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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54화 (54/361)

54화

챕터: 김태병 일병 구하기

한동안 혜원 언니나 표연원과 같 이 식사를 했다. 까만 집 게이트에 들어갔단 얘길 안 했더니 둘은 내 가 평소처럼 푸른 갈대 게이트에 일주일 내내 들어가 있었던 줄 알 았나 보다.

게이트가 터진 직후에 내게 연락

을 했는데 통 받질 않아 걱정을 많 이 했던 것 같다. 그 두 게이트 사 이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말이 다. 일주일이나 지난 뒤에 왔다고 제법 혼이 났다. 걱정을 끼쳐서 미 안하다고 사과하고 한동안 같이 저 녁식사를 했다.

한참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혜원 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일반용이 아니라 길드용 휴대폰이 었다.

테이블 위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 앉았다. 뭔가 일이 터졌다는 뜻이었 다. 혜원 언니가 우선 휴대폰을 집어 전화를 받았다.

"어, 연호야. 무슨 일이야?"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시작한 전화가 점점 심각해졌다.

"……실종자 수는? 파악돼?"

혜원 언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 었다.

"내가 지금 바로 갈게."

"언니. 무슨 일인데요?"

여간 심각한 얼굴이 아니었다. 뉴 스도 없는 걸 보면 비파동 게이트 는 아닐 테고. 테오도르도 딱히 언 급이 없어 당분간 계획이 없는 줄알았는데. 일반 게이트는 민간인 피 해가 적어서 긴급 상황이랄 것도 없을 텐데.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이어지는 혜원 언니의 대답에 나 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한결이 클리어 도중 고립됐어."

한결이라면 김태병이 있는 길드였 다.

"지원 요청이 들어와서 지금 당장 가봐야 할 것 같아."

얼마 전에 김태병과 나눴던 연락 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길드원들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게 됐다고, 긴 장해서 실수할까 봐 걱정이라고 하던 말들이.

"저도 갈게요."

머리로 생각하고 나온 말은 아니 었다. 하지만 내뱉고 보니 어느새 갈 마음이 가득했다.

"그 안에 제 동료가 있어요."

내 말에 혜원 언니는 잠시 침묵하 다가, 3분 안에 준비해서 나오라고 답했다. 곧장 2층으로 뛰쳐 올라가 짐들을 챙겼다. 간단한 생필품과 건 조식량, 응급처치 도구들에 여분 무 기들. 평상복 대신 질긴 옷감으로 된 훈련복을 입고 그 위에 뻣뻣하 게 약을 먹인 가죽 보호대를 걸쳤다.

단단하게 조인 워커를 신고 노이 트를 점검한다. 모든 준비가 끝났 다. 창문을 타고 뛰어내리자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혜원 언니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과속으로 마구 운전하는 언니 옆 에서 하나하나 캐물었다.

"정확히 무슨 일인데요?"

"여기 고속도로 지나면 나와. 등급 이 높은 게이트는 아니라 한결이 단독으로 진행했는데, 보스 몬스터 를 찾는 과정에서 인원 유실이 많 았나 봐. 지원 요청을 하고 버티고

있는 중인데…… 고립된 상태라 위 험해."

"실종자 수는요?"

"정확히 파악이 안 된대! 안개로 가득한 필드야. 누구 하나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곳이지."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모 양이었다. 그렇다면 아마 게이트 안 에 있는 몬스터가 몰래 숨어들어 한 명 한 명 잡아먹고 있단 소린 데…… 그런 습성을 가진 몬스터가 뭐가 있지?

"안개물총새인가요?"

"아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놈이

래."

그런 경우가 있단 말인가. 그야말 로 최악이다. 그 안으로 걸어 들어 가야 하는 우리의 상황도 최악이고.

"동맹 길드들한테 지원군 요청을 한 것 같아. 한결 쪽에서도 추가 인원 파견할 거고. 그때까지 버텨줘 야 할 텐데……

"기존에 몇 명 투입했대요?"

"30 명."

그 정도면 꽤나 대규모다. 안전에 신경을 안 쓴 건 아니란 소린데, 그 인원으로 고립이라고? 그럼 최 소한 절반은 이미…….

머릿속에 싸늘한 시체가 된 김태 병이 스쳐 지나갔다. 사지가 망가지 고 피를 줄줄 흘리며, 흐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이.

기도하는 수밖에. 절반의 확률로 김태병이 살아있기를. 제발 아무 일 없이 무사하기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현재 상황은 어떻죠?"

한결 측 사람이 언니를 맞이했다.

얼굴에 피로인지 근심인지 모를 것 이 한가득이었다. 가슴팍에는 한결 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곧게 뻗은 대나무. 한결같은 지조의 상징이다.

"좋진 않지만, 동맹 길드에서 여럿 도와주러 오신 덕분에 구색은 갖추 고 있습니다. 저희 나머지 인원들도 지금 맡고 있는 게이트를 클리어하 면 곧장 돌아오겠지만…… 당장은 타 길드 분들께 많이 기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소 길드의 단점 중 하나다. 숫자 가 적기 때문에 다수의 게이트를 병행해서 진행하면 이렇게 인원이부족할 때가 생긴다.

그래서 중소길드들은 각자 연합을 다녀 서로서로 필요할 때 돕는 문 화가 널리 퍼져있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기사다운 얼굴을 한 남자가 진중 하게 말했다.

"천만에요. 역천도 한결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게이트 돌입까지, 앞으로 3시간이 었다.

* * *

"이번 게이트, 그러니까 일명 '붉 은 안개 게이트'는 다음과 같은 구 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결의 부길드장, 이형우가 브리핑 을 시작했다. 사전에 정찰팀을 보내 파악한 정보들을 기반으로 한 자료 였다.

"그리고 연락이 끊긴 시기를 보 아……, 이쯤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 됩니다."

이형우가 한 곳을 탁 가리켰다. 던 전의 한가운데였다. 이 던전은 미로 처럼 길들이 꼬여 있는데, 멀리서보면 큰 십자가 모양으로 보였다. 그 한가운데가 바로 실종 장소였다.

'사방 중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 잖아.'

수색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넓어 진다는 소리다. 그걸 다들 아는지 술렁거렸다. 그러나 이형우가 단호 하게 선언했다.

"저희 한결은! 여러분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여기 와주신 것만으로 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저 지른 일이니 뒤처리 또한 온전히 저희의 몫인 게 당연하나…… 저 안에 갇힌 젊은 청년들을 구해내고

자, 부디 도움을 간청하는 바입니 다."

깊게 고개를 숙인다. 꺾이지 않는 대나무의 상징을 가슴팍에 달고서, 채 꽃피지 못한 청년들을 위해 허 리를 숙이는 참담한 기분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절로 숙연한 분 위기가 형성됐다.

"언제든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남아계실 분들은 제 말에 집중해 주십시오."

그가 사방 중 위와 오른쪽을 가리 키며 말을 이었다.

"이 두 곳은 저희가 마크하겠습니

다."

"가능한 일입니까?"

"네. 가능합니다."

어떻게? 네 곳 중 두 곳이라니. 한결은 그 수도 얼마 되지 않을 텐 데. 그러나 이형우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이 두 곳은 비교적 지형이 좁아 방패를 이어 벽의 끝과 끝을 파악 할 수 있습니다. 한결의 자랑인 탱 커들이 이곳을 마크할 수 있습니 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 결의 방패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움직인다고 명성이 드높기 때문 이다. 연계적인 진의 형성은 믿을 만했다.

"나머지 두 곳을 부탁드리고 싶습 니다."

"역천입니다. 왼쪽은 저희가 맡겠 습니다."

조연호가 손을 들고 발언했다. 조 연호 뒤에 앉아있는 혜원 언니가 지시한 것으로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래쪽은 우리가 맡죠."

검은 옷으로 온몸을 두른 여자가

받아 이었다. 가슴께에 새겨진 문장 은, 검은색 배경에 흰색 까마귀였 다. 나이트워커. 정찰 전문 어쌔신 길드였다.

"정찰은 우리 전문이니까요. 다만, 우리가 신호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팀이 보조하러 와줬으면 합니다. 구 조와 정찰을 동시에 하는 건 어려 워서요."

가장 넓은 아래쪽을 나이트워커가 맡아준다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다 른 길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이 게이트의 보 스 몬스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

니다."

이게 하이라이트였다. 분위기가 삽 시간에 바짝 조여졌다.

"이 보스 몬스터는 아직까지 확인 된 적이 없는 종류의 몬스터로 보 입니다. 서식지는 이 게이트 전반으 로 보이고 안개에 몸을 숨겨 발견 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의심되 는 정황이 보이면 즉시 무전으로 전달해 주십시오."

알려진 정보가 적은 만큼 간결한 전달사항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 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다들 가벼운 짐을 챙겨서 게이트

문 앞에 섰다. 기이하게 일그러진 공간의 틈새, 그 너머로 알 수 없 는 빛깔들이 수없이 사라졌다 드러 나기를 반복했다.

"구조 시간은 최장 24시간입니다! 그 이상 넘어가면 다른 분들도 위 험해지니 즉각 철수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진입합니다!"

하나둘, 게이트의 입구로 사라졌 다. 한결이 모두 입장한 다음엔 역 천의 차례였다. 혜원 언니의 옆자리 에 서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알림: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사용자를 확인합니다.]

[개체 '한서하(각성자)'를 확인했습 니다.]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지독히도 익숙한 곳에 도착했다. 게이트였다.

'온통 붉은색뿐이야.'

이름값대로 붉은색 안개가 대기

전반에 퍼져있었다. 한 치 앞도 제 대로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공간 간섭'

스킬을 발동해 공간을 스캔하자 사람들이 눈에 보일 듯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사람들도 하나둘 정찰 스킬을 사 용하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구 조대의 기본 덕목이다. '정찰' 또는 그와 유사한 스킬을 보유할 것. 신 속한 이동이 필수 항목이기 때문이 다.

"다들 이쪽으로. 왼쪽을 공략한 다!"

혜원 언니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따르기 시작했다. 달려가면서 구석 구석 혹시 생존자가 있는지 살폈다. 공간 간섭을 오래 유지하는 게 꽤 나 피곤했지만 못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걸어도 생존자는 보 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맡은 구 역의 끝에 도달했다. 한가운데, 연 락이 끊긴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 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거 맞지."

"네, 길드장님."

"대체 다들 어디로……

이상했다. 분명 지도에서 봤을 땐 이 구역을 중심으로 사방에 갈림길 이 있었는데. 여긴 그런 게 없었다. 두 갈래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순식간에 답이 나왔다.

"……움직인다."

움직이는 미로.

그게 이 던전의 정체였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빠르게 혜원 언니를 바라봤다. 언니도 비슷 하게 짐작했는지 무전기를 들어 말 을 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미로는 움직이는 것 같으니 사전에 본 정보를 믿어선 안 되겠다고 말 이다.

-뭐라고요? 어쩐지 계속 걸어도 끝이 안 보이더라니……. 알겠어요.

-구조대 역시 위험에 빠진 겁니 다. 즉각 철수해야 합니다!

"아니요! 저희는 일단 마지막 연락 이 끊긴 곳까지 왔어요. 정찰팀에서 눈치채지 못했다면 짧은 시간 안에 변하는 게이트는 아닐 거예요. 저희 가 들어온 곳 말고 길이 한 군데 더 있어요. 그쪽으로 따라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게이트가 빠른 시간 안에 급속도 로 변하는 게 아니라면, 연락이 끊 기기 전에 있던 이들도 지금과 같 은 지형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걸어 들어온 길이 하나, 가 지 않은 곳이 하나이니. 그들이 어 디로 향했는지 너무도 명확하다.

-……이상한 기색이 느껴지면 바 로 철수하셔야 합니다. 실종된 이들 도 안타깝지만, 구조를 위해 더 많 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선 안 됩니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소수 정예로 다녀올 테니까."

무전이 끝나자 혜원 언니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 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곧게 뻗은 또 하나의 길.

저 안에 있을지도 몰랐다. 김태병 이.

' 살아있을까?'

시체로 마주한다면, 그걸 내가 감 내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들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야 했다. 김태병이 살아있을지도 모르 는 그 확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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