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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49화 (49/361)

49 화

"당연하지 않나. 야심차게 준비했 던 게이트가 너로 인해 금방 끝나 버렸으니. 실적을 올리려면 후속작 을 준비할 수밖에."

순식간에 머리가 차가워졌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연화도 게이 트가 본래 계획보다 휠씬 일찍 클 리어되어서 부랴부랴 다음 비파동게이트를 준비하고 있단 소린가?

'비파동 게이트는 원래 연화도 게 이트 이후 한동안 잠잠했었는 데……!'

달라졌다. 나로 인해서.

'후회하진 않아. 덕분에 수많은 사 람들이 살았으니까.'

당장 김태병이나 다정 언니만 해 도 나로 인해 운명이 뒤바뀐 사람 들이지 않은가. 뒤바뀐 운명이 있으 면, 뒤바뀐 미래도 있을 수밖에.

'이번 비파동 게이트도, 막아내야 해.'

즐겁게 음료수 뚜껑에 담긴 음료 수를 핥아먹는 테오도르를 보면서 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이놈을 어떻 게든 구워삶아서 그 비파동 게이트 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했다.

"좋아. 보아하니 물건을 갖고 돌아 갈 순 없는 모양이지? 그럼 내가 다음에 만날 때 지구의 간식들도 먹어볼 수 있게 해줄게. 어때?"

"지구의 식문화! 그것 참 흥미로운 얘기구나!"

"지금은 가져온 게 건조 식량밖에 없지만, 그 비파동 게이트에 대해서 알려주면 정확히 일주일 뒤 먹을

것들을 챙겨 오겠어. 너한테도 나쁘 지 않은 조건일 거야."

"좋다, 좋다!"

테오도르는 마구 고개를 끄덕이다 가 멈칫했다.

"으음……. 그렇지만 일단 당장은 나도 톨룩에서 살아가는 존재니 말 이다. 정보가 새어 나간 티가 너무 많이 나면 곤란해. 그러니 이 정보 를 다른 이들에게 발설해 토벌대를 미리 꾸린다거나 하면 이 계약을 진행할 수 없네."

"그 정도라면."

마트에서 시작한 척해야겠다. 기본

적인 생필품을 챙겨 움직일 수 있 을 거다.

"케르베로스의 맹약을 쓰는 게 맞 겠지만 가져온 것이 없으니…… 내 목숨을 걸고 실험을 하는 셈 칠까. 지구인의 약속 관념에 대한 실험 말이다."

"걱정하지 마. 이번 게이트를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넌 살아서 지구를 위해 더 힘써줘 야지, 테오도르.

맹해 보이는 남자지만. 이 사내가 지구 편으로 돌아서면서 전쟁의 양상이 바뀐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인간 들이, 이 사내의 기술력과 톨룩에 대한 이해도를 기반으로 반격도 가 능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지구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다.

"지구 시간으로 앞으로 3달 뒤. 위 치는…… 이 게이트로부터 300km 남쪽 부근. 범위는 연화도 게이트의 절반 정도?"

연화도 게이트의 절반이라. 그 정 도면 충분히 크다. 일반인들이 휘말 리면 사상자도 상당할 거다.

"보스 몬스터는 아직 캐스팅이 안

됐는데. 전에 붉은 마왕은 좀 특수 한 경우였으니, 이번엔 그래도 다른 쪽에서 나올 텐데…… 누가 될지 정확히는 모르겠군."

그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연합군 쪽 인물이라면 내 가 알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클리어까지 예상 기간은?"

"그게 참 골치 아파. 전 같으면 적 어도 3개월은 걸릴 거라고 말하겠 는데…… 3년 걸릴 줄 알던 걸 4개 월 만에 클리어한 전적이 있으니 계산이 영 맞질 않아서 말이지3개월을 예상한다는 말이군.

클리어까지 3개월이 걸리는 게이 트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정도면 꽤나 대규모에 난도도 상당한 편이 다.

"이 정도 게이트를 급하게 만들었 을 것 같진 않은데. 미리 세워둔 계획을 당겨서 쓰는 거야?"

"눈치가 빠르군? 맞아! 원래는 한 참 뒤에 내놓으려고 계획 중이던 걸 좀 빨리 완성해서 쓰려는 거지. 덕분에 일정에 빈 구멍이 생겨서 또 야근해야겠지만."

그렇다면 예상가는 게이트가 있었

다.

연화도 다음 발생했던 비파동 대 규모 게이트로, 연화도만큼은 아니 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비파동 게이트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줬던 사건이다.

속칭 '까만 집 게이트'다.

까만 집 게이트라면, 규모나 위력 보다는 정신 공격 특화 게이트였다. 일반 게이트보다 이런 쪽이 더 클 리어하기엔 까다롭다.

"……우리 거래는 성립된 거야. 다 음 주에 먹을 걸 갖고 올 테니까."

"좋아! 기대하고 있을게!"

테오도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지 만, 처음과 달리 그 미소가 더 이 상 귀엽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 이 면에 미친 과학자가 있다는 걸 알 아서 일까.

다음에 다시 방문할 예정이기 때 문에 짐을 방 안에 조금 꺼내두고 짐가방 안에는 자료 몇 가지를 챙 겼다. 가져가서 조사해보고 정부에 게 제시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면 고민해봐야겠다.

나 역시 톨룩어에 능숙한 편은 아 니니 해석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 았다.

"즐거운 던전 탐험 하셨나요?"

던전에서 나오자 매표소 직원이 형식적인 인사를 했다. 즐거웠냐 고?

'세상에 즐거운 던전은 없는데 말 이지.'

* * *

역천의 문양을 가슴팍에 달았다. 이름만 역천이지만, 나 역시 역천의 멤버 중 하나라는 증명이었다. 새삼 스러웠다. 회귀 전에도 이 문양을달고 날아다녔지.

"잘 어울리네."

"그래?"

조연호가 옆에서 입에 발린 말을 했다. 조연호도 드물게 제복 차림이 었다.

하얀색을 기본으로 하고 옅은 하 늘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옷이다. 하 얀색인 만큼 실제 게이트에 들어갈 때 입는 건 아니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공식 석상에 입고 나가는 일이 많았지. 맞춤형으로 제작되어 사이즈도 딱 맞고 허리춤에는 노이 트를 넣은 총집도 하얀색으로 같이갖춰져 있었다.

"네가 역천에 들어올 줄은 몰랐는 데…… 참."

그도 새삼스러운 모양이었다. 하 긴.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를 의 심했고, 후엔 경쟁하다가 이제 는…… 동료가 됐으니.

"왜? 혜원 언니 관심을 빼앗길까 봐 겁나?"

"그게 왜 말이 그렇게 되냐. 그리 고 넌 길드 임무 참여 안 한다며. 그럼 당연히 내 쪽이 우위지."

"난 같이 사는데?"

"집에 붙어있지도 않는다고 길드 장님이 걱정이시던데, 뭘."

그런 얘기까지 했단 말인가? 뭐, 최근 테오도르한테 먹을 것도 갖다 주고 하느라 바쁘긴 했다. 처음에는 '테오의 방'에 있던 자료들을 꺼내 와서 조사했지만 나중에는 먹을 것 들을 챙겨 아예 테오의 방에서 먹 고 자며 자료들을 분석했다.

'언니가 걱정하고 있을 줄은 몰랐 네. 오늘 저녁은 언니랑 같이 먹을 까.'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제복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가자. 길드장님도 밖에서 기다리 고 계셔."

" 알겠어."

노이트까지 총집에 넣자 모든 준 비가 끝났다. 조연호를 따라 밖으로 나서니 혜원 언니도 제복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서하야! 세상에, 너무 잘 어울린 다!"

"그래요? 고마워요, 언니. 언니도 오늘 정말 멋져요."

진심이었다.

회귀 전에는 혜원 언니가 제복을 입은 모습을 본 적도 없었으니. 문 득 그런걸 깨달으면 뭉클해지곤 한다.

"긴장하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 놈들이 눈을 시뻘겋게 뜨고 뭐라도 책잡으려고 기다리겠지만. 우린 '역 천'이니까. 굽힐 필요 없어."

"네. 명심할게요."

"그럼 가자."

언니가 앞장서고 그 뒤를 나와 조 연호가 따랐다. 다른 길드원들이 그 뒤를 이어 늘어섰다. 길드장을 상징 하는 하얀 망토가 휘날리며 혜원언니의 뒷모습을 장식했다.

뿌우우우!

"역천이 입장합니다!"

뿔피리가 울리고 우리의 입장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문이 좌우로 갈라지고,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곳이다 처음 느낀 감상은 그 랬다.

벽면마다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 져있고, 하얀 빛이 곳곳에 드리워 어두운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종교적인 분위기는 풍기지만 특정 종교를 연상시키진 않았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 있었으니. 투명한 유 리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성배〉 였다.

달'리 O卜 ..... '

여전히 신성한 자태가 절로 감탄 을 일게 했다. 본래도 내 허리춤까 지 올 정도로 거대한 아이템이지만, 높은 곳에서 빛을 받으며 서 있으 니 그야말로 성물처럼 보였다.

'신의 조각'이라고 말하던 그 사이 비들도 이 광경을 보고 그런 이름 을 붙인 걸까.

"어서 오십시오. 역천 분들."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가 우릴 맞 이했다. 목걸이에 달려 있는 건 사 원증인가? 아니, 국보관리국 사람 일 테니 공무원중이라고 해야 하나.

"홍염 측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살짝 비켜서자, 붉은색 제 복이 눈을 찌르듯이 강렬했다.

버건디에 가까운 붉은 색채에, 제 복이라기보단 갑옷에 가까운 모양 새. 차오르는 것 같은 불꽃의 상징 까지. 홍염의 사람들이었다.

붉은 망토를 두른 남자가 호쾌하 게 웃었다.

"얼마 만이지? 이거 오랜만에 보 니 반가운데."

" 오랜만."

밝은 금발을 한 미남자였다. 까무 잡잡한 피부와 상반되는 화려한 머 리칼이 인상적이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과 단련된 육신을 보면 검 사인 것 같다. 추측할 필요도 없지. 홍염의 길드장, 윤강백. 이 사내는 청사의 전서호와 함께 2.5세대 헌 터로……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은 사내라고 평이 자자하다.

혜원 언니가 이를 으드득 가는 게 느껴졌다. 서로 반말을 하는 걸 보면 사이가 나쁘진 않은가 본데……. 애초에 역천 쪽에 파견된 클리어팀 이 홍염이었던 걸 생각하면 둘은 협력관계가 맞을 듯했다.

회귀 전엔 딱히 내게 혜원 언니를 언급한 적이 없었는데, 꽤나 의외였 다.

"저는 국보관리국의 박채은입니 다."

머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묶은 여 자가 나서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오늘은 역천 측에서 내용 증명을 신청하셔서, 양 길드의 협의하에 진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규정상 양측

의 길드장님께서 모두 참석해주셨 습니다."

홍염의 길드장과 혜원 언니를 번 갈아 바라보니 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천 측에서 주장하는 바는 다음 과 같습니다. '성배의 설명 중 특정 인물이 사용하면 부가 효과가 붙는 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때 이 특정 인물이 역천의 소속이다. 때문에 성 배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지분을 재분 배했으면 한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홍염 측도 인정합니까?"

"명확한 증명 없이는 수긍할 수 없습니다."

역시.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겠지.

순순히 동의해줬다면 복잡한 과정 이 많이 생략됐겠지만.

"그럼 본격적인 내용 증명을 시작 하겠습니다. 역천 측이 주장하는 '특정 인물'은 앞으로 나와 주시 죠."

그 말에 내가 한 걸음 나섰다. 내 가 일할 차례였다.

모두 성배로부터 멀어져 있는데

나 홀로 튀어나와 성배 앞에 섰다. 투명한 유리 상자의 밑 부분을 어 루만졌다.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혹시 내가 찾아오지 않아 조금 외 로웠을까?

"……성배를 꺼내주세요."

"허가합니다."

박채은의 허락이 떨어지자 우웅, 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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