁이라. 한서하 씨 부탁은 좀 무서운데. 무슨 일을 벌이려고 그래요?
눈치가 역시 빠르다.
"게이트 클리어 보상으로 나온 석 판 해석을 맡기려고요."
-비공식적으로요?
"아뇨. 공식적으로요."
-그걸 왜 부탁까지 해서……. 설 마.
공식으로 요청하는 사항을 왜 따 로 연락하냐고 되물으려다가, 백목 련이 퍼뜩 눈치챈 목소리를 냈다.
-설마…… 그 석판, 게이트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게이트에서 나온 것으로 쳐달라 는 건가요?
이제는 백목련의 목소리도 제법 조심스러워졌다. 이건 좀 예민한 문 제다. 감정 조작을 의뢰하는 것이니 까.
"네. 부탁드려요."
-……하아. 다른 사람 같았으면 바로 전화를 끊었을 거예요. 한서하 씨니까, 얘기라도 들어보는 거라고 요.
사정을 설명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구의 것과 게이트 안의 것은 성 분이 달라. 아이템과 일반 공산품의 성분이 다른 것처럼. 협력자가 없으 면 속임수를 쓸 수 없지.'
다행히 내겐 백목련이라는 연이 있어 어떻게 부탁이라도 해볼 수 있는 거였다.
'게이트 연구소의 연구소장은 이번 에 새하나교와 연관된 일이 발각되 어 현재 공석이라고 했으니.'
조만간 백목련이 연구소장으로 취 임할 것이다.
'그러니 잘만 수를 쓰면 들킬 일은
거의 없을 거야.'
갑자기 전 품목 재조사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얘길 듣고도 외부에 흘리지 않을 자신 있어요?"
-서론부터 무섭네요. 좋아요. 뭔데 그래요?
"자세한 건 말하기 어렵지만, 정부 쪽에 끌어들이고 싶은 인물이 있어 요."
-그게 감정 조작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어디까지 말하는 게 좋을까. 나는
천천히 단어를 골랐다.
"석판 내용을 보면 대충 예상이 갈 거예요."
-한번 보내봐요. 뭐라고 쓰여 있 는지 읽어보고 결정하죠.
나는 석판을 게이트 연구소에 제 출했고, 며칠 동안은 테오도르를 특 훈하는 데 시간을 썼다.
"아니지! 더 힘을 줘서! 강하게!"
"흐아압!"
"홈……. 나쁘지 않네."
"허억……. 허억……. 꼭 이렇게까 지 해야겠느냐?"
테오도르가 그 작은 몸뚱어리를 바닥에 착 붙였다. 땀을 뻘뻘 흘리 느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자. 다음. 발성 연습."
"조, 조금만 쉬고 싶구나……
"쉴 시간이 어디 있어."
"으으으윽..
테오도르가 피눈물을 흘리며 훈련 을 받던 나날들이 지나고.
며칠 뒤 백목련에게서 연락이 왔 다.
" 여보세요."
-한서하 씨. 당신 진심이에요? 이 석판에 나온 인물을 정부에 섭외하 겠다고요?
"네. 진심이에요."
-지적할 게 한두 군데가 아니지 만…… 일단은, 그래요. 협력하죠.
"잘 생각했어요."
-미리 말해두는데, 일이 잘못되면 전 바로 기기의 결함이었다고 발표 하고 발 뺄 거예요.
여전히 조심성 많은 사람이었다. 뭐, 그래도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 으니 다행이다.
"걱정 마세요. 완벽하게 해낼 테니 까."
준비는 거의 끝나갔다. 이제 때를 기다린 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만 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