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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70화 (70/361)

70화

그제서야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 다. 엉망인 얼굴을 신경 쓰느라 미 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계약의 징표!'

표연원의 손등을 뒤덮은 문양이 바로 계약의 표식이었다!

연두색의 기하학적인 무늬, 즉 계

약의 징표가 손등을 죄 덮고 있었 다. 강한 존재와 한 계약일수록 그 징표는 커지기 마련이다. 내가 까마 귀와 한 사역마 계약은 고작해야 점처럼 남았을 뿐인데, 이만큼이 면…….

'대체 어떤 존재와 계약한 거지?'

이전과 달라진 것들이 많아 혼란 스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명확했다.

"누군지 말해 봐!"

"저 사람이요! 누나랑 계속 얘기했 던!"

표연원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당혹스러운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박영찬. 바로 그 남자였다.

"박영찬 헌터……. 대화가 조금 필 요할 것 같은데요."

"설마 그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 죠?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목 소리가 들린다니, 성의 없는 거짓말 인걸요."

"잠깐 실례할게요."

"너무하시네요! 아무리 친분 있는 사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철컥. 노이트를 장전하고 총구를

겨눈다.

놀란 얼굴의 주변인들이 스쳤으나 방아쇠를 당기는 데 망설임은 없었 다.

탕!

"한서하!"

조연호가 말리려는 듯 나를 소리 쳐 불렀으나 내가 더 빨랐다. 방아 쇠는 당겨졌고 총알은 놈을 맞혔다.

"이것 참……

놈이 변형된 왼팔을 휘저으며 미 소를 지었다.

"한 방 먹었네."

'아늑한 바람'

당연하게도, 실탄을 겨눈 건 아니 었다. 어디까지나 확인용이었으니.

허나 맞는 상대가 그걸 알 리 없 다. 그대로 맞으면 일반인이고 아니 면 몬스터겠지.

그리고 예상대로 박영찬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놈은 몬스터다.

도저히 인간의 것으로 보기 어렵 게 변형된 왼팔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누구의 것이지? 바람갈퀴의 것인

가?

쉐입쉬프터는 그 이름대로, 항상 남의 모습을 베껴 가며 살아가는 몬스터다. 그들은 성체가 되면 제 본연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남의 모 습에 기생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저 팔도, 자신의 것이 아니 라 남의 것을 흉내 낸 형태일 텐 데.

인간의 몸을 하고서 팔만 몬스터 의 것으로 바뀌니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이거 아주 잘못 건드린 거야. 알 아? 난 너그럽게 숨바꼭질이나 좀

하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쉐입쉬프터는 공격력 이 높지 못하다. 놈이 골치 아픈 점은 어디까지나 녀석이 보스 몬스 터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보스몹을 죽이지 않으면 클리어되지 않는 게 이트의 특성상, 여기저기 숨어 다니 는 녀석의 성질이 귀찮은 역할을 할 따름이다.

그러니 모습이 드러난 쉐입쉬프터 는 보통 난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이 녀석은 좀 다르다.'

모습을 들켰다고 해서 도망치거나 숨지 않고 내게 정면으로 대응하는것부터가 일반적인 쉐입쉬프터와 다른 점이었다. 이건, 어느 정도 정 면승부에도 자신 있다는 반증일 것 이다.

'역시…… 이 녀석이 왕인가.'

다른 개체들과 조금 다른 쉐입쉬 프터라면, 가능성은 그것뿐이다.

'이쪽은 전투원이 나 혼자야.'

조연호는 힐러에, 나머지는 죄다 일반인이었다. 지켜야 할 사람은 산 더미인데 싸울 사람은...... 나 혼자 다.

재수 없게도 그 낮은 확률에 당첨 돼 버린 거다. 쉐입쉬프터들 가운데딱 한 놈, 그 왕을 만날 확률 말이 다.

"어떻게 알아본 거지? 신기할 따 름이야. 이상한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던가."

"쉐입쉬프터. 이 돔도 네 짓인가?"

"그런 하등한 놈들하고 날 비교하 지 않았으면 좋겠네. 난 그것들보다 훨씬 진화한 종이거든."

놈이 과장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제 소개를 했다.

"내 스스로 지었어. 카피캣! 그게 바로 내 이름이야."

따라쟁이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었 다.

"이 진화된 능력은 단순히 겉가죽 을 따라하는 데 그치지 않거든. 이 런 것도 가능하지."

놈이 가볍게 손짓하자, 손아귀에 활이 생겨났다.

'레인저의 핸드보우 스킬? 그걸 어 떻게 저 녀석이......?'

경지에 이른 레인저들 중 일부가 습득하게 되는 스킬이었다. 일명 핸 드보우. 손아귀에 활이 없어도 가장 손에 익은 형태를 소환해내는 고급 스킬이 다.

'쉐입쉬프터가 스킬까지 흉내 낸다 는 건 들은 적이 없는데!'

쉐입쉬프터들의 왕. 카피캣. 왕이 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능력치가 일반 쉐입쉬프터들을 훨씬 상회하 고 있었다.

"어디 한번 시험해볼까?"

놈이 활시위를 당긴다. 내 쪽이 아 니라, 학생들을 향해.

"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제발!"

겁에 질린 학생들이 소리를 질렀

다. 그 모습을 보고 즐겁다는 듯 놈이 웃는다. 그들 하나하나가 내 약점이었다.

'내게 너무 불리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타파할 수 있지? 머리 가 핑핑 돌았다.

"……원하는 게 뭐지?"

" 으음?"

놈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새 팔도 인간의 것으 로 돌아와 있었다.

"굳이 이 안에서 나서서 여론을

주도한 이유가 뭐야? 네게 하등 도 움 되는 것도 없을 텐데. 게다가 '너그럽게 숨바꼭질인 척하려고 했 다'고? 그건 마치……

조금 소름끼치는 생각이지만.

"마치…… 네가 사람들을 갖고 노 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것처럼 들 리잖아."

"그렇다면?"

"먹이가 아니라 즐거움을 쫓는다 고?"

몬스터가?

적어도 내가 아는 쉐입쉬프터는

그런 몬스터가 아니다. 똑똑하긴 했 으나 몬스터답게 먹이를 섭취하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었으니까.

"나를 그런 시시한 놈들과 비교하 지 말라니까."

내 생각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놈 이 대답했다.

"나는 진화했거든. 내 먹이는 더 이상 피와 살, 육신과 고깃덩이가 아니야. 아, 물론 못 먹는 건 아니 지만. 그것보다 더 황홀한 만찬을 난 알아."

"그게 설마……

"그래! 너희의 희로애락. 그 극심

한 감정의 요동!"

놈이 하하하하, 크게 웃었다. 기분 나쁜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 었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아니지만, 묘한 불쾌감이 치솟았다.

"아,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자 기들을 구하러 온 헌터가 산산조각 나는 걸 보면 어떨까? 어떤 감정을 품을까? 어떤 황홀한 맛이 날까?"

놈은 미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죽어줘야겠어."

콰과과곽!!

놈의 팔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정

확히 무슨 몬스터인지 알 수 없지 만, 두텁고 긴 팔은 그 자체로도 무기였다.

그 팔이 벽을 긁으며 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피하면…… 학생들이 다친다.'

놈이 과연 친절하게 팔을 멈춰줄 까? 그 확률에 기대 학생들을 위험 에 빠지게 해도 될까?

그럴 리가. 총을 쥐고 바로 섰다. 내 의도를 알았는지 등 뒤에서 조 연호가 외쳤다.

"안 돼! 한서하. 차라리……!"

조연호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차 라리, 학생들과 자신을 버리라는 말 이었으리라.

팔을 앞으로 뻗고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에너지가 응축되는 소리와 함께 빛무리가 총구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많이 응축할 필요는 없었다. 저놈 이 잡아먹을 수 있는 몬스터라면, 내가 꿰뚫어낼 수 있는 등급일 테 니까.

놈의 돔도 뚫어냈는데 저 팔이라 고 못하겠는가.

목표는 최대한 얇은 곳. 인간의 몸

체와 몬스터의 팔이 연결되는 그 부위였다!

'관통하는 철화!'

콰앙!

"잔재주를 부리네."

날아오던 팔이 순식간에 제 부피 를 줄이고 인간의 것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벼워진 몸으로 총알을 피 해낸다.

스윽!

"윽!"

응축된 에너지 탓에 살짝 피해냈 지만 스친 상처가 남았다. 핏줄기가주르륵 흘러내린다. 진짜 사람인 것 처럼 붉은색이다.

'하루 6번밖에 못 쓰는데 벌써 2 번.'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하하……. 헌터 이름을 거저 딴 건 아니라 이거지."

놈은 상처가 난 게 마음에 안 드 는 모양이다. 한껏 긴장된 공기가 흘렀다.

"아, 그래. 아까 당신은 소수의 희 생이 꽤나 불만인 것 같았지……

"소수의 희생이 문제가 아니라 그

건 마지막의 마지막에나 써야 하

"아, 됐어! 그럼 이렇게 해볼까?"

놈이 활을 소환해 학생들을 향해 겨눴다.

"아무리 헌터라 해도 저걸 다 지 킬 순 없겠지!"

"사, 살려줘……!"

그 말이 맞다.

아무리 나라 해도, 저 많은 인원을 모두 보호하며 싸울 순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 는 거야. 생각해보니 나한테 인질이

이렇게 많은데 너하고 1대1로 싸울 필요가 뭐 있겠어?"

"그렇다면?"

"너 하나만 얌전히 내게 먹힌다면, 나머지는 그냥 풀어줄게. 어때?"

"나 하나만 먹겠다고?"

"그.럼. 나도 미식가야, 나름. 헌터 가 아닌 인간은 직접 먹어봤자 용 량만 차지하고 효율이 별로야."

놈이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진하 게 웃었다.

"보아하니…… 너도 꽤나 실력 있 는 인간 같아. 그렇지? 너까지 잡

아먹으면 난…… 더 강해질 수 있 겠지?"

해서는 안 되는 거래다. 내가 잡아 먹히면 그 다음에 이놈을 잡긴 더 욱 까다로워질 테니까.

'그리고 이 뒤에 올 헌터는…… 혜 원 언니고.'

혜원 언니는 2, 3일 뒤에 올 테고, 그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는 다 른 헌터는 없다.

게다가 다른 애들은 손대지 않겠 다? 그런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 가.

'몬스터의 말을 신뢰할 순 없어.'

다른 애들은 모두 무사하다 해도, 최소한 힐러인 조연호나 제 정체를 까발린 표연원만큼은 곱게 돌아가 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따르는 척하다가 방심 했을 때, 관통하는 철화나 쏟아지는 불꽃으로 공격한다.'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공 격이었다.

"무기를 버리고 이쪽으로 와. 천천 히…… 아주 천천히 말이야. 내가 절망을 즐길 수 있게."

노이트를 내려놓았다.

"서하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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