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대충 인큐베이터를 가리켰다. 그는 직접 몸을 일으키려다가 잠시 휘청 했다. 그러나 끝끝내 일어나 직접 인큐베이터 속을 확인하고 왔다. 그 도 여왕개미가 얼마나 거대한 족속 들인지 알아서인지 대충 수긍하는 눈치였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지?"
"하루 정도."
"다른 개미들은?"
"아직 못 봤어요."
"다른 이들과 연락은 되나?"
"저기 빠졌다 나왔더니 전부 먹통 이에요."
그나저나 갑자기 반말이다.
" 아."
그가 잠시 외마디 말을 내뱉었다.
"죄송해요. 제가 좀 경황이 없어 서……
"괜찮아요. 그냥 서로 반말하죠."
회귀 전 이운우도 남들 앞에선 생 글생글 웃는 낯으로 대하다가 단둘 이 남으면 아주 다른 사람처럼 돌 변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 면 그 나름대로 나를 인정해서 그 랬던 것 같다.
"일단. 당분간은 저기 로얄젤리가 있어서 먹을 것 걱정은 없지만, 식 수가 부족하고 언제까지고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기도 어렵다는 문제 가 있어."
말을 놓자, 이운우는 잠시 날 바라 보긴 했으나 무어라 첨언하진 않았 다.
"……두루마리는?"
역시나. 그걸 물어보는군.
그도 나와 비슷하게 추측한 모양 이다. 나도 이 여왕개미의 방에 두 루마리가 숨겨져 있을 것 같아 이 운우가 쓰러져 있을 때 주변을 살 펴보았다.
"특별한 건 없었어."
"하……. 여기가 아닌가."
뭐, 보통은 이런 형태의 방에 수험 생들이 기어들어가게 두진 않을 거 다. 누가 봐도 아사하기 딱 좋은 곳이니까. 저 하늘 높이 떠있는 출구만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하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4일 남았으 니,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안 돼. 난 이번에 시험을 통과해 야 해."
기묘한 집착이 서린 말이었다. 하 지만 누군들 합격하지 않고 싶겠는 가.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선 수 긍하는 법도 배워야 하는 거다.
"저기까지 올라갈 방법이라도 있 어?"
"......그건.…"
그도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뭐. 그래도 과거의 그와 비교하면 꽤 풋풋한 모습이다. 위기에 처했다 고, 단둘이 남았다고 자기 목적을 밝히는 것 자체가 순진하다는 반증 이다. 이 녀석이 나중에 그렇게 능 구렁이로 큰단 말이지……?
"일단 이것부터 먹고."
그에게 로얄젤리를 건넸다. 게이트 밖에서도 이 로얄젤리는 귀한 영양 제고 아주 고가의 사치품이다.
쓰러졌다 일어났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할 거다. 이운우도 별말 없이 로얄젤리를 받아 들었다. 나도 하나집어 들어 입에 넣고 씹었다. 달달 하면서 은근한 포만감이 들었다.
이운우는 여길 탈출하고 싶은 모 양이니, 일단 뭐라도 먹어야 탈출 계획을 짜거나 개미들이랑 싸우거 나 하지 않겠는가.
움찔.
"왜 그래?"
"......아뇨."
잠깐.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 있던 여왕개미 태아가 움직인 것 같은 데…….
'그럴 리가. 아직 주기까지는 한참
남았어.'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로얄젤리를 입에 넣었다.
이운우는 낙뢰 마법에 특화된 마 법사라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었다. 순하랑처럼 다소 수준이 낮더라도 이것저것 다양한 속성을 다룰 수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지도 모 르겠다.
하지만 결국 고위급 마법사가 되 려면 한 가지 속성을 파고드는 편 이 유리하니, 청사 입장에서는 당연 한 선택이었을 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틀보다 조금 더 지났는데, 개미들은 얼씬도 않았다. 대체 왤까?
인큐베이터 안의 여왕개미를 돌보 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대로 시험이 끝나는 건 아니겠 지……
"왜 이번에 통과해야 하는데?"
그게 꽤 의문이었다. 몇천 단위의 견학도 시켜주는 청사가, 시험 하나 미끄러졌다고 이운우를 내칠 리는 없지 않은가. 애초에 이 정도 수준 의 마법사를 내치는 건 머저리도 안 할 짓일 거다.
"……넌 모르겠지만."
그야 네가 말을 안 했으니 모르지.
"나는 어서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해."
이 이상 그의 가치를 더 증명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의문스러웠 다.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면 이운우 의 가치는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텐데…….
"한시라도 빨리 헌터가……
"청사에서 그랬어?"
청사를 들먹이자 이운우가 날카롭 게 눈을 치켜떴다.
"……그 이름 함부로 내뱉지 마."
그가 길드 청사에 과한 집착을 갖 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헌터 데뷔 를 하기도 전부터 이랬단 말인가. 헌터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소속 감이 강해진 줄 알았는데.
도발할 생각은 없었기에 어깨만 으쓱했다.
"넌 태연해 보이네. 이 상황에서 도."
"생존이 걸린 상황이라면 익숙해 서."
그는 내가 연화도 게이트 출신인 걸 다시금 떠올린 것 같았다.
"연화도 게이트……. 그 총도 거기 서 나온 거라고 했지?"
"그랬지."
노이트를 슬쩍 매만졌다. 내 오랜 전우다.
"성능이 좋아 보이던데. 등급은?"
"그건 알 필요 없고. 딴생각은 하
지 마. 내 귀속템이니까. 이 총을 나 이외에 더 잘 다룰 수 있는 사 람은 없어."
단언할 수 있었다. 족히 10년도 넘게 함께한 무기니까.
"누가 딴생각을 했다고 그래. 너무 하네. 내가 그렇게 보여?"
억울한 체하며 살짝 웃지만, 속으 로는 내 총의 값어치를 한번 저울 질했을 거다. 훔쳐갈 정도로 막장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먹이를 내걸고 딜을 걸어볼 순 있었겠지.
여하튼. 나도 이번 시험에 통과하 는 편이 좋으니,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전부터 속으로 생각하던 것이 었다.
"한 가지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무슨 방법?"
그는 꼭 이번 시험을 통과할 생각 이고, 나도 되도록이면 그러고 싶으 니까. 우리는 무려 그 여왕개미의 인큐베이터 앞에 있지 않은가.
"여왕개미는 부화하기 전부터 태 산개미 전체랑 정신적으로 연결되 어 있거든."
옅은 초록색 점액질 너머로 웅크 려있는 여왕개미의 태아가 보였다. 사람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좀 더작은 사이즈다. 한참 더 자라야 할 거다.
"조금 위협하면, 병정개미들이 안 으로 들어올 거야."
"그러면?"
"태산개미 시체들을 쌓으면 저 위 까지 닿겠지."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 이 개미굴 안의 모든 개미들하고 싸울 셈이 야'?"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우린 도망칠 수 없는데 적의 수는 끝없이 몰려올 테니. 적들을 다 죽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지치면 그대로 끝장인 작 전이다. 나도 그래서 되도록이면 이 방법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입구가 좁아. 한 번에 많은 수가 몰려들진 못할 거고. 이 방이 꽉 차기만 하면 우린 몸집 차이를 이 용해서 어떻게든 숨거나 도망칠 수 있을걸?"
"……두루마리가 여왕개미의 방에 없다면, 있을 곳은 어느 정도 한정 적이지. 시간 안에 그곳에 도착만 하면…… 승산이 있다 이거네."
"뭣보다, 나도 당신도 일대 다수를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으니까."
" 네가?"
뭐. 일반적인 거너는 일대 다수 특 화라기엔 다소 어설픈 감이 있지 만…….
"공격을 한 번 무효화할 수 있어. 개미들이 몰려들면 딱 한 번, 기회 를 노려서 낙뢰를 내려. 내 쪽으로. 당신이 신호하면 나도 대비를 할 테니까."
슬쩍 노이트를 내려다봤다. 특수 탄환으로 30초간 대미지를 무효화 할 수 있을 테니. 나쁘지 않은 장 사일 거다.
이운우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이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기도 하 니.
나랑 그는 인큐베이터 앞에 섰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어쩐지 SF 세 계관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곳이다. 형광색이 감도는 빛깔 에, 웅크린 태아를 보면 그런 생각 이 절로 들었다.
철컥. 장전하고 시험 삼아 한 발 쏘아냈다. 탕!
쿠르르르륵…….
점액질 액체가 대부분의 속력을 감소시키며, 총알은 여왕개미에게 닿기 전에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인큐베이터 안을 침범한 물체를 눈 치챘는지 웅크려있던 덩어리가 조 그맣게 움직였다.
다시 한번, 탕!
아까 총알이 지나간 궤적과 최대 한 비슷하게 쏘자, 조금 더 나아갔 다. 5발 정도 더 쏘면 여왕개미에 게 맞으려나.
진짜 맞히려는 생각은 없었다. 이 6년 차 여왕개미가 죽으면 10년을 더 기다려야 할 텐데, 그럼 여왕개 미의 주기가 16년이 될 테고 그건 던전의 균형에도 좋지 못하다. 보스 몬스터가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건던전의 수명을 줄이는 요인 중 하 나니까.
한 번 더 총알이 파고들자, 여왕개 미가 눈에 보일 정도로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위협이 된 것 같아 총을 거뒀다.
"개미가 몰려올 테니 슬슬 준비 르..«
촤아악!
인큐베이터를 등지고 이운우에게 향하는데, 등 뒤에서 불길한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물살을 헤치고 올라온 듯한 소리.
투둑, 툭. 바닥에 점액질이 떨어지 는 소리가 났다.
뭐?
굳은 얼굴로 천천히 뒤돌았다. 마 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그곳에 있었다.
-키루루……키룩…….
톱니 같은 주둥이가 익숙한 소리 를 냈다. 태산개미의 것과 유사했 다. 그러나, 거대한 몸체를 지닌 개 미들과 다르게 여왕개미는 훨씬 작 은 몸집이었다. 등 뒤에는 날개를 달고 있었고, 개미 같은 몸통에 사 람의 팔다리를 붙인 형상이었다.
"……돌연변이?"
아주 낮은 확률로. 몬스터들도 변 이종이 나타난다.
눈앞의 것은 틀림없이 일반적인 여왕개미와 다른 형태를 띠고 있으 니…… 돌연변이라고 해도 좋을 것 이다.
반질반질한 눈에서 점액질을 닦아 낸 녀석이 주변을 둘러보며 날개를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날개가 바짝 마르며 불투명하던 것이 투명하게 변했다.
돌연변이의 문제점은 항상 동일하 다.
놈들은 기존 개체보다 훨씬 강하 고, 빠르며, 기존 개체의 약점을 보 완한 경우가 많다. 충분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롭다. 그 런데 하필, 여왕개미의 돌연변이 라……?
원래부터 여왕개미는 초보 헌터가 사냥할 레벨이 아니다. 지금이 여왕 개미가 있을 시즌이 아니라서 선택 되었을 텐데. 설마 이번 여왕개미가 돌연변이일 줄은, 주최 측 또한 꿈 에도 몰랐겠지!
'죽을 뻔했다는 사고가 이거였나!'
아니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헌
터 생애 한 번 보기도 어렵다는 그 돌연변이를 이렇게 마주했다고?
이운우 이 자식, 원래 재수가 없는 건 알았지만 이 재수까지 없었네!
-키 루루루..
딱 봐도 이 돌연변이는 힘이나 근 력보다는 민첩 쪽에 특화된 것 같 아 보였다. 기존의 육중한 몸체를 버린 형태만으로도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낙뢰를 맞추려면 움직이지 않는 목표물이 가장 적당하다.
안타깝게도 난 탱커도 뭣도 아니 지만, 저 녀석을 어떻게든 붙들고늘어져야 한다는 소리였다.
"……일단 캐스팅 시작해!"
"움직이는 대상을 맞추는 정확도 는 떨어져. 마나 낭비야!"
"내가 붙잡아 볼 테니까 일단 캐 스팅부터 해!"
"네가 무슨 수로!"
위이이이잉!
여왕개미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광활한 여왕개미의 방은 놈이 날아 다니기에 충분한 공간을 제공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원래 여왕 개미가 부화하자 먹어야 하는 로얄젤리를 우리가 전부 먹거나 가방 속에 넣어서 없다는 거다.
"부화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비 했을 거야. 승산이 있어!"
"……최대한 오래 붙잡아. 그래야 우리가 살 확률이 높아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