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응? 그야 3단계는 내가 직접 내 는 문제기 때문이니라."
" 네가?"
"그야, 전무후무한 천재 연금술사 인 내가 그 자질을 가리는 게 가장 정확하지 않겠느냐? 물론 그 후보에 네가 섞여 있을 줄은 몰랐다 만……
테오도르는 어쩐지 불만스러운 기 색이었다.
"네가 연금술사가 될 것은 아니니 사실상 황금의 서가 누구에게 돌아 갈지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구 나."
맞는 말이긴 했다.
"긴장감이 없어 다소 아쉽게 됐지 만…… 저 지구인은 연금술사가 될 자질이 훌륭해 보여 다행이다!"
테오도르가 흡족한 얼굴을 했다. 내가 보기에도, 차준은 우리와는 달리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았 다.
마법사나 힐러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황금의 서가 시험한 것들 중 하나가 감응이었지.'
표연원의 고유 스킬 역시 감응이 라 했는데. 대체 무엇과 감응하는 것일까.
'어떻게 차준은 그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걸까. 우리와 달리……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에 테오도르 가 어깨 위에 있다가 퍼뜩 사라졌 다.
[알림: '황금의 시험'이 시작됩니 다.]
[히든 퀘스트: 황금의 시험 3단계
등급: A
내용: '황금의 서'가 자신을 오랜 잠에서 깨운 도전자들을 시험합니 다. 총 3단계 중 3단계입니다. '위 대한 연금술사'의 시험을 통과하십 시오.
성공 시 '황금의 서'가 주인을 선 택합니다.]
결과가 정해진 시험이 시작됐다.
그때 였다.
-연금술사의 길을 걸으려는 이들 이여!
익숙한 목소리가 웅장하게 울렸다. 테오도르였다.
팟!
불빛이 켜지면서 석판 위로 그림 자가 드리운다. 사람의 형상을 띤 거대한 그림자가 우릴 압도했다.
-내가 직접 그대들을 시험하겠노 라!
이거……. 처음에 테오도르를 봤을
때 그가 썼던 수법 아니던가. 불빛 이 나는 곳 근처에 서서 제 몸집을 크게 부풀리는 것 말이다.
"허, 헌터님……!"
그런데 그게 먹혔다.
차준은 덜덜 떨면서 나를 바라보 고 있었다. 테오도르가 그럴 듯한 흉내를 낸 게 잘 먹힌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대 충 어울려줄 수밖에.
"어떤 시험을 내실 겁니까?"
- 연금술의 가장 기본! '아타노르' 를 깨우는 걸 시험할 것이다!
"아타노르?"
나는 문제부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쓰여 있어요. '가장 뜨거운 불'이라는 뜻이래요. 연금술의 심장 과 같고, 일반적인 약초도 아타노르 를 통해 달이면 그 효과가 극대화 되어 신묘한 힘을 갖게 되고……
차준이 석판을 바라보면 뭐라 중 얼거렸다.
'그러니까 아타노르는 불꽃이란 소 린데. 불꽃을 깨운다, 라……
단순히 불을 피우란 소리는 아닐
텐데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출제자가 앞에 있는데 혼자 북 치 고 장구 치고 할 필욘 없지.
이해가 안 가자 즉각 손을 들고 물어봤다.
-크흠! 그건 내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야…….
"눈앞에 석판밖에 없는데 뭘 어쩌 란 말입니까. 부싯돌로 불을 붙이란 소리는 아니시지 않습니까."
-크흠흠…….
어조는 존대로 했으니 이 정도면
난 최선을 다해서 어울려 준 거다.
-어쩔 수 없지. 작게 힌트를 주마. 본래는 석판을 해석해서 찾아내야 하지만! 특별히! 힌트를 주겠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으면서. 위 엄을 세우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 었다.
-석판 뒤편에 왼쪽에서 3번째와 아래서 2번째 칸, 오른쪽에서 5번 째와 위에서 23번째 칸에 각각 손 을 대 보거라!
우리는 시키는 대로 석판 뒤편으 로 가 섰다. 과연 여러 칸들이 나 뉘어 있었는데, 개중 정해진 곳에손을 얹으면 되는 모양이었다.
탁, 테오가 일러준 칸에 손을 대 자.
쿠구구구궁!
"으악!"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커다란 굉 음이 울렸다.
우리 뒤편, 깎아지른 듯이 높았던 절벽 한복판에…… 길이 트여 있었 다.
'이거 완전…… 테오의 방으로 가 는 길 같잖아?'
취향인가? 비슷한 형식처럼 보였
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준비된 아타 노르가 둘 있다! 주변에 갖가지 재 료들과 장비들이 있으니 자유롭게 그들을 깨워내 보거라!
흐음. 그런 방식이군.
나는 불안감에 갈팡질팡하는 차준 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라 항의하는 것 같았지만, 목덜미를 붙 잡고 가니 이내 조용해졌다.
"우와아……!"
안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연금술사 의 공방' 같은 공간이 늘어서 있었 다.
가운데 놓인 2개의 화덕. 그리고 벽을 따라 늘어선 책장에는 갖가지 서적들이 꽂혀 있었다.
말린 약초, 다양한 생김새의 플라 스크들, 라벨이 붙은 채 밀봉된 약 물들, 포르말린과 함께 유리병에 담 긴 내장들까지.
'진짜 연금술사의 공방 같네.'
차준은 벌써 눈을 반짝 빛내며 주 변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어떠냐? 내가 정성 들여 준비한 곳이니 라."
테오도르가 작은 몸집을 내 머리
카락 사이로 숨기며 말을 걸어왔다. 대답하긴 어려웠기에 고개를 끄덕 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헌터님! 헌터님!"
차준이 잔뜩 신이 나서 나를 불렀 다.
"이것 좀 보세요! 여기 책에 쓰인 대로 약초를 가루 내서 이 약물에 넣어 보니까..
약초를 가루 내어 밀봉되어 있던 약물의 뚜껑을 열고 살살 집어넣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사르륵-
가루가 녹아내리는 것과 동시에 약물의 색깔이 완전히 변화하기 시 작한 것이다.
불투명한 회색에서 형광 연두색으 로!
"이건…… 신기한 일이네."
"그렇죠? 여기 쓰인 것들이 정말 이면 아타노르를 깨울 방법도…… 알 것 같아요!"
그러더니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 했다.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를 구경하기 시작했고.
"너도 뭔가 흉내라도 내는 게 낫
지 않겠느냐?"
"그렇겠지? 너무 손 놓고 있으면 이상하니까."
작게 속삭이며 대답했지만, 뭔갈 손대고 싶어도 아는 게 있어야 가 능한 일이다.
대충 약초를 둘러보고 약물들을 한 번씩 흔들어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걸…… 이렇게 하면!"
그렇게 시간이 잠시 흐르자, 차준 은 뭔가 약물을 만들어낸 것 같았 다.
그는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아타노르가 잠들어있을 화덕 주변 에 연성진 같은 것을 그리고, 그 홈에 약물을 흘려 넣었다.
사아아아…….
홈이 메워질수록 은은한 빛깔이 감돌았다.
"호오…… 단번에 성공하다니. 대 단하구나."
테오도르가 감탄하는 것을 보면 초보가 하긴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후우욱, 후욱-
이파리가 달린 나뭇가지를 그 위
에 두어 번 휘두르자 변화가 생겨 났다.
타닥-
불티가 튀었다. 곧이어 타다다닥, 하고 말굽이 내달리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화르륵!
"돼, 됐다!"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화르륵, 불타오른 그것을 하늘 높 이 올라갔다 서서히 내려왔다. 기이 하게도 불꽃이 의지를 품은 것처럼.
'자신을 깨운 이가 누구인지 확인
하는 것처럼.'
불꽃이 물끄러미 차준을 바라본다.
- 훌륭하구나!
테오도르가 웅장한 목소리를 냈다.
- 정말 아타노르를 깨워내다니. 대 단해! 그 자질이 몹시 아름답다!
테오도르가 칭찬을 쏟아내자 차준 도 벅차오르는 감정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봤다.
"그럼…… 시험은 통과한 건가요!"
- 흐음. 그러나 이 시험은 아타노 르를 '먼저' 깨워내는 시험이 아니었다.
응? 잠깐만.
-그러니 다른 도전자가 아타노르 를 깨워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합당할 터이다.
"알겠습니다!"
아니. 난 깨워낼 방법도 모르고 그 럴 생각도 없는데.
'테오도르. 이렇게 나온다 이거 지?'
내가 시늉도 내지 않자 심술을 부 리는 거다.
"헌터님! 헌터님도 분명 해내실 수
있어요!"
차준의 응원도 영 탐탁지 않았다. 저 애는 진심으로 내가 해낼 수 있 다고 믿는 것 같지만…….
'이거 어떡한담.'
나는 화덕 앞에 섰다. 저 안에 잠 들어 있는 불씨를 깨우는 게 과제 였지.
미안하지만 나는 차준처럼 얌전히 약물을 조합해서 연성진까지 그리 는, 그런 방법은 쓰지 못한다.
'전쟁터만 구른 내게 익숙한 방법
으..'
딱 하나다.
철컥.
총을 장전하자 테오도르가 황급히 목소리를 냈다.
-자, 잠깐만! 뭐 하는 짓이냐!
그러나 늦었다.
"차준. 이 방에서 나가!"
"네? 네, 네넵!"
그동안의 시험을 거치면서 배운 바가 있었는지, 차준은 내 외침을 듣자마자 곧장 뛰쳐나갔다.
방과 복도 사이에 서서 고개만 빼
꼼 내민다. 그가 안전지대로 간 것 을 확인하자 나는 총구를 위로 올 렸다.
'쏟아지는 불꽃'
탕!
총알이 허공을 가르고.
파바바바박!
-아, 안 돼애애애! 내 공방이이이!
총알비가 공방 안에 쏟아졌다. 약 초는 불에 타고, 약물이 든 병은 깨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차준이 깨운 아타노르는 몸집을 확 키우며 제 보금자리인 화덕을지켰지만…….
타닥, 타다닥…….
잠들어 있던 내 아타노르는 그러 지 못했다.
화덕이 총알을 맞고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안에서 불티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공격받은 아타노르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삐이이 이익!
주전자의 물이 끓는 듯한 소리와 함께.
화르륵!
열기가 확 풍겼다. 삽시간에 불씨 가 사방으로 날리며 제 등장을 알 렸다.
화덕을 깨고 온전히 제 모습을 드 러낸 그것은, 내가 아는 것과 꽤 유사한 모습이었다.
"……불사조?"
불사조, 피닉스! 불꽃으로 둘러싸 인 새.
깃털 대신 불꽃을 두르고, 날갯짓 마다 불티가 날리며 주변 온도를 높였다.
퍼드득, 뜨거운 열풍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열기가 너무 가까웠 다.
- 삐 이 이 이 이 이 이!
잔뜩 화가 난 것처럼 소리를 높인 다. 그때마다 귀청이 아팠다.
"깨어나셨군."
그래. 내가 아는 건 이런 방법뿐이 다.
자고 있으니 깨우라고?
포근한 보금자리를 깨부숴주면, 이 렇게 저절로 튀어나오는 것을!
-어떡하려고 그러느냐! 아타노르 의 분노를 사다니! 연금술사가 될길이 영영 막히고 싶어 그러는 거 냐!
"난 연금술사 될 생각 없다니까."
연금술사들에겐 이 불꽃이 절실할 지 몰라도, 내겐 아니었다.
불 속에서 웅크려있다 막 깨어난 녀석은, 심기가 불편한 기색을 역력 히 드러냈다.
"내가 널 깨웠어."
놈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 았다. 내가 범인임을 시인하자 후 욱, 열풍이 날 향해 불었다.
"날 공격하진 않는군."
-주인이 없는 아타노르는 아직 영 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래? 그래서 저렇게 화가 났는 데도 가만있는 거네."
-대체 어떤 미친 연금술사가 아타 노르를 공격한단 말이냐!
"난 연금술사가 아니잖아."
과연. 불사조를 닮은 그것은 퍼드 득, 불꽃 깃털을 휘날릴 뿐 날 공 격하진 못하고 있었다.
"자. 테오도르. 심사 결과를 알려 줘야지."
-뭐?
"네 시험은 '아타노르를 깨울 것' 이지 '예의를 갖춰 깨울 것'은 아니 었잖아? 난 시험을 수행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