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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57화 (57/361)

57화

챕터: 푸른 뱀들의 균열

" 청사에서요?"

"응. 이번에 게이트 클리어팀을 꾸 리는데…… 거기에 널 용병으로 쓰 고 싶다고 해서. 일단 길드장이 나 니까 나한테 오퍼가 왔는데, 서하 네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해뒀거든."

청사가 갑작스러운 용병 요청이 라?

"어떤 게이트인데요?"

"정찰팀 말로는 언데드 계열인 것 같다더라."

"언데드요? 그럼 혹시……

"응. 그것 때문이야. '성배'."

역시나. 성수는 언데드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대체로 죽여도 죽지 않고 자꾸 되살아나는 언데드 게이트는 기피 대상이다.

그러나 헌터들이 기피한다고 그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정부의 혜택을 받는 길드들이 돌아가면서 이 런 기피 게이트를 처리하는 게 원 칙이다. 이번 차례는 청사인 모양이 지.

"보스 몬스터도 언데드 계열로 추 정된대. 널 데려가면 성수를 더 효 과적으로 쓸 수 있으니까, 탐이 난 다 이거지. 성검이나 뭐 그런 걸 쥐여줘도 좋을 거고."

그렇겠지. 보통 성수는 귀한 물건 이라, 보스를 상대할 때나 겨우 쓰 곤 하는데. 우리나라는 성배 덕분에 세계에서 최다 성수 보유국이 됐다. 산유국이 아니라 산성수국이라 해 야 하나.

덕분에 언데드 게이트에 대한 불 안감이 크게 줄긴 했지만, 실전 언 데드들에게 쓰는 건 처음일 테니. 날 데려가서 효과도 실험해보고 안 전도 챙기고 싶다 이건가.

"정부에서 권했대요?"

"어떻게 알았어? 응……. 아무래 도, 실전에서 얼마나 강력한지 보고 싶은가 봐."

그렇다면야.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청사도 정부의 요청으로 하는 수 없이 부탁했을 테고, 빚을 지워둬서 나쁠 건 없다. 뭣보다 내겐 거저먹는 거래나 다름없다. 성수를 들고 언데드 게이트라니? 그런 꿀이 다 있나.

"간다고 전해줘요."

"괜찮겠어?"

"괜찮아요. 성수도 있고요."

그렇게 언데드 게이트행이 결정됐 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뱉은 수락이 었다.

"저희의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

하게 생각합니다."

청사 측 사람이 생글거리며 웃었 다. 이름이, 정진문이라 했던가. 검 은 머리를 높게 치켜 묶은 게 인상 적인 남자였다.

"총 인원은 25명입니다. 그중 18 명 정도가 마법사나 레인저 같은 원거리 딜러고요. 한서하 씨도 총을 쓰는 분이라 들었는데, 맞나요?"

"네. 맞아요."

노이트를 쓰다듬었다. 물론 단검도 같이 쓰긴 하지만.

"일단은 저희 원거리 딜러 팀과 함께 움직여주셨으면 합니다. 성수

를 발라서 화살을 쏠 거라, 일반 몬스터들은 크게 나설 일이 없으실 겁니다. 손님으로 오신 만큼 신경 써 드려야죠."

손님이라.

게이트에서 한가한 이야기다. 그만 큼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만.

원거리 딜러 중점 길드라 그런가. 탱커에 비해 원딜 비율이 더 높다 니, 색다른 조합이었다. 그만큼 화 력으로 승부하겠단 거겠지. 마법사 가 3명이나 들어있다는 점에서 충 분히 호화로웠다.

"한서하 씨는 보스 몬스터를 상대

할 때만 조금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총알에 성수를 바르 면……

"마력탄이 원리라서 그러긴 어려 울 것 같은데요. 단검에 발라서 직 접 그어볼게요. 총을 쓰긴 하지만

근접전도 자주 합니다."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길드장님께서 극진히 모시라고 하 셨거든요."

마지막 말은 장난스러웠지만, 아마 반쯤 진담일 것이다. 전서호도 이번 일로 빚지기 싫다 이거다.

"잠은 따로 준비된 텐트에서 주무 시면 되고, 불침번이나 식사 당번은 저희끼리 돌아가면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좀 너무 극진한데. 부담스러 울 정도였다.

"아뇨. 같이 클리어하는 입장에서 저만 그런 특혜를 받을 수는……

"손님이시잖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정진문은 사람 좋 게 웃어 보였다.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지 않으면 저희 체면이 안 서서 그럽니다. 양

해해주십쇼."

아주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그 러나 억지로 같이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진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막 막함을 느꼈다.

이 뱀 소굴에서 어떻게 지내야 한 단 말인가?

"진짜다, 진짜! 서하 언니다!"

"서하 누나!"

막연히 서 있는데 반가운 목소리 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안씨 쌍둥이들이 서 있 었다.

"유라, 유수. 너희도 있었어?"

"당연하지〜. 우리 청사에서 요즘 제일 핫한 레인전데."

"조만간 특집 기사도 나갈걸? 천 재 레인저 쌍둥이! 이런 걸로."

둘이 소란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 는다. 전 같으면 정신없다 생각했을 텐데. 이런 데서 만나니 반가운 마 음이 앞섰다. 이 둘은 전에 봤던 것처럼 푸른 스카프를 매고, 검은색 과 푸른색이 섞인 보호구를 입고 있었다.

"우리 휴대폰 번호 줬는데 왜 연 락 안 했어?"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연수원 마 지막 날에 이 둘이 번호를 주고 갔 었지. 연락을 챙겨 하는 성격이 아 니라 깜빡 잊고 있었다. 그때 내 번호를 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 나 보다.

"내 번호 안 알려줬던가?"

"안 알려줬어어어!"

미안하다고 말하며 뒤늦게 번호를 알려줬다. 김태병과는 종종 연락을 했는데 이 애들은 챙겨주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내 제자 같은 아이들인데.

"이야. 이건 새로운 모습이네요. 두 분이 비꼬는 말 없이 대화 나누 는 건 처음 봅니다."

뒤이어 이운우가 등장했다. 역시. 청사 하면 이운우지. 아직까지 내 인식은 그랬다.

그는 마법사 복장을 제대로 차려 입었는데, 길게 내려오는 로브에 스 태프까지 들고 있었다. 요즘은 마력 석만 가공해서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던데. 역시 효율이 제일 좋은 건 스태프긴 하다. 거추장스럽고 무겁 지만.

그런데. 뭐? 비꼬는 말 없이 대화 를 나누는 게…… 처음? 쌍둥이들 을 질책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둘이 황급히 반박을 시작했다.

"우리한테 한 말씀이신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우리 원래 바르고 고운 말이 생 활화되어 있는데 다른 사람이랑 착 각하신 듯?"

"그런 듯?"

그 말에 이운우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치더니 뭐, 그렇다고 치죠, 하며 가볍게 넘겼다. 그 어조에 쌍둥이들은 더 짜증 난 얼굴이 었지만, 이운우는 그것도 무시하고 내게 다가왔다.

"잘 지냈어?"

"아니. 누구 덕분에."

생긋 웃지만 화가 나 보였다. 왜 지?

"개인 헌터로 일할 거라며."

아.

청사 거절할 때 그렇게 말했었지. 뜬금없이 내가 역천으로 들어갔으 니 배신감이 좀 들었을지도 모르겠 다. 그는 해사하게 웃고 있었지만,어쩐지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 듯 스산함이 있었다.

"그게…… 말하자면 긴데. 일단 완 전히 역천 소속인 건 아니야."

"그럼'?"

"이름만 올려둔, 뭐 그런 거야. 역 천 쪽에도 길드 임무는 수행 안 하 겠다는 조건을 걸었고."

아주 짧게 간추린 내용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히 나머지를 유추한 것 같았다. 이운우가 좀 누그러진 얼굴 을 했다.

"다시 물어볼게. 이젠 좀 잘 지냈 어?"

"웅. 이젠 괜찮네."

그제야 살짝 웃는다.

"뭐야, 뭐야〜. 둘이 많이 친해?"

"우리한텐 서하 누나 얘기 하나도 안 하더니〜."

쌍둥이들이 우리 둘 사이에 끼어 들며 말을 꺼낸다. 별거 아니라고 둘러대자, 이운우와 쌍둥이들은 웃 으며 투닥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는 사람들도 꽤 있고.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렇게 생각했다.

그 착각이 깨진 건, 본격적인 클리

어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 * *

-쿠어어..""어......커어"..".

언데드가 기이한 소리를 냈다. 파 바박! 화살이 놈들의 머리통을 깨 부순다.

핏물이 바닥을 적시고 흙이 짙은 색으로 물든다. 평범한 클리어팀의 활동처럼 보이지만. 내 눈에 아주 기이한 점이 보였다.

파지지직!

"후……. 대충 마무리된 것 같네 요. 휴식합시다!"

정진문이 외치자 제각기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물이라도 마시 면서 각자 휴식을 취하는데, 아무도 뭔갈 지적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나? 원래 청 사의 스타일인가? 그렇다고 치기 엔…….

'다른 레인저나 마법사들은 모두 최후방에 서는데, 왜 이운우만 최전 방이지?'

덕분에 그는 언데드가 뿌린 핏물 을 뒤집어써, 성수를 덧뿌리며 정화작업을 하고 있었다. 근처에서 다른 탱커들도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었 다.

도대체 마법사인 그가 앞장서서 마법을 쓸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 가? 낙뢰 마법은 멀리서도 충분히 그 위력을 발휘한다. 오히려 시전자 가 앞에 있으면 휘말릴 위험이 높 아 추천되지 않는데.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인 모양이다. 심지어 오더를 내리는 정진문마저 그 포지 셔닝에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고 있었다. 이운우도 익숙한 모양이고, 쌍둥이들도 해맑은 표정이었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가?'

혼란이 올 지경이었다. 회귀 전에 청사와 공동 클리어 작업을 진행할 땐 이런 일이 없었는데……?

"서하 언니! 물 마셨어?"

유라가 옆에 다가와 물을 건넨다. 물병을 넘겨받으면서 슬쩍 물었다.

"유라야.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운우 말이야."

내가 직접 그의 이름을 언급하자, 그제야 유라도 아하 하고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나도 사실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됐는데…… 선배들도 말이 없고 운우 오빠도 별 불만 없는 것 같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유는 너도 모른다는 거지?"

"그렇지? 아마 뭔가 이유가 있으 니까 그런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같이 게이트 에 들어가 본 나로서는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일단은 좀 두고 볼까.'

섣불리 말하기엔 어려운 문제다.

잘못하면 오더권을 갖고 있는 정진 문에게 하극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건 게이트 안에 있을 때 아주 예민한 문제다.

'타 길드 사람인 내가 말을 얹는 것도 좀 그렇고.'

길드 간의 문제로 번질 수도 있으 니. 일단 내가 역천의 이름을 지고 있는 이상 조심하는 게 맞았다.

성수를 뒤집어쓴 채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 이운우를 잠시 눈에 담 았다.

'이운우의 텐트 위치는 바깥쪽인 데……. 그리고 혼자 쓴다고?'

텐트의 배치를 보니 또 찝찝한 기 분이 들었다. 뭐라 콕 집어 말하긴 어려운, 아주 미묘한 차이였다.

외곽에 위치한 텐트. 게다가 혼자. 나야 가장 안쪽 텐트에 손님이라는 이유로 혼자 쓰지만, 대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둘 이상이 쓰게 되 어있다. 밤사이 몬스터가 텐트 안에 숨어들어와 습격할 경우를 대비해 서였다.

'그냥 우연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

만, 미묘하게 거슬리네……

우연도 여러 번 겹치면 의심이 생 길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나랑 쌍둥이들 말고 다른 사람이랑 말 섞는 것도 거의 못 봤어.'

그는 항상 혼자, 조용히 휴식을 취 할 뿐이었다. 이쯤 되니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운우, 청사에서 배척당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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