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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83화 (83/361)

83화

-신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지요. 당신 옆에도 있는데, 그 존재를 부 정하다니 요-아이템이라 불리기도 한다죠. 우 린 '신의 조각'이라 부르는 걸 선호 하지만요.

성대 안쪽부터 긁어내리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 아직도 선명하 다. 그 성녀가 내뱉은 말들이.

그리고 그 '신의 조각'을 여기서 다시 들을 줄이야.

'그래. 물론…… 지금까지 스테이 지형 게이트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 한다는 가설은 있었으니까, 예상 못 할 건 없지만.'

나타롯샤 신학교 게이트와 오로굴 드 탑 게이트가 같은 세계관을 공 유한다고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 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서 그렇지.

"아……. 내가 오늘 좀, 정신이 없 어서. 잠깐 착각했나 봐."

"뭐야많이 피곤했나 보다."

"응. 좀 그렇네."

애써 시선을 피했다. 떨리는 눈동 자를 보이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그럼 얼른 자자. 내일 일어나려면 이제 슬슬 자야지."

"그래. 잘 자고."

그 말을 끝으로 마릴린은 침대에 서 돌아누웠다. 나는 그녀를 잠시보다가 천장을 바라봤다.

'……좀 더 조사해 봐야겠어.'

여기가 뭐 하는 곳이길래 신의 조 각을 연구한다는 건지. 내가 속한 부서는 그럼 뭘 조사하고 있는 건 지.

그걸 알아내야 했다.

* * *

'생태계의 균형과 대기층의 산소 밀도, 인류 적합성 검사 결과, 부적 합, 토양의 성분 분석……

한밤중에 연구실로 몰래 숨어들어 이런저런 자료들을 헤집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지 만 연속되는 내용을 보니 조금 짐 작되는 게 있었다.

'여기. 아무래도……

생각을 마저 끝마치기도 전에 '띠 리릭' 하는 소리가 났다.

곧바로 몸을 숙여 책상 뒤에 숨었 다. 연구실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였 다.

저벅, 저벅. 발소리를 죽인 누군가 가 안으로 들어온다.

'누구지?'

이 밤중에 찾아온 불청객이라. 내 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주 수상하 다.

고개를 들어 누군지 얼굴만 봐두 고 싶지만, 혹여나 들키면 낭패기 때문에 겨우 참아냈다.

저벅, 저벅. 걸음 소리가 점점 멀 어지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은…… 저쪽.'

살금살금 따라붙었다.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들어간 곳은, 여러 기계들 로 가득한 방이었다.

'……지구의 것과 유사해 보이지만 작동 원리가 아예 다르다.'

얼핏 보기엔 내가 익히 아는 '기 계'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전기 에너 지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

'연성진, 마력석……. 마나를 원동 력으로 하고 있나.'

철판에 음각으로 새겨진 마법진과 그 가운데 자리 잡은 마력석. 지구 의 배터리 같은 역할을 이 녀석이 하고 있었다.

'우리 쪽의 무전기와 비슷한 작동 방식인데.'

그 마력석을 이렇게 때려박다니. 돈이 얼마나 많은 거지? 아니, 여 기선 마력석이 비싸지 않은 건가?

우웅, 우우우웅-

퍼뜩 고개를 들어보니 제일 안쪽 에 놓인 기계가 작동되고 있었다.

커다란 용광로 같은 기계였다.

사람보다 훨씬 큰 원통 겉면에 마 법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기 계 주변에 주렁주렁 달린 것들은 마력석에서 마나를 뽑아 가운데로 옮긴다.

마나가 모여들며 마법진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바닥부터 차근차 근 푸른 빛이 차오르고.

우우우우웅-

용광로 안에 푸른색 안개 같은 것 이 서리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요동치며 아름다운 빛깔 을 자랑한다. 안개 같기도 하고 물 결 같기도 한 것이 아주 신비로웠 다.

은은한 빛을 내뿜는 용광로 덕에 나도 침입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댄버!'

차석 연구원, 댄버였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걷어내고 차갑게 굳은 낯을 하고 있었다.

'댄버가 왜? 무슨 짓을 하려고?'

댄버는 능숙한 손길로 용광로 앞 에 붙어있는 조작판을 건드리고 있 었다.

우웅! 쿠우우우우-

그러자 용광로에 서렸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그 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에 뭐가 있는 거지?'

내가 있는 곳에선 그 안쪽까진 제

대로 보이지 않았다. 댄버는 안쪽을 들여다보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 었다.

그러다 이내, 소리가 들려왔다.

-'니'!■니|". 비"I'ti'l'.

어린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

-빠앙!

-거 운전 똑바로 하쇼!

성을 내는 운전자의 소리,

-아, 담임 진짜 개또라이 아니냐?

-인정. 하는 짓 보면 노답이야.

학생들이 낄낄대며 누군갈 험담하

는 소리까지.

내게 너무도 친숙한 것들이었다.

'지구다. 지구를 보고 있는 거야.'

저 용광로 같은 것으로, 다른 세계 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댄버는 그것들을 보며 시시각각 표정을 변화시켰다. 거칠게 욕하는 무리를 볼 때는 혀를 찼고, 가난함 에 배를 곯는 학생을 보며 안타까 워했다.

고된 노동 후 곤히 자는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아버지 앞에선 눈물을 글썽였고, 자긴 죽어도 좋으 니 아이만 살려 달라 우는 산모의외침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그 수많은 인생들을 지나, 한 곳에 도달했다.

- 아빠아, 아빠아.

칭얼거리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 리가 울렸다.

- 아빠, 아빠 언제 와요?

- 음……. 샛별이가 꼬박 열 밤을 자면……, 그럼 그때 오실 거야.

- 거짓말. 저번에도 열 밤이라 했 잖아요. 이미 열 밤 잤는데 왜 아 빠는 안 와요?

순진무구한 아이의 채근에 여인이

곤란하단 듯이 웃는다.

u.아빠 여 기 있 어.99

댄버가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 딸…… 울지 말렴……. 아빠 가 항상 지켜보고 있는데……

용광로에 빠져들 것처럼 상체를 숙인다. 허리가 위태롭게 걸쳐졌다.

저러다 저 안에 빨려 들어가면 분 명 뭔가 사달이 날 것이다.

우우우웅-

용광로가 댄버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굉음을 냈다.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언제 와

요? 아빠가 나 버리고 간 거예요?

"아냐, 아냐! 누가 그런 소릴 해……

그는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맞죠? 애들이 그랬어요. 아빠가 우릴 버리고 간 거라고. 다신 돌아 오지 않을 거라고.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내가 어 떻게, 어떻게 클로에 널 두고……!"

그 순간, 무게 중심이 무너지고. 댄버의 몸이 앞으로 쏠린다.

"어어……

탁!

"허억!"

젠장. 그냥 두고 볼 순 없었다.

댄버는 주요 인물인데, 여기서 죽 으면 어떡한단 말인가.

"헉..헉..... 자, 자네는.

그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일 단 뛰쳐나가 겨우 붙들긴 했는데.

'뭐라 변명하지?'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데, 댄버는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못 볼 꼴을 보였네요."

"아닙니다."

"쟈넷. 왜 이 시간에 여길?"

"자기 직전에 논문에 대한 아이디 어가 떠올라서요. 다른 연구원들 안 계실 때 실험해보려고 슬쩍……. 죄 송합니다."

"아뇨. 제가 누굴 혼낼 처지는 아 니니……

그야 그렇지. 내 변명이 그럴듯했 는지 댄버도 더 지적하진 않았다.

"……못 본 척해줘요. 나도 미련이 남아 그랬던 거니까. 얼른 정리해야 한단 걸 나도 아는데…… 자식의 죽음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어 요."

"방금 그 아이는

"적합 평가 대상 E-11A에 사는 아이요. 그냥 우연히 보게 됐는데, 내 딸아이랑 너무 닮아서 그만그래서 밤마다 몰래 훔쳐보셨다?

'E-11A가 지구인 모양인데. 적합 평가 대상이라.'

"쟈넷도 풍문으로 들어 알겠죠. 내 딸아이가 어떻게…… 어떻게 끔찍 하게 죽었는지."

그가 음울한 눈빛을 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하다.

"……우리 서로 못 봤던 걸로 합 시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두어 번 더 휘청이는 댄버를 반쯤 부축 하다시피 했다.

댄버를 방문 앞까지 데려다준 뒤 내 방으로 돌아오면서, 몇 가지 새 로 얻은 정보들을 정리했다.

'다른 세계를 엿보는 기계에, 지구 를 적합 평가 대상이라 칭하는 것. 게다가 마력석의 존재까지.'

이 정도면 조심스레 떠올릴 만한 게 있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곳에서 연구하고 있는건 혹 시…….

' 게이트인가……?'

그렇게 생각이 저절로 흘렀다. 지 구를 대상으로 적합 여부를 실험하 고, 다른 세계를 엿보고 있다니.

그렇다면 이 세계관은 톨룩을 배 경으로 만들어진 걸까? '신의 조각' 이니 뭐니 운운하는 것도?

그게 아니면 혹시.

'스테이지형 게이트는…… 톨룩의

실존하는 사건들을 배경으로 재구 성되는 건가?'

소름끼치는 상상이었다.

다음 날 댄버와 나는 전날 밤 아 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잡일을 수행했고, 댄버도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이 스테이지의 목표는 뭘까.'

댄버의 과거를 살짝 엿본 것으론

부족했는지, 아직 목표에 대한 알림 이 뜨질 않았다.

우선은 잡일을 수행하면서 연구 내용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는 게 전 부였다. 그리고 연구실 내부 구조를 파악했다.

'이따 밤에 와서 뒤져봐야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있었다.

"차석 연구원님의 따님?"

"응. 뭔가 들은 게 있어?"

달리 친해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 에, 나는 마릴린에게 슬쩍 물었다.

"나도 소문으로만 들은 거라 확실

하진 않은데……

"무슨 소문이었는데?"

"음……. 그분 따님이, 오염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가 있어."

목소리를 낮추고 작게 속삭인다. 오염이라?

'내가 아는 그 오염?'

톨룩을 거의 죽음에 몰아넣고, 지 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그 오염?

'톨룩을 배경으로 만든 것 같긴 했 는데…… 오염까지 존재한다니. 지 나치게 똑같잖아.'

마릴린이 이어서 부연설명을 했다.

"왜, 그분 원래는 오염 쪽 부서에 서 일하셨잖아. 따님이 살아 있을 땐 어떻게든 치유법을 알아내려고 연구를 계속했는데…… 따님을 잃 고 나선 그만두고 게이트 부서로 이전하신 거야."

" 그래......'?"

이곳에서 연구하는 것들이 하나같 이 심상치 않았다. 게이트, 신의 조 각, 거기다 오염이라.

"이 보고서 RCT 연구실로 전해 줘."

다시 잡일들을 도맡아 하는 도중.

"네."

"아, 그 옆방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알지? 착각하지 말고, 제대로 확인 해서 들어가."

아주 흥미로운 얘길 들었다.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면 건드리 고 싶어지는데.'

그야 여기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 는 게 내 임무니까. 모르는 척 들 어갈 수 있다면 최고인데.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그 앞을 지 나가는데, 평소엔 굳게 닫혀있는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안쪽을 살짝만……

아닌 척 눈동자를 굴렸다.

문 틈새로, 비밀의 방 내부가 보였 다.

벽면까지 온통 전선 같은 것으로 빼곡하다. 물론 전선은 아니겠지만. 사방이 보조용 기계들로 가득하다.

연구원들도 빈 바닥이 없어 그냥 기계뭉치를 밟고 서 있을 정도였다.

조금 더 들여다보니 꼭 인큐베이 터처럼, 투명한 구체 안에 뭔지 모 를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그 가운데 영롱하게 빛나는 것은…….

'저게 대체 뭐지?'

눈살을 찌푸리며 더 자세히 보려 는 찰나였다.

"쟈넷! 보고서 안 가져오고 뭐 하 나?"

"아. 네! 갈게요!"

한 번 더 안쪽을 흘깃 보고는 서 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 안에 들어있는 건…….

'반투명하고, 혈관처럼 푸른 빛무 리가 전신에 퍼져 있었지만.'

그건 분명 태아의 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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