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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77화 (77/361)

77화

챕터: 톨룩의 존재

이운우를 비롯한 클리어팀이 살아 돌아온 뒤, 세상은 한동안 그것으로 들썩였다.

죽은 줄 알았던 헌터들이 구조된 게 아니라 자력으로 게이트에서 나 왔다는 점이 무척 드라마틱했기 때 문이다.

클리어팀의 중심에 섰던 이운우와 전청운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언니. 조금 자요. 제가 할게 요."

"아냐, 괜찮아. 너도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고 있어."

혜원 언니가 죽을 끓이며 대꾸했 다.

안타깝게도 바깥의 열기는 여기까 지 닿지 않았다. 여전히 표연원은 밤마다 악몽을 꾸며 뒤척였고, 혜원 언니는 문 앞에서 쪽잠을 자며 그 를 걱정했다.

"얼마 못 잤잖아요. 제가 할게요. 조금 더 자요."

"으응……. 고마워, 서하야. 그럼 잠깐만 부탁할게……

언니가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 하고 내게 맡겼다. 제아무리 몇 날 며칠을 밤새워도 끄떡없는 헌터라 곤 하지만, 벌써 두 달째였다. 한계 가 올 때도 됐다.

막 혜원 언니가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일반 휴대폰이 아니라, 혜원 언니 가 역천 업무를 볼 때만 사용하는 사무용 휴대폰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휴대폰으로 온 연락은 무시 할 수 없다.

" 여보세요?"

혜원 언니가 한껏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쯤 감겼던 눈이 순식간에 동그랗 게 뜨였다.

"어. 응. 뭐? 아……. 그게 오늘이 었나? 어, 지금 당장?"

언니는 누워있던 상체를 벌떡 일 으켰다. 뭔진 모르겠지만 당장 어딜 나갈 일이 생긴 것 같다. 하지 만…….

'연원이가…… 상당히 불안해할 텐

데.'

표연원은 게이트에 다녀온 이후 여러 불안증세를 보이고 있었고, 개 중 하나가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 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음……. 꼭 내가 가야 해?"

혜원 언니도 그것이 영 마음에 걸 렸는지 되물었다.

"알아. 알지……. 언제까지 이럴 수 없다는 것도."

씁쓸할 어조였다. 통화 상대가 누 구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정도 잔 소리꾼은 조연호밖에 없을 거다.

"그래도, 상태도 점점 괜찮아지고 있으니까. 안정을 취할 때까지만."

언니도 참 동생에겐 무르기만 했 다. 저 둘이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것이야 잘 알고 있지만, 이번엔 유 독 과보호가 심했다.

'게이트에서 폭력사태를 겪은 일반 인들 대부분이 평생 PTSD를 호소 하며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럴 법도 해.'

표연원처럼 게이트 내부에서 집단 구타를 당하거나, 회귀 전의 안 씨 쌍둥이들처럼 내분으로 인해 여러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을 대상으 로 국가에서 여러 심리치료 서비스 를 제공하곤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그래, 나도 알아. 내 마음 편하자 고 너희한테 다 떠밀 순 없다는 거."

후우, 혜원 언니가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결단이 서린 숨결이었다.

"알겠어. 차 준비해서 우리 집 앞 으로 와. 바로 준비하고 출발할 테 니까."

"무슨 일인데요?"

"정부에서 소집 회의를 연다고 했 었는데……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 서 오늘인 줄 깜빡했지 뭐야. 주요 길드 길드장과 그 측근 2명으로 입 장을 제한한다는데…… 정확히 뭣 때문에 불렀는지는 가봐야 알 것 같아."

그렇다면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다른 길드 사람들도 서둘러 움직이 고 있을 터였다.

"그럼 제가 연원이 돌보고 있을게 요. 다녀와요."

"……안 돼. 너도 함께 가야 해."

"제가요?"

"정부에서 널 꼭 동반해서 오라고 했거든."

나?

'아. 톨룩에 대한 내용인가?'

테오의 방에서 넘겨줬던 톨룩 관 련 문서들이 드디어 해독이 끝나고 정부까지 올라간 모양이다.

정부에서도 내부 회의를 거듭한 끝에 길드에 협조를 구해야겠다고 결정한 것 같았다.

"네가 뭔가 할 일이 있다고, 개인 활동을 하겠다고 했을 땐 뭔가 했

는데…… 오늘 가면 알게 되겠지. 네가 그렇게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알아낸 게 뭔지."

혜원 언니도 내가 연관되어 있단 걸 눈치채고 내 쪽을 보며 웃었다.

"……저도 가야 하면, 연원이는 요?"

내 말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래서 나도 가기 싫어했던 건 데…… 일단은 연호한테 대신 좀 있어달라고 부탁해야,"

타닥.

표연원이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아차.

'또 일러바쳤나.'

잘은 모르겠지만, 표연원과 대화를 나눈다는 그 형태 없는 것들이 여 기저기 퍼져있는 것 같다. 그래서 표연원은 제 귀가 닿지 않는 곳에 서 우리가 나눈 대화도 다 아는 것 처럼 굴 때가 있었다.

"다녀와. 연호 형도 남을 필요 없 어."

"연원아. 괜찮겠어? 회의가 언제 끝날지 몰라."

"괜찮아. 이제 혼자 있는 것 정도

는. 누나가 너무 과보호라니까."

표연원이 작게 웃으며 타박했다. 그도 티 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헌터인 우리의 눈을 피하지 못해 다 드러나는 게 문제 지만.

"그래도…… 연호랑 같이 있는 편 이,"

"누나."

단호한 어조로 표연원이 말을 끊 어 냈다.

"정말 괜찮다니까? 난 내가 누나 하는 일에 방해가 되면 그게 더 싫 을 거야. 그게 더 속상하고."

그 또렷한 주장에 입을 다물 수밖 에 없었다. 그야, 표연원도 알고 있 었겠지. 자신 때문에 역천의 업무가 죄다 정지됐다는 걸.

"그러니까 둘 다 잘 다녀와. 난 사 실 진짜 혼자도 아닌걸."

표연원이 가볍게 손짓하자 식탁에 놓여있던 작은 로즈마리가 춤을 추 듯 움직이며 화답했다. 다시 봐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빵빵!

때마침 밖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 가 들렸다. 조연호가 왔다는 신호였 다.

"그럼 우리 금방 갔다 올게! 문단 속 잘하고, 죽 끓여놨으니까 이따가 먹고!"

"다녀와요. 걱정하지 말고요."

서둘러 대충 짐을 챙겨 뛰쳐나갔 다. 차에 타자 조연호도 표연원을 홀로 둬도 괜찮겠느냐 물었으나, 우 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거야. 저 애도 마냥 약하 기만 한 건 아니니까.'

지금은 힘들어 할지라도 언젠가 다시 일어설 거다. 내가 아는 표연 원은 그런 사람이니까.

겉으론 마냥 유약하고 굳세지 못 한 성정을 가진 것 같지만. 그 속 내의 심지는 아주 곧고, 부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녀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귀 전에도 나랑 같이 역천을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거지.'

혜원 언니의 죽음을 목격한 직후. 나만 보면 언니가 생각나 피하던 때도 있었지만 끝내 극복해냈다. 선 천적으로 무던하지 못하고 섬세한 성격이라, 아마 극복하기까지 죽을 만큼 힘들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내가

표연원을 보며 배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연원은 언제 나 상처투성이로도 일어나 내 옆에 섰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러겠지.'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다. 저 애가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만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말이다.

* * *

회의장 앞에 도착하니 유명 인사

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규모가 제법 큰 길드를 대상으로 회의를 소집한 것 같았다. 대부분 한 번씩은 이름을 들어본 길드들이 었다. 대충 봐도 한결, 나이트워커, 체리콕, 거기다…….

"와. 저 양반도 왔네."

혜원 언니가 같은 사람을 보며 중 얼거렸다.

청사와 홍염이 눈에 안 보이는 지 금, 이곳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길드 는 저곳이었다.

아니. 길드라고 해도 될까? 기존의 길드와는 상당히 다른 체계를 지니고 있는데 말이다.

"오! 역천도 이곳에 왔군."

거친 회색 머리카락을 하나로 올 려 묶은 상대가 먼저 우리를 아는 척했다. 날렵한 눈매 아래 회색 눈 동자가 우리에게 향한다.

행동거지는 거침없고, 행색은 남루 하나 편한 복장이었다.

"이거, 좀 더 작을 때 봤던 것 같 은데. 벌써 이렇게 컸나? 한 이쯤 왔던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작진 않았어요. 지금보 단 좀 작긴 했지만."

진성연. 거구의 여성이 다가오자 한껏 올려다봐야 했다. 진성연이 대 충 자신의 허리께를 견주며 얘기하 자 혜원 언니가 아니라며 항변했다.

"그랬던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역천의 길드장으로 자리 잡은 걸 보니 감회가 새롭군."

살아있는 헌터계의 역사. 최석철과 더불어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1세 대 헌터였다.

'딜러 역할도 하는 탱커……. 일명 딜탱의 개념을 재정립한 헌터.'

1세대 헌터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물러난 지 오래지만 딱 한 명, 진성연만큼은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 고 있었다. 주요 활동지가 우리나라 가 아니라 외국이긴 해도.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오셨네요. 한동안 여기 계실 건가요?"

"그럴 리가. 우연히 날이 겹쳐 회 의에 참석하게 됐지만, 당장 모레 비행기 표가 예매되어 있거든. 금방 떠날 몸이지."

진성연이 이끌고 있는 길드 '적 멸'.

길드라기보단 용병 집단에 가깝다. 이들은 소속감이 옅고, 단순히 힘의 논리에 따라 길드장을 정했다. 가장강한 자가 이들을 다스린다, 그 간 단명료한 법칙에 열광하는 이들이 그 아래 모여들었다.

'적멸의 길드장은 아직까지 한 번 도 바뀐 적이 없지.'

부나방처럼 달려든 이들 모두 진 성연의 무력 앞에 처참히 패배했기 때문이다.

"옆은 처음 보는데. 새로 데뷔한 신인?"

"한서하라고 합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겸손한 게 요즘 애들치고 드물게 싹수가 보이는구만!"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 드린다. 가까이서 본 진성연의 머리 카락은 단순한 회색이 아니었다. 새 치가 뒤섞여 멀리선 회색으로 보였 을 뿐이었다. 본래는 칠흑처럼 검은 머리 였으리라.

"오늘 아주 재미난 게 발표될 예 정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두 는 게 좋아."

진성연이 작게 속삭였다. 우리만 알고 있으라며 슬쩍 한쪽 눈을 찡 긋한다.

'거대 길드에겐 미리 알려둔 내용 인가.'

생각보다 빠른 대처였다. 지지부진 시간만 끌고 있는 게 아니라 진작 거대 길드들에겐 손을 뻗었다니.

'그래. 이렇게 빠듯하게 준비해야 지.'

회귀 전과는 달라질 것이다. 한 걸 음 더 빨리 움직일 테니까. 그렇게 다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길드 관계자 분들은 회의실 안으 로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5분 뒤 회의가 시작됩니다!"

정부 측 사람이 크게 외쳤다. 우린 잠시 나누던 담소를 끊고 안으로 향했다. 안에는 청사와 홍염이 이미자리 잡고 있었다.

홍염의 윤강백. 좌우로는 전청은과 김기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청사의 전서호. 그 양옆은 이운우 와 정진문이었다.

우연인지, 여섯 명 다 아는 사이였 다. 정진문은 일전에 청사와 함께 언데드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 본 적이 있었으니까.

작게 눈인사를 건네고 말없이 자 리를 잡았다. 좌석에는 혜원 언니가 앉고 나와 조연호는 그 뒤편 양옆 으로 서 언니를 보좌했다.

"참석해주신 모든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바쁜 와중에 귀한 시 간 내어주셨습니다."

정부 측 인사가 나와 서두를 열었 다. 타이를 목 끝까지 졸라맨 중년 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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