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42화 (42/361)

42화

탕!

총알이 표적을 꿰뚫었다. 한가운데 였다.

"만점."

나직하게 점수가 읊어졌다. 한 발 만 맞은 것처럼 중앙만 뻥 뚫려있 었다.

"훌륭해요."

동글뱅이 안경을 쓴 여자가 안경 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원거리 딜러 들을 가르치는 현직 헌터, 일명…… 명사수 박자영이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10발을 전 부 7점 안으로는 넣을 수 있어야 해요. 원거리에서 정확도만큼 중요 한 것은 없죠. 목표물을 맞히지 못 하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아시 겠죠?"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스 스로 생각하기에 난 뛰어난 사수는아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백발백중, 로빈 훗, 신궁 등의 이명으로 불렸던 여 타 프로 헌터들과 비교해서 그렇다 는 거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내 사 격 실력은 훌륭한 편이다.

다만 최상위권으로 갈수록 이 정 확도라는 것은 무척 상대적인 기준 이 된다.

신궁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정확도를 높이는 것에 치중하는 헌 터가 있는가 하면, 나처럼 그 외의 방법을 강구하는 헌터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원거리 딜러라기

엔 민망할 정도로 근거리에서 더 자주 싸우기도 했다. 고유 스킬을 이용해 가까이 붙어 기습하는 쪽이 내 전투 스타일이니까.

'강한 상대일수록 날아오는 공격에 그냥 맞아주고 있진 않는 게 당연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거리 딜러가 가진 숙명적인 딜 레마다. 공격을 멀리서 하면, 날아 가는 만큼 시간이 걸린다. 그건 촌 각을 다투는 최상위권의 대결일수 록 치명적인 결함이 되기 마련이다.

"짜증 나……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비죽 튀 었다.

"……저번부터 혼자……

"눈에 띄고 싶어서……

전부 들리지는 않지만 대충 짐작 은 갔다.

'오늘은 공개 수업이니, 배가 아프 단 거겠지.'

많은 수는 아니지만 서너 명의 스 카우터들이 수업을 관찰하고 있었 다. 그들이 흥미로운 눈빛을 내게 보내는 것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비교적 다른 연수생들의 실력은 가려질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꼬운 거다.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어.'

뒤에서 수군거릴 뿐 앞에서 행동 할 배짱은 없다. 고작 그 정도 감 정인 거다.

탕!

다시 한번 과녁 정중앙을 꿰뚫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헌터의 세계에서 말은 필요 없다. 실력이 생사를 좌우할 뿐이니.

* * *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송다정이 우는 소리를 했다. 듣는 둥 마는 등 하며 계란말이를 한 점 입에 넣었다. 포슬포슬한 식감이 맛 있다. 연수원은 밥도 잘 나온다. 세 금을 많이 쓰는 곳이라 그런가, 길 드에서 기부금을 받아서 그런가.

"갑자기 쓰러질 때까지 체육관을 돌라 그러지 뭠까……

김태병도 혼쭐이 난 모양인지 숟 가락을 쥔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제대로 쥐지 못하고 국물이 사방으 로 튀었다. 저런.

"일주일 내내 이러는 건 아니겠 지? 나 벌써 내일이 오지 않았음 좋겠어."

"밥 더 먹어. 먹어야 힘을 내지."

정론을 말했지만 다정 언니는 들 리지 않는 것 같다. 밥이라도 먹어 야 내일을 버틸 텐데.

"훈련이 많이 힘들었나 봐요."

옆에서 이운우가 태연하게 말을 덧붙였다. 얘는 언제부턴가 우리 일 행인 척 같이 밥을 먹는다.

"그냥 힘든 수준이 아니었슴 다....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게 분명함다……

"운우 씨는 안 힘들어요? 서하야, 너는?"

"난 별로."

총 쥐고 쏘는 거야 하루 종일 해 본 적도 있다. 물론 이 육신은 아 직 그만큼 단련되지 않아서 어깨에 근육통이 좀 있긴 하지만. 애초에 움직이지 않는 과녁을 상대로 한 내 명중률은 높은 편이라 더 조율 할 것도 없었다.

"저도 할 만해요. 청사에서 했던 거랑 비슷하기도 하고요."

"청사랑 연수원이랑 교육 과정이

비슷해요?"

"비슷하지는 않겠지만…… 마법사 의 훈련은 어느 정도 방법이 정해 져 있어서요."

이운우가 가볍게 손짓하자 그의 손바닥 위에서 파지직 전기가 피어 올랐다. 너울거리는 빛줄기는 분명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다정 언니는 우와아아, 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마력을 얼마나 세밀하고 정교 하게 조형할 수 있는가, 그게 관건 이거든요."

빛줄기들이 가느다란 실타래같이 변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머리를땋는 것처럼 정교하게 세공된 문양 이 피어난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훅!

이운우가 손아귀를 접자 그대로 사라졌다.

한여름 밤의 신기루처럼.

"신기해요!"

"그쵸?"

마법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일은 거의 없을 거다. 마법사와 힐러는 아주 귀한 존재니까.

"어제 설명회는 잘 들었어요?"

"아. 저랑 서하는 그냥 기숙사 가

서요. 태병아, 어땠어?"

"설명회 말임까? 그럭저럭 평범했 슴다."

그야 그렇겠지. 다들 좋은 말만 하 려고 하면 도리어 너무 뻔해지는 것이다.

"3개 정도의 길드에서 왔는데…… 그중 한 군데는 좀 괜찮아 보였슴 다."

"어딘데?"

"'한결'이라는 곳인데, 원래부터 탱 커랑 근거리 딜러 쪽에 강세라는 것 같슴다. 다른 곳에 비해서 어디 까지는 지원 가능하지만 그 이후는

개인에게 달려있다고 솔직하게 말 해주고 말임다."

한결이라면 괜찮지. 기사 집단이라 는 느낌이 강한 곳이다.

우직하고 성실하다는 이미지가 있 다. 김태병의 심성이랑도 잘 어울리 니, 괜찮을 것 같다.

"나도 가볼 걸 그랬나?"

"오늘도 설명회를 하지 않슴까. 저 는 오늘도 참석하려고 함다."

"그래? 피곤하긴 하지만…… 나도 가봐야겠다!"

"명단 작성하려면 지금 가야 할

검다."

김태병이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다정 언니는 서두르자며 후 다닥 밥을 먹고 가버렸다. 덕분에 나와 이운우만 남았다. 계란말이를 한 점 더 입에 물었다.

"설명회 안 가?"

"관심 없어서."

"중견 길드는 관심도 없으시다?"

사람이 사라지자마자 본색을 드러 내는군. 아까의 사근사근한 말투는 어디 가고, 슬쩍 비꼬는 어투가 섞 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평소처 럼 생긋 웃고 있었다. 청순가련한얼굴에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 을 정도다.

"그래서 내일 모레에 있는 청사 설명회는 오는 게 좋을 거야."

"내가 거길 왜?"

"흔치 않은 기회잖아. 청사의 길드 장을 보는 건."

길드장이 온다고?

마지막 토너먼트 구경만 오는 줄 알았는데, 설명회에 온단 말이었나. 그렇다면 정말 파격적인 행보긴 할 거다. 그의 얼굴 하나 보기 위해 몰려들 인파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질린다.

"널 궁금해하셔."

뜬금없는 말이었다.

"날2"

"그래. 널."

"왜?"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엮인 청사 사람은 이운우뿐이다. 네가 뭔가 말 을 흘린 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자 아니라며 부정했다.

"내가 말한 거 아냐. 헌터 시험 내 용은 소문이 나기 마련이니까. 너랑 내가 변이종 여왕개미를 잡았다는 게 상위 길드 사이에서 화제인 모

양이야."

뭐? 그래? 내가 너무 신인 발굴에 관심 없는 헌터 생활을 해서 그런 지, 잘 모르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역천은 중견 길드라 몰랐던 걸 수 도 있고. 나 말고 표연원이 처리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 추천도 있었고."

" 누가?"

"보면 알걸."

슬쩍 웃는 모습이 속셈을 감춘 얼 굴이다. 내 얘기를 다른 사람이 했 다고? 누구지. 최석철? 영상도 없 을 테니 뭔가 말을 더 얹을 수 있는 건 그 사람뿐일 텐데.

"..난 청사에 관심 없다고 말했 는데."

"알아. 길드 가입은 안 해도, 인사 해둬서 나쁠 건 없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다.

청사의 전서호.

그 이름값이 가지는 무게가 얼마 나 큰지. 헌터 업계에서 대형 길드 의 입김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 다. 게다가 홍염과 청사는 정부 측 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길드들이 다. 이들과 관계를 잘 구축해두면 톨룩에 대항하는 데 좋은 디딤돌이되어줄 것이다.

'아직 정부 측에선 톨룩의 존재를 의심만 하고 있겠지. 그 가설에 내 가 확신을 얹어줄 수 있어. 그러려 면, 정부와 직통으로 닿는 연락책이 필요하다.'

그걸 청사의 길드장이 해준다면 그림이 더할 나위 없이 보기 좋을 거다.

"좋아. 갈게."

"잘 생각했어."

꽤나 긴장되는 일이다.

나는 생전에 전서호를 만난 적이

없었다.

소문만 무성하게 들었을 뿐. 게이 트에서 나와 한창 활동할 때, 나는 청사의 길드장을 만날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이후에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위치에 올라섰을 때 청사는 전서호에서 이운우로 우두머리가 바뀐 상태였고.

전서호는 은퇴하고 나서 단 한 번 도 헌터계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 어서, 정말 나랑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왜 힘이 다하지도 않았는데 은퇴 했는지, 은퇴하고 그렇게 자취를 감

춘 이유가 뭔지. 전에도 소문만 많 았었지.'

가장 유력한 가설은 '차기 길드장 인 이운우에게 힘을 몰아주기 위해, 권력이 분산될 여지를 뿌리째 뽑은 것'이었다. 진짜 이유가 뭔지는 아 무도 모르겠지만.

"대신. 말했다시피 난 청사에 가입 할 생각 없어. 이 점은 분명히 말 해줬음 하는데."

"알겠어. 너무 그러지 말라고."

그야 속셈이 뻔히 보이니까 말하 는 거다.

이렇게 살금살금 청사에 발을 들

이고, 청사 사람들과 친분을 쌓다 보면 자연스럽게 '쟤는 청사에 들 어갈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마 련이다. 그러면 귀한 인력을 낭비하 고 싶지 않은 다른 길드들은 자연 스레 해당 헌터에게 관심을 끊는다.

그러면 원치 않더라도 자신에게 오퍼가 온 곳이 청사뿐이라 청사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서서히 조여오는 뱀 같은 수작 을 내가 모를 줄 알고.

"하하......

어색하게 웃는 이운우를 보면 그 생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나보다.

* * *

인파가 몰렸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바글 바글하다. 대형 길드 설명회는 애초 에 명단도 작성하지 않는다. 강연도 아예 연회장에서 하는 모양이다.

"사람이 진짜 많네."

"그러게 말임다."

내 옆의 둘도 같은 감상이었다.

하긴. 중소 길드는 연수생마다 자 신의 포지션과 인지도에 맞는 곳에 관심을 두지만, 대형 길드는 특정 조건 없이 모두에게 좋은 곳이니 말이다.

홍염과 청사.

이 둘의 라이벌 구도는 유명한 이 야기지만, 설명회까지 같은 날 하면 서 대놓고 경쟁할 줄은 몰랐다. 설 명회는 홍염이 먼저 하고 그 다음 이 청사인 것 같다.

"어떤 분들이 올까?"

"홍염에서는 전청운 헌터랑 박시 연 헌터가 유명하고, 청사는…… 누

가 나올지 잘 모르겠지 말임다."

애기를 들어보면 현직 헌터들도 나온다고 한다.

"둘 다 대표 헌터가 워낙 많지 않 슴까? 너무 유명한 분들은 바빠서 안 올 것 같지만 말임다."

둘은 이운우에게 오늘 청사에서 누가 오는지 들은 바가 있냐고 물 었다. 이운우는 샐샐 웃으면서 이따 가 보면 안다고 답할 뿐이었다. 대 체 누구길래 저렇게 기분 좋아 보 이는지 불안할 지경이다.

"곧 시작합니다! 다들 착석해주세 요!"

설명회가 시작됐다.

다들 자리에 앉아 단상 뒤쪽만 바 라봤다. 누굴까? 정말로 전청운 헌 터가 나올까?

'벨제부브전을 마지막으로 본 적이 없는데...

몇 번 면회 신청이 오는 것을 거 절한 기억뿐이다. 마주하면 다소 어 색하겠지만, 그래도 얼굴을 다시 보 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렴 몇 달을 게이트 안에서 동고동락하 지 않았는가.

"박수로 맞아주시죠! 홍염의 전청 운 헌터와 김기택 헌터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