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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9화 (29/361)

29 화

"컥……커억……

김기택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천막 안을 울렸다. 전청운이 검을 바로 잡고 다시금 불을 피워냈다. 은은하 게 푸른 불꽃이 검신을 감싸 안는 다.

순간적으로, 전청운의 모습이 흐리 게 보였다. 직후에 그는 벨제부브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빠른 속 도를 눈이 따라가질 못했다.

탁!

벨제부브도 내게 피를 흘려주던 것을 멈추고 그 손으로 검을 들어 전청운과 맞섰다.

'맞아. 전청운도 홍염에서 손꼽히 는 강자다.'

그가 본래 실력을 드러낼 만한 상 황이 없었기 때문에 실감은 못 했 지만. 이제야 알겠다. 무려 그 벨제 부브와 검을 맞대고 서 있었으니 까!

둘의 검이 빠르게 공격을 교환했

다. 몇 번이나 얽혀들었는지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틈은 그럼…… 지금!'

전청운이 시선을 끄는 동안, 이때 가 바로 기회였다.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굴려 침대에서 떨어졌다. 바로 옆에 놓인 성검을 집어 들고, 후들거리는 다리 를 움직여 빠르게 일어섰다. 망설일 새가 없다. 슈욱! 벨제부브를 향해 성검을 휘둘렀다.

털썩, 김기택이 기절한 상태로 바 닥에 떨어졌다.

"얌전히 누워있는 편이 좋을 텐

데."

성검이 벨제부브의 손을 관통했다. 아까 성검으로 손상을 입은 터라, 이번에는 꿰뚫을 수 있었다. 검신을 따라 벨제부브의 피가 흘렀다. 주르 륵.

내 쪽을 잠시 바라보는 동안 전청 운이 몸을 숙이면서 검을 다리 쪽 에 휘둘렀다. 촤악! 방어구에 감싸 여 깊진 않았으나, 핏물이 새어 나 을 정도는 되었다. 전청운과 나는 동시에 뒤로 물러나 거리를 확보했 다.

놈의 부상은 한쪽 손과 허벅지. 그

리고 이쪽은 김기택이 리타이어됐 다. 손해는 우리 쪽이 더 크지만 아직 이쪽엔 3명이나 더 있었다.

성검도 내 손 안에 있었다.

성배의 특수효과, '알 수 없는 이 유로, 특정 인물이 사용할 경우 더 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아직까지 확신한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 '특정 인물'은 나일 것이 다. 성배는 달리아의 영혼을 흡수했 고, 달리아와 연관됐던 인물은 나뿐 이니까.

무엇보다 이전에는 성배에 저런 특수효과가 없었다. 저건 내가 끼어들면서 생긴 변화였다.

그러니 내가 검을 휘두르는 게 서 툴긴 해도, 맞히기만 한다면 그 효 과는 더욱 클 것이다.

나는 전청운과 잠시 시선을 교환 했다. 말을 내뱉진 않았지만 숙련된 헌터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팀플레이, 협력! 우리의 강점은 숫자가 여럿이라는 점뿐이다.

그러니 순하랑과 전청운이 손발을 막으면 내가 성검을 찔러 넣는 전 략이 최선이다.

"제가 보조할게요!"

순하랑이 스태프를 꽉 쥐자, 마법 사와 공명한 마력석이 영롱한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마력석 안에 빛 의 가루 같은 것들이 처음에는 천 천히 회전을 하다가 시간이 갈수록 맹렬히 돌아갔다. 마법이 활성화되 고 있다는 뜻이다.

"가요!"

전청운이 먼저 달려들었다.

그가 벨제부브와 검을 맞대자마자, 전청운의 뒤에 있던 내가 성검을 휘둘렀다. 슉! 검이 허공을 갈랐다. 벨제부브가 몸을 피했다. 하지만 전 청운도 나도 검을 놓지 않았다. 우리가 검을 휘두르는 사이사이 순하 랑이 적절하게 마법을 쓰며 보조했 다.

"윽……

하나둘. 몸에 상처가 쌓이기 시작 했다.

벨제부브도 미약하게나마 체력이 닳고 있겠지만, 우리의 체력이 더 빠르게 소모됐다.

그는 성검에 양손을 꿰뚫린 것치 고는 멀쩡하게 검을 쥐고 있었다. 이 정도 고통은 신경 쓸 것도 아니 라는 건가?

허억, 허억. 전청운의 숨소리가 거

칠어지고 있었다. 벌써 1시간도 넘 게 벨제부브와 검을 맞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대로 장기전으로 가면 우리가 진다.'

새로운 수를 강구해야 했다.

'성검으로 놈을 확실히 꿰뚫기는 어려워. 셋이 협공을 해도, 치명상 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한 가지 수가 떠올랐으나, 지나치 게 위험한 도박이었다.

내 수를 다 읽고도 그에 응해줄 까? 천하의 벨제부브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내 술수에 당해 준 적이 있다. 이곳에 와 있는 게 그 증거다.

우리를 뒤따라 성수가 오고 있으 니, 그냥 방치해도 내가 쉽게 죽지 않으리란 걸 알았을 거다. 그런데도 이곳에 직접 행차한 이유는…… 변 덕이거나, 내 노력이 가상해 한번 당해주겠다는, 뭐 그런 심산이겠지.

'게다가 지금 놈은 투사체라 게이 트 안에서의 죽음이 큰 의미가 없 다.'

그러니 한 번 더 걸어볼 만한 근

거는 있었다.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긴 했지만.

"벨제부브."

우리 셋과 벨제부브가 대치하고 있을 때, 내가 그를 불렀다.

"이대로 우리가 여기서 당신을 놓 치면, 언제 이 게이트가 클리어될지 알 수 없게 되겠지. 그동안 나는 당신의 장난감이 되어 갖은 고생을 다 할 거고."

"그렇다면?"

그래서 뭐 어쩔 거냐는 어투다. 맞 다. 우리는 그보다 약하다. 그러니그가 그러겠노라 선언하면 반항할 수 없겠지. 애초에 이 모든 것이 그의 유희다. 굳이 그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 휘하의 몬스터들만 긁 어모아도 우리는 충분히 죽일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있으니.

"그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겠다고 한다면?"

"흐음……. 그건 재미없는 협박인 데."

그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인간만큼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 한 족속들이 없지. 제 동료나 신념 을 꺾어서라도 생존하려고 했던 이

들을 내가 얼마나 많이 봤을 것 같 나."

흥미와 혐오가 뒤섞인 목소리였다.

"그럼 내기해볼까?"

"내기라'?"

"당신은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 는 것 같거든. 인간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는 착각."

자고로 인간은 예측 불허한 존재 건만. 아주 오만한 착각이었다.

"인간이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 니, 내가 죽을 리가 없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성검을 역수로 쥐었다. 늘 냉철한 얼굴을 하던 벨제부브가 작게 당황 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는…… 내가 죽을 수 있다 생 각하는 거지."

"한서하. 그만둬라."

전청운이 옆에서 말렸다. 성검을 쥔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친 다.

"……네 목숨을 걸겠다고?"

"그러니 당신도 당신 목숨을 걸 어."

전청운의 손을 뿌리쳤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로서는 승 산이 없으니까.

물론 '진짜' 목숨은 아니겠지만.

"당신도 재밌는 장난감인 내가 죽 길 바라진 않겠지? 그러니까. 내가 이 칼로 날 찌를 때, 날 막고 싶다 면……

성검을 내 쪽으로 향하게 하고서 팔을 들었다. 아직 덜 나은 상처, 간신히 응급처치만 된 복부를 겨냥 한다.

"당신 목숨으로 막아."

푸욱!

망설임은 없다. 어차피 배팅하기로 한 목숨이었다.

투자를 아끼면 게이트는 클리어하 지 못한다. 그것이 설령 목숨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투자해야 했다.

"한서하!"

" 미쳤어……!"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 지만, 무시했다.

"하..하하...

헛웃음 지었다.

성검에, 나뿐만이 아니라 벨제부브 도 꿰어있었다.

웃긴 일이다. 나 역시 혼신의 힘을 다했고, 그의 양손은 진작 성검에 꿰뚫린 상태였으니 그걸로 막지 못 했을 거다. 남은 선택지는…… 자신 의 몸을 던지는 것.

"이걸로 만족하나……

얼마나 황급히 움직였는지, 그 충 격에 내가 뒤로 넘어지면서 그가 내 위에 올라탄 자세였다.

검은 머리칼이 흘러내려 내 뺨을 간지럽혔다. 코앞에 그의 붉은 눈동 자가 있었다.

그는 피를 울컥 내뱉으면서도 여 유를 잃지 않았다. 검 끝이, 그의몸을 뚫고도 약간 더 튀어나와 내 복부를 찌르고 있었다.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죽을 만큼 아프긴 했다. 상처 부위가 다시 헤집어지는 고통 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멍청한 선택이다. 톨룩에 대해 알 고 있었으니, 내가 여기서 죽는다 고…… 실제로 죽지 않는 것 정도 는 알 텐데……

그렇겠지. 아직 톨룩도 지구로 직 접 넘어올 방법은 알아내지 못할 때니까.

처음에는 게이트만. 그 다음에는 투사체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접현신하는. 그 단계 중에 아직 투사 체 단계에 서 있었으니까.

눈앞의 벨제부브가 아무리 진짜 같아도 이건 가짜다. 진짜 벨제부브 도 톨룩에 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걸 수 있었던 거다. 그 어떤 미치광이도 정말로 목숨을 걸긴 어려울 테니. 그러나 투사체의 목숨 정도라면, 자신의 장난감을 살 리기 위해 투자할 만할 테지.

"이번엔…… 내가 이겼어."

검을 타고 벨제부브의 피가 내게 흘렀다. 상처 부위가 아물어가면서 응급처치가 되고 있었다.

저번에는 그의 목을 베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그는 내게 '베인' 것이 아니다. 베 여 준 것이다.

혜원 언니가 죽고 나서, 더 이상 이 게이트에 목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조잡하던 내 검 실력으로도 그를 죽일 수 있었던 거다. 지독히도 흥미주의다.

그러니 그가, 흥미로운 장난감을 죽지 않게 하기 위해 '가짜 목숨' 정도는 투자할 법하다고, 그렇게 생 각했던 거다. 실제로도 맞아떨어졌 고.

"그래……. 이번엔 내가 진 것 같 군……

그가 서서히 흐려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도리어 허탈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었다.

"하지만 다음에 볼 땐……

다음? 끔찍한 소리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는지 그가 헛웃음 소 리를 냈다.

"그땐, 이런 조잡한 수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말거라……

조잡한 수라. 당한 주제에 입은 잘

도 떠벌린다.

".약속했잖느냐. 날 즐겁게

해주기로……

그가 작게 소리 내어 웃는다. 상상 만 해도 즐겁다는 듯이.

-좋아. 맹세하지. 대신, 네가 날 아주 재밌게 해줘야 할 거야.

고풍스러운 방 안에서 했던 약속. 그 한 번의 약속으로 그는 영원히 내게 집착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그의 흥미를 끄는 짓을 여럿한 데다, 이번엔 뒤통수까지 치지 않았는가. 이런 인간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거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구

나……

그의 눈빛이 흐려지더니 그대로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의 덩치만큼 무게가 내게로 쏟아진다. 육중한 무 게감이 지친 몸을 압박했다. 더불어 검이 더욱 깊게 박혔기 때문에 절 로 신음이 나왔다. 으윽……. 고통 이 몰려왔다.

[알림: 보스 몬스터 '벨제부브'를

사냥했습니다!]

[알림: 게이트가 클리어되었습니 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클리어 알림 이었다.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기여도가 12만 6천889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기여도 1순위를 달 성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아이템이 배분됩니 다.]

주르륵, 온갖 알림이 연이어 울렸 다.

[능력치에 비해 전설적인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칭호 '마왕 슬레이 어'를 얻습니다.]

[능력치에 비해 전설적인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근력이 30 오릅니 다.]

[능력치에 비해 전설적인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민첩이 30 오릅니 다.]

끝없는 알림의 향연 속에서, 나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너무 많은 피 를 흘려서 정신이 혼미했다. 그대로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속보입니다! 4개월이나 클리어되 지 않았던 역대 최대 규모의 연화 도 게이트가 방금 클리어됐다는 소 식입니다.

-연화도 게이트가 클리어된 지 3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직 사상자 수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장에 있는 김재원 기자 만나보겠 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게이트였는데요. 정확 한 숫자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일반 인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 다.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재산 피 해도 상당하여 정부 측에서 어떤 보상을 제시할지…….

-대피소였던 모 실내체육관이 홀 륭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며 상당수 의 생존자들이 그곳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게이트 전문가들도 칭찬을 쏟아낼 정도로 모범 적인 사례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관 계자의 인터뷰를 들어보겠습니다.

-연화도 게이트의 클리어는 거대 길드 홍염에서 담당한 것으로 밝혀 졌습니다. 특히나 홍염이 자랑하는 루키인 전청운 헌터가 투입된 것으 로 한때 화제가 됐었는데요. 클리어 직후 전청운 헌터가 내가 클리어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홍염 측에서는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다른 길드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내용이 라며, 전청운 헌터가 언론 노출 경험이 적어 다소 오해가 있었던 모 양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번 게이트를 통해 자신의 자질 을 발견한 각성자들이 상당수입니 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이 모 씨도 연화도 게이트를 통해 각성자가 된 후, 여러 위기를 거치면서 초보답지 않은 능력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위 기를 통해 능력치가 상승한다는 가 설이 힘을 얻으면서, 강력한 신입 각성자들을 데려가기 위한 각 길드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한편 국가에서는 이례적으로 기 간이 아니지만 아카데미 입학을 받 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만큼 신입 각성자들 중에 헌터가 될 만한 인물 들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 겠는데요. 국립 아카데미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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