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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96화 (96/361)

96화

챕터: 드리우는 그림자

"미련하게 이걸 그냥 참고 왔어 요'?"

의사가 핀잔을 준다. 다칠 때마다 찾아서 이젠 내 얼굴도 기억할 지 경이라며, 헌터인 건 알지만 좀 더 몸을 챙겨야 한다며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 예에......

그 질책에 혼이 나가 멍했다. 화상 후 금방 성수를 뿌려 처치했으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치료하느라 한참 고생했을 거라고. 다시는 이러 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간단한 처치를 받고 가벼운 상처 만 남은 팔은 소독 후 붕대를 둘렀 다.

밖으로 나오자 나를 기다리던 사 람들이 벌떡 일어났다. 쌍둥이들, 전청운과 김기택, 거기다 표연원까 지.

"안 가고 있었어요?"

나머지는 몰라도 전청운과 김기택 은 먼저 갔을 줄 알았다. 병원에 같이 온 건 일단 이번 현장 실습 책임자가 홍염 측이라 온 줄 알았 는데.

"네. 그래도 나오는 모습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괜찮아요. 성수 덕분에 응급처치 가 잘 됐다 하더라고요."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안유라가 의심 어린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진짜라고 여러 번 확인시 켜준 다음에야 다행이라며 마음을 놓는다.

"그 학생은요? 황금의 서 설명은 들었죠?"

"응. 지금 교사들이 절차 밟고 계 신다 하더라고/이번엔 안유수가 답했다.

"'연금술사'라는 직업이 개방됐다 곤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 황금의 서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그런 건 정부에서 자세히 알아보겠 죠."

"그것보다 나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다들 말을 안 꺼내서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싶어."

안유라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말 을 꺼냈다. 그러나 선뜻 말을 못 꺼내는 걸, 전청운이 이어받았다.

"그 새는 뭐지?"

- 삐 이 이 I

아하. 나와 계약한 아타노르, 그러 니까 파이로는 내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음……. 말하자면 복잡한데요."

난 연금술사가 아니지만 연금술사 의 심장과 같은 존재와 계약을 했 다는 걸……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내 팔에 화상 입힌 게 얘라는 걸

알면 쌍둥이들이랑 표연원이 뒤집 어질 텐데……

특히 표연원은 혜원 언니의 힘까 지 빌려 파이로를 완전히 내쫓아 버릴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거다.

-삐 이?

"귀여워!"

"귀엽네!"

쌍둥이들이 갸웃, 하는 파이로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냥 신경 쓰지 마요. 별거 아니니까."

대충 둘러대자 내 성의 없는 변명

에 항변하듯이 파이로가 삐이! 하 고 울었다.

혜원 언니는 또 다쳤다는 말에 가 볍게 날 타박했으나, 붕대 두른 것 외엔 별 이상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성수로 치료해서 이 정도라는 건 몰라서 다행이다.'

헌터들에게 이 정도 부상은 흔한 편이니까.

표연원은 무어라 말하려다 말았다. 내가 옆에서 비밀로 해달라고 슬쩍 눈치를 줬기 때문이다.

"참. 다정이한테 연락 왔더라. 네 가 던전에 있던 때라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해뒀거든."

다정 언니라. 혜원 언니가 모처럼 반가운 이름을 입에 담았다.

'공방 오픈 후 순식간에 입소문이 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 랬지.'

초보 대장장이였던 다정 언니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줄 모르 고 수량 한정을 설정해두지 않았더란다.

'그래서 예약이 밀려 한참 뒤에야 시간이 날 거라고 했는데……

내가 오로굴드의 탑 게이트에서 나온 직후에 찾아오겠다는 걸 겨우 뜯어말렸다지.

'날 찾아왔으면 위약금이 어마어마 했을 거야.'

그만큼 한창 몸값이 오른 대장장 이란 소리다. 그럴 만도 하다.

"다정 언니는 잘 지내는 거 같아 요?"

"한창 바쁜 거 같던데. 목소리도

다 죽어가서는..

대충 예상이 갔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 게 지내려나. 김태병이나 설민준. 이런 이들의 소식은 들은 지 꽤 오 래됐다.

"서 하야아아아아아!"

다정 언니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 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밀어내려다 가, 마음을 바꿔먹고 나도 마주 안았다.

"오랜만이네. 많이 바빴다며."

"응응! 너무너무 바빴어!"

"일단 좀 진정해봐."

얼마 만일까. 표연원이 아카데미에 가겠다 선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정 언니는 집을 구해 독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일 감이 몰려와 보지 못한 지 꽤 됐 다.

"뉴스로 봤어! 또 활약했더라!"

황금의 서에 대한 얘기일 거다. 새 로운 직종의 등장은 여러모로 이슈가 되니까.

"운이 좋았지. 발견은 쌍둥이들이 했어."

"맞아. 걔네도 잡지에 자주 나오더 라. 인기가 대단하던데."

가볍게 신변잡기를 늘어놓고 있는 데, 내 감각에 익숙한 사람들이 잡 혔다.

"오랜만임다!"

순박하게 웃는 청년이 제일 먼저 보였다. 김태병이었다.

그 뒤로 고해윤, 이찬송까지 보였 다.

"어?"

다정 언니가 당황스러워하는데 나 만 태연하게 인사를 받았다.

"뭐야? 뭐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서. 정확히 말하면 내가 연락한 건 김태병뿐이 었지만."

김태병은 특유의 넉살로 다른 사 람들과 연락이 계속 닿았던 모양이 다. 김태병 하나만 연락했는데 줄줄 이 따라올 줄은 몰랐지.

"다정 누나〜. 요즘 유명인사던 데?"

이찬송이 샐쭉하니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여전히 머리는 노랗게 탈색한 채 였고,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이 그대 로다.

"뉴스로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고해윤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 기며 말을 얹었다. 이찬송과 더불어 헌터가 되지 않은 인물 중 하나였 다.

'실전 경험을 좀 쌓으면 좋은 정찰 병이 될 것 같았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고해윤은

회계사라는 번듯한 직업이 있으니 굳이 헌터의 세계로 발을 들일 이 유 는 없었다.

"그런데, 그 오빠가 없네?"

"아, 성민이 형?''

다정 언니의 물음에 이찬송이 친 근하게 그 이름을 부른다. 둘은 계 속 연락하고 있던 걸까?

"그 형은 바빠서 못 온다더라. 그 의원 뒤치다꺼리하느라〜."

임천훈 국회의원을 말하는 거겠지. 아직 그 사람 밑에서 일하는 모양 이다.

"와, 이게 얼마 만이야?"

"거의 1년만이지? 작년에도 초겨 울쯤에 모였던 거 같은데."

"뭐, 다들 변한 건 거의 없어 보임 다."

김태병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조만간 우도 쌤이 한 번 더 자리 만들려고 하신다던데. 참석할 의향 있슴까?"

"최우도 선생님이?"

작년에 헌터관리국에 들어갔다는 소식 이후 별다른 얘기를 들은 적은 없었는데.

"그게, 체육관에서 사실 일반인보 다 조금 뛰어날 뿐이었던 우릴 키 운 계 우도 선생님 아니심까. 그걸 눈여겨봤는지 관리국에서 뭔가 프 로젝트를 하나 맡겼다고 함다."

그거 반가운 일이다. 능력 있는 사 람을 마냥 놀리는 건 비효율적이니.

"그런데 우도 쌤이 게이트 현장에 서 클리어팀으로 뛰어본 적은 없지 않슴까? 그래서 우리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은 게 있으신 모양임다."

한결같이 성실한 사람이다. 그러니 체육관이 '무너지지 않는 성곽'이란거창한 이름까지 얻을 수 있었던 거지만.

"전 헌터도 아니고. 패스할게요."

고해윤이 먼저 거절의 말을 내뱉 었다.

"사실 전 그때 일을 더 이상 떠올 리고 싶진 않거든요. 오늘은 한 번 쯤 다들 어떻게 사는지 보려고 나 온 거지만…… 그 이상은 좀 그렇 네요."

덧붙이는 말에, 다들 선선히 수긍 했다.

일반인의 삶으로 돌아간 고해윤에 게 게이트에서 있던 일은 그야말로악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 까.

"으음〜. 나도 패스. 이후로는 좀 바쁠 예정이라."

"변명이 궁색함다."

김태병은 번번이 거절당한 게 속 상한지 불퉁하게 투정했다.

"난 시간 되면 갈래! 가고 싶어! 진짜로!"

"나도. 시간이 되면."

다정 언니와 나는 긍정적인 대답 을 해줬다.

"좋슴다! 정확한 날짜 정해지면 다

시 연락하겠슴다."

그 이후로는 근황에 대한 얘기를 나누느라 바빴다. 김태병은 이제 신 입 티를 벗고 한결에서도 나름 실 력 있는 탱커로 꼽힌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땐, 탱커를 하기엔 심성이 유약해서 어려울 거라 생각 했는데.'

어엿한 헌터가 되어 웃음 짓는 김 태병을 보면 내 판단이 틀렸던 모 양이다.

"요즘은 나이트워커랑 협동을 많 이 해서, 설민준 씨를 자주 봄다."

"아〜. 그렇겠네."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다 보면, 절로 체육관에 있던 시절 이야기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때는 진짜…… 그냥 죽을 줄 알았슴다."

"맞아요. 하필 연차 내고 쉬다가 마트에 간 날 그런 일이 생기다 니……

"재수가 없었지, 뭐."

그 일대에서 살았다면 어차피 피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다른 데가 아니라 마트라서 다행이었지. 나름

물자도 풍부했고."

"불행 중 다행인 거죠."

그 다음에는 또 자리에 없는 사람 들의 근황을 듣고, 마지막으로 다음 에 다시 또 모이자는 약속을 하고 서 헤어지는 것이다.

각자 갈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나와 다정 언니만 남아 지켜봤다.

"……오랜만에 봐서 재밌었네."

"응. 그러니까. 다들 잘 지내고 있 구나."

게이트에서 만났던 이들이 이렇게 각자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는 건,언제나 신기한 일이었다.

* *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신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심에……

앞에서 목사인지 뭔지 모를 사람 이 웅얼거린다.

" 아멘."

"아멘!"

설교 말씀 중간중간에 아멘, 하고 추임새를 넣는 주변 사람들이 낯설었다.

영 맞지 않는 곳에 온 것처럼 어 색하게 이곳에 앉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여기가 새하나교니까.'

폐쇄적인 사이비종교 모임이지만, 김기택과 전청운이 귀띔해줘서 몰 래 찾아올 수 있었다.

원래 다니던 신도인 척, 교회 내부 로 이동한 다음 자연스럽게 섞여들 었더니 생각보다 감쪽같았다.

'따라오려는 파이로를 말리는 건 좀 귀찮았지만……

그것만 빼면 말이다. 불꽃으로 이 루어진 참새를 어깨에 이고 다니는 일반인은 없으니까, 밖에 나갈 땐 보통 집에 두고 다니는데 그게 영 불만인 모양이었다.

"여러분!"

갑자기 연설을 하다 큰 소리로 외 친다.

"우리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아멘!"

"이 끔찍한 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지! 그 해답

은, 우리의 성서에 적혀있습니다!"

성서라. 성경을 제 입맛대로 해석 하기라도 하려는 건가.

"이걸 보십시오!"

팟!

연설하던 사람의 뒤편으로 갑자기 불빛이 비친다. 그러자,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것이 그 모습을 드러 낸다.

' 뭐지?'

검은색 커튼 같은 것에 둘러싸여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술렁술렁, 점점 주변 사람들이 흥

분 어린 기색을 띤다.

"저게 바로 그!"

"허억, 예언의 돌……!"

나만 빼고 다 저게 뭔지 알고 있 는 모양이었다.

"이번 특별 집회를 위해, 정말 어 렵게 모셨습니다!"

외침과 동시에, 커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 오오오오……

그건 분명 석판이었다. 아주 거대 한. 마치…… 황금의 서가 낸 3단 계 시험에서 본 것 같은 거대한 석판.

그 석판에 음각으로 새겨진 문자 들이 선명하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厂세상이 타락하고 오염하여 그 끝이 보일 때, 시간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행하라!」

연설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방도는 그것뿐이니. 현명한 자들은 내 말을 따를 것이고, 아둔한 자들은 내 말을 부정할 것이다!」

잔뜩 들뜬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 이 연달아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 다.

"여러분! 믿으십시오! 현명한 자가 되십시오! 그때가 다가오고 있습니 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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