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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7화 (27/361)

27 화

챕터: 반격의 검

[알림: S급 성물〈성배〉의 영향력 안에 있습니다.]

[체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됩니다.]

알림과 함께 팔뚝을 타고 주르륵 흐르던 핏물이 멎었다. 갈라졌던 피부가 빠르게 이어 붙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피로 물든 카람빗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무기가 금방 상하고 만다. 아이템이라 해도 변하지 않는 일이다.

천으로 닦아낸 다음 날을 예리하 게 세운다. 칼을 가는 들은 정찰팀 이 챙기고 다니는 것들 중 하나다. 도구 정비는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좀 다쳤네."

혜원 언니가 옆에 앉으며 말을 걸 었다.

"요즘 무리하는 거 같은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하지만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니 까. 나는, 조금 정신을 놓을 정도로 집중할 만한 뭔가가 필요했다. 그게 지금은 몬스터 사냥인 것뿐이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렇게 무리하는 것도 아니고. 제 실력도 점점 늘고 있잖아요."

정신없이 사냥하다 보니 스탯도 제법 늘었다. 정확히는 잠금이 풀려 간다고 해야 할까. 예전의 능력치만 큼은 아니어도, 차츰 이렇게 회복되 겠지.

"그래도. 내일은 좀 쉬는 게 어떨

까? 오랜만에 같이 저녁 준비할까? 사냥 대신 식사 당번을 하는 건 어 때'?"

"내일도 성당 돌아보느라 건조식 품 먹을 거 아니에요?"

"어…… 어어, 그러니까 건조식품 을 나눠주는 역할을 하는 식사 당 번인 거지! 식사 당번이지만 식사 를 준비하는 게 아니란 점이 참 모 순적이지만, 하하..."

아무 말이나 하고 있는 게 분명했 다. 혜원 언니도 스스로 알았는지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뭘 걱정하는지 안다. 그래, 히든

게이트 '나타롯샤 신학교'. 그 게이 트를 클리어하고, 무려 S급 성물을 손에 넣은 게 2주 전이었다. 온몸 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던 부상은 성배 덕분에 다 나았지만…….

고개를 살짝 들자 성스러운 빛을 내고 있는 성배가 보였다.

늘 고고한 자태로. 항상 올바른 것 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고이 모셔진 성배를 볼 때면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진짜로 뒤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구역질을 할 때도 있으니.

"……저 진짜 멀쩡해요."

"아닌 게 눈에 보이니까 그러지."

혜원 언니가 울상을 했다. 다정한 사람.

이번엔 혜원 언니를 지켜냈으나 달리아는 지키지 못했다. 좀 더 일 찍, 그 빌어먹을 자식이 달리아에게 몹쓸 짓을 하기 전에 달려갔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후회하 지 않는다고 말하던 날 밤 달리아 에게 무어라 다른 말을 더 해야 했 을까? 알 수 없었다.

이전에도 혜원 언니가 영 찝찝한 느낌을 남기는 게이트라고만 했던 것을 보면, 그때도 언니는 수녀 역 할을 맡았던 것 같다. 리트 역할은 빈자리였겠지. 언니의 팀원 중에 미성년자에 가까운 여자아이는 없었 을 테니.

상처가 다 회복됐기 때문에 자리 에서 일어났다. 슬슬 잠들어야 내일 일찍 일어날 수 있을 거다. 오늘 사냥한 흰목도리제비는 방한성이 좋은 모피를 갖고 있지만 고기는 먹을 것이 없다. 내일 좀 더 고기 가 실한 녀석으로 사냥을 하는 게 낫겠다.

"한서하 씨."

어느새 눈앞에 김기택이 서 있었 다. 어이없다는 투였다.

"거긴 제 천막입니다."

" 아."

이런. 생각에 잠겨 너무 넋을 뺀 모양이다. 슬쩍 목례를 하고 뒤돌아 서려는데 그가 날 불렀다.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순간 그 역시 내게 무리하지 말라 는 걱정이라도 내뱉으려는 걸까, 싶 었으나. 그가 주변의 전청운과 순하 랑도 불러들이는 것을 보고 그 생 각을 접었다. 향후 계획에 대해 논 의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도 참. 혜원 언니가 오냐오냐 해 주니 물러졌나 보다. 게이트 안에서 남 걱정은 사치란 걸 진작 알고 있었는데. 김기택은 홍염의 사람이고, 나는 그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 으니…… 내게 호의적일 이유는 딱 히 없었다.

김기택의 천막 안에 모여들었다. 그가 지도를 펼쳤다.

성배를 얻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 지만, 이들은 수색을 계속하고 있었 다. 한강 줄기를 따라 인근 성당이 란 성당은 다 뒤져보고 있었으니까. 2주 내내 빠르게 이동하면서 찾았 더니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다.

"이곳과 이곳. 그리고 여기...... 이 렇게 확인하면 가볼 수 있는 곳은

전부 간 겁니다."

헛고생을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양심이 좀 찔렸다. 하지만 이제 와 서 거짓말이라고 밝힐 순 없는 노 릇이다. 그럼 왜 거짓말을 했느냐 물을 테고, 나는 그 히든 게이트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으니까.

"이곳들까지 허탕 치면 우리는 잠 시 방향성을 잃게 됩니다."

"다른 정찰팀은 발견한 게 없나?"

"없다고 합니다."

" 흐음......

전청운도 고민이 되는 듯 턱을 쓸 어내렸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려고 부 른 겁니다. 보스 몬스터한테 끌려갔 을 때, 뭔가 더 기억나는 것은 없 습니까?"

김기택이 날 바라보며 물었다. 안 타갑게도. 전혀.

"없어요. 정말로요."

"……2주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 는 게 좀 찝찝하군요. 보스 몬스터 가 아직도 서하 씨를 보고 있는 게 맞을지, 조금 의심이 생깁니다."

합리적인 생각이다. 나도 벨제부브 가 지금 날 보고 있을지 좀 헷갈리 기 시작하니까. 하지만, 모습을 드 러내지 않을 뿐…… 그가 곧 다른 수작을 부려올 것이다. 혜원 언니한 테도 그랬다. 잠깐 틈을 줘서 희망 을 품게 만들고, 그 직후 절망을 선사하는 방법.

'하지만 순순히 당하고 있을 순 없 지.'

재밌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정 말로 재밌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자고로 그 개자식은 갖고 놀던 장 난감이 튀어올라 자신을 할퀼 때 가장 즐거워하는 놈이다.

'……그 꼴을 보면서까지 성배를 획득한 이유가 뭔데……

전부 다, 그 벨제부브를 잡기 위해 서가 아니었던가.

'힐러인 조연호가 있지만 생산할 수 있는 성수는 미약했어.'

반면 성배는 24시간 최상급 성수 를 뽑아내니, 차원이 다른 효율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엔 성배 때문에 조연호가 할 일이 없다면서 투덜거 리곤 했다. 배부른 소리다.

"……보스 몬스터를, 제가 유인할 게요."

* * *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습니다."

정찰대원이 말했다. 이번에도 허탕 이란 뜻이었다.

"저 부근에도 뭔가 없었습니까? 십자가가 이만큼 떨어져 있으니 분 명……

"없었습니다. 시공간 축이 비틀릴 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그 말에 김기택도 입을 다물었다.

마지막 성당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우려했던 일이 실 제로 벌어졌단 뜻이다. 우리는 이제 목적을 잃었고, 갈 곳이 막막하기만 했다. 더 이상의 수색은 무의미하다 고 생각했는지 김기택이 수색 종료 를 명령했다.

하나둘 모여들고 오늘은 성당 안 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이제 어떻게 할 예정이야?"

혜원 언니가 김기택에게 다가왔다. 역천의 길드장으로서 혜원 언니 역 시 향후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들 을 자격이 있었다.

김기택은 내 쪽을 힐끗 바라봤다 가 시선을 바로 했다.

"아직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습 니다. 홍염 내부적으로 회의를 좀 더 진행하고, 외부 인사들과도 대화 를 나눠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가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그래. 혜원 언니는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좋겠지. 혜원 언니도 대충 수긍하더 니, 변경사항이나 알아야 할 일이 생기면 바로 알려달라고 말했다.

"물론이죠."

김기택이 간사하게 웃었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저 미소는 도리어 보는사람에게 없던 의심도 불러일으킨 다. 자제하는 게 좋을 것이다.

혜원 언니를 따라 나가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그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 * *

평소처럼 몬스터를 사냥하고 돌아 왔는데 안이 어수선했다. 다들 뭔가 를 준비하는 듯 분주해 보였다. 무 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뜻밖의대답이 돌아왔다.

"어어, 좀 떨어진 데서 의심지역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 그곳으로 출발 하려고 한다더라고. 여기서 며칠 안 걸리는 데라 클리어팀만 빨리 갔다 오려나 봐. 아무래도 사람이 많으면 움직이는 데 오래 걸리니까, 소수 정예로 다녀오려는 거겠지?"

"클리어 팀만요?"

"서하 너도 같이 가게 될 수도 있 겠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네."

의심 지역이라. 갑작스럽게 그런 일이 생길 확률은 적다. 나와 혜원 언니가 3년이나 뒤졌는데도 흔적조차 못 찾은 곳이 아닌가. 그 보스 지역은. 아마 핑계일 것이다.

"한서하! 너도 준비해."

조연호가 다가와 예상했던 말을 했다.

"너도 데려간대. 클리어팀에서."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밥 굶지 말고, 춥게 입고 다니지 말고…… 몬스터 나오면 뒤에 숨 고……. 알겠지?"

혜원 언니는 거의 생이별하는 가 족처럼 걱정 어린 말들을 남겼다. 떠나기 직전에는 나를 꼭 안아주며, 험한 일정이겠지만 잘 다녀오라고 속삭였다.

차마 다시 보자는 약속을 할 수 없어 말없이 웃었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3일은 족히 걸었다. 처음에는 뭔가 수작질을 하 러 간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혹시 진짜 수상한 곳을 발견해서 가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어 묻진 않았다. 한동 안 김기택이나 전청운도 내게 별말 이 없었다.

저녁으로 건조 식량을 먹고 간이 텐트에 들어가 잠에 빠져들었을 때 였다.

불현듯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탁!

머리맡에 두었던 카람빗을 향해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정체 모 를 괴한이 내 팔목을 잡아 제압했 다. 힘이 나보다 월등했다. 두어 번 손을 휘둘러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 았다. 그렇다면.

붙잡힌 손목을 당기면서 놈의 균 형을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별 효과가 없었다. 차선책으로 다리를 휘둘렀다. 후욱! 바람을 가 르는 소리가 났지만 그마저도 막혔 다.

움직임이 봉인되자 침묵이 감돌았 다. 그제야, 침입자의 실루엣이 보 였다.

빛을 받자 푸른빛이 감도는 것 같 은 검은 머리카락. 하얀 피부는 매 끄럽고, 날 붙잡은 손바닥엔 두터운 굳은살이 잡혀 있었다. 달빛이 내리 면서 긴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웠 다.

전청운이었다.

순간적으로 아, 하고 깨달음이 떠 올랐다. 동시에,-푸욱!

그의 검이 내 복부를 찔렀다.

"허……억...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청운이 쓰러지는 내 몸을 지탱하며 침대에 눕혔다. 날 찌른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다정한 손놀림이 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는 것밖에 할 수 가 없었다.

촤악!

"쿱! 크으……욱, 읍……

복부에 꽂힌 검을 뽑아내자, 상처 를 다시 후벼 파는 고통이 뇌를 관 통했다. 내장기관이 심각하게 손상 됐다. 피가 줄줄 흘러 침대를 적신 다. 출혈량이 심상치 않았다.

뇌가 아드레날린을 분비해서일까.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야 정상일 텐 데, 도리어 마취가 된 것처럼 멍했 다.

내가, 지금 검에 찔린 게 맞나?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손을 겨우 움직여 복부를 훑자 그제야 배에 구멍이 난 것이 느껴졌다. 피가 퐁퐁 솟고 있었다.

그런 나를, 전청운은 가만히 응시 하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서서. 아주 무감각 한 눈빛으로.

내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바라 본다.

우당탕탕! 챙그르르

그에게 손을 뻗다가, 침대 옆의 탁 상 위를 모조리 쓸어버렸다. 플라스 틱 통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요란한소리를 냈다. 피투성이로 손을 뻗었 지만 그는 마주 잡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김기택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밤 불침번은 그였던 모양이다.

"아....... 그......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말해야 했지만, 입 밖으로 나온 것은 기이한 짐승의 울음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김기택도 검에 찔린 나와 그 옆에 서 있는 전청운을 보고 상 황을 눈치챈 것 같았다. 피비린내가 심한지 그가 코를 막았다.

"화려하게 했군요."

태연한 어투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썩 보기 좋진 않네요."

그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호들 갑도 없었고, 날 구하려는 행위도 없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너무 추웠다. 통증을 느끼는 감각 은 정상이 아닌데 이상하게 지독한 추위가 느껴졌다.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정신 을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피 는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나…… 이대로…….

그 순간. 나와 전청운 사이 공간이 쫘악 찢어졌다.

검은색 일색인 공간. 그 사이에서, 익숙하고도 역겨운 얼굴이 드러났 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

"보스 몬스터, '벨제부브'. 비싼 얼 굴을 이제야 봅니다."

전청운과 김기택이 각자 싸울 준 비를 했다. 전청운의 검에 푸른 빛 이 실렸다. 그들 뒤로 순하랑이 다 가와 섰다. 보석이 좌르륵 흔들리며전투 준비를 알렸다.

이들이 진형을 갖추는 동안, 벨제 부브는 검은 공간으로부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전에 봤을 때 그는 부드러운 소재의 옷감을 가볍게 걸 친 채였는데. 이번에는 제복을 갖준 차림이었다. 검은색 일색에 가죽처 럼 질긴 소재로 보였다.

벨제부브는 전청운 쪽에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는 날 보고 있었다. 죽어가는 나 를.

"제법……

그가 입을 열었을 때. 지독히도 차

가운 어투에, 그제야 그가 매우 화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유의 권태로움을 싹 갖다 버린. 잘 벼린 칼날처럼 매서운.

"제법 건방진 짓을 꾸몄구나."

붉은 어둠의 권속, 일명 마왕이라 불리는 자들 중 하나인 남자. 그가 차갑게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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