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참상의 원인은 뻔했다. 이래서, 조 연호가 연화도 게이트 때 실내체육 관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모든 생존자들이 냉정하게 대처하 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불안과 공포 를 다소 거친 방법으로 표출하곤 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뭐, 뭐야. 이게……
뒤늦게 도착한 조연호가 사태를 살피며 멈칫했다. 기이한 광경이었 다. 몬스터가 침입하지도 않은 강의 실에 시체처럼 쓰러진 학생들이라 니.
"헌터님들! °1, 이 안에 몬스터가 있어요!"
"지금 이 안에 말입니까?"
"진짜로요! 그게, 몬스터한테 당한 애가, 사, 살아서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살아서 돌아온 게 아니었고, 갑자기 사라지고……
말이 횡설수설 엉망이었다. 그러나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쉐입쉬프터! 놈이 이 안에 있었다.
'그런데…… 숫자가 한 마리가 아 닌 건가?'
여긴 강우중을 발견한 곳과 거리 가 좀 있는데, 고작 몇 시간 만에 이 꼴이 벌어진 것 같진 않았다. 적어도 하루 이상 지속되면서 학생 들이 구타를 당한 모양인데…… 그 럼 강우중이 겪은 일과 비슷한 사 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 단 소리였다.
'쉐입쉬프터가 한 마리가 아니야.
여러 마리가 있고, 개중 왕에 해당 하는 개체가 보스 몬스터다!'
일이 훨씬 귀찮게 됐다. 하나만 색 출하는 것도 귀찮은 작업인데.
좌중을 훑었다. 다들 겁먹은 얼굴, 창백한 안색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 는 걸 피하고 있었다. 혹여나 자신 이 몬스터로 몰릴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다들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몬스터로 간주하 겠습니다. 과격한 방법으로 제압할 수도 있습니다."
경고하며 총을 한 손에 쥐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총이다……
"진짜 총인가 봐."
술렁술렁, 총기를 처음 본 일반인 들이 제각기 감상을 늘어놓았다.
"이래서…… 일반인들끼리 모여 있으면 꼭 사달이 난다니까."
쯧. 조연호가 작게 혀를 찼다. 우 선은 다친 학생들의 응급처치가 먼 저였다. 물론 이 안에 쉐입쉬프터가 섞여 있겠지만, 그놈은 다친 학생들 보단 멀쩡한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을 확률이 더 높았다. 교묘하게 인간의 심리를 조종할 줄 아는 녀석이니까.
"학생들 케어하고 있어줘."
"알겠어. 강우중 씨, 저 좀 도와주 시죠."
"네? 아, 네."
강우중도 끔찍한 일을 연달아 겪 은 탓인지 넋을 빼고 있다가 겨우 대답했다.
치료는 두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내 할 일을 해야 했다. 저들 중에 서 쉐입쉬프터를 골라내는 일 말이 다.
"우선 머리를 염색 안 한 분들은
그대로 서 계시고, 염색한 분들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학생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다 들 내 말에 따랐다.
"이 몬스터는 염색된 모발을 소화 하지 못합니다. 바닥에 머리카락 뭉 치를 뱉은 흔적이 없으니, 아마 통 째로 집어삼킬 수 있는 사람을 먹 은 거겠죠."
그러니까, 이놈이 누군갈 잡아먹고 그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면. 그 '누군가'는 염색하지 않은 머리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검은 머리를 한 학생들은 자리에
선 채 눈만 굴렸다. 그리고 염색모 인 학생들 4명이 다소 겁먹은 얼굴 로 쭈뼛쭈뼛 다가왔다.
남은 6명 가운데 쉐입쉬프터가 있 다.
이 쉐입쉬프터는 인간을 잡아먹고 아주 감쪽같이 흉내를 내지만, 한 가지 감별점은 있다.
'쉐입쉬프터는 대상이 죽기 직전 3 시간가량의 기억만 읽어낼 수 있으 니까.'
대상을 흉내 내는 데 필요한 최소 한의 시간이었다. 3시간. 그 안에 피해자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은 고스란히 읽어내 제 것으로 소화해내 지만, 그 이전의 기억만큼은 놈들도 알지 못한다.
'학생들이 모두 알지만, 피해자가 죽기 전 3시간 사이에 떠올리지 않 아 놈은 모를 만한 정보……. 그런 게 뭐가 있지?'
표연원은 침묵하며 상황을 살폈다. 아무도 선뜻 나서서 수습하지 못하 고 있었다. 선배들마저 패닉 상태에 빠져 허둥거렸다.
"다들 진정하세요."
사내가 나서서 웅성거리는 학생들 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원래는 밝히고 싶지 않았지 만…… 위급한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네요."
그가 품 안을 뒤적여 지갑에서 무 언가를 꺼냈다. 신분중처럼 반듯한 모양의 카드. 그의 증명사진과 함께 일련의 정보가 담긴 자격증이었다.
'게이트 출입 자격증'
"헌터?"
"헌터다! 게이트 자격증이야!"
구세주를 발견한 것처럼 삽시간에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자격증에 곱 게 적힌 이름은, '박영찬'이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저는 나이트 워커에 소속된 레인저로 자격증도 있는 프로 헌터입니다. 가만히 이 안에서 버티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이 안에서 몬스터를 색출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 만큼, 다들 제 지시에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살았다……! 헌터가 있었어!"
"뭘 하면 되는데?"
시끌벅적, 다들 '겨우 살았다'며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그 가운데서표연원 홀로 가라앉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 이상해.'
오로지 그만이 알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 정체 모를 목소리가 가리킨 사람이……
표연원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기이한 목소리들이 진실을 얘기 하는 건지, 단순히 그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환청인지 알 수 없으나. 적 어도 그런 불안요소를 지닌 사람이 무리를 이끌게 두는 건 영 꺼림칙 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몬스터는 '쉐
입쉬프터' 같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흉내만 낼 줄 알지 공격 력이 아주 높은 몬스터는 아니에요. 그러니 우선은 염색을 하신 분들은 한쪽으로 빠져주시고……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박영찬에게 넘어갔다. 모두 그에게 기대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가 몬스터 를 알려준다고 하면, 미친놈 취급받 을 테지.'
표연원은 우선 침묵할 수밖에 없 었다.
* * *
혜원 언니와 정상준까지 합류했지 만 뾰족한 수를 내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쉐입쉬프터를 걸러 내겠다고 '미국의 수도는?' 따위의 질문을 했다가, 순전히 상식이 부족 할 뿐인 사람이 몬스터로 몰리면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나는 것이니 말이다.
'아는 사이였다면 판가름하기 쉬웠 겠지만.'
어릴 적 추억 같은 건 평소에 잘
떠올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안 타갑게도, 우리는 전부 이 학생들과 초면이 었다.
그러니 결국 고전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데…….
"쉐입쉬프터도 몬스터라 제대로 먹지 않으면 굶주림 때문에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어."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서, 녀석이 인간을 노리는 순간을 포착하는 게 가장 정확한 방법이긴 하죠."
"보통은 그랬겠지만……
여러 번 말했듯이. 우리에겐 할 일 이 있었다.
'내일 출발하면 금방 연원이가 있 는 곳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일이 이렇게 되면……
강우중에겐 우리가 학생들을 구할 의무는 없다고 냉정한 척 말했지만, 그렇다고 십여 명의 학생들을 쉐입 쉬프터 먹이가 되게끔 그냥 두고 갈 순 없었다.
"여기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네. 이대로 이 애들을 두고 가거 나,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후환을 남기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 해야 해."
혜원 언니가 굳은 얼굴로 먼저 말
을 꺼냈다. 다들 알면서도 입에 올 리지 못한 이야기였다. 분위기가 침 울하게 가라앉았다. 가혹한 양자택 일이다.
' 연원아……
자연스레 그 얼굴이 떠올랐다. 아 무것도 모른 채로, 새롭게 시작될 대학 생활을 기대하며 집을 나섰던 게 마지막 모습이었는데. 단정한 인 상에 은은하게 미소를 머금던 그 얼굴이 아직도 선명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여기서 지내고 갈 거니까. 다들 생각할 시 간을 갖고…… 내일 아침에 다시
얘기하는 게 어때요."
어차피 지금 당장은 선뜻 의견을 내기 어려웠다. 내 말에 다들 고개 를 끄덕였다. 생각이 많은 얼굴들이 었다.
박영찬의 주도 하에 염색모인 학 생들은 의심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순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표연원은 염색모가 아니었기 때문 에 저절로 의심스러운 무리 중 하나로 취급됐다.
박영찬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반대 할 의지도 근거도 없었다.
결국 표연원은 침묵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얘, 얘! 일어나봐!
-너 우리 말이 들리지? 그치?
-안 들리는 척하지 마! 다 알고 있으니까!
표연원은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요 며칠 이 목소리들 탓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무척 피곤했다.
'무시하자……. 모르는 척하면 잠 잠해지겠지.'
표연원은 뒤척이는 척하며 점퍼를 머리끝까지 올려 덮었다. 어차피 머 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라 큰 효과는 없지만, 적어도 찡그린 얼굴을 보이 진 않을 것이다.
-우릴 도와줘! 제발!
-너 말곤 아무도 우리 이야길 듣 지 못한단 말이야! 웅?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너한테도 소중한 게 있잖아!
-우리에게 하나뿐인 소중한 분이
야. 제발 부탁해!
'소중한 거?'
표연원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 인간에게 부탁해도 될지 우리도 고민이 많았지만…….
-역시 너밖엔 없어. 너만 우리 목 소릴 들을 수 있다고!
간절한 부탁에 표연원도 마음이 흔들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오로지 그만 저들을 도와줄 수 있 다면 마냥 무시하는 것도 가혹한 처사 아니겠는가.
부스러-
"응? 어디 가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표연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꼭두새벽이라 불 침번을 서는 이들 말곤 보는 눈이 없었다. 제일 안쪽 칸에 들어가 문 을 걸어 잠그고, 처음으로 그들에게 응답했다.
"……내가 뭘 하면 되는데?"
* * *
투둑, 투둑.
서늘한 비가 내렸다. 작은 빗방울 들이 나뭇잎을 두드리고, 부드럽게 흘러내려 땅에 안착한다. 나뭇잎이 대부분의 빗줄기를 흘려보내 직접 닿는 것은 몇 방울 되지 않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나와버린 거 지……
우거진 수풀 한가운데. 표연원은 어느새 그곳을 걷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럼 우리의 영역이야!
-그곳에 잠들어 있어. 우리의 소 중한 분이.
이렇게까지 멀리 나올 생각은 아 니었다.
혹시나 몬스터를 만나면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을 따라가는 길에 몬스 터는 단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았 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그 들에게 이끌려가다 어느 순간 정신 을 차려보니 숲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인간에게 맡겨도 좋을지 고민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이 어지는 탈출로였다.
" 우와......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우거진 숲 속에 커다란 나무들은 수없이 많았으나 눈앞의 거목에 비 하면 어린아이처럼 작았다. 끝이 보 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너비도 어 마어마했다.
-이 안으로 들어와!
-너라면 들어올 수 있어!
' 안으로?'
그러나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곳은 없었다. 눈앞에는 거목뿐이었으니 까.
"대체 어딜 들어가라는 거야……
-네 눈앞에 있잖아!
"눈앞엔 나무밖에 없는데 무슨 소 릴……. 설마, 이 나무?"
-할 수 있어!
"될 리가 없잖아."
표연원은 난감한 기색으로 나무의 겉껍질을 손으로 훑었다. 거칠고 단 단한 촉감은 도무지 누군가의 출입 을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그가 주저하며 손을 거두려는 순간. 이질 감이 느껴졌다.
" 어?"
우웅-
연두색 빛이 손끝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닿은 고목은 서서히 그러나 차근차근 연두색 빛 깔로 물들어갔다. 아름다운 광경이 었다. 표연원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그것을 바라보다가, 목소리 들의 재촉에 못 이겨 한 발 내디뎠 다.
스윽-
놀랍게도, 방금까지만 해도 거친 나무껍질이던 것이…… 그가 발을 내뻗자 그 공간을 내어주고 있었다.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정말로 고목너머에 공간이 있었다!
-어서 와!
-우리의 공간에 놀러 온 것을 환 영해!
몸 전체를 고목 안에 집어넣은 뒤, 표연원은 완전히 다른 공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는 우거진 열대우림 한가운 데에 있었으나 지금은 드넓은 초원 이었다.
"어!"
-밖은 우리의 공간이 아니라 목소 리밖에 낼 수 없지만,- 이 안은 우리의 것이라, 모습까 지 갖출 수 있지.
옅은 연두색으로 빛나는 작은 빛 무리들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 다. 표연원은 이 빛무리 하나하나가 그의 머릿속에서 목소리를 내던 존 재들이라 직감했다.
- 이리로 따라와!
- 소중한 분께 데려다줄 테니까.
표연원은 홀린 듯이 한 걸음 내딛 었다. 그의 걸음걸음마다, 형광색으 로 빛나는 포자들이 두둥실 떠올라 허공을 날았다. 비현실적인 곳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