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90화 (90/361)

90화

챕터: 국립 아카데미 실습

"게이트 안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입니다."

결국 나까지 나서서 수습할 수밖 에 없었다.

"특히나 초보일 경우 더욱 그렇죠. 이런 문제는 대부분 누가 '오더'를

내리는 역할인지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을 때 생깁니다."

설명을 덧붙이자 전청운와 안유라 의 싸움이 좀 교육적으로 변모했다.

"지금처럼 여러 길드 출신이 협업 하는 경우, 같은 길드 출신끼리 팀 을 짤 때보다 다툼이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학생들 중 하나가 손을 들고 물었 다. 게이트 클리어팀은 대개 자기 길드끼리 들어가지만, 고난도일수록 여러 길드가 섞이기 마련이다. 그러 니…….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협의를 하는 게 제일 이상적이지만…… 그 렇게 협의를 해도 싸움이 일어나기 도 합니다."

"해결책은 없는 건가요?"

"대체로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내 말이 시시했는지 실망한 기색 을 보인다. 내가 말하는 '시간'은 그런 의미가 아닌데.

"몬스터를 만나 죽기 직전이 되면 어떻게든 협력을 하게 되니까요."

웅성웅성, 학생들이 작게 속닥거렸 다. 아직은 '몬스터'나 '죽기 직전'

이나 둘 다 와 닿지 않는 말들일 테지.

내가 학생들을 상대하는 동안 김 기택과 안유수가 어찌어찌 다툼을 해결한 것 같았다.

둘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뭐, 몬스터를 보면 대충 감이 오겠지.

'무너진 도서관' 던전.

총 4층으로 이루어진 탑 모양의 던전이다. 벽면마다 책장이 둘러싸 고 있고 복잡하게 얽힌 계단과 방 들이 특징적인 곳이다.

가장 흔하게 나오는 몬스터는…….

"저게 '줄꼬리책벌레'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알렸다. 저 너 머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

책이 펼쳐진 채로 등등 떠다니는 것 같은 모양새다.

이름처럼 책갈피같이 길게 늘어진 꼬리가 있고 펼쳐진 책 가운데에 작게 벌레의 머리 같은 게 붙어있 다.

"등급은 D등급으로, 신인 헌터들 에겐 4인 이상 파티를 이루어 사냥 할 것을 권장하는 등급이죠."

교사의 설명을 뒤로하고 우리는

저마다 눈짓을 했다. 누가 먼저 나 설지 살피는 것이었다.

이 정도 등급의 던전에서 협업까 진 필요하지 않다.

"원거리 딜러 위주 학생들이라 했 으니, 제가 먼저 시범을 보여드릴게 요."

결국 또 내가 나섰다. 총의 형태를 한 아이템은 드물어서 거너를 지망 하는 학생은 별로 없겠지만.

원거리 딜러가 어떻게 싸워야 하 는지, 그 이론은 설명해줄 수 있었 다.

"파티를 맺으면 탱커가 어그로를

끄는 게 정석이지만, 불의의 사고로 혼자 떨어지거나 부상 등으로 탱커 가 무력화될 경우를 대비해 혼자서 싸우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온 줄꼬리책 벌레가 우리의 숫자를 보고 주춤했 다.

내가 두어 발자국 앞서 녀석에게 다가갔다.

"가장 기본은, 거리를 두는 것이 죠."

내가 총을 들자,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았는지 책이 파다닥 몇 장 넘 어갔다.

이내 한 지점에서 멈추더니, 책의 한 구절이 빛나기 시작한다.

이 책벌레 계열 몬스터들의 공통 된 특징이다. 구절에 따라 마치 마 법과 비슷한 공격을 했다.

슈우욱!

책 한가운데서 마치 채찍 같은 것 이 튀어나와 내게 휘둘러졌다.

촤악!

가볍게 피해내자 바닥을 긁고 지 나간다. 도서관 바닥이 으드득 갈라 졌다.

그 살벌한 모습에 학생들이 허억,

하고 숨을 들이켰다.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채찍이 다시 휘둘러 졌다.

촤르륵! 나는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다시 채찍을 피했다.

"그 다음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 는 것이고요."

말을 마치자마자 또 채찍이 귓가 를 스쳤다.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피해냈지만, 내 뒤편에 있던 책장은 관통당해 책이 우수수 떨어졌다.

'공간 간섭'

스킬을 발동하자, 발끝부터 차오르 는 감각이 느껴졌다. 은은한 충만감 이 기분 좋게 넘실거리고.

후욱-

바람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대로 쏘기만 하면 놈은 끝나겠 지만…… 시범용으로는 너무 이르 지. 총을 겨누는 시늉만 하고 쏘진 않았다.

촤아아악!

"허공에서……!"

채찍이 아직 체공 중인 나를 노리

고 날아온다.

보통 허공에선 공격을 피하기 어 렵지만…… 내게는 식은 죽 먹기다.

채찍이 내 쪽을 향해 거세게 뻗어 왔다. 하나, 둘, 셋. 속으로 숫자를 센 다음.

철컥.

다음 순간 나는 놈.의 앞에 서 있 었다.

채찍을 되돌려 나를 공격하려고 하지만, 나보다 빠를 순 없었다.

탕!

책의 정중앙, 벌레처럼 솟아있는

머리에 대고 총을 쐈다. 퍼드득, 책 이 몇 장 휘날렸다.

"……이렇게. 마무리하면 됩니다."

아차. 그런데 깜빡하고 평소처럼 싸워버렸다. 원거리 딜러의 싸움이 라고 하기엔 좀 어폐가 있다.

"물론 다른 원거리 딜러들이 일반 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근접전을 대비해두는 자세도 필요 합니다. 몬스터와의 전투는 항상 예 측 불가능한 변수가 많으니까요."

애써 그렇게 둘러댔다.

학생들은 좀 멍한 표정이었다.

몬스터를 실제로 본 것도, 헌터가 그걸 상대하는 모습을 본 것도 처 음일 테지.

아카데미 내에서 자신들끼리 대련 하던 수업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거다.

"자, 자. 방금 본 장면 잘 기억해 뒀다가, 너희도 헌터가 되었을 때 그렇게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명심해라!"

교사들 중 한 명이 호탕하게 외쳤 다.

내 할 일은 끝났으니 뒤로 물러섰 다.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대충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지 감 이 왔는지, 뒷사람들도 그럭저럭 나 쁘지 않게 해냈다.

전청운이 푸른 불꽃을 검신에 피 워낼 때는 학생들이 오오오,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쌍둥이들 이 화살을 겹쳐 쏘는 기교를 부리 며 괜한 경쟁심을 불태웠고.

김기택은 손을 든 학생들 중 한 명 것을 복사해서 적당한 활용법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잠시 식사하는 시간 갖겠습니다!

점심시간은 1시간입니다!"

그렇게 한 번씩 싸우는 모습을 보 여주자 금방 점심시간이 됐다.

던전 안이기 때문에 나와 전청운, 김기택이 밥을 먹는 동안 안 씨 쌍 둥이들이 주변을 경계하기로 했다.

제공받은 도시락을 대충 먹고 있 는데, 저 멀리 아는 얼굴이 보였다.

' 연원이잖아.'

표연원이었다. 아는 척하지 않기로 약속해뒀는데, 막상 눈에 들어오니 자꾸만 시선이 갔다.

주변에 2명의 친구들이 더 있었는

데…… 둘 다 아주 낯이 익었다.

한 명은 분홍색 솜사탕 같은 머리 카락의 여자아이였다. 저 특징적인 색깔은 잊을 수가 없다.

'경진아. 물 타입의 마법사.'

이운우가 워낙 독보적인 마법사였 기 때문에, 후세대 마법사들은 대부 분 빛을 발하지 못했다.

개중에서 그나마 이름을 알렸던 것이 경진아였다. 그나마도 실력이 아주 뛰어나서 그랬다기보단, 고유 스킬과 상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고유스킬, '비바라기'.

그 덕분에 잠시나마 일대에 비바 람을 불러올 수 있었고, 그 환경 속에서 물 마법사는 훨씬 막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괜찮은 친구를 뒀어.'

내가 기억하는 경진아는 붙임성 좋은 성격에 사회성이 뛰어나 두루 발이 넓은 편이었다.

반대편에 앉은 사람도 아는 얼굴 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금색 눈동자. 짧 게 깎은 머리에 커다란 귀가 인상 적인 남자다.

'원우태. 단검을 다루는 솜씨가 제 법이었지.'

나이트워커가 아닌 다른 길드에서 두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경진아, 원우태에 표연원이라. 이 번 4세대는 풍년이겠어.'

저들뿐만 아니라 치고 올라올 다 른 루키들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 다.

"한서하."

" 네?"

"잠시 할 말이 있다."

상념에 빠져 있던 나를 현실로 불 러일으킨다. 전청운과 김기택이었 다.

저 둘이 내게 할 말이라면…… 어 느 정도 예상이 갔다.

'헌터 실종 사건에 대한 얘기겠 군.'

따라 나서자 일행들과 떨어진 으 슥한 곳으로 향했다.

"뭔가 알아낸 게 있나요?"

"어느 정도는요. 새하나교가 주기 적으로 집회를 여는 곳을 알아냈습 니다."

김기택의 말이 꽤 희망적이었다. 집회하는 곳이라. 그곳으로 가면 뭔 가 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 까?

"잠입할 생각인가요?"

"그러고 싶지만, 우리 둘은 미디어 에 너무 잘 알려져서 어렵습니다. 한서하 씨,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요."

그런 이유라면 이해가 갔다. 전청 운은 두말할 것도 없고, 항상 붙어 다니는 김기택도 얼굴이 많이 팔린 상태였다.

"좋아요. 장소를 알려주면 제가 일

반인인 척 잠입해 볼게요."

"그 사이비종교의 핵심 인물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의 교리가 갈 수록 구체화되고 있다고 하는데 정 확히 어떤 내용들을 설파하는지 알 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그때 다시 연락 할...

"아아아악!"

불길한 소리가 났다. 누군가의 비 명소리 가.

우리는 눈빛을 서로 교환하고는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떨어 져 있는 사이에 뭔가 일이 생긴 것같았다.

밖에 나가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게 무슨……

우리는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책장 에 꽂혀 잇던 책들이 죄다 꺼내져 나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새처럼 하늘 을 나는 책들과 그 아래서 우왕좌 왕하는 인간들의 모습이란.

서둘러 교사들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밥을 먹 다가 갑자기……!"

"안유수, 안유라!"

주변을 방비하던 애들이라면 뭔갈 알겠지. 그들을 부르자, 2층 난간에 올라타 주변을 살피던 둘이 사뿐히 착지했다.

"뭔가 본 게 있어?"

"음……. 그게."

안유수가 어물쩍 말을 흐렸다. 이 것 봐라?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마 우리가 건든 것 때문인가

본데……

"너희…… 제정신이야?"

아마추어도 아니고, 프로 헌터가 되어서 이런 실수라니. 그것도 학생 들을 인솔하는 입장에서!

둘은 자신들의 잘못은 아는지 찔 끔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 잘못은 던전에서 나가면 다시 정확히 지탄할 일이고, 지금은 사실 관계 확인이 더 중요했다.

"뭘 건드렸어?"

"아니 그게, 주변을 살펴봤더니."

"누가 봐도 귀하게 모셔놓은 것

같은 책이 있더라고."

"황금색 책표지에 엄청 큰 보석들 도 박혀 있었고. 아무튼 평범한 책 은 아니었어."

"건드리니까 갑자기 사라지더 니…… 그 다음부터 이래. 우리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황금책?

내 옆에서 얘길 듣던 교사는 영문 을 모르겠단 표정을 했으나, 나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테오의 안배!'

숨겨진 테오의 안배들 중 하나였

다. 그것도 발동 확률이 극악이라 나조차도 찾을 엄두는 못 내던 것 이었다.

'황금의 서.'

연금술의 시작은, 구리를 금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금'은 연금술에서 가장 존 귀하고 순수하게 여기는 것으 로…… 대개 '진리'의 은유로 보기 도 했다.

이렇게 보면 황금의 서가 고리타 분한 진리의 서적이나 철학서 같지 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황금의 서는 전직템이다.

그러니까,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탄 생할 수 없는 직업군.

'연금술사'를 해방하는 열쇠란 소 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