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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44화 (44/361)

44화

유라는 한달음에 달려와 내게 안 겼다. 뒤이어 안유수가 눈물이 글썽 글썽해서는 보고 싶었다며 울먹였 다. 저런. 따지자면 이 애들에게 나 는 혜원 언니와 같은 스승일 텐데, 너무 신경을 못 썼나 싶었다.

"보고 싶었어어어어!"

유라의 뒷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

었다. 엷은 갈색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스친다.

순간적으로 혜원 언니와 나눈 대 화가 떠올랐다.

-청사 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 닮은 것들끼리 모여있단 말이지. 어떻게 그러나 몰라.

-아주 이름값 제대로 해.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으론 무슨 생각 할 지 모르는 게 청사 놈들이야.

뱀처럼 겉과 속이 다르고, 웃으면

서 독설을 날리는 독종들. 그게, 저 쌍둥이들이라고?

"우리 잊은 건 아니지?"

"응?"

올망을망한 눈망울을 하고서 올려 다보는 모습이 순진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그래…….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지.'

이 애들이 그 정도로 인성 쓰레기 는 아니리라, 그렇게 믿고 싶었다. 비록 얘네가 회귀 전에도 삐뚤어진 인성으로 유명하긴 했지만…….

회귀 전의 쌍둥이들은 내부 분열 로 실내체육관 내에서 사람들이 죽 어나가는 걸 목격한 탓에 정신적으 로 뒤틀렸다는 얘기가 많았다. 이번 엔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니, 회귀 전과 지금의 쌍둥이들은 다른 사람 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는 쌍둥이들도 다소 장난 스럽긴 하지만 나쁜 아이들은 아니 었으니까.'

속으로 청사에 대해서 했던 얘기 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무시했 다.

"언니는 우리 안 보고 싶었어?"

"어? 보고 싶었지."

"누나 여기 있단 얘기 듣고 우리 도 따라왔지!"

따라왔다?

그제야 이운우의 뒤에 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선명한 푸른색 머리카락이 인상적 이었다. 하얀 피부에 얄쌍한 눈매. 한쪽 귀에 건 푸른색 보석이 길게 늘어진 귀걸이. 부드러운 옷을 걸치 고 손가락에 두터운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다. 눈동자를 보기 힘들 정도로 가늘게 뜬 눈이 분명 날 향 하고 있었다.

전서호. 아마도 그 남자다.

청사의 길드장이라 하기엔 매우 젊어 보였다. 고작해야 서른 중반 정도 될까. 2세대 헌터라고 듣긴 했지만 개중에서도 매우 젊은 축에 속하는 것 같다. 하긴, 이들을 2.5 세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지.

전체적으로 이운우와 쏙 빼닮은 분위기였다.

청사의 대표답게 그 트레이드마크 인 뭔지 모를 수상함을 잘 갖췄다 는 뜻이다.

" 호오......

얼마나 눈을 마주치고 있었을까. 아니 눈을 마주친 게 맞는지 좀 의 아하긴 하지만.

"네가 한서하구나."

묘한 어투다. 마치 여기저기서 내 얘길 들었다는 듯 말하지 않는가. 생긋 웃을 때 휘는 눈매가 지나치 게 이운우를 닮았다. 둘이 혈연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거. 청사의 길드장님을 뵙습니 다."

김기택이 앞서 나가며 말을 걸었 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찾아뵙지 못한 지 꽤 오래됐죠, 하하."

별 의미 없는 아부성 멘트였다. 전 서호는 김기택이 보이지도 않는 것 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랑 쌍둥이가 있는 곳 바로 앞에 멈춰 서서 한 곳을 바라본다.

시선을 따라가니 전청운이 있었다.

'전청운……. 전서호……. 둘이, 설 마?'

혈연은 이운우가 아니라 이쪽이었 나? 흔한 성씨도 아니니 그럴 확률 이 높았다.

그렇다면 매우 공교로운 일이었다. 어째서 청사의 혈연이 홍염의 에이 스로 이름을 날리고 있단 말인가?

"너도 있었구나. 청운아."

나긋한 어조였으나, 시선을 받는 전청운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 고 있었다. 손을 꽉 쥔 채로 고개 를 들지도 못하는 것이, 꼭 육식동 물 앞에 선 초식동물 같았다.

'왜 저러지?'

굳이 따지자면…… 외양으로 봤을 때 위협적인 건 전서호보다는 전청 운이다. 전서호는 마법사고 전청운 은 검사니까. 그런데, 왜 저렇게 겁먹은 표정일까. 아니 단순히 겁먹은 수준이 아니라 마치…… 공포에 질 린 듯한 얼굴이다.

"모처럼 조카를 봤는데, 인사도 없 으니 이거 참 서운하네."

대체 둘이 무슨 사이지? 모르는 이가 봐도 둘 사이가 썩 좋지 않다 는 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전 서호가 한 걸음 더 전청운에게 다 가서려는 순간,"하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전청운 씨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요. 다음에 건강해지면 그때……

김기택이 몸으로 끼어들어 전청은

을 살짝 가렸다. 황급히 변명을 내 뱉지만 뻔한 거짓말들이었다.

" 흐음?"

전서호가 가볍게 콧소리를 내자 김기택이 바짝 굳었다. 그는 잠시 김기택을 훑어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은 것처럼 뒤돌았다.

"어차피 곧 볼 테지. 다음에 볼 땐 몸 건강히 만나자고, 조카님."

기묘한 긴장감이 대기실 안에 서 려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나는 그 틈바구니에 껴서 눈알만 굴리고 있 었다. 그가 뒤돌아오면서 나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이쪽은 너무 탐나네."

슬쩍 눈매가 올라가며 보인 눈동 자가 희번덕대며 빛났다. 뱀? 뱀처 럼 동공이 찢어진 눈으로 보였는데. 내가 잘못 본 건가?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인간이 아닌 것을 본 듯한 감각이 스멀스 멀 기어 올라왔다. 하지만 다시 전 서호의 얼굴을 봤을 때 그는 눈동 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긋 웃 고 있었다.

"내 눈은 정확하거든."

아까 본 것을 생각하면 절묘한 대 사였다. 그냥 우연일까?

천리안의 최석철이 아끼는 제자라 그 이름값을 하는 모양이다.

"반가워요. 한서하 헌터. 청사의 길드장인 전서호라고 합니다."

내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 게 악수를 청한다. 마주 인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우한테 얘기를 들었겠지만, 한 서하 헌터의 가치를 높게 사고 있 습니다. 홍염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줄 수 있다고 장담하죠."

"갑자기 남의 대기실에서 이러시 면……

"김기택 헌터."

전서호가 싸늘하게 일갈했다.

"홍염의 길드장이 오지 않는 이상 나보다 더 후한 조건은 줄 수 없을 텐데요."

"한서하 씨는 저희랑 얘기 중이었 습니다. 아직 조건을 조율하는 중이 었는데 이러시는 건 상도덕에 어긋 나죠."

김기택도 밀리지 않았다. 아니, 청 사도 홍염도 갈 생각이 없다니까.

"한서하 헌터가 홍염에 가고 싶다 고 합니까?"

" 그건......

"아니면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물러나시죠. 여기서 자꾸 붙잡고 있 어서 제가 직접 온 거 아닙니까. 저도 시간이 귀한 사람이라서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잘도 저런 말 을 한다. 이운우, 네 성격이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다 보고 배운 바가 있었구나.

힐끗 이운우를 바라보자 그는 나 와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는다. 전 서호가 겹쳐 보이는 건 내 착각일 까.

"한서하 헌터. 어떤 조건을 원하

죠? 무엇을 원하든 대부분 맞춰줄 수 있을 겁니다."

문득 고민하게 됐다.

'이 정도면 청사에 가입해도 괜찮 을까?'

확실히 길드로부터 여러 복지를 보장받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원하는 조건을 대부분 맞춰준다고 하니 길드를 위해 하는 잡일은 좀 제외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래도 개인보다는 집단에 속하 는 편이 여러모로 일이 수월하긴 했다. 과거에 나는 이미 이운우와 대적하면서 청사가 갖는 권력을 맛본 적이 있으니 더욱 매력적이었다.

"언니, 언니. 우리랑 같은 길드 가 자아〜."

"응? 웅?"

옆에서 쌍둥이들도 애교를 부려온 다. 좌우 쌍둥이에 앞은 전서호다. 소파 뒤는 이운우고. 이거 완전히 포위당했다.

"……저는 개인행동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데요."

"우리 청사는 길드원 개개인의 자 유를 존중하죠."

"필수 임무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

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가 필수 임무를 언급하자 전서 호가 가만히 침묵했다.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그래서 더 침묵이 소 름끼쳤다.

"왜죠? 헌터들 개인에게도 나쁜 조건은 아닌데. 길드의 이익만을 위 해 그러는 게 아닌 줄 알지 않나 요?"

"제가 말하는 '자유'는. 아무도 가 지 않으려 하는 던전에 저 혼자 가 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제 개인 업무에 집중하고 싶다는 겁니다."

"욕심이 과하군요."

그럴지도 모른다.

과한 요구라는 걸 아니까 홍염도 청사도 갈 생각이 없다는 거다.

"이것 참……. 다른 사람이었으면 주제를 알라고 비웃겠는데. 한서하 헌터라서 그러질 못하겠네요."

이건 좀 의외의 말이었다. 대체 나 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고평가를 해준단 말인가.

나 스스로는 안다. 나는 지금도 현 직 헌터들과 대등한 수준이며, 앞으 로 더 발전할 것이고 어떤 방식으 로 성장해야 할지도 안다. 이전의 페이스를 되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과거에 탑티어 헌터였던 나를 아 는 내가 날 믿는 것과 생판 남인 전서호가 날 믿는 것은 다를 수밖 에 없는데.

"놀란 얼굴이네요."

"네. 조금은요. 절 오늘 처음 보셨 는데 그렇게 높이 평가해주셔서요."

"말했잖아요? 내 눈은 정확하다 고."

가만히 그를 바라봤지만 뱀 같은 그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가볍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 데…….

"아쉽지만, 한서하 헌터의 조건은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군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길드를 가도 그 조건을 맞 춰줄 순 없을 텐데요."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내 말에 전서호가 흥미롭다는 듯 이 턱을 쓰다듬었다.

"개인 헌터로 활동할 생각인 건가 요?"

"아마도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진 않은 데……

그렇겠지. 보통 개인 헌터는 가시 밭길인 경우가 많다.

어느 길드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홀로 떠도는 존재. 그런 인식이 강 하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본래 있 던 길드와 트러블이 생겨 자발적으 로 길드를 박차고 나와 용병 일을 하는 자들을 제외하면 실력이 변변 찮은 이들뿐이다.

"하지만 타협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군요."

"네."

그 말에 전서호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좌우에서 쌍둥이들이 우리랑 같이 안 가는 거야? 하며 칭얼거렸 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겐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길드장님."

"됐다, 운우야. 의미 없는 일이란 걸 모르겠어?"

이운우가 돌아가려는 전서호를 붙 잡으며 넌지시 말을 꺼냈지만 전서 호도 단호했다.

과연 청사의 길드장인가. 아무리 해도 내가 흔들리지 않으리라 확신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옳았다.

"마지막 날 대련 기대할게요."

전서호가 의례적인 말을 남기고 문 밖으로 나섰다. 이운우도 나를 몇 번 뒤돌아보더니 그를 따라 나 갔다. 쌍둥이들은 떠넘기듯이 자신 들의 전화번호를 내게 알려주고는 훌쩍 떠났다.

사람들이 폭풍같이 휩쓸고 지나간 뒤 홍염 대기실엔 셋만이 남았다.

김기택이 어색한 낯으로 식은 커 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옆에서 전청운이 아직도 바짝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들으셨다시피. 저는 길드 활동에

생각이 없어서요. 홍염과 청사가 어 떤 조건을 제시해도 가입하진 않을 거예요."

"그렇군요. 네, 들었습니다. 그 청 사의 길드장이 와서 직접 백지 수 표를 제안했는데 차는 걸 눈앞에서 봤으니, 더 제안할 것도 없겠습니 다."

씁쓸한 어조였다.

나 역시 전서호와 안면을 트는 게 목적이었으니, 더 이상 설명회에 참 석할 이유가 없었다.

김기택과 전청운을 뒤로하고 대기 실을 빠져나왔다. 곧 토너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대가 됐다.

김주일을 어떻게 발라줘야, 잘 발 랐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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