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권성민의 뒤로 군헌터들이 쭉 늘 어섰다. 누구도 저 뒤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굳건해 보였다.
' 어떡하지?'
이들이 얼마나 위까지 연결되어 있을까? 군헌터까지 운용할 수 있 을 정도면…… 사실상 정부의 의지 라고 봐도 무방할 텐데.
'그렇겠지. 정부도 오염을 되돌려 전쟁을 막는 게 최선이라 생각할 테니까.'
나는 이운우와 슬쩍 눈빛을 교환 했다. 정부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것뿐 이다.
'몰래 들어가야겠어.'
대놓고 들어갔다가 앞엔 개조헌터, 뒤엔 군헌터로 둘러싸이면 그대로 끝장이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끈 다음 들어 가야 해. 가능하면 정예로 들어가고 싶은데...
전청운, 이운우 그리고…… 혜원 언니. 이렇게 셋만 함께할 수 있어 도 충분한 전력이 되어줄 텐데.
"이만 돌아가주시죠."
권성민이 축객령을 내렸다. 그 뒤 편으로 군헌터들이 쿵쿵쿵 방패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촤자자자작!
방패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거대 한 방벽을 세운다. 얼핏 봐도 견고 함이 대단했다.
그때, 불쑥 누군가 끼어들었다.
"높으신 분이라. 높으신 분 누구
말하는 겁니까?"
휙 뒤돌았다.
최측근 두어 명을 이끌고 유유히 걸어오는 인영이 있었으니. 푸른색 일색의 정복에 권위를 상징하는 망 토를 둘렀다.
한쪽 귀에 달린 마력석이 짤랑, 맑 은 소리를 냈다.
전서호. 청사의 길드장인 그의 등 장이었다.
"청사의……I"
"전서호다."
"전서호……
술렁술렁. 주변이 웅성거렸다. 거 물의 등장이었다. 전서호가 우리를 지나쳐 권성민의 앞에 섰다.
"청사의 길드장님께서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아끼는 아이들이 길을 잃어 서 말이죠."
"얘기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요."
"내 사람들에게 손대기 전까진 그 랬죠."
전서호가 드물게 분노하고 있었다.
제 구역을 침범당한 맹수가 눈을 부릅떴다.
'청사와 어느 정도 얘기가 끝난 일 이었나.'
그럴 만하다. 청사와 홍염에겐 어 느 정도 양해를 구했겠지. 웃기게 도, 이번에 희생된 이가 그 쌍둥이 들만 아니었더라면…… 일은 훨씬 수월하게 풀렸을 거다.
'간사한 일이지.'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전서 호를 탓할 순 없었다.
'아니. 잠깐만. 그럼 박현종의 경우
이미 알고도, 눈감았단 소린가? 아
니면 일부러……?
이운우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 하기 위해…… 제물을 선별해서 이 들에게 갖다 바쳤을 가능성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충분히 그 럴 만했다. 나는 분노하는 전서호의 옆모습을 힐끗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들여보낼 순 없습 니다. 이견이 있으시면 직접 상부에 연락을……
"내가 현장에서 일한 지 오래되긴 한 모양입니다."
전서호가 생긋 웃었다.
이운우가 움찔하며 나를 뒤로 잡 아끌었다.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내가 활발히 활동할 때의 이명을 모릅니까?"
"……수해의 전서호."
"잘 알고 있군요."
수해(水害)의 전서호. 얼마나 거만 한 이명인가. 사람을 자연재해에 빗 대다니.
그러나 그보다 전서호에게 어울리 는 이명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전서호의 실력 발휘를 직
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의 귓불에 귀걸이처럼 달린 마 력석이 웅웅 울었다. 마력석 안의 작은 알갱이들이 빠르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물이!'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운다.
마치 허공에 투명한 수조가 있는 것 같았다. 수조에 물을 붓는 것처 럼, 밑은 사각형 모양으로 고정된 채 그 높이가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었다.
'저게 쏟아지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순식간에 물웅덩이는 거의 수영장으로 쓰일 법하게 커졌다.
'물의 부피와 무게만으로도 이미 흉기야.'
저게 떨어진 다음 전서호가 자유 자재로 다룰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재해다.
"비키세요. 그러지 않으면 죽을 테 니까."
"막무가내로 이러실 순 없습니다!"
권성민의 항의는 전서호에게 닿지 않았다. 전서호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그는 그대로 짓눌려 죽을 수 도 있었다.
'이게, 전설적인 물 마법사 전서호 의 저력인가.'
구전되어 오는 이야긴 들은 적 있 다만 이렇게 직접 목격하니 훨씬 압도적이 었다.
'지금은 이길 수 없어. 그러면, 회 귀 전에는?'
회귀 전에는 이길 수 있었을까? 머릿속에서 그와 합을 맞추는 시뮬 레이션이 돌아갔다.
주변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될 테 고 난 허공으로 도망치겠지. 그의무대는 바다고 내 무대는 하늘이니. 각자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 싸우 는 격이었다.
"준비해."
이운우가 작게 속삭였다.
잠시 딴생각을 하던 것이 멈췄다. 준비하라니. 뭘? 잠깐 어리둥절하 던 것도 잠시였다.
처음부터 나도 생각하지 않았던가.
'미끼로 시선을 돌리고 몰래 잠입 한다……. 전서호가 미끼인 건가.'
그것 참, 화려하고 먹음직스러운 미끼긴 했다. 권성민도 군헌터들도당장 그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까.
'틈이 생길까?'
암만 전서호가 앞에서 어그로를 끌고 있다곤 해도…… 저들의 방어 선은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저 물벼락을 보고도 물러나지 않 다니. 제정신인가.'
머리 위에서 출렁이는 물덩이가 무섭지도 않단 말인가. 저대로 전서 호가 살짝만 힘을 빼면 그대로 즉 사다.
"비키세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비킬 수 없습니다."
둘이 치열하게 눈싸움을 했다. 권 성민이 쉽사리 물러날 것 같지 않 았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전서호가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 다. 군헌터들이 크게 움찔했지만 물 벼락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순하랑 헌터."
"네. 준비해뒀습니다."
그의 뒤편에 서 있던 로브를 푹 눌러쓴 마법사가 대답했다. 순하랑 이었다. 홍염의 순하랑이 왜 전서호와 함께?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순하랑이 제 지팡이를 휙 휘둘렀다.
차르륵.
마력석들이 잘게 부딪히면서 아름 다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직후,
"바닥! 바닥이다!"
군헌터들의 발밑에 희게 빛나는 마법진이 생겼다. 군헌터들이 대응 하기도 전에 순하랑이 먼저 움직였 다.
후욱!
"허억!"
"허공에!"
군헌터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부응 떠올랐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자리를 이탈하지 마라!"
"마법이다. 대응법은 다들 숙지하 고 있겠지."
그러나 군헌터들도 숙련된 이들이 었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런 류의 마법은 강한 충격을 가 하면 깨지기 마련이라며, 차분하게 대응법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러 다들, 부디 물놀이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서호의 말에 의문을 품기도 전 에.
쏴아아아아아!
"윽! 버티지 마! 쓸려가야 한다!"
"놀라지 마라!"
"빠르게 전진하는 거다!"
폭포수처럼 강력한 물의 흐름에 절로 몸이 앞으로 쏠렸다.
다들 당황해하다가도 물살에 몸을 맡겼다. 물을 단순히 공격용이 아니 라, 이렇게 빠르게 아군을 이동시키 는 데 사용할 수 있다니.
'활용도가 아주 높아.'
나도 모르게 그 유용함을 판단하 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쨍그랑!
쿠당탕탕!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군헌터 쪽도 빠르게 마법을 깨고 바깥으로 나왔지만 이미 물살에 휩 쓸려 위치가 완전히 뒤바뀐 다음이 었다.
'물의 흐름이, 여기만 멈추지 않는 다.'
전서호가 이쪽을 보지도 않으면서 섬세하게 컨트롤하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물살이 끝나 질 척해진 바닥 위에 바로 섰다. 빠르 게 진형을 갖춘다.
한결의 사람들이 선두에 서서 방 어진을 구축하니, 입장이 완전히 반 대가 됐다.
딱 내가 생각했던 인물들. 전청운, 이운우, 혜원 언니와 나 네 사람만 멈추지 않고 던전 입구까지 향한다.
"이제 좀 반대가 됐군요. 당신이 말하는 그 상부에 연락을 넣어보는 게 좋을 겁니다."
전서호가 오만하게 웃었다.
"나를 뚫고 가려면, 지원군이 필요 하다고요."
으드득, 권성민이 이를 가는 소리 가 들렸다.
뒤는 전서호에게 맡기고 우리는 앞으로 향했다. 드디어 던전 입장이 었다.
[알림: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사용자를 확인합니다.]
[개체 '한서하(각성자)'를 확인했습 니다.]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공간 간섭을 펼쳤다.
'던전이 넓어서 다 파악하긴 어렵 지만……
지금 이 던전 안에 들어와 있는 다른 각성자는, 새하나교 관련인이 라 생각하는 게 맞을 테니까.
'2층에 하나, 지하 1층에 둘. 지하 2층에 30명.'
당장 감각에 잡히는 인원은 이 정 도다. 감각을 더 넓히면 아마 지하 3층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지하에 있어요. 지하로 가야 해 요."
"사람들은?"
"적지 않게 있어. 대부분 용병 같 은데……
이운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게 물었다.
"네 능력이면, 곧장 지하로 갈 수 있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과 함께하진
못해도, 나 혼자서는 얼마든지 가능 한 일이었다.
"우린 뒤따라갈게. 네가 먼저 가 있어."
"서하 혼자? 잠깐만. 그건 너무 위 험한……
혜원 언니가 반발하려 했지만 전 청운이 언니를 막았다.
"한서하 혼자 가는 편이 낫다. 혼 자라면 그 능력으로 개조 헌터들을 만나도 쉽게 피할 수 있겠지."
맞는 말이었다. 이들과 함께 움직 이는 게 도리어 시간낭비일 수 있 었다.
"하지만 혼자 맞서는 것도 무모한 일이다. 어디까지나 정찰을 위한 일 이어야 해."
전청운이 정론을 내세웠다. 나 혼 자 맞서 싸우는 것도 어리석은 일 이니, 정찰만 하고 자신들과 합류하 라는 말이었다.
"쌍둥이들의 위치만 파악하고 다 시 돌아와야 한다. 그럴 수 있나?"
그가 날 빤히 응시했다. 지금까지 의 전적으론, 글쎄. 나도 장담할 수 가 없었다.
'쌍둥이들을 발견하면 그 애들을 두고 되돌아올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약속해. 한서하. 돌아오겠다고."
이운우가 날 재촉했다. 그가 내 손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대답하기 전 까진 움직일 수 없다는 듯이.
"서하야. 제발."
혜원 언니가 애원했다.
"매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난 그 쌍둥이들이 잘못되는 한이 있더 라도, 네가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 어. 제발."
언니가 반대편 손을 꼭 잡았다.
"약속해줘.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무모한 짓은 하지 않겠다고."
나는 한참 침묵하다 대답했다.
"그럴 순 없어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순 없었다.
"미안해요, 언니. 그 애들을 두고 되돌아왔을 때, 제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 애들을 두고 돌아왔는데 다시 가보니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된다 면…… 나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 을까.
탁.
이운우와 혜원 언니가 붙잡은 손
을 떼어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나는 홀로 지하 2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