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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62화 (62/361)

62화

꽃향기가 산뜻하다. 나는 잘 모르 니 꽃집에 가서 대충 병문안용으로 만들어달라 해 가져온 꽃다발이었 다.

"이운우 환자 보러 왔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한서하입니다."

병원 데스크에서 이름을 대자 한 사람이 일어나 안내해주었다.

WIP로 독실을 쓰고 있는 그는 병문안을 오는 사람도 가려 받았는 데, 다행인지 나도 개중 한 명이었 다.

과일 바구니에 꽃다발 정도면 무 난한 선물이겠지.

"들어가시면 됩니다."

내게 병실 문을 열어주지만 본인 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고위층들 이 자주 애용하는 병원다웠다. 꾸벅 목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왔네?"

이운우가 환자복을 입은 채로 맞 이했다.

팔은 어깨까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몸은 좀 어때?"

"똑같지, 뭐. 아직은 회복 기간이 라 재활도 제대로 못 하고 있고."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제 팔 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현대의학으로도 회복 시키기 쉽지 않았으나…… 들리는 소문으로는 전서호가 윤강백에게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대량의 성수 를 구해왔다고 한다.

안 그래도 처연한 분위기가 흘렀 는데, 병실에 있으니 유약한 인상이 완연했다. 이운우의 은발이 사르륵 흘러내렸다.

"……널 휘말리게 한 건 미안해. 할 말이 없어."

그의 어깨를 꿰뚫은 것은 나의 탄 환이요, 그의 손목을 망가뜨린 것은 그가 아닌 나의 적이었으니.

"됐어. 네 잘못도 아니었고. 결국 날 구한 것도 너니까."

수십 번 말했으나 여전히 목이 턱

막혔다.

내게 용무가 있는 녀석 때문에 이 운우가 이 꼴을 당했으니 말이다. 그가 날 원망해도 어쩔 수 없다 생 각했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이운우 는 날 원망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 다.

"간단한 마법은 가능해. 이 상태로 도."

그가 손을 가볍게 휘젓자 파지직, 정전기가 일었다.

"오히려…… 한 손으로 하니까 보 이는 것도 있고."

"보이는 것?"

"그러니까……

그는 잠시 말을 골랐으나 이내 아 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은 없었다. 마 법사들이 말하는 '마력을 세공하는' 느낌이 어떤 건지 나도 정확히 알 진 못하니까 말이다.

아마 저들도 평생 내가 공간 간섭 을 시작할 때 느끼는 감각을 알지 못할 테지.

"그리고 길드장님이 널 한번 만나

고 싶대."

"그분이? 날?"

"일단은 너도 피해자니까. 청사에 서 널 보호한다고 데려갔는데 그러 지 못했고."

아하. 길드 차원에서 보면 청사가 할 말이 없긴 하다. 언데드 게이트 에 성수 갖고 간다고 기고만장해서 '실험'을 하겠다며 날 데려갔는데. 정작 클리어는 내가 해버렸으니.

"게다가…… 길드 내부 사정 때문 에, 안 좋은 모습도 보였고."

그렇게 말하는 그는 꽤나 멋쩍은 것 같았다.

청사의 치부를 보였기 때문일까?

머릿속에 몇 가지 기억이 스쳐 지 나갔다. 이운우를 찾으러 오지 않은 정진문과, 게이트 내부 사고에 바로 목소리를 높였던 박현종.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묵인하던 나머지 사람들 까지.

'어째서 이운우는 청사를 저버리지 못할까.'

천재적인 전격 마법사를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데려가고 싶어 하는 곳 이 줄을 설 텐데.

어째서 너는 그토록 청사를 사랑 할까. 자신이 당한 부조리함보다도청사의 명성을 먼저 생각할 정도로.

'회귀 전의 너도 청사를 아꼈지 만…… 그땐 그들도 너를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는데.'

지금의 청사는 길드장인 전서호를 위해 움직이느라 이운우를 배척하 고 있지 않는가.

"정진문 씨도 우릴 포기해서, 도망 치려고 안 온 게 아니었어."

"그럼'?"

"내분이 있었대."

내분? 게이트 안에서?

대충 예상은 가지만…… 조금 어

이가 없을 수밖에. 오더를 내리는 정진문에게 누군가 거역하고 무리 가 절반으로 쪼개졌단 소린데. 게이 트 안에서 그런 일은 팀의 전멸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박현종 씨를 비롯해서 나를 아니 꼽게 봤던 사람들 몇 명이 중간에 갈라졌는데……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사라졌어."

" 뭐?"

'사라졌다?'

또다시, 게이트에서 헌터가 사라졌

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머리가 냉정해졌다. 뭔가 있었다.

"그들을 추적하고 있었대. 성수를 꽤 많이 훔쳐 가서 그들 없이는 레 이드를 갈 수 없었다 하더라고. 그 런데 도중에 흔적이 끊겨서 그 일 대를 모조리 뒤지고 있었는데, 게이 트가 먼저 클리어된 거고."

부가적인 이야기는 들을 필요 없 었다. 박현종 무리가 성수를 훔친 건 얼마든지 임의로 지어낼 수 있 는 이야기니까. 진실일 수도, 핑계 일 수도 있으니 크게 의미를 두지않고 흘려듣는 게 맞았다.

다만 후자의 이야기는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

'도중에 연락이 끊겼고, 그대로 사 라졌다……. 아직까지도 행적을 찾 지 못한 듯하고.'

이거 아주 구린 냄새가 났다.

"아직 외부엔 비밀이야. 넌 일종의 관계자니까, 알아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 사라진 사람들, 게이트가 클리어되고 나서도 아직까지 행적 이 오리무중이야?"

"그런 것 같아. 가족들한테도 연락 이 없고. 은행에 가서 돈을 챙겨 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템을 팔아서 현금을 만들지도 않았고. 정 황상 사망자로 추정되는데…… 미 심쩍은 부분들이 많지."

이운우는 내심 정진문을 의심하는 투였다.

'그럴지도. 그냥 자기들이 죽여 놓 고 모르는 척하는 걸 수도 있어.'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 도, 자기들끼리 입을 맞추면 외부인 들이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으 레 이런 경우는 마지막 목격자들이처리한 것으로 생각하긴 했다.

'정진문이 그럴 사람 같진 않은 데.'

내가 본 그 사람은, 그랬다.

"표정이 왜 그래?"

" 어?"

"뭔가 아는 게 있어?"

"확실한 건 아니야."

상대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난 건 아니었다. 다만 정체불명의 무리 가 게이트 안에서 헌터를 납치하고 있다는 점과 그것을 돕는 자가 있 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이만큼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려면, 내부 조력자 가 필수야.'

청사 안에도 첩자가 있단 뜻이다.

그리고 그 게이트 안에 있었던 모 든 사람들이 그 후보자가 될 수 있 지만 단 한 사람, 끝까지 나와 함 께 행동했던 이운우만큼은 그 가능 성이 극히 낮았다.

'박현종의 행동반경을 파악할 수도 없었을 테고, 보스 방에서 나간 뒤 그들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여의치 않았어.'

그러니 누군가에게 협조를 구한다

면 이운우가 제일 적합하다.

'이운우를 믿을 수 있을까?'

가능성이 낮을 뿐 제로는 아니다. 스스로에게 물을 차례였다. 나는 이 운우를 믿을 수 있을까?

"..최근에 비슷한 일들이 여럿 일어나고 있어."

믿을 수 있다. 내 결론은 그랬다.

그는 청사를 지독히도 아끼는 사 람이다. 제아무리 자길 싫어하는 인 물이라 할지라도, 청사의 인물을 팔 아넘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지난 십수 년간 녀석과 끊임없이

싸우고, 뒤통수 맞고, 함정에 빠지 고 빠뜨렸지만. 녀석의 행동은 언제 나 한 가지를 향하고 있었다.

청사의 이득. 그 명확하고도 뚜렷 한 한 가지 목표 말이다.

"여럿 일어나고 있다고?"

"아직 뭔가 알아낸 건 없어. 그런 낌새를 눈치챈 것뿐이지."

나는 간략하게 설명했다. 김태병을 구하러 갔을 때 처음 느꼈던 기이 함부터, 최근 여러 게이트에서 발생 하고 있다는 유사한 사례까지. 이운 우는 진중한 얼굴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까지 믿긴 어렵네."

"그럴 거라 생각해. 어차피 나도 지금은 조사 단계니까."

"나도 개인적으로 조사해볼게. 좀 찝찝하긴 하니까."

그렇다면, 일시적 동맹이었다.

나는 이운우의 다치지 않은 손을 마주 잡았다.

악우였던 이가 친우가 되는 순간 이었다.

청사에서도 헌터 실종 사건이 일 어났다는 걸 알았으니, 내게도 알릴 사람이 있었다.

백목련. 게이트연구소에서 일하는 내 협업 파트너 말이다.

멀리서도 백목련은 티가 났다. 검 은색 폴라 티에 청바지를 입은 채 였는데 그것만으로도 내겐 다른 세 계 사람 같았다. 헌터가 아닌 사람 특유의 안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생사의 기로에 서는 것을 생업으로 삼지 않.는 자들에게서 나는 내음 말이다.

"할 얘기가 있다고요. 마침 잘됐어 요. 나도 알려야 할 일이 있었으니 까."

"무슨 일인데요?"

백목련은 나부터 얘기하라며 순서 를 미뤘다. 큰 상관은 없었기 때문 에 순순히 따랐다.

"비슷한 일이 또 발생한 걸 알았 어요. 보안상의 이유 때문에 문서로 남기기 어려워 직접 만나서 말하려 고 한 거예요."

"잘됐네요. 나도 비슷한 이유였는 데."

그녀가 챙겨 온 가방에서 서류 봉 투를 꺼냈다. 봉투에 빨간 도장으로 '일급 비밀'이라고 찍혀있었다.

'이걸 가지고 나와도 되는 건 가……?'

의문이 들었지만, 이미 서류는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사본이에요."

음. 내 생각을 읽은 듯한 말투였 다.

"직인도 없으니 공신력은 없어요. 훔쳐 달아날 생각은 말고요."

"안 해요."

"읽어 봐요."

꽤나 살벌한 경고가 오고 간 다음 에야 서류를 열어볼 수 있었다.

' 이건.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 다. 이 서류 몇 장이 시사하는 바 가 아주 간단했다.

"……정부가 방해하는군요."

"맞아요. 어이없게도. 일단 저희 연구소는 국립이라 정부 직속이거 든요."

"그렇다면…… 우리가 꽤나 거대 한 것을 쫓고 있었나 본데요."

서류는 정부에서 내려온 공문이었 다. 공식적으로 '게이트 내 실종 사 건'에 대한 연구를 모두 중단하라 는 내용이 담긴.

뜬금없이 이런 공문이, 그것도 일 급 비밀 태그를 달고 내려올 이유 는 몇 없다. 나와 백목련은 여기서 아주 의심스러운 느낌이 든다는 쪽 이었고.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단순히 예산 부족이나 주제의 부적합성 같은 이 유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알 기로 백목련의 연구는 꽤나 순항하 고 있었다. 진짜 사망자와 실종자를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잘 진행되고 있었단 말이다.

"저는 그래서 빠지게 됐어요."

"진심입니까?"

" 일단은요."

나는 백목련의 얼굴을 물끄러미 살폈지만 흐트러짐은 없었다. 공적 인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이런 종류의 경고는 뼈아프겠지. 실력 좋 은 동료를 잃은 건 아쉽지만…….

"……존중합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네요. 저는 그럼 연구소로 돌아가 봐야 해서 이만."

백목련은 그러고 나서 커피 한 잔 을 그대로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꿀 꺽꿀꺽, 단번에 마신 다음 탁,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젠장."

그러더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예'?"

잘못 들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젠장이라고 했어요."

"아뇨. 그걸 물어본 게 아닌……

"역시 안 되겠네요."

백목련은 자신만만하게 눈을 바로

떴다. 고양이 같은 눈매가 매섭게 날 응시했다.

"'공식적'으로는 빠질게요."

"그 말은…… 비공식적으로는 함 께하시겠단 말인가요?"

갑작스러운 태도 전환이었다. 백목 련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정 리해 갈무리하면서 말을 이었다.

"말 잘 들으면 연구소장 시켜주고 마음껏 연구하게 해준다고 해서 좀 듣는 척해볼까 했는데, 역시 안 되 겠어요. 당장 궁금한 걸 해소하지 못하면 좀 죽을 것 같거든요."

"정부에서 그런 제안을 했습니

까?"

"네. 어디까지 그놈들이 얽혀들어 있는지 모르겠네요."

연구소장을 제안할 정도라면 정치 적인 세력과 꽤나 연관이 깊은 게 분명했다.

"어쨌든. 제가 연락할 때까지 저한 테 연락하지 마세요. 일단은 상황을 좀 봐야겠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조금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단 백 목련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만으 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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