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76화 (76/361)

76화

쾅! 문 여는 소리가 거세게 들렸 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청사 본부로 무작정 찾아온 참이 었다. 데스크 직원이 내게 무슨 일 로 찾아오셨냐고 묻는 것을 중간에 끊어내고 불쑥 물었다.

"위에 전서호 길드장님 계십니 까?"

"예? 길드장님 스케줄은 함부로 알려드릴 수가 없는 사안……

"위에 있나 보네요."

없으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겠지.

"잠깐만요! 허가 없이 들어오실 경 우 청사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며 무단 침입으로 법적 처벌을 받으실 수……!"

"나중에 청구하세요. 역천의 한서 하한테 청구하시면 됩니다."

내 말에 직원이 멈칫했다. 내 얼굴 은 몰라도 이름은 아는 모양이지.

"이 이상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직원 대신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 람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전서호 길드장님을 뵙고 싶습니 다. 제가 왔다고 말이라도 전해주시 면 얌전히 기다리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저희 권한으로는 길 드장님께 바로 연락을 드릴 수 가……

"그럼 직접 가겠습니다."

내 단호한 얼굴에서 협상의 여지 가 없는 것을 느꼈는지 잠깐 기다 려달라고 황급히 외친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그…… 저 희는 아무 권한이 없고, 대신 팀장 님께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 정도면 나도 기다릴 법했다. 고 개를 끄덕이자 경비원은 곧바로 휴 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 다.

"예, 팀장님. 지금 역천의 한서하 헌터가 길드장님을 뵙고 싶다고 찾 아왔습니다. 말이라도 전해달라 하 십니다. 네……. 저희가 막기엔 ……. 네. 네네. 네, 알겠습니다."

통화는 금방 끝났다. 억울한 인상 의 경비원이 내게 말을 전했다.

"잠시 뒤 다시 연락주신다 합니다. 다만 지금 길드장님께서 기존 일정 도 다 취소하시고 긴급회의에 들어 가신 터라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

띠리리링-

"잠시만요. 예, 팀장님. 네?"

경비원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든다. 그는 휴대전화와 나를 번갈아 바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버벅거렸다.

"저……. 드, 들어오시랍니다. 길드 장님께서…… 바로, 꼭대기 층으로 올려 보내라고……

"이 엘리베이터 꼭대기까지 가 죠?"

"예? 아, 예."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때마침 로비 충으로 내려온 엘리 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무작정 오긴 했는데……

전서호가 정말로 날 들여보내줄 줄이야. 안 본다고 거절하면 다 무 시하고 때려 부수더라도 쳐들어갈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띠링.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곧장 투명한 유리벽으 로 사면이 둘러싸인 공간이 보였다.

'침입당하기 딱 좋군.'

아마 손님 접대용 홀인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화려한 배경을 뒤로하고, 그 남자 가 보였다. 전서호. 청사의 길드장 이다.

"한서하 헌터. 오랜만에 보는데, 하필 이런 때라 내가 오래 시간을 내긴 어렵네요."

그가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응대 했으나, 숨길 수 없는 긴박함이 느 껴 졌다.

긴급회의 중이었다는 게 거짓은 아닌지, 등 뒤로 여러 인물들이 자 리에 앉아 있었다.

잠시 멈춘 회의에 불만을 토로하 기는커녕, 겨우 살았다는 분위기다.

'전서호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 은 모양이야.'

그야 그렇겠지. 협상을 하기엔 최 악의 조건이지만 별수 없었다. 피차 시간이 없긴 마찬가지기 때문에 본 론부터 꺼냈다.

"저를 2차 클리어팀에 넣어 주세 요."

"한서하 헌터를, 제가요?"

"이운우를 구하고 싶으시잖아요."

내 말에 전서호가 잠시나마 굳었 다. 이 남자의 유일한 약점이겠지. 거의 아들처럼 키웠다고 들었으니.

"제가 구할 수 있어요. 저보다 실 력이 더 나은 헌터를 구하긴 어려 우실 겁니다."

"자신만만하네요. 고작해야 데뷔한 지 1년인 신인이."

"지금 가장 몸값이 높은 신인이죠. 어지간한 기성 헌터들보다 실력이 좋은."

한 마디도 질 수 없었다.

의지를 굳게 다진 눈으로 전서호 를 바라보자, 그는 웃음을 지우고 진중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 예?"

"한서하 헌터. 당신은 몇 세대 헌 터죠?"

"……3세대입니다."

"3세대 헌터를 대표하는 신인은 지금까지 셋이었습니다. 홍염의 전 청운, 청사의 이운우 그리고……

그가 날 가리켰다.

"역천의 한서하."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까? 3 세대를 지탱할 사람이 필요해서?"

"당연하죠. 이 이후 새로운 루키가 등장하면 3세대라기보단…… 3.5세 대나 4세대에 가깝죠. 그들이 지금 우리 세대를 대체하고 주요 길드들 을 제대로 운용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3세대에 속하는 우리가 모두 게이 트에서 비명횡사하면, 현재 기성세 대인 2.5세대를 대체할 사람이 없 어진다.

'4세대를 육성하기엔 너무 오래 걸 릴 거고, 세대교체 사이 공백은 곧…… 게이트로 인한 피해로 이어 지니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입을 다물 었다. 전서호의 말이 맞았다.

혹시나 나까지 저 안에서 죽게 되 면, 후환이 너무 크다.

"뭐. 그 외에 여러 문제가 있죠. 현재 역천이 제대로 된 서포트를 하지 못한다는 점, 당신은 사적인 감정이 섞여 있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사정없는 팩트 폭력이었다. 그것

참 뼈아프다.

"표혜원을 볼 면목이 없지 않겠어 요? 당신을 저 안에 밀어 넣으면."

혜원 언니 얘기는 왜 나오는 거 지?

"이운우는…… 포기하신 건가요?"

"그럴 리가요. 저희도 나름대로 대 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긴급회의 중이었으니까요."

그의 뒤편으로 긴급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낯이 창백하게 질리는 게 보였다.

"이만하면 충분한 설명이 됐겠죠.

한서하 헌터."

"……예.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고, 내가 한서하 헌터를 귀한 인재라 생각하 니 이 정도까진 허용해주는 겁니 다."

끝까지 오만한 남자였다.

눈동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 도로 눈을 횐 사내가 부드럽게 웃 었다. 저 속내는 분명 시커먼 색일 거다.

"그럼 조심히 들어……

"소, 속보입니다!"

그때 뒤편에 있던 사람 중 한 명 이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게이트가! 게이트가!"

게이트가 뭐. 긴장감이 허공에 감 돌았다.

"클리어됐습니다!"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팀에서 보 고가 올라왔습니다!"

게이트가…… 클리어됐다고?

"T, TV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포털 사이트에도 속보로 올 라왔어요!"

그 말인즉슨. 클리어팀이, 클리어 팀이 성공한 것이다!

-……분 전에 들어온 내용입니다. 국내 최초로 보고된 게이트 변형 사례로 주목을 받았던 게이트가 방 금 클리어됐다는 소식입니다. 클리 어 지점에 나가 있는 현장 특파 요 원을 만나보겠습니다.

-네. 현장에 나와 있는 김민재 특 파원입니다. 본래 클리어팀은 게이 트가 생겨났던 범위 내에 랜덤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클리어 직후 클리 어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어렵습니다. 하지만 최근 주목도가 높았고 범위가 넓지 않은 게이트라 현재 여러 방송사에서 클리어팀을 찾기 위해 수색을 진행하고 있습니 다. 아직까지 특별한 점은 없……. 아! 방금 클리어팀의 위치가 확인 됐다고 합니다!

'제발. 제발 살아있어라!'

이운우가 이토록 허무하게 죽는다 니. 상상한 적도 없었다.

아득바득 어떻게든 살아남아 내 뒤통수를 노리는 놈이었는데.

게다가 전청운도 회귀 전엔 톨룩 의 침입까지 활발히 활동하던 헌터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죽어선 안 된다.

뉴스는 잠시 화면이 전환돼 아나 운서가 무어라 떠들며 부연설명을 덧붙였지만, 제대로 귀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아. 다시 특파원과 연결해보겠습 니다. 클리어팀을 인터뷰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드디어!

주먹에 땀을 쥐게 만드는 순간이 었다.

-이운우 헌터, 전청운 헌터! 살아 돌아온 소감이 어떻습니까?

-이번 게이트 변형의 이유가 뭐라 고 생각하십니까?

-내부에서 연락이 두절됐었는데 그 이유는 뭐였습니까!

현장 상황이 켜지자마자 온통 아 수라장이었다. 번쩍번쩍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고, 그 안에 피곤한 기 색이 역력한 헌터들이 반쯤 쓰러져 있었다.

'이운우……!'

그 선두에 이운우와 전청운이 서 있었다.

흐트러진 모습이긴 했으나, 분명히

살아있었다. 모니터 너머로도 그 자 안이 선명하다.

"다행이다……! 다행입니다! 길드 장님!"

"와. 저기서 어떻게 살아 돌아오 지. 대단하네요……

"하하……

다들 한두 마디씩 덧붙이는데 전 서호만 작게 웃을 뿐이었다.

-전청운 헌터! 이번 게이트 클리 어에서 가장 큰 공적을 세운 사람 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운우 헌터, 응원해준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선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라 자 세한 인터뷰는 나중에 진행하겠습 니다.

-한 마디만 해주시죠, 이운우 헌 터! 최근 부상이 있었는데, 이번 게 이트는 그보다 높은 등급인데도 외 상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유가 있으십니까?

끈질긴 기자였다. 직업 정신이 투 철하다 해야 할지.

'내가 보기에도 이운우는 외상이 심해 보이진 않는데.'

등급이 상향 조정된 게이트이니,

물자와 인력 모두 부족한 상황이었 을 거다. 게다가 이번 게이트는 원 래도 등급이 높아 클리어팀을 신경 써서 고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안에서 별다른 지원군 없이 클리어까지 해내고, 겉모습도 멀쩡하다니.

뒤편에 선 전청운은 그나마 옷도 찢기고 자잘한 외상이 눈에 보이는 데 말이다. 물론 이운우는 마법사니 후방에 서긴 했겠지만.

- 아…….

이운우가 잠시 뜸을 들였다.

- 새로운 시각을 발견했거든요. 그

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이운우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고 하면. 내 착각일 까.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뭔지 모 를 확신을 가진 채로 말이다.

'……깨달음을 얻었나?'

일전에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 지.

- 오히려…… 한 손으로 하니까 보 이는 것도 있고.

- 마법사가 아닌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전에 병문안을 갔을 때 들었던 얘 긴데. 손을 다치면서 한 번 더 벽 을 넘은 모양이었다.

기자가 무어라 더 캐물으려 했으 나 그 이상은 허용되지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확인된 결과, 사 망자는 몇 있으나 예상보다 적은 숫자였다고 하는데요. 아직 신원 파 악 중에 있어 정확한 사상자 수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삑. 더 이상의 정보는 불필요했다. TV가 꺼지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청사에서 마냥 미움받는 줄 알았

는데. 그래도 죽을 뻔했다고 걱정은 한 모양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 는데. 여전히 전서호가 조용했다.

그를 바라보니 어쩐지 미묘한 표 정을 하고 있었다. 전서호를 빼고 이운우에 대한 얘기로 두런두런 대 화를 나누는 길드원들을 바라보면 서.

'……아.'

그래. 잊고 있었지만, 청사의 권좌 는 조만간 이운우의 것이 된다.

지금까지는 전서호의 위치가 너무 도 뚜렷하여 이운우가 설 자리가없었다. 오히려 배척받기만 했지.

'이 사건을 계기로 바뀐 거야.'

이운우의 무력과 존재감을 모두의 머릿속에 심은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 온 것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사건이 또 있을까.

B에서 A로 상향 조정된 게이트를 상처 없이 클리어했단 건, 그야말로 그 실력이 손에 꼽힐 정도가 됐단 증거다.

전서호는 때가 왔다고 느낀 것 같 았다. 지금이 세대교체를 위한 최고 의 타이밍이라고.

'……미래를 위해, 스스로 권좌에 서 내려오는 건가.'

그 자체만으로도, 왜 청사의 사람 들이 그토록 전서호에게 열광했는 지 알 것 같았다.

잠시 기다리자 이운우가 청사의 구급팀과 함께 본부로 돌아왔다. 나 는 전서호의 특별한 배려로 그 모 습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이운우 헌터!"

"이운우 씨 J"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환대를 받는 모습을 보니…… 내가 아니어도 녀석을 걱정할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난 보이지도 않을 거 같고. 그만 돌아갈까.'

멀쩡한 얼굴을 봤으면 됐다. 그대 로 뒤돌아 돌아가려는데.

"한서하."

이운우가 날 불렀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이운우의 보라색 눈동자가 오롯이 날 향하고 있었다.

"너도 여기 있었네."

"……볼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

어."

너를 걱정했다는 말을 하기 민망 해 턱도 없는 변명을 했다. 이운우 도 그 변명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기에 웃음을 흘렸다.

"걱정 마. 나 안 죽어."

그렇게 말하는 이운우의 표정은. 살아 돌아와서 기뻐하는 것이라고 보기엔 좀 이상했다.

"그러니까……

거기까지 말하더니 휙 고개를 돌 렸다. 어이가 없어 뭐냐고 물을 새 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이운우를 붙잡고 게이트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뭐야. 말을 하다 말고.'

기이한 일이었지만…… 생긋 웃으 며 사람들을 상대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디 아픈 건 아닌 것 같았 다.

그거면 됐지. 나는 그걸로 만족하 며 뒤돌아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