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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1화 (31/361)

31화

모든 시험의 1차는 필기다. 그 대 단하다는 게이트 출입 자격시험, 일 명 헌터시험도 똑같다. 1차 필기에 서는 게이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과 그 안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의 약점, 먹을 수 있는 풀 그리고 몬 스터 고기의 손질법 같은 잡다한 것들을 테스트한다.

'다음 중 먹으면 혀가 마비되는 식 물은? 그야 트렌체비아.'

물론 10년도 넘은 헌터인 내게,

'각성자 특별법의 내용이 아닌 것 은? 3번, 고의로 게이트에서 헌터 를 사망하게 하여 지원금을 챙기는 범죄가 성행해, 이를 계기로 특별법 이 만들어졌다.'

이 정도 문제는,

'클리어된 영구 게이트는 '던전'이 라 불리며 신규 헌터들이 실전 감 각을 익히는 데 사용된다. 예, 아니 오? 예.'

아주 쉬웠다. 1교시부터 6교시까 지, 각기 다른 6가지 항목으로 나 뉜 필기시험은 긴 여정이었다. 시험 이 다 끝나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을 정도였다.

시험은 사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려진 몇 가지를 제외하면 거의 정답이 뻔한 내용이었지만…… 굳 이 필기 1등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 진 않았기 때문에 적당히 조절했다.

'테오의 안배를 찾아 움직이려면 되도록 무명인 게 좋아.'

합격자 커트라인은 넘길 선으로 풀었으니, 문제 될 건 없을 거다.

오랜만에 시험을 치고 나오려니 꼭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 았다. 수능이 끝나고 기뻐하던 게 먼 옛날인데, 남들 눈에는 엊그제인 것처럼 보이겠지. 내가 20살이란 사실은 아직도 영 어색하다.

"야. 시험 잘 봤어?"

"잘 봤겠냐? 이번에 역사 진짜 어 려웠잖아. 그걸 어떻게 푸냐."

"1차 붙을 수 있겠지? 작년 커트 보니까 좀 아슬아슬한데."

"아, 몰라〜. 진짜 하반기 노려야 하나?"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헌터 지망 생들의 수다가 귓가를 스쳤다.

'헌터'는 이제 아주 촉망받는 직업 중 하나다. 목숨이 위험하지만, 그 것보다도 화려한 외면에 시선을 빼 앗기기 쉽기 때문이다. 연예인처럼 추앙받는 모습, 남들을 구하고 감사 인사를 받는 모습 그리고 어린 나 이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벌어들이 는 모습. 그런 것들이 헌터의 화려 한 외형이 되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지망생들의 평균 연령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고정된다. 그 이상의 나이로도 헌터가 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3세대헌터인 지금에 이르러선 20대 초반 부터 헌터 생활을 하면서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커리어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내 주변 엔 온통 내 또래라는 거다. 정확히 는 내 육신의 또래.

게이트에서 생활하면서, 또 병원 생활이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잊 고 있었는데…… 내 사회성은 여전 히 바닥을 친다. 그나마 헌터들 사 이에 껴 있었으니 티가 나지 않았 을 뿐, 여타 또래들과 뒤섞이면 이 질감이 확연했다.

'사회성보다는 연륜의 문제인 것도

같지만.'

예를 들면.

"근데 이번에 걔도 응시한다며."

"아, 걔?"

"어어. 청사에서 아주 지극정성이 잖냐. 완전 도련님이라던데."

"햐, 부럽다. 어떤 기분일까? 걘 이거 통과만 하면 바로 청사 가입 이잖아."

"하여튼 수저 잘 물고 태어나야 한다니까? 고유 스킬 수저."

이런 말투는 단순히 홍내로는 만 들 수 없는 그 특유의 느낌이 있다. 그나저나 흥미로운 얘기가 나왔 다. 듣자 하니 청사의 유망주가 처 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청사. 청사라.

홍염과 라이벌 격인 이 길드는, 홍 염과 항상 1등 자리를 다투는 거대 길드다.

그 이름은 푸른 뱀이라는 뜻으로, 뱀이 가진 이미지에 걸맞게 홍염과 는 다른 의미로 폐쇄적인 집단이다.

홍염이 빡빡한 상하관계를 지향한 다면 청사는 그보다 자유로운 분위 기를 추구하는데……. 자유롭다는 게 옳은 표현일까? 나는 마땅한 수식어를 찾기 위해 잠시 고민했다.

말하자면 위아래가 없다시피 하고, 다들 웃는 낯으로 디스하는…… 그 런 느낌에 가까웠다. 웃으면서 막말 을 하는데 너무 해맑게 웃고 있어 서 내가 방금 무슨 소릴 들었나, 어안이 벙벙한.

'그' 청사의 유망주라. 그다지 상 종하고 싶지 않네.

회귀 전에도 난 청사의 누구랑 사 이가 썩 좋진 않았기 때문에 더욱 꺼려졌다.

"짜잔! 서하의 헌터 시험 필기 합 격을 축하합니다〜!"

집에 들어서자, 혜원 언니와 조연 호가 내 원룸을 풍선으로 꾸민 채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펑, 펑! 폭 죽도 작게 터졌다. 어어, 하는 사이 얼떨결에 촛불도 불었다.

"와아아!"

"언니……. 시험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오는데요."

"우리 서하가 떨어졌을 리가 있겠 어? 당연히 합격이지!"

합격이 맞긴 할 텐데……. 혜원 언 니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줬 다. 그 밝은 미소에 나도 절로 기 분이 좋아졌다.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과 원래 받 고 있던 지원금으로 새 원룸을 잡 았다. 어차피 혼자 생활하니 클 필 요도 없겠다 싶어서. 아마 성배에 대한 얘기가 끝나면 홍염 쪽에서 거금을 주면서 성배의 지분을 사려 고 들겠지만…… 뭐, 팔 생각은 없 었다.

매일같이 내 병문안을 오면서 우 리 셋은 한층 더 친해졌다. 혜원 언니와 게이트 밖에서 생활한다는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언니도, 나도.

"나도 헌터 시험을 볼 때가 있었 지〜. 그때 뭘 했더라……. 엄청 귀 찮게 굴었던 것 같은데. 난 필기시 험이 제일 힘들었어! 뭔 헌터 역사 가 그렇게 길어? 고작해야 3세대밖 에 없는데 그 사이에 일이 얼마나 많던지……

"전 필기보단 실기요……. 지금이 야 익숙해졌지만, 몬스터 고기 먹는 데 한참 걸렸어요. 일주일 내내 나 무껍질 뜯어먹다가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결국 먹었죠. 아직도 기억나 요. 제대로 익지도 않은 걸 살겠다고 먹어야 했죠.

둘이 자신이 겪었던 시험 얘기들 을 해줬다. 실기 때 뭘 조심하라는 충고부터, 여차하면 그냥 동료들 다 버리고 너만 살라는 농담까지. 혜원 언니는 농담이 아니라 했지만.

"아무렴 우리 서하가 게이트 안에 서 얼마나 잘했는데, 적수가 있겠 어?"

"그러고 보니……

문득 낮에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 다.

"이번에 청사의 유망주가 응시한 다 하더라고요."

"아, 맞아. 나도 들었어."

혜원 언니가 살짝 찡그린 얼굴을 했다. 음. 이해 가지. 청사 쪽 사람 하고 마주치는 건 꽤나…… 껄끄러 운 일이니까.

"그건 좀……

"불길하죠."

둘이 죽이 척척 맞는다.

"뭐…… 아직 길드를 안 정한 너 한테 이런 선입견을 심어주고 싶진 않지만……

혜원 언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 냈다.

"청사 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 닮은 것들끼리 모여 있단 말이 지. 어떻게 그러나 몰라. 물론 홍염 도 그런 느낌이 강하긴 하지. 전청 운이랑 순하랑처럼 말도 없이 목석 같은 게 그쪽 특징이지만, 김기택 같은 사람들도 섞여서 적당히 중화 제 역할을 해준단 말야?"

확실히 순하랑이나 전청운은 말수 가 적었다. 넷이 있을 때도 대화의 80퍼센트는 김기택이 이끌어 갔으 니 말 다 했지. 나머지는 셋이서 짧은 말로 채워 넣는데, 그나마도 순하랑은 입 한번 떼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근데 청사는 그런 게 없어……. 아주 이름값 제대로 해. 겉으론 웃 고 있어도 속으론 무슨 생각 할지 모르는 게 청사 놈들이야. 그러니 까, 만약 그 녀석이랑 같은 조가 되면……

혜원 언니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 을 이었다.

"네가 먼저 선빵 쳐."

"길드장님!"

조연호가 소리쳤다.

"아, 왜! 연호야, 너도 동의하잖 아!"

"그렇긴 하지만…… 좀 말을 걸러 하실 필요가 있어요."

혜원 언니는 불만스럽게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가구가 너무 없는 거 아 니야?"

조연호가 내 쪽을 바라보며 말을 돌렸다. 청사 얘기에서 벗어나고 싶 은 기색이 역력했다.

"맞아. 아무리 혼자 사는 집이라지 만……

"괜찮아요. 어차피 집에선 잠만 자 는 편이고."

"혼자서 잘 지낼 수 있겠어? 밥은 잘 챙겨 먹는 거지?"

내가 요리를 하진 않지만 잘 사 먹긴 했다. 그것도 잘 먹는 거겠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네가 혼자 오래 지냈으니까 괜찮다고 한 건 알지만..

혜원 언니는 아무래도 갓 20살인 내가 혼자 지내는 게 영 마음에 걸 리는 듯했다. 하지만 중학생 무렵부 터는 혼자 나와 살았으니, 내겐 이 상할 것 없었다. 오히려 전에는 정 부 지원금으로 먹고 자고 입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축에 속했는데,이제 그런 고충은 없으니 더 나아 졌다고 해야겠지.

"사실…… 전부터 너한테 권유하 고 싶은 게 있었는데……

혜원 언니가 머뭇머뭇했다. 조연호 가 옆에서 할 수 있다며 응원하는 눈빛을 보낸다. 아무래도 축하는 겸 사고 오늘의 진짜 본론은 이쪽인가 보다.

"서하야. 나한테 너랑 나이가 비슷 한 동생이 있다고 한 거 기억나?"

"기억나죠. 저보다 한 살 어리다고 했잖아요."

"응. 그래서 처음부터 너한테 많이

신경 쓰고 그랬던 거야. 내 동생 같아서."

그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얘기했고. 동생이라면 다름 아닌 표연원이겠지. 어쩌면 내 가 혜원 언니보다 표연원을 더 잘 알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10년 도 넘게 함께 역천을 이끈 동료니 까.

"처음엔 그랬는데…… 게이트 안 에서 같이 있으면서, 서하한테 내가 정이 많이 들었나 봐."

결연한 눈동자가 나와 마주했다.

"서하야. 우리 집에 같이 갈래?"

"네?"

응? 갑자기? 내가 당황스러운 얼 굴을 하자 옆에서 조연호가 또 끼 어들었다.

"길드장님, 중간 과정이 너무 생략 됐잖아요..!"

"그, 그래? 근데 아깐 너무 구구절 절하다며..

"적당히 생략해야죠. 적당히."

속닥거렸지만 다 들렸다.

"흠흠. 어…… 그러니까. 나는 서 하가 진짜 내 동생이 되어줬음 좋 겠어. 그런데 절차를 알아봤더니 서

하가 지금 성인이라 많이 복잡하더 라고. 그리고 내 가족이 되는 거랑 내 동생하고도 한 가족이 되는 건 느낌이 다르니까……. 법적으로 가 족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서 하가 혼자 사는 것도 마음에 걸리 고, 나는 동생이랑 단둘이 사는데 집에 방이 남거든. 그 방을 서하한 테 주면 어떨까? 언니랑 같이 살 래? 응?"

"자…… 잠깐만요."

너무 많은 내용이 빠르게 지나가 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혜원 언니가…… 지금, 나를 동생으 로 삼겠다고 한 건가? 게다가 같이살자고?

"물론 너랑 나이 차가 별로 안 나 는 남자애가 있어서 거부감이 들겠 지! 알아! 근데 걔는 각성도 못 한 일반인이라 서하가 마음먹고 치면 걜 전치 14주는 나오게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저기, 그게……

"그래! 이미 계약한 이 집도 신경 쓰이겠지? 걱정 마! 여긴 두 번째 집으로 두면 돼. 헌터 시험장이랑은 이 집이 더 가까우니까 시험 칠 때 왔다 갔다 안 하고 여기서 자면 되 겠다. 그치?"

"언니……. 좀 진정을……

"응? 안 돼?"

언니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이것 참……. 얘기를 들어보니 가볍 게 생각하고 꺼낸 말은 아닌 것 같 았다. 내가 마음에 걸렸던 부분들을 차곡차곡 다 답변했으니, 현실적으 로 많이 생각해보았겠지. 법적 절차 얘길 꺼낸 것도 그렇고.

당황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만…… 기쁜 마음도 컸다.

혜원 언니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혜원 언니를 아끼는 마음도 아주 크니까.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한느낌이 들고,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 올랐다. 자꾸만 미소가 새어나올 것 같아 얼굴 근육을 자제시켜야 했다. 으음…… 큰일이다. 권유를 들은 것 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동생분은 괜찮으시대요?"

"괜찮다 그랬어! 내가 용돈 두 배 로 올려준다 했거든."

표연원은 애초에 상냥한 성격이었 으니, 제 누나가 하는 말이라면 껌 뻑 죽었을 거다.

지금은 일반인인 표연원이 각성자 가 됐던 이유도 오로지 제 누나를 위해서였다. 3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 게이트에 직접 들어가기 위해서. 시신이라도 찾아 돌아오려 고. 표연원이 헌터 시험을 통과하고 연화도 게이트에 자원했을 즈음 에…… 결국 게이트가 클리어됐지 만.

죽은 혜원 언니의 시신을 끌어안 고 엉엉 울던 나와 마주했던 표연 원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럼, 한 달만 살아보고 결정 해도 될까요? 동생분이 절 불편해 할 수도 있고, 저도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한 달만 살아보고 결 정할게요."

"좋아아아아!"

혜원 언니가 날 꼭 껴안았다. 따뜻 한 온기가 날 감싸 안았다.

조연호가 뒤에서 부럽다는 눈빛 반, 잘됐다는 눈빛 반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손을 들어 혜원 언니를 마주 안았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죽기 전에 마 지막 단 꿈을 꾸고 있는 걸지도 모 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현실이 이렇게 달콤할 수 있단 말인가. 나 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행복감에 소리 내어 웃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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