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챕터: 황금의 서
휘날리는 책들 사이에서 우린 혼 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 들은 우릴 공격하지 않고 그저 주 위를 맴돌 뿐이었다.
'이게 진짜 황금의 서가 작동한 거 라면.'
이번에 아주 운이 좋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 던전을 드나든 이들 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진작 발견 되지 않은 덴 이유가 있다.
우선 발동 확률이 극악이다.
회귀 전에도 황금의 서는 한참 뒤 에야 발견된 안배였다.
전쟁 중에 발견된 터라 연금술사 의 육성에 온전히 힘을 쓸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엔 정말 좋은 기회 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로, 이 '황금 의 서'는 연금술사로서의 자질을평가하는 시험을 낸다.
총 3단계로 이루어져있고 각 단계 마다 연금술사의 자질을 테마로 삼 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구에서 '연금 술사'는 진작 그 대가 끊긴 지 오 래다. 고리타분한 유사과학으로 취 급되는 수준이니까.
그러니 연금술사의 자질이 뭔지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시험에서 대부분 실패했지 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자질들에 대해서!
[알림: '황금의 시험'이 시작됩니 다.]
[히든 퀘스트: 황금의 시험 1단계
등급: C
내용: '황금의 서'가 자신을 오랜 잠에서 깨운 도전자들을 시험합니 다. 총 3단계 중 1단계입니다. 수많 은 책들 가운데 '황금의 서'가 원하 는 책을 손아귀에 넣으십시오.
성공 시 연계 퀘스트 '황금의 시험 2단계'로 넘어갑니다(선착순 5명).]
역시!
기다리던 알림이 떠올랐다. 날개라 도 달린 것처럼 날아다니는 책들 가운데, 그 제목까지 정확히 읽어내 붙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책들이 다 비슷하게 생겼다면 더 더욱 그렇고.'
알림이 뜨자 다들 무슨 일인지 대 충 알아챈 것 같았다. 숨겨진 퀘스 트가 시작된 것이다.
"교사 분들은 우선 학생들을 진정 시키고, 참여하고 싶은 의사가 있는 지 확인해주세요."
"예? 학생들을 말입니까?"
"그냥 책을 잡아서 되는 일이 아 닙니다. 황금의 서가 원하는 책을 잡아야 하는 거죠. 참여자가 많을수 록 퀘스트를 깰 확률이 높아집니 다."
"하지만 아직 이 애들은 정식 헌 터도 아닌데. 너무 위험합니다."
교사가 불안감 섞인 얼굴을 했다. 하긴. 이대로 뭔가 일이라도 생기면 이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겠지.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학생들에 게도요."
나는 연금술사가 될 생각이 없다. 그럴 자질도 없고. 하지만 이 안에 있는 학생들은 다를 수도 있다.
'아직 정확히 포지션을 정하지도 않았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니까.'
어중간한 레인저가 될 바에야 뛰 어난 연금술사가 되는 게 개인에게 도 국가에게도 이득이다.
내 말에 교사는 연금술사라는 직 업의 존재를 모르니 단순히 '경험 을 쌓기 좋고 나중에 커리어로 사 용할 수 있다' 정도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 자체로도 좋은 이력이긴 하지.
'연금술사가 될 자질이 있는 학생 을 도와 황금의 시험을 통과하게 돕는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 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교사를 설득했다.
"히든 퀘스트가 발동하면 클리어 전까지 던전을 빠져나갈 수 없어요. 어차피 우리 전원이 1단계를 통과 하는 게 아니면, 5명을 채우려면 자연히 학생들까지 필요할 겁니다."
내 말에 겨우 교사는 고개를 끄덕 였다. 여전히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어차피 교사의 허락은 그 다지 필요하지 않다.
이 1단계 시험은, 함정이 있으니 까.
교사가 원하면 이 퀘스트에 참여 해도 된다고 전달하자 학생들이 눈 빛을 빛낸다. 저마다 활약을 할 기 회라 생각하는 것 같다.
퍼덕퍼덕, 하늘을 나는 책들은 얼 핏 수천은 되어 보였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황금의 서가 원하는 책이 무엇일 까.'
책들은 온갖 장르, 온갖 분야가 뒤 섞여 있었다. 얼핏 스치는 책들의 제목을 보면 경제, 역사, 정치, 생 활과학, 물리학 전문서적에 고양이 간식 레시피북까지 다양하다.
"난 저걸로 정했어!"
학생들 중 하나가 불쑥 튀어 오르 며 책 하나를 잡아냈다. 제법인 실 력이 었다.
'저 정도 높이로 부유하는 대상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도 학생들에 겐 쉽지 않지.'
뒤이어 다른 학생들도 저마다 책 하나라도 잡아보겠다며 제 능력을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벼락이 쏟아 지고, 식물이 자라나기도 했다.
"뭘로 할지 정했습니까?"
김기택이 옆에서 물었다. 나는 살 짝 고개를 저었다.
"어렵군요. 황금의 서가 원하는 책 이라……
김기택도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 는 한참 고민하더니 제 의견을 꺼 내기 시작했다.
"황금은 예로부터 가장 고귀한 광 물로 여겨졌죠. 지금도 물질적인 것 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 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경제서적이겠지만, 한 번 더 꼬아서 생각 하면……
그가 날 바라본다.
"종교 서적일지도 모르겠군요."
" 왜죠?"
"황금은 '태양'의 상징물로 사용되 기도 하니까요. 태양은 고대부터 종 교의 대상이었고, 그 덕분에 몇몇 신화에서 가장 고귀한 신은 황금색 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그럴듯한 추리였다. 정답은 아니지 만.
"태양신 '라'에 대한 책을 찾아봐
야겠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베껴 가 도 되겠습니까?"
그게 목적이었나. 자신이 추리한 내용을 알려주는 대신 내 고유스킬 을 복사해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손을 맞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그는 도서관 천장 한복판에서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 들은 제각기 맞는다고 생각하는 책 을 한 권씩 들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했다.
"언니. 언니도 책 아직 못 골랐 어?"
"어려워〜. 이런 철학적인 문제는 질색인데."
안 씨 쌍둥이들이 다가와 우는 소 리를 했다.
"서하 언니가 제일 먼저 통과할 줄 알았는데. 고민을 오래 하네?"
"고민하는 게 아니야."
"그럼?"
"기다리고 있는 거지."
둘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 정을 했다. 그럴 만도 하지.
이 1단계 시험의 함정은…… 우리 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 게 만든다는 점이다.
'황금의 서가 원하는 책을 골라 라……. 그렇게 느껴지지.'
하지만 전혀 아니다.
'연금술사'라는 직업은, 그런 직업 이 아니니까.
"뭘 기다리는 건데?"
나는 아직도 한참 천장 가까이서 날고 있는 책들을 응시하며 답했다.
"책들이, 날 선택하기를."
그때. 책들 가운데 딱 한 권이 내 앞으로 내려앉았다.
내 머리 위를 두어 바퀴 돌며 나 를 살핀다.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 리다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손 가락을 뻗었다.
촤르륵!
책은 머뭇거리다가 이내 촤르륵 펼쳐졌다. 한 페이지를 펼치더니 내 손 위에 가볍게 안착했다.
스르륵-
꼬리처럼 달린 책갈피가 한 구절
아래가 착 붙었다. 밑줄이라고 치는 것처럼.
「자고로 연금술은 하늘 몰래 행 해야 하는 것이다.J그 구절을 눈에 담자 알림이 울렸 다.
[알림: '황금의 서'가 원하는 책을 손아귀에 넣으십시오(1/5).]
그 알림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떴 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알림: '황금의 서'가 원하는 책을 손아귀에 넣으십시오(2/5).]
[알림: '황금의 서'가 원하는 책을 손아귀에 넣으십시오(3/5).]
얼마 지나지 않아 쌍둥이들이 동 시에 나타났다.
"우와!"
"방금 뭐였어? 방금?"
둘은 잔뜩 신이 난 채였다.
"서하 누나가 했던 것처럼 우리도
마음을 바꿔 먹었더니, 책들이 다가 왔어!"
"뭐라 그랬더라? 연금술이 어쩌 고'?"
아차. 내가 저 둘에게 힌트를 준 덕에 1차 시험을 통과한 모양이다. 본의 아니게 시험에 혼란을 줘버렸 다.
[알림: '황금의 서'가 원하는 책을 손아귀에 넣으십시오(4/5).]
그다음 나타난 것은 전청운이었다.
꽤 의외의 인물이었다.
"아, 뭐야
"책들이 보는 눈이 없네."
쌍둥이들이 툴툴거렸다. 전청운이 야말로 오만하게 '내가 너를 선택 하겠노라' 하고 굴 줄 알았는데. 그 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전청운은 쌍둥이들이 시비를 거는 것을 태연하게 무시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2단계 시험은 아직인가?"
"아마도 5명이 다 모여야 하는 것 같아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지막 다섯 번째 합격자가 들어왔다.
[알림: '황금의 서'가 원하는 책을 손아귀에 넣으십시오(5/5).]
"어? 어어……'?"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하다.
입고 있는 옷은 교복에, 밀빛 머리 카락은 단발 길이다. 키는 작고 눈 매는 동그랗다.
"히익! 허, 헌터님들......!"
마치 몬스터라도 만난 것처럼 우 릴 보더니 덜덜 떠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보아하니 아카데미 학 생 같은데…….
'누구지?'
처음 본다. 이름을 날린 헌터는 아 니란 소리다. 그런데 황금의 시험을 통과했다니.
"이름이?"
"차…… 차준입니다!"
잔뜩 얼어 있는 게, 말을 더 걸면 역효과만 날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학생은 차준뿐인
데…… 내가 개입해서 시험이 엉망 이 된 건가? 아니면 헌터들 중에 연금술사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이 있는 건가?'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알림: '황금의 시험'이 시작됩니 다.]
[히든 퀘스트: 황금의 시험 2단계
등급: B
내용: '황금의 서'가 자신을 오랜 잠에서 깨운 도전자들을 시험합니 다. 총 3단계 중 2단계입니다. 제한된 시간(30분) 안에 이 방에서 탈 출하십시오.
성공 시 연계 퀘스트 '황금의 시험 3단계'로 넘어갑니다(기여도 순 2 명).]
방 탈출이라? 가볍게 주변을 훑었 다.
동그란 반구 형태의 방이었다. 방 의 가장자리에서 두 걸음 정도 거 리에 흰색 줄이 그어져 있었다.
천장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빛을 내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스탠드 마이크처 럼 솟은 기둥과 그 위에 펼쳐진 책 이 있었고.
그 옆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각기 다른 재료가 놓여있었다.
각각 이름 모를 흰색 꽃, 구리, 동 상이었다.
"아마 이 책에 힌트가 있을 것 같 은데."
"방 모양이 둥근데 뭘 의미하는 거지?"
우리는 각자 생각하는 대로 방 안 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먼저 살폈지만, 도무지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rVerum, sine mendacio, certum et verissimum. Quod est inferius est sicut quod est superius..j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이건.... 타불라 스마라그디나 (Tabula Smaragdina)네요."
불쑥 내 옆으로 다가온 차준이 말 했다. 동그란 안경을 치켜 올리며 책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타불라…… 뭐?"
"학문과 수학의 신인 헤르메스의 무덤에 새겨진 원문이요."
그게 뭔데. 나만 모르는 거야?
"무슨 뜻인지 알아?"
" 네?"
도리어 차준이 나를 이상하게 바 라본다.
"한글이잖아요."
"뭐? 아니. 내가 보기엔 아닌데."
"아니라고요? 한글인데……
차준이 나와 책을 번갈아 바라본 다. 자신이 보기엔 한글인데, 내가아니라고 하니 혼란스러운 모양이 다.
"어……. 다시 보니 한글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니. 억지로 동의할 필욘 없고. 아무래도 다르게 보이는 모양인데. 왜 그런 건지 모르겠네."
내 눈치를 살피며 말하길래 잘라 냈다.
헌터를 동경하는 건 알겠는데, 암 만 그래도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 다 해도 믿을 것처럼 구는 건 또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