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챕터: 전쟁의 초석
"자. 네가 부탁했던 거 " 다정 언니가 내게 총 건넸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마탄의 리볼버 no,16>
자루를
등급: A
생산자: 송다정(칭호: 키클롭스의 화신)
설명: 마력을 응축하여 쏘는 리볼 버입니다. 생산자가 특정 인물을 생 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사용자에게 일시적으로 칭호를 부여합니다.
부여 스킬: 마탄의 사수(액티브/ 탄환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좋은 총이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느새 뛰어난 대장장이가 된 다 정 언니가 16번 도전하여 만든 리 볼버 였다.
"급하게 만들어서 부가 칭호까진 안 뜨더라고. 그래도 마탄의 사수 정도면 좋은 스킬이라, 괜찮을 것 같았어."
"충분해. 고마워, 언니."
이 정도면 여분용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총이야? 원래 네 총은 어쩌고?"
"일이 좀 있어서…… 이렇게 됐거 든."
나는 허리춤에 달아놓은 노이트를 꺼내 보여줬다.
"어……. 망가졌네?"
"응. 사용 불가라고 떠."
"내가 한번 가져가서 고쳐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은 고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까.
"아니야. 나중에 부탁할게."
"네가 그렇다면야……
다정 언니는 많은 것이 생략된 내 말에도 더 묻지 않고 따라주었다.
나는 16번을 반대쪽 총집에 넣었 다. 당분간은 노이트를 사용할 수 없으니, 이 녀석을 쓸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태병이가 너하고 연 락이 안 된다고 그러던데."
"아……. 요즘 휴대폰을 잘 안 봐 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요즘 들어 일부러 미디어와 연을 끊고 살았다.
'TV를 틀기만 하며 그때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다지 되새김질하고 싶은 기억은
아니었다.
"왜, 기억나? 전에 모였을 때 그랬 잖아. 최우도 선생님이 조만간 자리 를 만들려고 한다고."
"어……. 기억나. 그랬었지."
-그게, 체육관에서 사실 일반인보 다 조금 뛰어날 뿐이었던 우릴 키 운 게 우도 선생님 아니심까. 그걸 눈여겨봤는지 관리국에서 뭔가 프 로젝트를 하나 맡겼다고 함다.
-그런데 우도 쌤이 게이트 현장에 서 클리어팀으로 뛰어본 적은 없지 않슴까? 그래서 우리에게 조언을구하고 싶은 게 있으신 모양임다.
김태병이 그런 말을 했었다. 그때 는 시간이 나면 가겠다고 말하고 넘겼는데.
"이번 주 금요일이래. 너도 올 건 지 물어봐 달라고 하던데."
다정 언니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 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않아도, 내 분위기가 음울하단 걸 알고는 있을 것이다.
' 어떡할까.'
사실 그다지 나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최우도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궁 금한 마음은 있었다.
'회귀 전 최우도는 이 시점에선 없 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따지면 다정 언니나 김태 병도 똑같겠지만.
"언니도 가?"
"난 가려고. 우도 쌤 못 뵌 지도 오래됐고. 또……
"설민준 온대?"
내 물음에 다정 언니가 딱 멈췄다.
"누, 누구'?"
"설민준. 나이트워커의 그 설민준 말이야."
"어어, 글쎄? 나, 난 잘 모르겠는 데?"
아하. 그러셔. 나는 굳이 더 캐묻 진 않았다.
'실내체육관 때부터 그런 낌새가 있긴 했는데. 아직도 마음이 있을 줄이야.'
-티는 안 나도 걔도 많이 힘들 거 야. 네가 잘 위로해줘.
-왜 다정 언니가 안 하고, 내가?
슬쩍 장난 어린 어조로 물어보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말을 더듬 곤 했었지.
-내, 내, 내가 왜? 난 그다지 친하 지도 않은데…….
한참 예전의 추억이었다.
'정작 설민준은 관심 없는 것 같지 만.'
애초에 설민준은 남에게 그다지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다. 나하고도여러 번 정찰을 같이 돌았지만 데 면데면했고.
"그래서! 서하 너도 간다고, 안 간 다고?"
황급히 말을 돌리는 게 티 났지만 애써 모르는 체했다.
"나도 갈게."
" 정말?"
승낙을 기대하진 않았는지 놀란 얼굴이었다.
"가도 괜찮겠어? 그야, 그 애들은 못 오겠지만……
다정 언니가 슬그머니 얘길 꺼낸
다. '그 애들'이란 건, 분명 권성민 과 이찬송일 거다.
'다 같이 모이면 그 둘 얘기가 안 나올 수 없겠지.'
당장 뉴스도 그 얘기로 시끌벅적 하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안유수 얘기도…… 분명 나올 테 고.'
속이 잠깐 울렁거렸지만 이내 괜 찮아졌다.
"웅. 가려고."
언제까지고 혼자 침울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들과 아예 안 보고 살 것도 아니었으니까.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아직 크리스마스의 여운이 채 가시 지 않아서, 미처 치우지 못한 크리 스마스 장식들이 곳곳에 보였다.
"우도 쌤!"
다정 언니가 한쪽을 바라보며 반 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구나."
백발이 드문드문 난 노인이었던
최우도는, 몇 년 사이에 주름이 조 금 더 깊어져 있었다.
"왔슴까?"
"태병아! 너 근데 혹시 살쪘니?"
"티 남까? 큰일 났슴다. 요즘 돼지 가 되고 있슴다……
김태병과 다정 언니가 시답잖은 얘기를 가볍게 주고받는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나는 그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넸 다.
"소식은 몇 번 건네 들었네."
"저도요. 헌터관리국에서 일하신다
고요."
"이번에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나 맡게 됐지."
그래. 그렇다지. 대충 건너건너 들 었다.
"……자네는 이미 알고 있겠지. 조 만간 큰일이 벌어지려고 한다는 걸."
최우도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조 만간 큰일?
'전쟁……을 말하는 건가. 톨룩과 치를.'
이렇게 조심스럽게 꺼낼 얘기라면
그것뿐일 터였다.
"네. 대충은요."
"그래. 그때를 대비한 프로젝트일 세."
전쟁을 대비하고, 최우도에게 맡길 만한 프로젝트라. 게다가 실내체육 관의 경험을 높이 사 맡긴 일이라 면....
"……초보 헌터 양성소군요."
"역시. 너라면 눈치챌 줄 알았다."
"응? 무슨 소리야?"
다정 언니가 이야기의 속도를 따 라오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말 그대로야. 지금은 초보 헌터를 각 길드가 나눠 갖고 내부적으로 교육하는 시스템이잖아. 이제 아카 데미뿐만 아니라 초보 헌터들 교육 도 국가에서 국립으로 해주겠단 거 지."
"좋은 건가?"
"장단점이 있지."
뭐든 민간 업체가 끼어드는 것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단점은, 국립이다 보니 트렌드에 맞는 교육이나 풍부한 자원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려워.'
지금 탑5 길드에서 제공하는 수준 의 복지를 보장하긴 어려울 거다. 그 하위 길드보단 나을 수도 있지 만.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있 지.'
이 시스템은, 전쟁이 났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때가 되면 길드가 초보 헌터를 키울 여력이 없어!'
초보 헌터를 아무 교육 없이 그냥 길드들에게 내줬다가는, 제대로 된 교육 대신 실전에 투입되어 버릴 거다.
'그건 아까운 일이지. 귀한 인적 자원인데.'
헌터 한 명 한 명이 귀한 군용 자 산인 시기인데 말이다.
'생각보다 도입이 빨라. 전에는 전 쟁이 일어나고 한참 뒤에야 설립된 제도인데.'
전쟁의 기미가 보이는 시점부터 이런 준비를 시작하다니. 좋은 성과 였다.
'그래. 정부가 멍청이는 아니니까.'
적어도 이런 사활이 걸린 문제에 는 총력을 다할 것이다.
'그래서…… 그 새하나교 사건도 눈감았던 거겠지.'
눈감은 수준이 아니라 적극 가담 했다고 봐야겠지만. 그들도 나처럼 성공 여부를 알았더라면 더 현명하 게 판단했을 것이다.
"중요한 프로젝트일세.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얼마나 큰 피해가 생 길지 알 수 없어."
최우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기초 작업이다. 그가 왜 우 릴 불렀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난 게이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일 순 있어도, 헌터라고 하긴
어렵다네. 게이트의 클리어를 위해 달려가는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래서 저횔 부르신 검까?"
그래. 드디어 본론이다.
"맞네. 국립 아카데미와 비슷한 시 스템을 기반으로 '헌터 지망생'이 아니라 '프로 헌터'가 배워야 할 점 들이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꽤나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단순히 게이트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기술은 헌터 지망생 때 충 분히 배우겠지.'
저번에 표연원을 비롯한 학생들을
이끌고 던전 체험을 갔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의 헌터는 프리랜서와 다 를 바 없었어. 하지만 최우도가 길 러낼 헌터들은 달라야 한다.'
그들은 곧장 전투에 투입될 요원 이니까. 지금처럼 무르게 훈련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답을 주지 않아도 좋 네. 좀 더 고민해보고 언제든지, 뭔 가 떠오른 게 있으면 연락 주게."
우리가 골몰히 생각하는 표정을 하자 최우도가 자신의 명함을 건넸 다.
"그리고…… 다들 뉴스를 봐서 알 고들 있겠지."
드디어. 침묵이 잠시 감돌았다. 민 감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 둘을 말씀하시는 검까."
"그렇네."
"대충은 알고 있슴다."
" 저도요."
나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 피 뉴스에서 시끄럽게 떠들었을 거 다. 내 얼굴은 몰라도 이름 정도는 올라가 있겠지.
"내 일찍이 그 녀석의 욕심을 알
아봤건만…… 그렇게까지 흘러가게 될 줄은 몰랐어."
최우도가 침통한 얼굴을 했다. 권 성민이 최우도의 최측근 역할을 했 단 걸 모르는 사람은 여기 없었다.
"지금은 실종되지 않았슴까?"
"저도 그렇다고 들었는데요."
"모를 일이지. 이번 일은 감추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으니."
뒷말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입막음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는 건가.'
꼬리 자르기 당하고 대부분의 죄 를 뒤집어쓴 것까진 알았는데. 그럴 가능성도 있나.
"찬송이는 아직 재판 중이던 데..
"그 애는 정계와 직접적인 연관성 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혐의를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던데, 뒤에서 무슨 거래가 오고 갔을지 모르는 법이지."
글쎄. 이찬송은 아마 진심으로 억 울해하고 있을 텐데.
'새하나교에 대한 기억을 다수 잃 었을 테니까.'
기억을 잃은 이찬송에게 그 죄를 물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조금 남지만. 그렇다고 죄가 없다고 말하 기도 어려웠다.
'김기택도 반쯤 폐인이 됐고.'
사람이 갈기갈기 조각나는 것을 선명하게 느끼고 나서도 제정신을 유지하긴 어렵겠지.
'결과론적으로 보면…… 권선징악 이 실현된 셈인가.'
권성민은 도망자 신세가 됐거나 입막음으로 죽었을 거고. 이찬송은 스스로 느끼기엔 억울하게 징역살 이를 할 것이고, 김기택은 정신을놓았다.
하나같이 비참한 말로였다.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지."
최우도가 냉담하게 그들을 탓했다. 맞는 말이었다.
"자네들도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 도록 하게. 욕망에 빠져 코앞만 보 다 보면 이렇게 되는 법이니."
말로는 그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도, 최우도는 아득히 허공을 응시했 다.
'여기 있는 다른 누구보다 권성민
과 친밀한 관계였겠지.'
엇나간 인연을 곱씹는 것은 나이 를 먹어도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그 때문에 안타까운 희생자가 생 겼으니……
이름을 입에 담지는 않았으나 모 두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았다.
'안유수.'
다들 애써 그 화제를 피하고 있었 다.
죽음과 가까웠던 연화도 게이트에 서도 함께했던 이가 게이트 밖에서 죽었다는 건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일이었으니까.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았다.
회귀하고 나서 가까운 이를 떠나 보낸 게 처음이라 더 마음에 웅어 리가 남았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서 이만 일어나 보겠네. 다음에 또 기 회가 되면 보자고."
"아, 네. 들어가십쇼!"
"다음에 봬요."
최우도가 돌아간 다음에도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그래. 그래도 벌써 새하나교 사건
은 마무리되어 가고, 이제 전쟁이 다가오는구나.'
정부는 벌써 전쟁을 대비하고 있 었다. 내가 잠시 멈춰 서있는 동안 에도.
'멈춰있을 새가 없는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잿빛으로 변한 노이트를 슬쩍 내 려다봤다. 아직 크게 변함은 없었지 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노이트가 돌 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순 없었다.
"나도 가볼 데가 있어서 먼저 일 어날게."
"응? 갈 데가 생겼어?"
나와 같이 온 다정 언니가 의아하 다는 듯이 물었다. 대충 고개를 끄 덕여주었다.
"던전에 가려고. 푸른 갈대 던전 에."
테오도르를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