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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01화 (101/361)

Wl 화

챕터: 둥 돌린 자들

사르륵, 풀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 리가 들렸다.

야밤에 정찰을 서던 남자는 졸음 을 내쫓으며 주변을 살폈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선명할 정도로 조용한 밤이었다.

정해진 대로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에, 남자는 어쩐지 뭔가 이상했다.

'뭐지? 왜 이렇게 불안하지?'

하지만 이상한 건 없었다. 누군가 의 인기척을 느낀 것도 아니고, 수 상한 낌새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사르륵.

다시금 바람이 스치며 울었다.

'원래 바람 소리가……

남자는 그제야 뒤돌았다.

'이렇게 크게 들렸던가……?'

푸욱!

그러나 그 뒷내용은 마저 이어지 지 못했다. 다음 순간 뒷목이 아릿 하면서, 남자는 스르륵 그대로 쓰러 졌다.

털썩.

시신이 쓰러진 뒤편으로 새로운 인영이 보였다.

뺨에 튄 핏물을 훑어내는 손길이 무심하다.

침입자였다.

* * *

안으로 침입한 직후, 나는 빠르게 공간 간섭을 발동했다. 순식간에 구 조가 머릿속에 들어오고 어디가 핵 심 구조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바깥에서 소동을 부리는 건 하수 지. 안쪽에 타격을 줘야 위기감을 느낄 테니.'

외부에서 일단 안으로 침입한 이 상 그건 식은 죽 먹기였다.

'전체적인 구조는 전에 봤던 곳과 비슷해.'

이찬송을 봤던 그곳 말이다. 제일

꼭대기 층에 고위직을 위한 집무실 이 있는 것 같고. 그 밑으로 차근 차근 회의실, 접대실 등이 이어지다 가…….

'지하실이 있다.'

아니. 지상보다 지하가 훨씬 규모 가 크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은 별로 없 어. 왜지?'

가장 핵심이어야 할 곳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째서?

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간파당했나?'

들킨 건가? 이곳을 침입할 줄 알 았다고? 하지만…… 그럴 리가-그러니, 한서하 씨도 오늘은 그 냥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때 김기택이 했던 권유가 떠오 른 것은. 어째서였을까.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지하의 맨 밑충. 그곳에 몰려있 어.'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숫자는

대략 20명 정도. 하지만 전투원으 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아마 연구원일 텐데…….

'왜 연구원들을 모아놨는진 모르겠 지만.'

가야 했다. 그게 함정이란 걸 알더 라도.

'공간 간섭', 스킬을 나지막이 속 으로 중얼거렸다. 마력이 발끝부터 차오르고, 어딘가로 이끌리는 느낌 에 몸을 맡기면.

"오셨군요."

눈을 뜨자, 완전히 다른 곳에 서 있었다.

"한서하 씨."

김기택이 날 보며 웃었다. 날 기다 리고 있었다는 듯이.

"역시. 당신이 배신자였군요."

"예상하고 있었습니까?"

이 건물 안에 들어온 직후에는 말 이다. 아무 이상 없으니 그만 돌아 가라고 했던 김기택의 말과 다르게, 들어온 이곳은 텅 비어있었다.

'마치 이전이라도 한 것처럼.'

뻔하지. 우리가 여길 눈치챘으니 다른 곳으로 핵심 연구소를 옮긴 것이다.

'그때, 김기택의 말에 따라 물러서 지 않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길 강행했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뒤늦게 후회해보지만 늦었다.

이미 쌍둥이들은 사라졌고, 나는 이곳에서 김기택과 마주 보고 있었 으니까.

"사실 좀 의외라고 생각합니다. 한 서하 씨는 우리랑 꽤 잘 맞을 줄 알았거든요."

" 제가요?"

"당연하죠. 제가 회의감을 느끼고 고민할 때, 확신을 심어준 게 한서

하 씨였는걸요."

내가? 그런 일을 한 적도 없고, 했다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합리화 일 것이다.

"아닌 것 같나요?"

"제가 사이비종교에 빠진 적은 없 어서."

살짝 비꼬자 김기택이 슬며시 웃 었다.

"수단은 종교였을지 몰라도, 이 교 리 자체는 사실이란 걸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그 말엔 대답할 수 없었다.

연화도 게이트에서 함께 나타롯샤 신학교 게이트에 들어갔던 우리는 누구보다 그 실상을 잘 알고 있지 않나.

'다른 사람들은 거짓이라 코웃음 칠지 몰라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는 우린 다르다. 끔찍하게 고문받던 아이들 과 광활한 하늘을 수놓던 성배를 알기 때문에.

"그때 게이트 안에서 한서하 씨가 그랬죠."

김기택이 예전을 회상하는 것처럼 아득한 눈빛을 했다.

"자신을 칼로 찌르라고. 그것도 아 주 깊숙이."

"그래서요?"

"그때 제가 어땠죠? 반대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런 확률 싸움에 목숨을 걸다니. 제정신이 아 니잖습니까."

분명 김기택은 반대했다. 반면…… 나를 비롯해서 전청운과 순하랑은 찬성표를 던졌고.

"그런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성공했죠."

"그것도 대성공이었죠! 기약 없이

게이트 안에서 고통받았을 사람들 까지 생각하면, 당신의 그 결단이 얼마나 많은 목숨을 살렸는지 가늠 이나 갑니까?"

김기택은 이제 완전히 자신이 하 는 말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다.

"그걸 보면서 깨달은 겁니다. 약간 의 희생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헛소리하지 마시죠! 동의하지 않 은 사람들을 납치해놓고, 희생? 그 런 건 희생이 아니라 제물이라 해 야죠."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조 차도, 아주 가중스러운 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나 역시 백목련의 그 확신 어린 말이 아니었으면, 이들을 비판할 수 있었을까?'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만 약 내가 이들이 성공할 것이라 믿 었다면.

'……이들에게 동의한다 하더라도, 쌍둥이들이 끌려갔을 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수긍할 수 있었을 까.'

그럴 리가.

분명 나는 그때도 반발했을 거다.

'내가 모르는 남의 희생은 이토록 가볍고, 내게 가까운 이들의 희생만 무겁게 느껴지는구나.'

아릿한 통증이 가슴팍에서 느껴졌 다. 심장을 꽉 조이는 것만 같았다.

죄책감인지. 어중간한 책임감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런 논쟁이 일어나 는 현 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한 바퀴 내면 을 휩쓸었다.

"희생이나, 제물이나. 그런 말장난 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운명 을 좌지우지할 거대한 선택 앞에선 말이죠."

"그것 역시, 당신들이 편하게 갖다 붙이는 합리화에 지나지 않아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결국 우 리가 성공한다면, 역사는 우릴 구원 자로 기억할 겁니다."

이들은 허황된 망상에 빠져 있었 다.

"당신들을 실패할 거예요!"

"……확신할 수 있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백목련에 대한 얘길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 었으니까.

"그 작은 가능성에 투자하는 겁니

다. 일반인도 아니고, 헌터의 목숨 이잖아요. 헌터들은 이미 게이트에 서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온 사람들 인데. 게이트에서 죽은 셈 치면, 뭐 얼마나 다르다고 그렇죠?"

"그렇게 숭고한 일이면 당신이 하 지 그랬어요."

이런 논리를 펼치는 이들은 하나 같이 공통점이 있다. 한걸음 뒤에 물러서서, 모든 것을 관조한 것처럼 굴지. 정작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 과 다를 바 없으면서.

"당신도 게이트에서 죽은 셈 치고 실험에 참여하지 그랬냐고요."

이번엔 김기택이 침묵했다. 스스로 그 '희생'의 구렁텅이에 몸을 집어 던질 용기도 없으면서. 고작 그 정 도 각오로 이런 일에 발을 담갔단 말인가.

"……우리 교주님께선 당신이 함 께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 여기에 남겨둔 것이고요."

김기택은 잠시 침묵하다 화제를 돌렸다.

"마지막 제안입니다. 한서하 씨."

익숙한 말투로, 아주 낯선 제안을 해왔다.

"우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김기택을 응시했다. 무 엇이 이렇게 다른 길을 걷게 했을 까.

내가 그동안 보아 오고, 말을 섞어 온 김기택은 최소한 정상인의 범주 에 속한 인물이었는데.

"내 대답은 정해져 있어요."

쌍둥이들이 끌려간 순간부터. 우리 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난 당신들과 함께할 수 없어요."

"안타깝게 됐습니다."

김기택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 는지, 드물게도 살짝 인상을 쓴 채 로 날 바라봤다.

"그럼 남은 일은 하나뿐이군요."

"쌍둥이들은 어디로 갔죠?"

"알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우 선…… 절 꺾어야 할 겁니다."

팟!

김기택이 스위치를 누르자 사방에 있던 벽이 올라가면서 방이 한층 넓어졌다.

'물량공세를 하려고?'

어쩐지. 20명가량 있다고 느꼈는

데 이곳엔 김기택 혼자라 왜 그런 가 했더니, 가벽으로 잠시 막아뒀던 모양이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한데?'

전투요원이라기엔 움직임이 굼뜨 고 근육이 부족해 연구원들인 줄 알았는데……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환자복 같은 것을 입고 멍한 얼굴 로 비척비척 걸었다. 어색한 걸음걸 이에, 드러난 팔다리에 흉터가 가득 한 이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 실험체다.'

전직 헌터였던 이들. 피해자다!

"어떻습니까? 이 사람들은 지금 모두 정신적인 개조를 받은 상태라, 제 말 한마디에 저항 없이 수긍하 죠."

그가 제 옆을 지나가는 이에게 손 가락을 까딱, 하자 정말로 순순히 김기택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이렇게."

퍽!

갑작스럽게 안면을 두들겨 맞자, 사내는 잠시 주춤했다. 그것도 잠 시. 아까 얻어맞은 걸 잊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김기택에게 향했 다.

퍼억!

"후…….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어때요. 이들은 당신이 말하길 희생 이 아니라 제물들입니다. 아주, 아 주 불쌍하고 안타깝죠. 그렇지 않나 요?"

미친놈. 아까 그나마 정상인 같다 고 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내 능력은 당신도 알겠죠. 이들은 살아있는 능력 창고입니다. 적어도 이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난 자유 자재로 그들의 능력을 베껴 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살고 싶으면 이들을 죽여라?"

"그렇다고 하면요?"

웃기지도 않는 놀음이었다. 김기택 은 여전히 날 시험하고 싶어 했다.

자신을 이 길로 이끈 내가, 무고한 이들을 희생해서라도 소중한 이들 을 구할지 아닐지. 그것에 대한 시 험 말이다.

"당신 뜻대로 되진 않을 거야."

그 수작질을 뻔히 알면서 순순히 넘어가 줄 생각은 없었다.

'일단 이 공간을 벗어나야 해.'

김기택의 능력이 발동되려면 신체 접촉 후 10초가 지나야 한다. 10초 면, 이 프로들의 세계에선 아주 긴 시간이다.

'자유자재로 능력을 바꾸진 못하겠 지. 하지만 이 사람들이 방해가 되 는 것도 맞는 소리야.'

마음대로 총을 갈기진 못하게 됐 으니까 말이다. 지금 이들은 제정신 이 아니라 최소한의 방어 능력도 없었다.

'그러니까, 넓은 곳으로 가야 한다. 좁은 곳에서 싸울수록 불리해.'

하지만, 어떻게?

'만약 여기가 꼭대기 층이었다면 지반을 무너뜨리겠지만……

여긴 지하 맨 마지막 층이었다. 건 물 구조에 함부로 손을 댔다가 건 물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죄다 몰살 이다.

'김기택. 내 전투 방식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제대로 방비를 했어.'

1대1로 단순하게 붙으면 날 이기 지 못할 테니까 이런 술수를 쓴 거 다. 지천에 널린 방해물에, 불리한 지형. 게다가 내 주요 무기인 노이 트를 겨누기 어려운 상황까지.

하나같이 내게 악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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