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그 말. 믿어도 됩니까?"
그러나 백목련의 말 또한 증거가 없긴 똑같았다. 그러니 백목련도 새 하나교에 찾아가지 못하는 거겠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는 능 력이라지만, 남들은 그녀가 진짜 그 능력을 쓴 다음 말하는 것인지, 아 닌지. 알 방도가 없으니.'
그러니 이 능력은 밝혀지면 완전 히 양날의 검이다.
약간의 거짓말을 가미하면 세상을 뒤흔들 수도 있는 능력이니, 백목련 은 끊임없이 의심 받을 것이다.
"내 말을 믿을지 말지는 당신의 자유지만."
내가 백목련은 마주한 만큼, 백목 련도 날 마주했다. 그녀는 이미 날 어느 정도 꿰뚫고 있었다.
"날 믿고 싶잖아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새하나교
가 그저 허황된 교리에 빠져서 이 일을 벌이고 있는 거라면. 훨씬 편 한 선택지가 될 테니까.
"좋아요. 믿을게요."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믿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결국 똑같기 때문이다.
그들을 뒤쫓아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일단 그 교주부터 알아보죠. 그 교리를 이용해서 할 짓이 뭔지 대 충 예상은 가지만요."
보나마나 뻔하다.
'인체실험을 하고 있을 거야.'
그럼 그들이 헌터를 잡아간 이유 도 얼추 맞아떨어진다. 현대 사회에 서 헌터만큼 생명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직종도 없다.
'다른 일반인들보다 훨씬……. 그 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격이 높겠 지.'
반쯤 완성품인 상태였을 거다. 그 런 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했 으니, 지금쯤 얼마나 완성되었을까.
'부디. 달리아 같은 경우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내 손끝에서 스러져가는 그 생명의 온기를 느낀 적 있었으니까.
아이템에 제 고혈을 다 빨아 먹히 고 노쇠해지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교주가 이동한 곳은 총 3군데지 만. 개중 가장 중요한 곳은 아 마…… 여기일 거예요.
백목련이 짚어준 지점은 내게도 꽤 낯익은 곳이었다.
저번에 전청운, 김기택과 마주쳤던 그 던전이었다.
-아마 거기가 핵심 장소인 것 같 아요. 그 근처까진 갔었다 했죠? 내부까지 살펴볼 수 있겠어요?
저번에 물러나면서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저 안에 침투해야 한 다.
이번엔 모든 준비를 끝내고 들어
왔다. 저번에 왔던 길을 따라 조심 스럽게 이동하자, 거대하고 휘황찬 란한 건물이 보였다.
'여전히 경비가 삼엄해.'
하지만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정도 는 아니다. 용병들의 수준은 현직 헌터보다 한 수 뒤처진다는 게 대 부분의 인식이니까.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까.'
쓰러뜨리고 들어가는 건 쉽지만, 그렇게 침투하면 안에 오래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어떻게 하면……'
한참 주변을 살피면 고민하던 때 였다.
"여기서 또 이렇게 보네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나. 김기택이었다.
"……김기택 씨."
"혼자 왔습니까?"
"네. 전청운 씨는요?"
"저도 오늘은 혼자입니다."
이게 무슨 우연인지. 두 번이나 우 연히 마주치다니.
'같은 대상을 쫓고 있고, 백목련이
교주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면 홍염 측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따지면, 아주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순수하게 '우연 히 만났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 유는.
'김기택. 당신도 나와 함께 나타롯 샤 신학교에 들어갔던…… 인물이 지.'
그 역시 후보자였다.
새하나교와 내통하고 있는 배신자 일 가능성이 있다.
"왜 그렇게 봅니까?"
"……아뇨. 우연치고는, 자주 마주 치는 것 같아서요."
"우연이라기엔 좀 그렇네요. 저랑 전청운 씨는 번갈아 이곳의 동태를 거의 매일 살피고 있었으니까요."
그랬단 말이야? 생각보다 철저한 마크였다.
"안 그래도 그동안 관찰한 내용을 공유하려 조만간 연락을 드리려던 참입니다만…… 어떻게 다른 곳에 서 냄새를 맡고 오셨군요."
돌려 말하고 있지만, 김기택은 작
게 날 타박하는 거였다.
'우리 말고 다른 정보통이 있구나, 뭐 그런 건가.'
허나 어디까지나 협력 관계지 독 점 관계가 아닌 만큼, 내게 다른 정보통이 있다는 사실이 숨겨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동안 관찰한 내용은 어 떻게 됩니까?"
"잠잠합니다."
김기택은 빠르게 뒷말을 덧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잠잠하게 보입니 다. 저 안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
지 모르니까요."
"출입하는 인원은 변함이 없습니 까?"
"조금 늘었습니다. 유의미한 숫자 는 아니지만요."
그건 꽤나 의외였다. 지금쯤 다른 지부에 있던 실험체들도 다 이곳으 로 끌어 모으고 있을 줄 알았는데.
'실험이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않 은 건가?'
교주가 움직였단 소리에 당연히 실험이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실험소들을 돌면서 교주가 실험 현황을 체크하고 있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면, 혹시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잠시 김기택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연화도 게이트에서 일반인 대 헌 터로 처음 만나, 이제는 어깨를 나 란히 하는 헌터가 되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 함께했지만, 마 지막에 벨제부브를 상대할 때.
전청운과 나, 김기택 거기다 순하 랑. 이렇게 넷은 서로를 믿고 연대 하며 싸워내지 않았던가.
"……그래요. 그럼 오늘 들어가도 별다른 수확은 없겠군요."
"그래서 저랑 전청운 씨도 기다리 고 있는 겁니다. 안으로 들어갔다가 들켜서 경비가 강화되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니까요."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지금 당 장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한서하 씨도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김기택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내가 여기서 물러나는 게 맞다.
별다른 수확 없이 경비만 삼엄하 게 만들어서는 낭패일 뿐이니까.
김기택과 전청운이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는진 몰라도, 내가 분탕질을 치고 난 뒤 온전히 성공하긴 어려 울 거다.
'만약 김기택의 말이 거짓이라면?'
그렇다면. 김기택은 뭔가 일이 벌 어지고 있는 저 안에 날 들여놓고 싶지 않아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어느 쪽이 맞을까.
김기택을 믿어도 좋을까, 믿어선 안 될까.
확률은 정확히 4분의 1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알겠다 고 말한 뒤 뒤돌아섰다.
'확률은 4분의 1이지만, 섣불리 행 동할 순 없지.'
여기서 김기택의 말을 거절할 명 분도 없다. 대놓고 당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말할 게 아니라면.
'일단은 물러선다. 그리고 다음 기 회를 보자.'
지금은 한발 후퇴해야 할 때였다.
* * *
"다녀왔습니다."
"어, 서하 왔네. 마침 잘됐다."
혜원 언니가 환하게 웃으며 날 반 겼다.
"오늘 연원이는 저녁 먹고 들어온 대. 모처럼 둘뿐인데, 오랜만에 나 가서 먹을까?"
친근하게 내게 팔짱을 끼며 말한
다. 나는 어쩐지 그게 거북했다.
'혜원 언니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알고 있지?'
기본적으로 이 집안은 개인주의다. 혜원 언니도 내가 언제 나가 언제 들어오는지 간섭하지 않고, 나 역시 그렇다.
'회귀 전 혜원 언니에 대해서 아는 것도 얼마 없잖아.'
우리가 함께한 3년은 지나치게 고 통스러웠기 때문에. 당장 오늘 하루 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게 전부였다.
'차라리 그 게이트에, 언니가 들어 가지 않았더라면. 나 혼자 들어갔었다면……
그러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내가 혜원 언니에게 미심쩍은 시선을 보 내고, 내 주변인을 의심하는 이 상 황이 오지 않았을까.
"서하야?"
혜원 언니가 대답 없는 나를 재촉 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그래요. 나가서 먹을까요?"
"요 앞에 새로 고깃집 생겼더라."
"거기 가서 먹어보고 맛있으면 다 음에 연원이도 데려가요."
너무 배은망덕한 생각인가.
내가 생각해도 내가 간사했다. 내 인생을 구원한 사람이라며 마냥 따 를 때는 언제고.
막상 후보자에 이름이 오르니, 사 람을 재고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친분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두 동등하게 의심하는 게 맞지만……
가족 없이 혼자였던 날 받아들여 준 사람에게까지 의심을 거두지 못 하는 내 자신이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가서 뭐 먹지? 돼지? 소?"
"둘 다 먹죠."
"좋은 생각이야."
아무 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언 니를 보니 양심이 찔려왔다.
동시에, 오랜 헌터 생활로 벼려진 기감은 혜원 언니도 날카롭게 겨누 고 있었다.
의심의 칼날이었다.
며칠 뒤, 나는 다시 한번 새하나교
의 본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던전을 찾아갔다.
다시 한번 그 안을 뒤져보기 위해 서였다. 그리고 던전에 막 숨어들어 가려는 순간.
끔찍한 연락을 받았다.
-한서하! 너 어디야!
다급한 목소리의 이운우였다. 듣자 마자 잠이 깼다.
무슨 일이지?
"집인데. 무슨 일이야?"
-쌍둥이들 혹시 너한테 갔어?
"쌍둥이들? 걔네가 나한테 왜
-사라졌어!
나는 그대로 굳었다. 누가, 뭐?
-안 씨 쌍둥이들 말이야! 그 둘이, 사라져 버렸다고!
쿵쾅거리는 심장이 느껴졌다.
상황 파악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 다. 만약 이운우가 찾는 사람이 쌍 둥이들이 아니라 이름 모를 청사의 헌터였다면, 좀 더 침착할 수 있었 겠지만.
쌍둥이들이 연관되어 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언제…… 사라졌는데?"
두근. 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귓 가에서 울렸다. 심장이 내 귀 옆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모르겠어. 방금 클리어 된 게이트에서, 본대랑 잠시 떨어졌 었는데…… 클리어 이후에도 보이 지가 않아.
익숙한 패턴이었다. 본대와 떨어진 틈을 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
나와 이운우는 이미 다른 예시를 본 적이 있었다.
'박현종……
그 절뚝거리며 걸어가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 까.
"……끌려간 거야."
- 뭐라고?
"그 애들도, 헌터 실종 사건의 피 해자가 된 거라고."
그제야 이운우는 일전에 나와 나 눴던 대화가 떠오른 것 같았다. 이 운우가 아직 침상에 누워있을 때, 내가 제안했던 그 의심을 말이다.
-박현종……. 그때 그 일이…….
이운우도 나와 같은 사람을 떠올 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아."
- 어딘데.
"위치는 문자로 보낼게. 나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넌 길드 사람들 끌고 와."
-너 먼저 가겠다고? 말이 되는 소 릴 해야지. 상대가 한두 명도 아닌 데 네가 어떻게 혼자서……!
"최대한 빨리 와!"
뚝. 뒷말은 듣지 않고 끊어버렸다.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더 이상 거
리낄 것도 없었고.
'제발. 무사해라. 제발!'
달리아의 꺼져가던 생명이. 아직도 내게 선명했다.
내가 늦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 었다. 쌍둥이들이 끌려온 곳이 여기 가 아니더라도, 이곳을 아작내다 보 면 다른 곳도 연락을 듣겠지.
'죽기 싫으면 하던 실험도 멈추고 도망쳐야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