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라!
-…… 안……
어렴풋한 목소리가 들렸다.
- 안유라!
그 직후, 눈이 번쩍 뜨였다. 어린 아이가 막 잠에서 깨어나 짜증스러 운 얼굴을 했다.
-뭐야. 왜 깨워?
-원장쌤이 찾으셔. 너 또 시영이 랑 싸웠어?
아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안 봐도 뻔하다는 듯이, 다 른 어린아이가 타박을 했다.
-내가 그냥 무시하라고 했잖아. 네가 반응해주니까 더 건드리는 거 라고.
-누가 몰라? 짜증 나니까 그렇지.
아이가 바닥에 뒤었던 몸을 일으 키려다 멈칫했다.
-어디 다쳤어?
- 아냐.
-아니긴, 뭘. 봐봐.
-아, 됐다니까!
탁, 내려치는 손이 매섭다.
나는 꽤 놀랐다.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르게…… 어린 시절의 안유라가 사납고 거칠었기 때문이다.
-너도 멍청하게 웃고 다니지 좀 마. 걔네가 우습게 보잖아! 넌 자존 심도 없어?
안유라가 톡 쏘아붙였다.
-시영이네 형이 너 찾아오려고 했 대.
안유수가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근데 나 봐서 참았대.
-걔가 그렇게 말해? 어이가 없네. 찾아오라 해! 하나도 안 무서우니 까!
- 유라야.
안유수의 낮게 부르는 어조에는 항상 뭔지 모를 힘이 있었다.
-원장쌤도 그랬잖아. 세상엔 너랑 나뿐이라고.
안타까운 말이었다. 부모 없이 자 라는 이 둘에게, 가족은 서로뿐일 테니까.
- 너랑 나뿐이야. 알지?
- ......알아.
- 그러니까, 자존심 좀 상해도 난 괜찮아.
고작해야 열 살쯤으로 보이는 아 이가 내뱉기엔 너무도 무거운 말이 었다.
안유라는 가만히 안유수를 바라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미안해. 나도 조심할게.
서로를 가볍게 꼭 끌어안는다. 누 군가의 말처럼, 세상에 단 둘밖에 없는 것처럼.
하지만 저들의 세상은 산산조각 났다.
단 둘뿐인 세상에서, 나머지 한쪽 이 사라져버렸으니까.
파스스, 끌어안고 있던 안유수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허망하게 텅 빈 품을 바라보며 안유라가 눈물을 흘렸다.
_안 돼…….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말을 중얼 거린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손을 뻗어보 지만 닿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안유라의 기억을 재구성한 것에 불 과했으니.
막 현실로 돌아오려는 순간이었다. 배경이 바뀌고, 안유라가 아득히 멀 어져갔다. 현실의 감각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때에.
내 착각이었을까?
'방금,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사르륵.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래더미 같은 것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안유라는…… 옆에 누워 있고.'
아마 이찬송이 그랬던 것처럼 잠 시 기절한 뒤 일어날 것이다.
깨어난 안유라는……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겠지만.
'안유수를 잊은 안유라……. 다른 사람들에겐 뭐라 말해야 하지.'
안유수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알 면 슬퍼할 이들이 꽤 있을 텐데. 정작 그의 장례식에 안유라는 참석 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일 테니까.'
웃기는 일이다. 절로 쓴웃음이 배 어 나왔다.
안유라를 위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변명할 수 있는가. 안유라를 위해 안유수를 지워버렸다고, 정당화할 수 있는가.
'후회하지 말아야지.'
노이트 리볼버가 경고했던 것처럼 말이다. 후회해선 안 된다. 이미 돌 이킬 수 없으니.
'나까지 후회하면, 자신의 반쪽에 게 잊힌 안유수가 너무 불쌍하게 되잖아.'
적어도 나만큼은 그를 선명히 기 억해야 한다. 그게 속죄라도 될 테 니.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자꾸만 가슴이 아릿하고 저렸다. 어서 안유라와 이찬송을 데리고 밖 에 나가야 한다고, 나가기 전에 안 유수의 유해를 조금이나마 챙겨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움직일 수가 없어.'
심각한 무기력중에 몸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뭐든 하고 싶지가 않아.'
의지가 꺾였다.
무엇 때문일까. 소중한 이를 잃어 서? 여러 사람에게 배신당해서? 이들의 교리에 잠시나마 혹했던 내가 역겨워서?
무엇 때문이라고 정확히 콕 집어 말할 순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지쳤어.'
지독한 피로감이 날 짓누르고 있 었다. 이 모든 것들에 그저 짜증이 났다.
나는 한참을 다시 누워 있었다. 혜 원 언니를 비롯한 무리들이 드디어 마지막 층에 다다라 우릴 발견할 때까지 말이다.
"서하야!"
날 끌어안는 혜원 언니의 손길이 다급하다.
"괜찮아? 다친 덴 없는 것 같은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너랑 이 둘이 같이 누워있고......
"안유수는?"
이운우가 핵심을 찔러 물었다.
"안유수는…… 어디 있지?"
나는 잠시 침묵했다. 아직 쓰러진 안유라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으니. 이들에겐 알려도 괜찮겠지.
"……네 발 밑에."
"......뭐?"
이운우가 무겁게 발걸음을 뗐다. 그의 발 밑에 깔린 것은 정체 모를 모래 같은 것이었다.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내가 다시 못을 박았다.
"안유수라고. 그게."
내 말이 끝나자 혜원 언니도 주춤 주춤 뒷걸음질 쳤다. 내 주변에도 안유수의 유해가 잔뜩 흩뿌려져 있 었기 때문이다.
"읍…… 우욱!"
이운우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럴 만하지. 나는 자꾸만 축축 늘어지는 사지를 겨우 가누며 상체를 일으켰 다.
"모든 게 끝났어요. 언니."
혜원 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날 바라봤다. 흔들리는 동공 으로, 낯선 것을 보는 것처럼.
"이제야 겨우."
지하 벙커 안에, 한동안 내 목소리 만 울렸다.
유해를 수습한 다음 던전 밖으로 나갔을 때, 아직까지 군헌터와 일반 헌터가 대립각을 이루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전서호가 우 릴 발견하고는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잔뜩 곤두선 채로 군헌터 를 노려보던 이들이 차근차근 무기 를 거뒀다.
"내가 설명드리고 올게."
이운우가 전서호에게 향했다. 알겠 다며 고개만 끄덕였다.
전서호는 그에게서 두어 마디 건
네 듣더니 생긋 웃었다. 적들에겐 불행을 상징하는 미소였다.
나는 그 너머에 있는 권성민을 바 라봤다.
'처음 권성민의 배신을 알았을 땐 놀랐지만……
이게 와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은 그의 선택이었으 니. 책임 또한 그의 것일 뿐이다.
"새하나교는 끝났습니다!"
전서호가 크게 선언했다.
"교주는 쓰러졌고, 실험은 실패했 습니다. 그 진상은 모두에게 밝혀질
것입니다!"
날 봤을 때, 이미 권성민도 짐작했 을 것이다. 그가 실패했다고.
그의 낯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모든 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와아아아아!"
사실상 우리의 승리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에, 한달음에 달려온 헌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음…… 응?"
그 소음에 안유라가 깨어났다.
"뭐야……. 어우, 시끄러."
"유라야. 정신이 좀 들어?"
내 물음에 주변도 유라가 깨어난 것을 인식했는지 소란스러워졌다. 청사의 사람들이 안유라를 살피려 고 몰려들었다.
그때 이운우와 전서호가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안유라 헌터."
전서호가 공식적인 이름으로 불렀 다.
"상실에 유감을 표합니다."
안유라는 자신을 위로하는 말에 도리어 되물었다.
"상실이요? 뭐가요?"
그 기묘한 대답에, 다들 뭔가 이상 하단 걸 눈치챘다. 미리 설명하지 못했으나 이 자리를 통해 모두가 알게 됐다.
"길드장님. 제가…… 뭔가 잃어버 렸나요?"
안유라는 안유수를 잃었다.
아주 깨끗하게.
* * *
한바탕 뉴스가 또 시끄러웠다.
-사이비종교를 필두로 벌어진 사 상 초유의 사태에 정부는 묵묵부답 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때 군헌 터의 개입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정 부가 개입한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지는 가운데…….
-임천훈 의원 관계자가 현재 구속 수사 중인 가운데, 임천훈 의원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며 보좌관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 주장하고 있…….
-해당 종교와 관련된 내용을 제보 받고 있습니다. [email protected]…….
고만고만한 뉴스들 사이에서, 간혹 눈에 들어오는 내용들도 있었다.
-구속 수사 중이던 피의자가 수사 도중 종적을 감췄습니다. 경찰서 내 부에서 일어난 황당한 사건인데요. 현재 공개 수배로 전환되었습니다.
이어서 보여주는 수배지에 걸린 얼굴이 익숙하다.
단정한 검은 머리에 부드러운 눈 매. 권성민이었다.
-아직 수배 중에 있으며 목격담은 아래 번호로 주시면…….
삑. TV를 껐다.
사건이 끝난 지 어느덧 한 달. 또 다른 해가 밝았다.
'……이제 22살.'
회귀하고 벌써 2년이나 지났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연화도 게이트는 4개월 만에 클리 어됐고, 청사의 길드장으로 만났던 이운우는 아직 일개 헌터에 불과하 다.
살아남아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 다정 언니, 김태병, 설민준 같은 이들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유라는 안유수를 잃었다. 완전히.
잊었다, 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관 련된 기억이 싹 사라진 건, 안유라 가 안유수를 잊었다기보단 잃어버 렸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할 듯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잃은 게 있지.'
노이트가 경고했었다. 창천을 쏘기 직전에, 후유증을 앓게 될지도 모른 다고.
난 아무래도 괜찮다고 답했지.
'사지 중 하나가 망가져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는데..
정작 내 팔다리는 멀쩡했다.
다만.
침대 위에 놓인 노이트를 내려다 봤다. 늘 찬란하게 제 빛깔을 뽐냈 던 노이트가 그 색채를 잃고 회색 빛으로 변해 있었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철컥!
안전장치를 풀고 빠르게 방아쇠를 당겨봤지만.
달칵.
총구는 조용했다.
달칵, 달칵.
다시 시도해봐도 똑같았다. 어처구 니가 없는 일이다. 후유 장애가 내 몸이 아니라, 노이트에게 생겨나다 니.
'노이트.'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노이트 리볼버(귀속/사용불가)〉
등급: SSS(잠금)
설명: 마력을 탄환 삼아 쏘는 리 볼버입니다. 소유자의 영혼에 귀속 되며 주인과 함께 성장하는 무기입니다. 현재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 나는 노이트를 잃었다.
'내 오랜 파트너, 내 하나뿐인 영 혼의 단짝.'
그를 잃어버린 것이다.
단순히 탄환을 낭비해서, 혹은 지 나치게 무리해서 그런 게 아니다.
'노이트는 나와 함께 성장하는 에 고 리볼버기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나의 의지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내 의지에 반응했기 때문에 항상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마다 함께각성했던 것이다.
내 간절함, 굳건한 신념. 그런 것 을 먹고 자라는 아이템이니까.
노이트는 알아버린 것이다. 눈치챈 것이다.
'내 의지가 꺾였다는 것을.'
그래서 그 역시 스러졌다.
내가 노이트를 망쳤다.
내가 망가졌기 때문에, 노이트도 망가졌다.
나는 아직 나를 고칠 방도를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