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80화 (80/361)

80화

조용히 빠져나가기 위해 퇴로를 수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입하는 것보다 무사히 빠져나가는 일이 더 고난도인 법이 다.

슥!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김기

택이 황급히 제 발밑을 살펴보니 함정이었다.

'여기까지 함정을 심어뒀나.'

뒤돌자 우리 쪽을 향해 몇몇 무장 부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움직일 수 있어요?"

"잠시만요. 금방 해제할 수 있습니 다."

김기택이 함정을 처리하는 동안 나와 전청운은 다가오는 적들을 상 대해야 했다.

'상대는 다섯.'

생각보다 많은 수가 한 번에 움직

인다. 소수로 움직이다 목이 잘리면 다른 이들에게 신호를 못 보낼 텐 데. 아쉽게 됐다.

'저 정도 숫자면 한 번에 죽이는 건 불가능해.'

순서대로 처리하면 마지막 녀석이 분명 자신들의 본부에 지원을 요청 할 거다.

'……최대한 빨리 도망치는 수밖에 없나.'

빠르게 움직여 용역 업체가 활동 하는 구역으로 나가면 쉽사리 쫓아 오진 못할 거다.

'저 정도 거대한 건물을 세운 걸

보면 이 던전 소유주도 공범이라 생각해야겠지만. 보안을 위해서라도 용역업체까지 끌어들이진 않았겠 지.'

용역업체까지 한편이라면…… 다 소 피를 보겠지만.

"이 부근이다. 샅샅이 수색해."

"네!"

어느새 가까이에 놈들이 있었다. 검을 들고 맞서 싸우려는 전청운을 말렸다.

왜 그러냐는 듯이 날 바라본다.

전청운은 정직하게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검사지만, 내겐 더 효율적 인 전투 방법이 있었다.

'공간 간섭'

안광에 푸른빛이 감돈다. 잠깐 눈 을 감았다 뜨면.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서걱-

카람빗으로 가장 뒤에 있던 자의 목을 벤다. 소리 없이 깔끔한 최후 였다.

털썩.

"멈춰! 습격이다!"

시신이 바닥을 구른 다음에야 내

존재를 눈치챈다. 뒤에서 습격이라 외치자 선두에 선 자들이 뒤돌아 상황을 살핀다.

그사이에 나는 이미, 또다시 그들 의 뒤였다.

탕!

제일 선두에 있던 자의 머리에 총 알이 박혔다.

그 소리에 두 번째로 앞장서던 사 람이 뒤돌았다. 나와 잠깐 눈이 마 주친다.

방금까지 제 뒤에 있던 사람이 시 체가 된 걸 알고는 얼굴에 경악이 들어찬다.

깜빡.

다음 순간 나는 전청운의 옆에 서 있었다.

다섯 중 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전청운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 었다.

"여기는 E-3조! 여기는 E-3조! 습격자다! 습격자가 발생했다! 지원 바란다!"

아. 역시나 늦어버렸다. 놈들 중 하나가 무전기에 대고 지원군을 외 친다.

놈들의 실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야 헌터로 이름을 날릴 수준은 아니니 그럴 수밖에.

수준급 용병이라면 여기서 보초나 서고 있을 리가 없고.

"나머지는 내가 하겠다."

"마음대로. 김기택 씨. 얼마나 더 필요해요?"

"2분만 더 있으면 됩니다."

그 정도면 됐다. 전청운이 나서서 칼을 휘두르기 전에, 김기택이 다급 하게 외쳤다.

"전청운 씨! 가기 전에 얼굴! 얼굴 가려요!"

"아. 그렇군."

그제야 목까지 내렸던 것을 다시 쓴다. 방독면? 눈까지 덮진 않지만 코와 하관을 완전히 가리는 형태였 다.

거기다 모자까지 뒤집어쓰자 얼굴 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전청운은 얼굴이 잘 알려진 헌터 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어 차피 저들 중 살아 돌아갈 놈은 없 겠지만, 허튼소리를 무전기로 전하 면 곤란하지 않은가.

"그럼 다녀오겠다."

저 정도면 전청운을 알아보긴 어 렵겠지.

슥! 서걱. 우드득.

살벌한 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됐습니다."

김기택이 겨우 발을 빼냈다. 잘못 움직였으면 바로 발목이 날아갔을 텐데. 함정 해제까지 능숙하다니.

'그래서 전청운 옆에 붙은 건가. 이것저것 다 커버 가능하니까.'

동료 헌터라기보단 김기택이 전청 운을 케어하는 느낌이 강하긴 하다.

"어서 가죠."

전청운이 돌아오자 김기택이 서둘 렀다.

지원군이 오기 전에 도망친 덕에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던전을 나오고 나서 한동 안 말없이 걸었다.

나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우리는 헌터들이 실종되는 사건 을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있었다."

전청운이 먼저 서두를 열었다.

"너 역시 그렇겠지?"

"……맞아요."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본 바에 따르면 새하나교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기택. 전에 연화도 게이트에서 새하나교 를 언급한 적이 있지 않나?"

전청운은 새하나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기색이었다.

-...몬스터에 대해서 잘 아시네 요?

-관심이 많아서요.

-뭐, 새하나교, 그런 겁니까?

전청운의 말처럼. 김기택은 일전에

내게 이 종교를 언급한 적이 있었 다.

"예. 그랬죠. 저도 단순히 이단 종 교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뒤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이야."

하긴. 보통 사람이라면 새하나교에 대해 자세히 알 기회가 없을 거다.

"저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계속할 생각이에요."

"저희 역시 그럴 예정입니다."

아직 밝혀내야 할 것이 남았으니 까.

"좋은 정보를 얻거나 만약의 사태

가 생기면, 서로에게 연락하는 게 어때요."

내 말에 전청운과 김기택이 눈빛 을 교환한다.

정보 공유는 중요하다. 내가 무모 하게 잠입하지 않고 얌전히 빠져나 온 이유도 백목련에게 정보를 전달 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내 주변에 이 사태를 잘 알고 있 는 인물이 많을수록,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쉽다.'

혹여나 내가 새하나교에 납치를 당해 실종된다면 이들은 가장 먼저 저곳부터 수색할 거다.

"좋습니다. 협력하도록 하죠."

나는 김기택과 가볍게 악수했다. 또 다른 협력자의 등장이었다.

* * *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상한 형 상이 보였다.

' 뭐지?'

허름한 차림새에 제대로 씻지 못 한 건지, 흙구덩이를 굴렀는지 산발 을 한 머리카락.

누더기 같은 모포를 뒤집어쓰고 우리 집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인물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빤히 웅시하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봐도 누군 지 알 수가 없었다. 더러운 모포가 얼굴을 반쯤 가리고, 나머지 반도 흙먼지 때문에 가늠이 안 갔다.

그런데 날 보고 반가운 기색이 역 력해서 헐레벌떡 달려온다.

휘날리는 모포 사이로 드러나 팔 과 다리는 잘 단련되어 있고, 허리춤엔 망치를 매고 있었다.

공격할 의사는 없어 보이는데 성 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꽤 위협적이 었다.

"서하야아아아!"

이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익숙 한 말투, 아는 목소리였다.

"다정 언니?"

"응응응! 맞아! 나야!"

덥석 내 손을 잡는다.

세상에. 송다정이라고?

'대장장이 수련을 가서 고생을 할 줄은 알았지만…… 이게 무슨 꼴이 야?'

완전히 거지꼴이었다. 그것도 상거 지꼴.

"나 드디어 내려왔어. 서하 널 만 나려고 전에 네가 살던 데로 갔었 는데 이사 갔다고 하고…… 한참 헤매다가 겨우겨우 태병이랑 연락 이 닿아서 여기까지 왔어……!"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코를 찌르는 악취에 그 말에 집중 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스승님은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하니 하산하기엔 이르다고 하 셨지만…… 후후…… 흐흐흐…… 잘 해결하고 왔어."

송다정이 음침하게 웃었다.

'무슨 짓을 하고 온 건데……?'

위험한 대답이 돌아올까 봐 차마 묻진 못했다.

"네가 알려준 대로 하니까 정말 스승님이 날 제자로 받아주시더라 고. 물론 처음 받는 제자라 시행착 오도 많았지만…… 네 말이 맞았 어."

더러운 것들 사이로 송다정의 한 쪽 눈빛이 맑게 빛났다.

"내게 재능이 있었어. 대장장이의 재능이."

귀한 생산직을 발굴해낸 것이었다. 재능 있는 신인 대장장이라.

게다가 그녀의 스승이 '헤파이토스 의 재림'이라 불렸던 그 사람인 게 밝혀진다면, 그야말로 몸값은 천정 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1세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헌터들 은 죄다 그의 무기를 받아다 썼다.

헤파이토스를 이어받은 그 칭호처 럼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사지가 멀쩡한 다른 대장장이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고한다.

"많이 고생했지. 그분 성격이 보통 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처음엔 고생을 좀 했지. 그래도 나중엔 익숙해졌고 대장장이 일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란 걸 알고 나 니까, 이해할 수 있었어."

잘은 모르겠으나 웃으며 말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으리라. 회귀 전 그 의 밑에 있던 대장장이는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몸서리치도록 끔찍 해 했다.

"칭호 '키클롭스의 화신'을 얻기 위해 희생한 것도 있었지만……

이리저리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걷히며, 가려져 있던 얼굴 한쪽이 드러났다.

한쪽 눈이 꿰매져 있었다.

" 언니......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키클롭스. 사이클롭스라고 부르기 도 하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거인 종족의 명칭으로, 안하무인에 제멋 대로지만 한 가지 특출한 장기가 있었으니.

그들은 타고난 대장장이들이었다.

이렇게 신화를 배경으로 한 칭호 는 대상의 명확한 특징을 닮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외눈박이 대장장이들의 화신이 되 기 위해, 직접 제 한쪽 눈을 포기 한 것이었다.

"괜찮아. 내가 선택한 일이었으니 까."

그녀가 다정하게 웃었다. 제 이름 처럼.

♦ ♦ ♦

혜원 언니와 표연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송다정을 안으로 들였다. 몰 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욕실로 먼저 떠밀었다.

"내 보호색인데!"

"여긴 산이 아니라 도심이야. 보호 색은 필요 없어."

"그, 그렇지만!"

다정 언니가 미약하게 저항했으나 양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했다.

"연화도 게이트에서 같이 있었다 고?"

"네. 그 실내 체육관에 있었던 사 람이 에요."

"그래. 같이 힘든 일 많이 겪었겠 네."

혜원 언니는 안쓰럽다는 듯이 우 릴 바라봤다. 오랜만에 만나 할 얘 기가 많을 텐데 회포를 풀라며 자 리를 비켜주기까지 했다.

"저분이시구나."

송다정을 한 겹 벗어내고 한층 말 끔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네가 찾으러 갔던 사람이."

잠시 혜원 언니가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더니 나를 바라보고 웃는다.

"좋은 분이신 것 같네."

"응. 많이 신세지고 있고."

"아까 보니까 웬 남자애도 있던 데?"

아, 표연원을 말하는 것 같았다. 잠깐 내려와 우리 둘을 바라보고 조용히 올라갔는데.

"혜원 언니 동생이야. 나한테도 친 동생 같은 애고."

"그래?"

다정 언니가 잠시 침묵했다. 아득 히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한 번씩 분위기가 싹 바뀌네.'

어쩐지 내가 보지 못하는 곳, 그 너머까지 바라보는 것처럼 굴었다.

하나뿐인 그 눈으로, 대체 무엇을 보는 걸까.

"……나중에 대화할 기회가 있으 면 좋겠네."

"지금은 외부인을 많이 가리는 데…… 나중에 한번 물어볼게. 근 데, 갑자기 연원이는 왜?"

"고민이 많아 보여서."

다정 언니는 그렇게 일축할 뿐이

었다.

"참! 내가 선물 가져왔는데! 그 얘 길 안 했네."

주섬주섬, 챙겨온 옷가지들 사이에 서 불쑥 무언가를 꺼낸다.

단검이었다.

저 특징적인 가느다란 검신은…… '스틸 레토'?

"연수원에서 보니까 곡도를 곁들 여 쓰던데, 난 곡도보다는 찌르기용 단도를 더 잘 만들어서…… 이걸로 가져왔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네."

스릉-

검집에서 뽑자 서슬 퍼런 기색이 역력했다.

'좋은 검이야.'

검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한눈 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명검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